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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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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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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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시집가는 날 (2) + @

DUMMY

장군전 관련 일이 끝나자마자, 희선은 혼인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다.


김가의 사주단자를 받은 손가에서는 규원, 희선의 사주와 다른 상황들을 살피고 혼인 날짜를 잡았다. 사주단자를 받은 것을 사례하고 규원의 옷을 마련해 보냈다.


택일 후 혼례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판 손병도와 홍문관 부제학 김상백은 바로 다음달로 혼례 날짜를 잡아버렸다.


손가에서는 혼례 전에 혼수와 함께 잔치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했고, 김가에서는 함을 보냈다.


함진아비를 보내고 규원은 혼인 시간에 맞추어 희선의 집으로 향했다. 손병도와 김상백의 집 모두 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므로, 규원은 당일 출발했다. 처가에서 잠시 쉰 후 오후에 혼례가 시작되었다.


와글와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즐거워했다. 규원과 희선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그 둘의 지인들, 동네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대부가의 잔치에 오기 힘든 백정, 관노들까지 손병도의 집에 들어와 뭐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혼례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척 봐도 건장하고 무예의 달인인 듯한 사람들이 넷 들어왔고 중년의 여인 두 명, 그 가운데에 최고급품으로 보이는 자줏빛 너울로 얼굴을 가린 여인이 있었다. 뭔가 근처에도 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람들은 쫙 갈라졌고 그래서 더 눈에 띄게 되었다.


스란치마와 원삼을 입고 준비를 하던 희선의 눈에도 그 모습이 들어왔다. 너울로 얼굴을 거의 가렸지만 옅은 푸른색의 눈동자와 오똑한 코, 예쁜 붉은 입술이 보였다. 조선의 세자빈, 정민화였다.


희선이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갔다. 앞을 가리고 서 있던 경호인들도 알아서 비켜섰다.


“세자빈 저하, 오랜만입니다.”


“희선 낭자, 아니 이제 숙부인(淑夫人)이라 불러야 하나요?”


“저의 모지리 서방님이 종3품 도호부사가 될 예정이라 숙인(淑人)이 됩니다. 그냥 야 이년아, 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잘 있었어?”


“응. 넌 어땠어, 몸은 건강하고? 세손 각하 출산 이후에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만, 이제 좀 나아졌어?”


“올해 초에 너 본 이후로는 차차 나아지더니 괜찮아졌어. 이젠 달리기도 해.”


“다행이구나, 조선의 국모가 되실 분인데 건강해야지.”


왕실 인사들이 들었으면 큰일 날 만한 대화였지만, 둘 사이를 잘 아는 수행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을 바라보기만 했다.


“축하해. 난 개성에서 두 사람 같이 있는 것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난 몰랐는데.”


“참의 영감이 널 보는 눈을 쳐다보고도 그걸 몰랐다고? 너도 대단하다 정말.”


“하하, 내가 그렇지 뭐. 혼례 끝나고 잠깐 볼 수 있어? 시간 괜찮아?”


“그렇게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 조금만 지켜보다 갈게.”


“와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다시 한번 축하해, 희선아. 행복하게 잘 살아.”



신랑 김규원이 희선의 어머니 민씨에게 목각 기러기를 드렸다. 이후에 신랑 신부가 교대로 절을 하고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교배례를 했다.


그때 집 앞마당으로 노란 머리와 빨강, 갈색 머리를 한 일단(一團)의 네안더들이 들어왔다. 개풍 대장간의 전 야장, 웅수와 다른 네안더 일꾼들이었다. 외석이는 함길도로 떠나버린 지라 올 수가 없었다.


사피엔들이 득시글거리는 사대부가의 혼인에 네안더들이 온 것만 해도 정말 용감한 일이었다.


쫓겨나는 것이야 가벼운 것이고, 두들겨 맞거나 멍석말이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눈치를 볼지언정 들어와 상차림을 한 곳에 엉거주춤 앉았다.


희선의 집 사람들이야 희선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대장간의 사람들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참석했던 다른 사람들이 문제였다.


“좋은 날 어디서 빨간 머리 짐승들이 들어오는 거야?”


“어이, 누가 이것들 입장시켜 줬어?”


술도 얼큰하게 취했겠다. 양반, 상인 할 것 없이 웅수 일행들에게 험한 말을 해대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희선도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예복을 입은 새색시가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마침 종효도 승배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얼금이가 그리로 먼저 뛰어갔다.


