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965
추천수 :
31
글자수 :
144,572

작성
24.08.08 16:04
조회
21
추천
1
글자
12쪽

불, 힘과 마법 (1)

DUMMY

시합 이틀 전. 개성.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민화 님.”


“아닙니다, 희선 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손희선과 정민화가 손은선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민화의 집은 한성이고, FMM은 벽란도에서 하게 되어 미리 개성으로 올라와 은선의 집에서 묵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다른 가노들 몇몇, 유모와 함께 개성으로 왔다.


“그쪽이 손가의 희선님이군요. 처음 뵙습니다.”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희선에게 인사했다. 희선은 사람 얼굴의 뒤에서 비치는 후광을 살면서 두 번째로 보았다. 미모를 확인하자마자 그녀가 정민화의 어머니인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조선과 법국의 혼혈이라 했는데, 법국인의 얼굴에 훨씬 가까워 보였다.


“정부인(貞夫人-정2품의 적처에게 붙는 위호)께서 오셨군요. 예조판서 손병도 대감의 삼녀 손희선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사대부가의 따님이시면서 대장간의 야공이라 들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우리 민화가 하는 농인줄 알았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부인. 제가 민화 님을 괜한 일에 끌어들이게 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판윤 대감은 좀 난감해 하기는 했지요. 하지만 저는 응원합니다. 우리 딸이 영국 요리사와 승부를 겨룰 수 있게 되다니요, 호호.”


“정부인께서는 보통 사대부가 부인분들과 약간 느낌이 다르십니다.”


“민화가 설레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게 되어 저도 즐거워서 그런 듯합니다. 이해하시고, 이야기들 나누시지요. 전 좀 쉬고 있겠습니다.”


“집처럼 편히 쉬십시오. 필요한 것 있으시면 아무것이나 말씀해 주십시오.”


정부인 김씨는 희선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별채로 갔다.


“정말 정부인께서는 즐거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런 반응을 보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정말 미인이십니다. 민화님 같이요.”


“희선 님 올해 열여덟 되셨죠?”


“네. 방년(芳年) 18세. 꽃다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답을 들은 민화가 희선에게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우리 동무할까요? 나이도 같고, 전 희선 님이 좋습니다.”


“갑자기요? 저야 뭐 상관없지만, 민화 님이 혹시 중전마마가 되신다면...오...”


민화가 씩 웃었다.


“글쎄요, 제가 중전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튼 그냥 동무하죠.”


희선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좋네. 사대부가의 여자들 중에 내 친구는 하나도 없거든.”



둘은 별채 마루 아래 섬돌에 털썩 주저앉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반가의 남자들도 안 잡는 대장간 망치를 왜 잡게 된 거야?”


“한 일곱 살 때 쯤부터 총과 검에 관심이 갔어. 오다가다 눈에 띈 개풍 대장간 앞에서 두 시간쯤 울어서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 주신 게 시작이었지. 아버지 말씀으로는 아기 때 젖을 안 줘도 그렇게 운 적이 없대. 일곱 살짜리가 드러누워 울기 시작하니 부끄러우셨나 봐. 그러다가 한 5년 전부터는 거의 우리 집 만큼이나 자주 들락거렸지.”


“너도 참 특이하구나. 보통이 아닐 줄은 알았지만.”


“그래, 특이하지. 귀여운 양도 좋아하고 말이야.”


“풋~ 그때는 정말 웃겼어. 나는 저렇게 모자란 규수가 재간택에 어떻게 선발되었지, 예판댁이 그렇게 힘이 있었나, 생각했다니까.”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이미 온 동네 소문 다 나고, 혼삿길 막히게 생겼다. 그런데, 외조모님은 어떻게 조선에 오신 거야? 편하게 이야기해. 곤란한 이야기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냐, 비밀도 아닌걸 뭐.”


민화의 외할머니는 프랑스 상인의 애첩이었다. 60여년 전, 조선이 처음 개항했을 때, 영국군을 따라 유럽 각국의 상인들도 조금씩 드나들기 시작했다. 프로방스라는 프랑스 남쪽 지방에서 태어난 그녀는, 타고난 미모와 빈궁한 가계로 인해 상인에게 팔리다시피 하여 첩이 되었다.


그 후 그 상인을 따라 도착한 조선에서 민화 외조부의 눈에 띄어, 민화의 외조모는 무역에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민화 외조부의 소실이 되었다. 프랑스인의 첩에서 조선인의 첩이 된 것이다. 그들 사이에 난 딸이 민화의 어머니 김씨였다.


외조부의 적처(정실부인)는 민화 어머니 김씨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딸처럼 키워주었고, 이후 민화의 아버지 정구윤이 어머니에게 한눈에 반해 앞뒤 안보고 달려들어 혼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가 유럽의 문물이나 음식에 해박한 거구나.”


