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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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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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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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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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DUMMY

밀러 중령의 나라 스코틀랜드는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에게 탄압을 받아 왔고, 병합과 독립을 반복해 왔다. 지금은 자치권을 인정받기는 하나, 튜더 왕조에게 복종하는 동군연합(同君聯合-다른 나라가 같은 군주를 섬김)상태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일부가 아니고, 튜더 왕조에 복종하는 것이 영광도 아니었다.


밀러가 분노에 차 크게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브룩스 공사가 뒤돌아보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니, 한 번만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밀러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바꾸지 못하고 그냥 씩씩거리는 상태로 서 있었다.


자리의 다른 조선인들은 확실한 인과를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성신이 뭔가 말 실수를 했고, 그로 인해 제프리 밀러의 표정이 변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성신도 입 연 것을 후회하며 곧 조용해졌다.


분위기를 환기하려 브룩스 공사가 말했다.


“이 커틀릿은 정말 최고의 맛입니다. 역시 이 커틀릿은 우리 음식이지만,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전 정말 좋아합니다.”


희선은 커틀릿을 으적으적 씹어 삼키며 옘병, 이 냄새나는 튀긴 고기전 같은 게 뭐가 맛있다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소여물을 씹는 듯한 희선의 얼굴을 보고 민화가 피식 웃었다. 시원하게 웃고 싶었지만 그럴 자리는 아니었다. 그녀는 화통한 웃음 대신 브룩스에게 말을 했다.


“이건 영국 음식이 아닙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넘어온 코톨레타라는 것입니다. 음식이야 나라를 건너가고 바다를 건너가면 주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프랑스 코톨레타 쪽이 원조고, 훨씬 맛있습니다.”


민화의 음식 지식에도 감탄해가며, 희선은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음식만 맛있었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



그때 예빈시에서는 예조 참의와 예조 좌랑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참의 김규원이 좌랑에게 물었다.


“뭘 그리 고민하십니까?”


“예판께서 빈 후보 네 분을 관찰하고 짧게 두세 줄로 정리해서 참판께 보고하라 한 것 때문에 말입니다.”


“보고 들은 대로 그냥 쓰면 되지 않습니까. 대비전 상궁들이 이야기해 준 것만 해도 책 한 권은 나오겠더만.”


“예판 대감 따님도 계셔서...”


“그러니 본인이 아니라 참판께 보고하라 하신 거겠지요. 예판은 그걸 보실 분도, 혹 보셨다고 해도 신경 쓰실 분도 아닙니다. 어디, 뭐라 쓰셨길래.”


좌랑이 들고 있던 종이를 뺏듯이 받아든 규원은 슥 훑어봤다.


〈황덕여 : 똑똑하고 덕이 있다. 튀지 않는 성격에 무난함. 심지는 굳세지 못한 듯 보인다. 덕녀(德女)


조성신 : 영민하고 강단이 있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편. 언행에 부주의함이 보인다. 악녀(惡女)


정민화 : 경국지색, 절세미녀. 유럽의 문화에 밝고, 요리에도 박학함. 성격은 무난한 듯. 미녀(美女)


손희선 : 세자빈보다는 공조나 병조에서 탐낼만한 인재. 말과 행동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종이네 쓰인 평을 본 규원은 헛웃음이 나왔다. 과거에 급제한 육조의 좌랑이 썼다는 걸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덕녀, 악녀, 미녀라니. 그나마 악녀는 너무 심하다 생각했는지 슥슥 그어 지워 놓았다.


“아니 좌랑, 사람에 대한 평을 열한 살 아이처럼 써 놓으시면 어떻게 합니까?”


예조 좌랑은 아래 품계였지만 규원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사람이었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글 쓰는 법 좀 다시 배워오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예판께서 한눈에 알기 쉽게 짧게 쓰라고 하셔서.”


“이건 알기 쉬운게 아니라......그런데 손가 규수 마지막 부분은 안 쓰셨군요.”