“어르신들, 나으리들, 이분들은 우리 애기씨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심려는 무슨, 예판댁 경사스러운 혼삿날 냄새나는 것들이 집 안에 들어왔는데 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아이고, 아닙니다. 그만 하십시오.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이 종년이 어디서! 이년 이거 반상의 법도를 능멸한 죄로 몇 대를 맞아야 할까, 엉?”


소란이 일자 사람들의 시선도 그리로 쏠리고 있었다. 주위가 너무 시끄러워지자 곤란해진 웅수 일행은 조용히 일어나 그냥 나가려 했다.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희선의 눈에 웅수 일행이 나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혼례복을 입고 발광하는 모습만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만은 참으려 했는데.


희선의 그 심정을 알았는지 반대편에서 얌전히 있던 규원이 희선보다 먼저 움직였다. 웅수가 있는 자리로 규원이 서너 발 내딛는데, 가장 크게 소리치며 시비 걸던 양반이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엌, 이거 뭐야, 누구야! 이것들이 내가 누군줄 알고, 엉?”


그를 확 밀쳐내 넘어뜨린 것은 민화의 경호인이었다.


“나으리가 누구이신지 모릅니다만, 저희는 세자빈 저하의 경호를 해야 해서. 저하가 나아가시는데 앞을 막으면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주위의 모두가 깜짝 놀라 엎드렸다.


“세자빈 저하!”


“어, 어이구.”


손을 모으고 읍한 채로 서 있던 희선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지랄들 하고 있네.


민화가 웅수에게로 다가서자, 웅수와 일행은 민화 앞에서 납작 엎드렸다. 민화가 웅수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일세.”


민화도 사피엔, 네안더 가리지 않고 연장자에게는 말을 높이는 편이었으나, 눈이 너무 많았다.


웅수는 당황했다.


“저하, 저 같은 무지렁이가 저하를 어찌 알겠습니까. 다른 이와 착각하신 듯합니다.”


“아닐세. 2년 전에 불, 힘과 마법에서 인사하지 않았던가.”


웅수도 그때 기억이 났다. 희선을 응원하러 갔을 때, 옆에 있던 민화하고도 인사를 했었다. 세자빈 저하께서 그때 잠깐 봤던 천한 놈을 기억하고 계셨다니, 웅수는 그야말로 감동했다.


“아, 네. 세자빈 저하, 강녕하셨습니까.”


“자네도 건강하신가.”


“아직 괜찮습니다. 망극합니다, 저하.”


“숙부인 혼인하는 것 축하하러 오셨는가.”


“그렇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즐기다 가시게. 다음에 또 보세.”


민화가 몸을 돌려 아까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세자빈과 안부를 나누는 네안더인에게 시비를 걸어보려는 용자는 더 이상 없었다.


뜨악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규원도 제 자리로 돌아오고, 혼례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우리 세자빈 저하 최고다.’


희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민화와 눈이 살짝 마주쳤다. 희선이 살짝 손을 빼 엄지를 척 들어주면서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민화가 알아들을지는 의문이었다.


「고맙다. 이년아.」


피식 웃는 걸 보니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절차로 근배례가 있었다. 표주박 하나를 조깨어 나누어진 표주박을 각각 들고 규원과 희선이 술을 마셨다. 그건 둘이 일심동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밤이 되어도 시끄러웠다. 술 마신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먹다 지쳐 잠든 사람 등등. 바깥에는 잔치가 벌어졌다.


안채에는 신방이 준비되었다. 새로 도배하고 병풍도 쳐 두었다. 얼금이가 들어와 이부자리와 베개를 준비했다. 간단한 주안상도 들어와 있었다.


“와, 얼금아 웬일로 이렇게 완벽한 준비가 되어있니?”


“우리 애기씨 첫날밤 지내시는데 부족한 게 있으면 되나요?”


“그래. 고맙다, 얼금아.”


“애, 애기씨. 축하드립니다.”


그 말하는 얼금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야, 너 왜 울어?”


“그냥, 좋아서요.”


“나 참.”


희선이 양팔을 벌렸다. 얼금이가 와서 쏘옥 안겼다.


“고맙다, 얼금아. 나중에 너 시집갈 때 네 신방은 꼭 내가 준비해줄게. 오늘 네가 해준 것처럼. 약속할게.”


“고맙습니다, 애기씨.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좋은밤 되세요. 히히.”


