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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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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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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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집으로

DUMMY

하루종일 헤실거리고 있던 희선이 그런 표정을 짓자 성신도 움찔했다.


“그들이 우리를 지킬 수 있도록? 역사상, 우리 칼로 너희를 지켜주겠다는 말하는 새끼들 중에 지켜주는 놈들 안 잡아먹는 새끼들 본 적 있습니까? 외양간에 짚을 깔고, 여물을 주고, 서까래를 새로 올려주는 것이 소를 위한 것입니까? 곧 시퍼런 칼을 들고 와서 뿔을 부러뜨리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뜯어 먹겠지요. 우리가 다 뒤질 때까지. 그렇지 않습니까? 개씨부럴, 그러니 영국놈들도 양보다는 소를 제물로 바치겠지.”


“네, 네? 마지막에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열을 받아 욕까지 섞어가며 횡설수설하는 희선의 모습에 성신이 겁을 먹었다. 겁먹은 와중에도 마지막 양과 소는 무슨 헛소리인지 궁금하긴 했다.


조선에서 가장 유력한 집안중 하나의 딸로 태어나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혼이 나거나 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던 그녀였다. 여태 그 누구도 조성신에게 희선과 같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녀의 부모마저도.


하지만 희선도 곧 얼굴을 바꾸었다. 머릿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희선아, 철 이야기도, 총 이야기도, 욕설도, 민감한 이야기도, 아무것도 안 된다. 순진하게 호호호, 저는 잘 몰라서요, 라고만 하거라. 알겠느냐? 잘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죽은 듯이 있다가 나오기만 하면 된다. 궐내에서 문제 일으키면 너랑 나랑 다 같이 죽는 것이니라.


‘아버지, 이미 좀 늦은 것 같습니다.’


“어머, 제가 무슨 말을. 그렇지요. 그건 그냥 제 생각일 뿐입니다. 다들 피곤하실 테니 주무시지요, 호호.”


성신, 덕여, 민화 셋 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거, 바보인 줄 알았는데 미친년이었구나.’



그날 밤, 그들이 묵는 방 근처에서 성신의 강아지 찰스가 계속 낑낑거렸다. 덕여는 유독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희선은 대자로 누워 코까지 골면서 잘만 잤다.


참다못해 덕여가 말했다.


“저 강아지 좀 어떻게 할 수 없겠습니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귀찮다는 듯한 투로 성신이 대답했다.


“사람도 아니고 개가 좀 낑낑거릴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만 참으시지요.”


“제가 잠귀가 밝아 소리에 좀 예민합니다. 성신 님의 강아지니 좀 달래든가 해보시지요.”


“이 야밤에 제가 방 밖으로 나가야 한단 말입니까.”


역시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민화가 한마디 거들어 말하려는데, 희선이 대화소리에 잠을 깼다. 몽롱하던 차에, 이미 앞서 욕설도 한판 했겠다. 그녀는 막 나가기로 했다.


“저 개 같은 개새끼 조용히 안 시키면 내일 아침에 부뚜막의 솥 안에서 찾으셔야 겁니다. 제가 못할 것 같습니까.”


성신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지금 겁박하는 겁니까?”


“겁박인지 아닌지 내일 아침에 확인해 봅시다.”


“흥, 정말이지 품위가 하나도 없으시군요. 세자 간택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제가 그런 허세에 속을 것 같습니까?”


그 말만 남긴 성신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10여 분 지났을까. 조성신이 몸을 일으키더니 방 밖으로 조용히 나갔다. 찰스도 조용해졌다. 희선은 곧 코를 골고, 덕여와 민화도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다들 퇴궐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비전 제조 상궁이 종이를 두 장씩 내밀었다.


“이 종이는 무엇입니까?”


성신의 물음에 상궁이 대답했다.


“좀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제 물음에 하나씩만 답을 써주시면 됩니다. 이번 간택부터 정해진 것이라, 저도 처음입니다.”


“질문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옆에 있는 묵, 필을 들고 써주시면 됩니다. 첫 번째, 세자빈이 되었으면 하는 분의 이름을 써 주십시오. 자신의 이름을 써서는 안 됩니다.”


난데없는 소리에 다들 당황했다.


“예? 갑자기 무슨...?”


“대비마마와 중전마마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전 그냥 따르기만 할 뿐이니 그냥 써 주십시오.”


첫 번째 질문에 답을 쓰자, 나인과 상궁들이 쪽지를 흘긋 확인하더니 수거해갔다.


“두번째 질문도 간단합니다. 세자빈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분의 이름을 써 주십시오.”


넷 다 서로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희선과 민화는 마주 보고 싱긋 웃기까지 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쓰자, 역시 상궁들이 쪽지를 확인하고는 수거해갔다. 희선의 답을 본 상궁은 살짝 놀라 희선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대비전 제조 상궁이 종이를 걷은 상궁에게 물었다.


“자네, 아까 왜 그리 놀랐는가? 손가 규수님이 너무 악필이거나 했던 건가?”


“아닙니다, 마마님. 그 규수님은 두 번째 질문에 자기 이름을 썼습니다. 생각해보니 마마님이 아까 말씀하실 때 두 번째 질문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제조 상궁이 피식 웃었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



대비가 물었다.


“그래,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상궁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누가 되었으면 좋겠냐는 첫 번째 질문에는 조가의 규수님...”


“우리끼리 있으니 그냥 편하게 하게.”


“네, 대비마마. 누가 세자빈이 되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는 황덕여 1표, 손희선 1표, 정민화 2표가 나왔습니다. 조성신은 황덕여를, 황덕여는 정민화를, 손희선과 정민화는 서로를 썼습니다.”


