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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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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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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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그깟 대장간

DUMMY

브룩스는 벌컥 화부터 냈다.


“말이 되는 소릴 하십시오.”


“재작년에 공조에서 대장간 조사 나왔을 때, 거기 야장, 야공, 메꾼, 풀무꾼 모두 명단을 작성해 갔습니다. 거기 야공 이름 중에 제 이름도 적혀있을 겁니다. 그거면 증거가 되겠습니까?”


“허, 규수께서 야공이라구요? 그 말을 저더러 믿으라는 겁니까? 다른 분들은 몰라도 전 조선에서 나고 자란 영국인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공사께서 믿거나 말거나 저는 개풍 대장간의 대장장이고, 명부에 제 이름이 확실히 있습니다.”


희선과 브룩스가 말로 대치하는 동안, 주상이 공조 참판에게 귓속말을 했다.


“명부에 확실히 있기는 했소?”


“네, 전하. 믿기 힘든 이야기여서 이틀 전에 제 눈으로 이름이 적힌 걸 확인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주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규수께서 그렇다고 하니 믿어봅시다. 그럼 힘의 시험이라는 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사가 병참관 밀러를 쳐다보자, 밀러는 옆에 서 있는 고든 태빙턴을 가리켰다. 태빙턴은 조선어를 잘 몰라 멀뚱하게 서 있기만 했다. 태빙턴은 웅수 야장의 뺨을 승마 채찍으로 찢어놓은 놈이었다. 놈이 살기 등등하게 나갈 때 마주친 기억이 떠올랐다.


180cm가 넘는 키에 몸도 굉장히 커 보였고 팔도 사람의 팔이 아닌 듯 굵었다. 누가 봐도 힘의 시험에 나올 듯 보였다.


“우리 군대 제일 강한 사람, 고든 태빙턴. 항상 이깁니다.”


희선은 개풍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구봉이를 떠올렸다. 그가 박투(搏鬪)에 능한지는 잘 모르지만, 달리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차피 네안더는 안 된다지 않는가.


“개풍에도 힘이 센 사람이 있습니다.”


“네안더는 안 됩니다.”


쏘아붙이는 듯한 공사의 말에 희선이 대답했다.


“압니다. 사피엔입니다.”


날이 서 있는 공사에게 주상이 말했다.


“공사, 목소리를 조금 낮춰도 될 것 같소. 그 규수는 명문가의 사람이고, 세자빈 간택 후보 중 한 명이오.”


브룩스 공사가 황급히 주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주상전하.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들이라 그만. 용서해 주십시오. 규수께도 사과드립니다.”


말은 공손했지만, 희선을 보는 눈엔 짜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선은 내친김에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마법의 시험은 무엇으로 하면 됩니까?”


공사가 밀러와 잠시 이야기를 하더니 대답했다.


“체스나 춤, 노래 등도 좋고, 다른 기예 같은 것도 괜찮습니다. 단, 모두 우리 잉글랜드의 문화나 관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 시합 자체를 우리가 제안한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정민화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혹 요리 같은 것도 괜찮습니까?”


“안될 것도 없습니다만, 그건 굉장히 주관적인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영국 요리로 승부해야 합니다. 그쪽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이쯤에서 그만두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대장간에 영국 요리, 아니, 요리 자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나 있습니까? 대장간의 풀무꾼에게 시킬 겁니까? 아니면 뭐, 그쪽 레이디께서 해 보실 겁니까?”


정민화가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그래도 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재미있겠군! 공사, 어떻소? 조선 규수들의 패기가 놀랍지 않소? 저 정가의 규수는 대장간의 일원이 아니지만, 이번엔 예외로 두어 한 번 해보는 건 어떻겠소? 물론, 권유일 뿐이오. 과인의 부탁도, 명도 아니외다.”


주상의 말에 공사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공사는 순순히 대답했다.


“전하의 권유를 저희가 어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되도록 진행해 보겠습니다.”


“좋소! 저 두 규수가 집안의 허락만 받아 온다면, 날짜를 정해 보도록 합시다.”


이 어처구니 없는 광대놀음에 조선의 일인자가 도장을 찍어버렸다.