얼금이도 나가고 희선은 혼자 남아 규원을 기다렸다. 모지리 규원이 신방에 들어 족두리, 버선, 활옷, 저고리 옷고름 등을 풀고 벗겨줘야 했다. 희선은 자신의 몸에 비잔틴 기사단 전신 판금 갑옷처럼 덮여 있는 옷과 장신구들 때문에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신방 바깥이 시끄럽더니 규원이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들려왔다. 그들 모두에게서 술도가의 술독 같은 냄새가 났다. 비틀비틀 들어온 남자들은 다 희선이 아는 얼굴들이었다. 예조의 관리들과 규원의 친구들이었다.


“숙부인, 죄송합니다. 규원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가지고.”


“희선아, 힘내!”


“실례가 많았습니다. 뜨신 밤 보내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 종류의 인사가 쏟아졌고, 희선이 그 인사에 답을 했다. 그들은 규원을 짐짝 놓듯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우, 우웅. 어...주..욱겠다.”


온몸에 갖가지 옷과 장신구로 둘러싸인 불편한 몸이었지만 희선은 그를 질질 끌고 가 자리에 눕혔다.


4~50분이나 지났을까. 규원은 시체처럼 누워만 있었다. 희선은 자신의 머리에 손을 뻗었다. 스스로 풀기 힘들게 되어있는 족두리 매듭을 풀고, 활옷, 저고리 등을 겨우겨우 벗었다.


“에휴...이 웬수같은 인간아.”


- 짝.


잠시 새신랑을 쳐다보던 희선이 손을 뻗어 규원의 뺨을 한 대 때렸다.


“어우우우웅...”


죽은 것은 아닌지 신음소리를 냈다. 희선이 빙그레 웃으면서 방금 자신이 때렸던 그의 뺨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파팡, 파파파팡. 따다당.


그때 방 바깥, 섬돌 근처와 마루 위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새신랑 새색시의 신방을 훔쳐보려는 자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희선의 작은 선물이었다. 밖에서는 화약과 폭죽, 비명소리가 섞여서 났다.


그들의 첫날밤은 희선의 싸대기 한 대와 함께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다. 다음날 한성에는 부제학 댁 새색시가 신방 훔쳐보려는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는 소문이 났다. 희선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미친 인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희선은 젖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입에 단내가 나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저 태빙턴과 다른 네 명의 영국군이 그녀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죽이지는 않을 터였지만, 잡히면 스물아홉 그녀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문을 당할 테고, 고문이 곁들여질 지도 모른다. 그녀는 보통사람이다. 고문이 가해진다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희선씨를 찾아봐야겠다. 어떻게 된 거지. 나가보자. 그 전에, 뭐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지만, 자.”


형철이 자야에게 K-22 권총을 건넸다. 자야가 안드로이드 답지 않게 눈을 똥그랗게 떴다.


“팀장님, 저는 사람 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최우선 명령권자가 나로 바뀌지 않았나? 그래도 안 될까?”


“대한민국 대통령이 명령을 한다 해도 저는 사람 쏘지 못합니다.”


“그래. 역시 그렇구나. 안 되면 위협사격이라도 해. 허공이라도 쏴 봐.”


자야가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팀장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제 머리를 쏘도록 하겠습니다.”


“염려 마. 그럴 일 없을 거야.”



형철과 자야가 막사의 간이 문을 열기도 전에 희선이 뛰어들어왔다.


"도망가요! 영국군이 쫓아옵니다!"


"몇이나요? 무장했나요?"


"대여섯 정도, 다 무장했습니다."


"알겠습니다, 희선씨. 자야랑 뒤로 가서 숨 좀 돌리세요."


"빨리, 어서 도망쳐야 해요! 여기로 올 거 뻔히 알고 있을 거예요!"


"걱정마시고, 뒤로 잠시 피해 있으세요."


곧 우당탕탕 입구를 다 부셔버릴 듯한 기세로 고든 태빙턴이 형철의 막사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살기등등한 부하 네 명이 그 뒤를 따랐다. 태빙턴은 피스톨을 차고 잘 장식된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고, 나머지 부하들은 각각 롱소드와 런들 대거 등을 손에 들고 있었다.


“와, 비겁하게 희선씨 하나 잡으러 다섯이나 왔냐? 총까지 들고?”


“죽고 죽이는 싸움에서 비겁하고 안하고가 뭐가 중요한가? 그년은 어디 있나?”


“희선씨는 당연히 내줄 수 없고, 싸움에 관한 건 네 말이 맞다. 비겁한 게 어디 있겠냐 그치? 네놈 저번에 팔 부러진 걸로 만족이 안되나본데.....”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형철이 뒤쪽에 있는 판자 같기도 하고 막대기 같기도 한 것을 꺼내 양손에 들었다. 더러운 헝겊에 칭칭 감겨 있어 태빙턴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이었다. 머스킷이라 보기에는 너무 짧고 두꺼웠다.