“그렇지도 않아. 어릴 때는 남들과는 다른 외할머니와 어머니 미워했어. 할머니 살아계실 때 좀 잘 듣고 배우고 했으면 참 좋았을 걸.”


“그래. 어릴 때는 남들과 다른 게 싫지. 도깨비, 오랑캐 소리도 심심찮게 들었겠다?”


“그것 뿐이겠어? 네안더 잡종이란 말까지 들어봤어. 아, 네안더를 싫어하는 건 아냐. 그런 말까지도 들어봤다 이거지.”


“참....인간들이란, 저랑 다르면 뭐든지 싫어하는구나.”


“그래, 안타깝게도. 그건 그렇고,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됐어. 사람 수를 세 명으로 제한해 두었거든. 그게 우리에게 더 유리할 것 같아서.”


“요리 좀 알아?”


희선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전혀. 식칼은 좀 만들어 봤지만. 소꿉놀이도 안 해 봤는데.”


“음, 재료 썰거나 반죽할 줄은 알겠지?”


“아니. 쇳물을 붓거나 쇳덩이를 두드릴 줄은 아는데. 아, 총도 쏠 줄 알아.”


“무슨 배짱으로 3:3을 하자고 한 거야?”


“난감한 건 그쪽도 마찬가지겠지. 그냥 부딪쳐 보자고.”


“그날 밤 생각했던 게 맞았구나.”


“그날 밤? 아, 미친년이구나 생각했지?”


“어떻게 알았어?”


“표정들 보니까 그랬겠지 싶었어. 찰스인지 뭔지 낑낑거려서 조성신 협박했을 땐 나도 내가 미친 것 같더라.”



**



영국 공사관 측에서 보낸 미리 준비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등을 적은 문서가 왔다. 하필 또 예조참의 김규원이 받아서 희선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이걸로 예조에서 할 일은 대충 끝났다. 넌 왜 나까지 이렇게 골치 아프게 만드냐?”


“저기요.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가 할 소리예요, 그게?”


김규원의 투덜거림을 희선이 맞받아쳤다.


“예조참의 영감,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옆에 서 있던 민화가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규원에게 말했다.


“별말씀을요, 멍청한 제자놈에게 휘말려 낭자께서 고충이 많으십니다. 각고면려(刻苦勉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 각고면려? 그거 무슨 뜻이에요? 뭔 소리예요 도대체. 그거, 50년 전 대사간들이 간쟁할 때나 쓸 법한 말 아니에요?”


“야, 궁에 들어가 봐. 나도 잘 못 알아들을 법한 옛 말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셔. 글은 또 얼마나 날려 쓰시는지. 초서(草書) 같은 건 진짜 암호다 암호.”


“알아먹지도 못할 말 그만 쓰고 볼 일 다 봤으면 얼른 가세요. 민화 얼굴 구경하려고 미적거리는 거 아니에요?”


“아냐, 임마. 이제 갈 거야. 붙잡고 사정해도 갈 거다. 넌 가란 말 말고 할 줄 아는 말이 없냐? 날 보기만 하면 가라 그래. 개성까지 이틀 길을 왔는데 밥 한 끼 대접은 못 해줄망정, 어휴.”


“그러니까, 따뜻한 밥 한 끼 해줄 색시를 빨리 구해요. 나한테 구박받지 말고. 장차 중전이 되실지도 모르는 사람 얼굴 구경 그만하고 얼른 가요, 얼른.”


“간다, 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을 부라리던 김규원이 몸을 휙 돌려 가버렸다.


“스물다섯이나 먹고 왜 저러고 있을까. 저 나이에 예조 참의까지 되었으면 입신(立身)도 일찍 했다 할 수 있는데, 왜 혼인을 못할까. 좀 모자란 걸 다들 알아 버렸나? 미인을 보면 헤벌쭉해 가지고, 네 앞에 섰을 때 그 웃음 봤지?”


민화가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젖혔다가 바로 세웠다.


“어, 그 헤벌쭉한 웃음은 날 볼 때가 아니고 널 볼 때 지었던 것 같은데. 나 볼 때는 정말 무표정하던데.”


“에이, 그럴 리가. 나 볼 때 웃은 건 또 무얼 가지고 한번 놀려줄까 하는 거였겠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앞장서서 폴짝폴짝 뛰어가는 희선의 뒷모습이 망치의 요정 답지 않게 꽤 발랄했다. 민화는 쟤가 둔한 건가, 모르는 척하는 건가, 아님 정말 규원이 놀리려 그런 건가 잠깐 고민을 했다.



**



대결 당일.