“예. 예판 대감 따님이시고 참의 영감도 잘 아시는 규수라 하셔서.”


“누구나 보면 느끼는데 뭘 고민하십니까. 제가 써 드리지요.”


붓을 든 규원이 마지막 두 글자를 썼다. 광녀(狂女).



**



식사가 끝나고 달달한 쿠키 몇 개와 차가 나왔다. 희선은 슬슬 졸고 있었다. 희선이 고개를 자꾸 떨어뜨리자 민화가 그녀의 옆구리를 자꾸 찔렀다.


그때, 병참 담당 제프리 밀러가 공사에게 뭐라고 소곤거리자, 브룩스 공사가 공조측을 보며 말했다. 후딱 본론을 던지고 집에 가야 했다.


“저희들 병기 관리를 위한 장소들 마련해주시기로 했던 것들은 괜찮은 거겠지요? 그대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공조 참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노력하고는 있습니다만, 각지의 반발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상 징발이나 강제 탈취에 가까운 수준이라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희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나설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새 들어와 주상 옆에 서 있던 도승지가 말했다.


“그 문제 말입니다. 자꾸 갈등이 생기고 하니 ‘불, 힘과 마법’으로 한번 결정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두 나라의 화합을 꾀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말이지요.”


“네에? 쿨럭쿨럭..”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에 브룩스 공사가 마시던 차를 뱉듯이 기침을 했다. 도승지는 공사가 기침을 하든 말든 말을 이었다.


“주둔군 병기관리를 위한 장소들을 여러 곳에서 섭외하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한성과 개성에서도 여러 곳 말입니다. 저희가 알아보니 당장 다음 달에 개성의 오래된 대장간 하나를 조차할 것이라 하던데, 거기를 두고 그 행사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 행사. 불, 힘과 마법. Fire, Might & Magic.


네안더 바이킹의 관습이었다가 바이킹이 소멸되며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것이 되어버린 전통이었다. 국가적인 전쟁이나 다툼이 아닌, 마을과 마을, 혹 작은 집단과 집단끼리의 이해다툼이나 마찰이 있을 때, 집단충돌이나 유혈사태 없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경기이자 영국 시민들을 위한 이벤트였다.


단, 이해관계가 얽힌 두 집단 내, 혹은 그 이야기가 나온 그 자리의 사람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마을끼리의 다툼에 용병을 불러오거나 타지의 기술자들을 큰돈 주고 데려오는 것 등은 결국 유혈사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힘은 말 그대로 완력이었다. 최소한의 의복만 걸친 두 사람이 아무것 없이 맨주먹으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항복하거나 완전히 쓰러져 못 일어날 때까지 진행되었다.


불은 기술과 관련된 경쟁이었다. 철과 불을 숭상하던 네안더의 전통에서 온 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성능을 시험하여 승패를 냈다.


마법은 당연하게도 진짜 마법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잡기, 혹 잡학과 관련된 대결이었다. 체스로 승부를 가리기도 했고, 병서에 관련된 문제를 내어 맞추는 경우도 있었다. 춤, 노래나 다른 예(藝)에 관한 것들 겨루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너무 주관적이어서 승패를 가르기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체스를 두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영국측 인사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브룩스 공사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영국인들 간의 시합입니다. 내전을, 마을 간의 다툼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던 듯 도승지가 말했다.


“그러니 말입니다. 조선과 영국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시행하기에도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혹시 조선인과 그런 시합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전례가 아예 없습니다.”


“그럼 이제 처음으로 한번 시행해 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공사가 밀러 중령과 잠깐 귓속말을 하더니 공손히 말했다.


“다음달에 조차하기로 한 개성의 대장간이 문제라면 그건 저희가 포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따로 병기관리소를 설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승지가 그런 말을 한다면, 조선 국왕의 뜻일 터이고 그렇다면 포기해주면 그만이다. 그런 작은 대장간 같은 거야 널리고 널렸다.