“오호, 그럼 두 번째는?”


“정민화 1표, 조성신 2표, 손희선 1표가 나왔습니다. 조성신은 정민화를, 정민화와 황덕여는 조성신을, 손희선 낭자는....음....자신의 이름을 썼습니다.”


“뭬야? 그 아이 미친 것인가?”


대비의 고함에 중전이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닙니다, 대비마마. 제가 어제 지켜보니 세자빈 자리에 뜻이 아예 없어 보였습니다. 우리를 능멸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집에서 사주단자를 왜 냈단 말인가?”


대비마마께서 북인들을 싸고도니 그런 것 아닙니까,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중전이 말했다.


“본인은 뜻이 없었는데 집안에서 제출한 것이겠지요. 한번 웃어넘기시면 됩니다. 어차피 삼간택에는 조, 정 두 집안의 규수를 올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



궐문 앞에는 네 명의 규수를 데리러 나온 각 집안의 사람들이 와 있었다. 종효도 가마꾼들과 함께 와 있었다.


“애기씨, 안녕하셨습니까. 불편하신데는 없습니까.”


“종효 아재, 하루만에 보는 건데 불편할 게 뭐가 있나요?”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집으로 가서 쉬셔야지요.”


그때 정민화가 옆으로 다가왔다.


“희선 님, 안녕히 가십시오. 전 그동안 요리공부 열심히 해 두겠습니다. 아버님이 허락하신다면 불과 힘과 마법에서 뵐 수 있겠네요.”


희선이 고마움을 듬뿍 담아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민화 님이 어제 그렇게 나서주시지 않았으면 전 진짜 너무 힘들었을 듯 싶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혹시 성사된다면, 그래서 같이 싸우게 된다면, 영광일 겁니다.”


“호호, 희선 님도 그런 입발린 소리를 하실 줄 아시는군요, 영광이라니요.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민화가 자기 가마로 걸어간 뒤, 희선이 종효에게 말했다.


“미인이죠? 어때요?”


“.......”


종효는 이미 희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입을 약간 벌리고, 동공이 좀 커져 있었다. 구미호에게 홀리면 이런 모습일까. 희선은 부아가 슬 치밀었다.


“종효 아재!! 가요!! 하여간 남자들이란.....”


“네? 네네. 애기씨 타, 타시죠.”


가마를 타고 1분쯤이나 지났을까,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손씨 집안의 낭자, 손희선 양 되십니까?”


“아저씨, 스승님, 예조 참의 영감, 뭐가 되었든 저리 가요. 갈 데가 없으면 장가라도 가든가. 할 일 없어요?”


“어, 어험. 누굽니까 그게?”


“재미없으니까 할 말만 하고 가세요.”


“병조판서 손병도 대감의 따님, 손희선 낭자가 삼간택 후보에 올랐음을 통보 드리러 왔습니다.”


가마 창이 열리며 희선의 얼굴과 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오라버니, 진짜예요? 아니, 안 돼요. 그럴 리가.”


희선의 눈에 들어온 규원의 얼굴은 실쭉 웃고 있었다.


“잘 속는구나, 너. 양심이 있으면 네가 삼간택에 올라갈 거라 생각을 안 해야지.”


“아잇, 진짜! 그래서 놀란 거잖아욧! 그럴 리가 없는데 해서.”


“아직 뭐 정해진 건 없어. 니들이 오늘 아침에 나왔는데 뭐가 벌써 결정이 됐겠냐. 다만....”


규원이 희선의 귀에 얼굴이 가까이 댔다.


“정민화와 조성신, 둘로 삼간택을 갈 분위기더라. 걱정마라.”


“휴~ 다행이네요. 전 그럼 마음 놓고 집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희선아. 내 곧 양 한 마리 제일 귀여운 놈으로 사서 놀러 가마.”


희선이 가마에서 뛰어내릴 듯 보여, 김규원은 사대부답지 않은 몸놀림으로 달아났다.



**



희선은 석고대죄를 하듯 부모님 앞에 앉았다. 손병도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죽은 듯이 있다가 무사히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더냐. 우리가 너더러 세자빈이 되라고 했느냐, 조선의 무기를 혁신하라고 했느냐, 영길리군을 몰아내라고 했느냐. 그냥, 그냥, 가만히 있다가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몇 번이나 내가 부탁하지 않았느냐.”


희선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내게 특별히 당부하셨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것 없으니 책하거나 혼내지 말라고 말이다. 그걸 당부하셨다는 것 자체가 책하거나 혼날 소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진심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괜한 말을 하고 괜한 일을 벌인 것 같아 수도 없이 후회했다.


“세상에, 불, 힘, 마법이라니. 그것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 그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더냐?”


“자신 없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고 합니다.”


“네 철 다루는 실력이 영길리의 장인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 않겠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해보긴 했는데, 저도 어느 정도 철을 다룰 수 있는지는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야공 수준이 되기는 하는 건지, 어린 아이 소꿉장난 수준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민씨도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희선을 바라봤다.


“딸아, 희선아. 이 어미는 조금 무섭다. 고운 것, 예쁜 것만 보고 살아주었으면 하는데 이 무슨 일이냐. 영국군들과 대결을 하다니, 정말 괜찮은 것이냐.”


“괜찮습니다, 어머니. 그냥 무기를 만들어 두들겨 보는 것이고, 누구 요리가 더 맛있는지 보는 정도입니다. 대장장이와 숙수(熟手)들이 기술을 뽐내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목을 거는 것도 아니고, 우리 집안에 누가 될 일도 없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부모 된 입장으로 이 별난 딸이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무사히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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