**



자리가 끝난 후, 브룩스 공사는 제대로 꼬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장간 하나쯤이야 어디의 것을 뺏어와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조선의 국왕이 가볍게 한마디만 던져도 얼른 양보하고 끝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갑자기 잉글랜드와 조선의 FMM(fire, might & magic) 대결이 되어버렸다.


조선측의 땅이나 시설은 돈을 주고 빌린다는 명목으로 조용히 빼앗아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사람들의 이목만 끌게 될 것이다. 이건 이미 진 싸움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브룩스가 밀러에게 물었다.


“그 개풍인가 뭔가 하는 거기, 뭐하는 곳입니까?”


“벽란도에 있는 보통 대장간입니다. 특별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왕은 왜 그 특별할 것도 없는 대장간 이야기를 꺼낸 걸까요?”


“저는 그냥 기술자이자 병참담당일 뿐입니다. 그 이유를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흠....짜놓은 그물에 제대로 걸린 것 같은 느낌이라 그럽니다.”


“참 머리 아프게 되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개풍 대장간이 현재 그대로 남아서 조선인들과 기술 교류를 할 수 있길 바랐던 밀러는 여러 가지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가 보았던 희선의 망치질은 예사롭지 않았었다.



**



주상과 중전, 둘만 남은 자리에서 한숨을 내쉰 중전이 물었다.


“이번 세자빈 간택부터는 세자를 자리에 참석시키겠다고 하시더니, 왜 예전처럼 오지 마라고 하신 겁니까?”


“참석시킬 생각이었소. 하지만, 부판윤의 여식을 우연히 직접 보고 난 후 이번에는 세자를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소. 왜 그랬는지는 중전도 알 거요.”


중전도 곧 이해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세자가 왔었다면 간택 절차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여간 남정네들은 다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것보다 오늘 재미있지 않으셨소? 나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있게 흘러가서 좋았소만.”


“예조판서와 한성부판윤의 여식들입니다. 영길리의 관습인 그런 이상한 시합들을 시켜도 괜찮겠습니까?”


“시대가 많이 변했소, 중전. 그런 일들이 옛날만큼 파격적인 것들이 아닌 때가 되었소. 설사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한들, 우리가 잘 덮어주면 되지 않겠소?”


“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앞뒤 없이 왜 그런 시합을 유도하신 겁니까? 혹여 그 아이들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내 개인적인 흥미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목적이 있었소. 영국이 조선내에서 점점 여기저기에 손을 뻗어가고 있다는 것은 중전도 아시지 않소.”


“조선 사람들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해서, 주의를 좀 끌어보려는 것이오. 사람들이 흥미롭게 생각할 것이라면 제일 좋고.”


“이길 수 없다면 패배감만 커지지 않겠습니까?”


주상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요. 영국의 것으로 벌어지는 경쟁이오. 영국의 무기, 영국의 요리, 영국 규칙의 싸움을 우리 백성들이 무슨 수로 당해내겠소?”


“그럼 왜 그런 제안을 하셨습니까?”


“그들이 깔아놓은 불합리한 판에서 사대부가의 젊은 규수들이 거기에 맞서 싸운다, 이것보다 백성들이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가 있겠소이까. 영국이 이겨서 대장간을 차지하게 되면 사람들의 불만은 더 커지겠지요. 저들이 저런 비겁한 방법으로 우리의 것을 빼앗는구나, 하고 말이요.”


영국측에 지면 비열한 영국놈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을 해서 대장간을 빼앗은 것으로, 만에 하나 이기게 된다면 흉악한 영국놈들에 맞서 싸워 이긴 지혜롭고 용감한 조선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소문을 내면 될 것이다.


“아까 손가의 규수는 필사적인 것 같던데, 좀 안 되었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소. 사실 그깟 대장간 하나가 무어가 그리 중하겠소. 손....희선이라 하였던가요?”


“네, 전하.”


“그 규수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더군요. 맹자도, 살구꽃도.....수석총 이야기도 말이오.”


“네? 수석총이 무엇이옵니까?”


“아니오, 아니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듭시다. 많은 일들이 있어서 그런지 피곤합니다.”



**



모든 것이 어색했다. 커다란 방에 침구류와 옷가지들을 내어놓은 상궁들이 공손히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조성신, 정민화, 황덕여, 손희선 네 후보에게 방 하나에서 묵으라는 것이었다. 이번 간택부터는 후보들을 한 방에서 하루 재우고 내보내기로 했다고 대비전의 제조상궁이 전했다.