“그것 뭐냐. 이상하게 생겼군. 총인가?”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하게.”


“옆에 서 있는 그 계집을 믿고 여유로운 건가, 아니면 그 총 한 자루 믿고 그렇게 여유로운가. 네놈은 장전도 하기 전에 목이 달아날 거다.”


“장전은 이미 되어있는데? 이거 탄심이 텅스텐인 비싼 철갑탄이라 니들한테 쓰기 좀 아깝긴 하지만, 이미 들어있어서 바꾸기는 좀 그래. 무탄피라 탄알집 하나에 70발쯤 들어가. 한 놈당, 어, 음, 열네 방 씩은 박아줄 수 있겠네.”


“뭐라는 거야! 쳐라!”


-슈숫. 스스스스스슷. 슈웃.


형철의 막사 안에서 바람이 문풍지를 통과하는 듯한, 겨울 바람이 처마 밑을 지나는 듯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신기한 소리가 쉴새 없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태빙턴의 부하 세 명이 목, 배, 등을 관통당해 쓰러졌다. 총소리도 나지 않았다. 심지어 장전도 하지 않았다. 탄환도, 화약도 총구에 넣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셋이 피를 철철 흘리며 털썩 쓰러졌다.


마법이다. 괴물이다. 악마가 아니고서야 저럴 수가 있나. 하나 남은 부하가 정신이 나가 뒤돌아서 도망가려 했다. 형철이 막대기에 눈을 가져다 대었다. 시읏~ 하는 소리가 났고, 부하는 머리에 커다란 구명이 나며 그대로 절명했다.


고든 태빙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탁자를 뒤엎고, 그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온 피스톨을 쥐고 장전을 하기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려와 총구에 화약을 붓는데 반은 흘려버리고 말았다.


“날 죽이려 했으면 아까 보자마자 총으로 바로 머리를 쏴 버렸어야지."


형철이 무슨 소리를 하든 태빙턴은 탁자 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쓰러진 부하들의 모습이 태빙턴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야, 이거 알루미늄으로 야무지게 둘러싼 텅스텐 철갑탄이야. 그 탁자가 통째로 철로 되어있더라도 뚫어. 미안하다, 뭔 소린지 모르겠지?”


형철이 방아쇠를 당겼다. 끔찍한 슛~ 소리가 났다.


초소형 안정 원자로가 자크민 용액을 가열했고, 가열된 자크민 용액이 폭발하듯 가스압을 증가시켰다. 그 압력이 약실 안에 있던 텅스텐-알루미늄 철갑탄을 카이오딘 합금으로 만들어진 총열로 밀어냈다. 총열을 벗어난 직후의 속도 900m/s. 철갑탄이 총열에서 날아가 나무탁자를 두부처럼 뚫고 나가 태빙턴의 견갑골 바깥쪽에 적중했다.


태빙턴의 몸은 분명히 탁자에 가려져 있었는데 왼쪽 어깨에서 뜨거운 느낌이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팔이 어깨에서부터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탄환이 그의 어깨에서 팔꿈치까지를 관통한 것이었다. 관통력이 워낙 높은 탄이라 그냥 맞았으면 어디든 뚫고 나갔을 것인데 하필 상박부 선을 따라 탄이 지나가 팔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 슈웃 슈윳.


형철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이 발사되었다. 한발은 테이블에 기대어 앉은 태빙턴의 등에서 가슴으로 관통했고 두 번째 탄은 그의 엉덩이와 골반을 박살내 버리고 말았다.


“으, 어어, 어억. 헉.”


고통과 공포로 가득찬 신음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태빙턴은 바닥을 기었다. 형철이 총을 겨눈 채 따라와서 탁자를 걷어찼다.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린 채 엎드려 기고 있는 태빙턴을 본 형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사, 살려줘. 살려줘.”


더 길게 말을 하지도 못했다. 살려달란 짧디짧은 애원을 끝으로 고든 태빙턴은 형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숨이 끊어졌다.


"에이, 진짜. 기분 찝찝하게."


투덜거리는 형철에게 희선이 다가왔다. 모든 걸 보고 들은 희선은 자신의 눈과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29년 살아온 인생 전체가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형철이 요괴였으면 했다. 희선에게는 그게 더 납득할만한 이야기였다.


그녀가 형철을 바라보며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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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불, 힘과 마법 (3) 24.08.10 17 0 11쪽
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20 0 13쪽
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1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1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4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0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4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0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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