무슨 소리인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희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지만, 영국군이 일단 개풍 대장간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주상이 입을 열었다.


“미리 약속되어 있던 것이면 그러실 필요 없소. 단지 과인이 그 행사를 좀 구경하고 싶어 도승지를 시켜 말을 해본 것이오.”


공사는 주상의 표정을 조심히 살폈다. 전혀 읽을 수가 없는 표정이었다. 브룩스 공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시장 바닥에 있는 대장간 하나가 뭐라고 저런 제안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조차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조선의 왕이 진짜로 그냥 심심해서 구경거리가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도 안 좋은데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았던 공사는 어떻게든 거절하고 싶었다. 그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다행히 밀러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개풍 대장간, 사피엔 스미스 없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습니다.”


도승지가 물었다.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사가 말했다.


“불, 힘과 마법은 당사자들 간의 시합입니다. 그런데 그 대장간에 사피엔 기술자가 없나 봅니다. 그 전통 시합은 네안더와는 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피엔끼리만 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폐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된 점 사죄드리며, 그냥 그 대장간은 포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상이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오, 아니오. 그게 불문율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약속되어 있던 것이라면 조차하도록 하시오. 내 말 한마디로 뒤엎을 수는 없지요.”


‘말 한마디로 뒤엎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 대장간 좀 살려주십시오, 전하.“


희선은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는 듯해서 애가 탔다. 어떻게든 개풍 대장간을 영국인들 손에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를 끝내도 되는 것인지 눈치보던 브룩스는 개성과 한성의 대장간 세 개를 꿀꺽하고, 경기도 서부 농지 조차 문제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눈을 비비며 주상이 한마디 덧붙였다.


”아쉽구려. 과인은 꼭 한번 그걸 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이쯤 되니 브룩스는 슬슬 조선 국왕의 의도를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그건 희선도 마찬가지였다.


희선이 말했다.


“원래 네안더의 전통이었는데, 네안더는 안된다...는 거네요? 네안더가 아니면 괜찮다는 것입니까?”


한번 비꼬면서 희선이 확인을 했다.


“그렇긴 합니다만.....왜 그러십니까, 아가씨?”


“개풍 대장간에 사피엔 야공이 있긴 합니다. 그러면 불의 시험은 괜찮습니까?”


마음 속으로 설마, 설마 하고 있는 밀러가 나섰다.


“우리 군대 땅 옆에 있어요, 대장간. 거기 보스하고 기술자 한 명 있습니다. 둘 다 네안더. 내가 알아요. 레이디도 알면서 그런 말 합니다.”


“확실히 있습니다. 있다면 괜찮겠습니까?”


공사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녁 먹고,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다가 경기도 내의 조차지(租借地) 관련해서 병조와 공조의 실무자들에게 압박이나 좀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대결인가. 조선 왕은 왜 불과 힘과 마법을 꺼낸 건가. 공사의 머리가 아파왔다.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던 브룩스 공사는 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일이 안 되도록 하기로 했다.


“전 그 대장간을 잘 모릅니다만, 밀러 중령이 거기에 사피엔 대장장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 행사는 원칙적으로 당사자들 간에 행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사람을 불러오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사피엔 장인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않는다면 불과 힘과 마법은 없는 일로 하겠습니다. 만약 전하께서 명하신다면 개풍 대장간에서 손을 뗄 것이고, 아니라면 그냥 저희가 조차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전하?”


’제발 그냥 손 떼라고 한마디만 해주십시오, 전하. 소녀 간곡히 비옵니다.‘


애타는 희선의 마음과는 달리 주상의 말은 무심했다.


“약속이 되어 있는 일을 변덕스러운 내 한마디로 뒤집을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원래 정해진 대로 하시오.”


밀러는 계속 희선을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포기하느냐, 나서보느냐 고민하던 희선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게 주상전하의 뜻인 것 같기도 했다.


“제가 개풍 대장간의 야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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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1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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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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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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