하루 종일 사람에게 시달리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희선은 너무나도 집에 가고 싶었으나, 왕실이 그렇게 결정 했다는 데 감히 토를 달 수는 없었다.


조성신이 구석에서 조용히 옷을 갈아입다 말고 짜증을 냈다.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우리 찰스가 날 기다릴 텐데.”


이 상황에서 개나 생각하다니 니가 아직 덜 피곤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희선은 벌렁 드러누웠다. 옷을 갈아입기도 귀찮았다. 하지만 졸음보다 더 강한 호기심에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화 님은 아까 왜 그러신 겁니까?”


“불, 힘과 마법 말입니까?”


“네. 전혀 상관없는 일에 왜 나서주신 건가요?”


“일단은 아까의 희선 님을 보니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민화는 자신을 쳐다보는 덕여와 성신까지 한번 쳐다보았다.


“나온 영국 음식들이 너무 맛이 없었습니다. 제 요리가 훨씬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그만. 지금은 겁도 나고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어서 조금 후회 중입니다.”


“만약 일이 성사되면 요리를 하셔야 할지도 모르는데, 서양 요리를 할 줄 아십니까?”


서양식 요리에 굉장히 익숙해 보였고, 종일 살펴보니 순수한 조선인의 얼굴 같지 않아 다들 궁금해 하던 차였다.


“제 외조모님이 법국(法國-프랑스)분이십니다.”


빤히 쳐다보는 다른 셋을 둘러보며 정민화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제 어머니가 조선, 법국의 혼혈이시지요. 그래서 법국의 요리나 이태리(伊太利)의 요리도 많이 배웠습니다. 영국의 요리도 조금 할 줄 압니다. 최소한 아까 그 영국 요리사보다는 나을 것 같습니다. 외조모님의 말씀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고기를 자르고 토막쳐서 물에 삶은 후 소금을 쳐서 먹는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손을 더 대는 것보다 그것이 낫다’라고도 하셨습니다.”


“외조모님이 법국 분이시면 꽤 오래전 일인데, 그때는 조선에 유럽인이 별로 없지 않았습니까?”


민화가 성신과 덕여를 흘긋 보았다.


“사연이 좀 있습니다. 길 수도 있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지요.”


딱히 밝히고 싶지 않은 이야기구나, 생각하며 희선은 말을 줄였다.


“피곤하실 텐데, 다들 주무시는 게 좋겠네요.”


“두 분은 무슨 생각이십니까?”


자라는 잠은 안 자고 갑자기 덕여가 질문을 했다. 희선이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무엇을 물어보신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영국 사람들과 만나게 될지도 몰랐고, 주상전하께서 그런 제안을 하실 지도 몰랐습니다.”


“너무 무모하신 것 아닙니까? 영국 주둔군의 방침과 맞서다니요.”


희선이 빙긋 웃었다.


“제가 영국군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 그런 건 무서워서 못합니다. 그냥 제가 잘 아는, 아니 제가 몸담고 있는 대장간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러는 겁니다.”


보고 있던 성신도 옆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 영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영국의 군대, 문화, 제도 모든 것이 우리보다 우월한데 맞서 싸우는 건 필부(匹夫)의 만용 아닙니까?”


민화가 웃었다.


“모든 것이요? 아까 그 음식들을 드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음식은 그렇다 해도 우리보다 나은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미 영국이 많은 기술과 문화를 전해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같이 힘없고 가난한 나라에서는 그들이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희선이 눈을 꼭 감았다. 3초 정도 있다가 그녀가 눈을 떴다. 개성의 광녀, 벽란도의 폭탄에 불을 붙인 셈이었다. 희선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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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벽란도의 노을(완결) + 후기 24.08.13 16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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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불, 힘과 마법 (4) 24.08.11 16 1 11쪽
21 불, 힘과 마법 (3) 24.08.10 17 0 11쪽
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19 0 13쪽
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0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1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1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3 2 11쪽
»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0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8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4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0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3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2 빨간 원숭이 24.07.19 119 2 13쪽
1 프롤로그 24.07.19 128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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