아침 일찍부터 벽란도 서부시장 전체가 떠들썩했다. 소문은 이미 개성 전체에 다 퍼져있었다. 저 무도한 영국 오랑캐들과 조선의 젊은이들이 대결을 한다는 것 자체가 흥밋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서부시장 광장을 그날 하루 싹 비워 대결장으로 쓰게 되었다. 원래 광장 쪽에서 장사하던 상인들은 대결장 한 귀퉁이씩 차고앉아 노점을 할 수 있게 시장 측에서 배려했다. 몰려들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도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광장 옆에 깃대가 하나 세워졌고, 커다란 깃발이 내걸렸다.


‘English traditional competion : Fire, Might and Magic’


“여보게, 저게 뭐라고 해놓은 건가?”


“낸들 알겠나? 영길리 글로 지들 맘대로 써놓은 걸 내가 어찌 아나?”


지루한 주둔군 생활에 재미있는 이벤트가 생겨서인지 수많은 영국군과 한성, 개성의 영국인, 정교회 선교사들도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귀빈석에는 영국 주둔군 사령관, 공사의 얼굴도 보였다. 이 일을 주도했고, 또 꼭 보고싶다고 한 주상은 참석하지 않았다.



반대편에는 좀 젊어 보이는 영국인 요리사가 서 있었다. 지난번 궐 내에서 보았던 요리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이였다.


민화가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앞으로 나서 고개를 들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선인, 영국인 가릴 것 없이 모두 감탄했다.


희선은 괜히 자신의 어깨를 으쓱했다.


[어떠냐, 조선의 미모가. 미모 대결이 없는 게 아쉽네.]


무언가 튀면 쉽게 알 수 있게 아주 밝은 분홍색의 저고리와 흰색의 치마를 입은 희선과 민화는 서로 마주 보며 긴장을 풀려고 했다. 치마는 풍성하게 퍼지는 형태로 움직이기가 편했고, 저고리는 길고 넓은 소매를 가지고 있었고, 그 끝에는 끈이 두 개 달려 펄럭거렸다.


희선이 물었다. 그 옷은 민화가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 펄럭거리는 끈은 뭐야. 왜 이렇게 만든 거야 불편하게.”


“소매에서 팔꿈치까지 묶어서 소매가 걸리적거리지 않게 하는 거야. 내가 묶어줄게.”


민화가 대답하며 희선의 소매를 묶어 팔에 바짝 붙게 만들었다. 이어 내민 민화의 소매도 희선이 묶어 고정했다.


“주제가 뭘까.”


“곧 알게 되겠지.”


영국측 담당자와 조선의 역관이 같이 앞으로 나섰다.


“첫 번째는 마법의 시험이오. 이번 주제는 요리로 하게 되었습니다. 판정은 영국 공사의 부인이신 레이디 브룩스께서 하게 되었습니다.”


브룩스 부인이 앞으로 나왔다.


“영국 요리는 간단한 듯 보이지만, 심오한 풍미가 있고 유서 깊은 훌륭한 요리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국인들의 기본이 되는 음식들로 평가하고자 합니다. 비프 웰링턴, 머핀, 그리고 요즘 새로이 많이들 먹고 있는 피시 앤 칩스입니다. 제한 시간은 두시간입니다.”


민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큰일 났다.”


“왜, 뭐가 문제야?”


“비프 웰링턴과 머핀은 나도 잘 알아. 잘 만들 수 있고. 피쉬 앤 칩스라는 게 문제야. 생선살 튀긴 것이랑, 감저(甘藷), 혹은 마령서(馬鈴薯)라고 불리는 걸 튀긴 것을 같이 내놓는 건데...”


“그런데?”


“감저를 내가 한 번도 만져 본 적이 없어. 한번 먹어본 게 다야. 조선에는 거의 없거든.”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희선과 민화는 나란히 서서 반대편을 노려보았다. 구봉이도 그 뒤에 서서 같이 보았다. 물론 그는 감저가 뭔지는 잘 몰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애기씨는 조총장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변경 공지 24.07.24 30 0 -
27 시집가는 날 (2) + @ 24.08.15 17 1 17쪽
26 시집 가는 날 (1) 24.08.14 16 0 12쪽
25 벽란도의 노을(완결) + 후기 24.08.13 17 1 9쪽
24 불, 힘과 마법 (6) 24.08.13 21 1 11쪽
23 불, 힘과 마법 (5) 24.08.12 18 1 12쪽
22 불, 힘과 마법 (4) 24.08.11 17 1 11쪽
21 불, 힘과 마법 (3) 24.08.10 18 0 11쪽
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20 0 13쪽
» 불, 힘과 마법 (1) 24.08.08 22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1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2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4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1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5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1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2 빨간 원숭이 24.07.19 120 2 13쪽
1 프롤로그 24.07.19 130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