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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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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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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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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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가는 날 (1)

DUMMY

<2년이 지난 후입니다. 중간중간 뚝뚝 끊어지는 부분은 제가 기계적으로 혼인과 관련된 부분만 잘라와서 그런 겁니다.>



-땅, 땅, 땅.


희선이 집게를 잡고 종효와 집안 일꾼 승배가 달구어진 쇳덩어리에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승배가 같이 망치질을 하고 있는 종효에게 물었다.


“형님, 이 쇳덩어리 왜 이렇게 두들기는 겁니까?”


“이, 이게 무쇠, 주철인데 이걸 두들겨서 숯기운, 숯바람을 좀 빼면 강철이 되는 거야.”


“그럼 뭐가 좋습니까?”


“단단해지고 좋아지지.”


“그렇습니까?”


희선은 집게를 잡은 채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얼금이가 톡 튀어나왔다.


“아닙니다.”


“뭐가?”


“종효 아저씨, 틀렸어요. 무쇠를 때리면 딱딱해지는 게 아니라 물렁해져요. 무쇠는 너무 딱딱해서 조금만 세게 쳐도 부러져요. 그래서 두들겨서 숯기운을 빼고 강철로 만들어요. 애기씨 맞죠?”


눈이 풀려있는 희선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대답을 했다.


“으, 응? 그래.”


“애기씨, 왜 그러십니까?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이십니다. 부제학 댁에서 사람이 다녀간 것 때문에 그러십니까?”


승배가 묻자 종효와 얼금이가 인상을 팍 썼다. 닥치라는 소리였다. 승배는 찔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야. 괜찮아. 얼금아 아까 누가 들어왔다 가는 것 같던데?”


“점구 아저씨가 오셨다 가셨습니다. 괭이랑, 호미가 세 개씩 필요하다고 하시던데, 땅 무르고 기름진 곳에 쓸 거라 주철, 무쇠로 해도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응. 얼금아, 아재. 사람들 한두 명 불러서 만드실 수 있겠죠? 저는 머리가 아파서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쉬어야겠네요.”


종효가 얼른 대답했다.


“네. 들어가 쉬십시오, 애기씨. 사람들 부를 것도 없이 무쇠 괭이랑 호미 정도는 저희 셋이서도 충분합니다.”


희선이 다섯 살 때부터 보호자 겸 경호인 겸 친구로 따라다닌 종효는 대장장이 일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어느새 농기구 정도는 그냥 만드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스스로도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애기씨, 애기씨. 그제 큰 애기씨께서 말씀하셨던 식칼 말입니다. 큰 것, 작은 것 하나씩 만들어야 하는데 그거 제가 만들어 봐도 될까요?”


얼금이는 2년만에 식칼을 만들 수 있는 소녀가 되어있었다.


“그래, 얼금아. 네가 만들어 봐. 조심하고. 날 담금질하다 깨지면 두들겨 고쳐보려 하지 말고 새 철괴 써. 식칼 그거 쇠 얼마 안 들어가니까. 알겠지? 다치지 말고.”


“걱정마세요, 애기씨.”


어느새 물이 들어버린 얼금이였다.


희선이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 후, 승배가 물었다.


“아까 둘 다 왜 그렇게 절 잡아먹으려고 하셨습니까?”


종효가 대답했다.


“예조 참의 영감이 2년 동안 애기씨에게 계속 구애를 하고 있잖냐.”


“그건 알죠.”


“그런데, 그 결혼이 쉽겠냐고.”


“안될 건 뭡니까. 애기씨 고우시고, 현명하시고, 심성도 좋으시고, 솔직히 집안도 손가가 부제학 댁 김가보다 더 낫잖습니까.”


“그렇다 해도, 어느 사대부가에서 며느리가 집 안에 대장간을 만들고 망치질하는 걸 용납하겠냐.”


“예조 참의께서 다 괜찮다고, 책임진다고 하셨다면서요.”


“참의께서야 괜찮다 하시지. 그 집 부모님도 아들이 마음병으로 다 죽어간다니까 억지로 받아들인다 하셨겠지. 혼인 후에도 과연 그게 괜찮을까?”


“에...또 그런....”


“에...는 무슨. 집 안에 분란이 일어날 게 뻔한데 애기씨가 그런 혼인을 하고 싶으시겠어?”


“형님도 집안에 분란은 많으시잖습니까. 맨날 형수님한테 혼나면서.”


“그래, 조용히 살림 시작해도 이리 시끄러운데, 시작부터 뻔히 시부모와의 갈등이 생길법한 혼인을 하시겠냐 이 말이다. 애기씨처럼 강단있는 분이. 그냥 그 혼인 안 하고 말지.”


얼금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그래도 애기씨가 참의 영감님이랑 혼인하셨으면 좋겠어요. 좋은 분이신데. 애기씨도 이제 스무 살이 되셨잖아요. 그 정도 좋은 분 잘 없는데. 스물일곱 노총각이긴 해도.”


“참의 영감이 싫은 사람이면 애기씨가 고민을 하겠냐. 당장 꺼지라고 욕이나 하겠지. 마음에 있는 분이니 저리 힘드신 게지.”



**



한참을 의논하고 싸워가며 첫 모임을 끝내고 희선은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바로 별채로 들어가려는데 어머니 민씨가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어머니 왜 나와 계십니까?”


“너 오길 좀 기다렸다.”


“무슨 일 있습니까?”


“예조 참의.....규원이가 안에서 널 기다리고 있다.”


“그 아저씨...아니 스승님이 왜 또 오셨답니까.”


“몰라서 묻느냐. 어쩔 생각이냐.”


“어머니, 제 생각은 벌써 백 번쯤 말씀드렸잖아요. 이 혼인 힘듭니다.”


“규원이가 싫은 건 아니지 않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어머니라면 정운이의 처, 어머니의 며느리가 집 안에 대장간을 만들어 놓고, 허구헌 날 총 보러, 칼 보러 다닌다면 괜찮으시겠습니까.”


“부제학과 숙부인께서도 괜찮다고 하셨다지 않느냐.”


“그거야 그 인간....참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죽겠다고까지 해서 그런 것이지요. 허락해 주셨다 한들 혼인하고 나서 제가 그 집에 들어가게 된다면 문제가 안 될 리 없습니다. 망치질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제 옷에 검댕이 묻은 게 보일 때마다 며느리가 미워지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라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민씨가 복잡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건 싫을 것 같구나. 알겠다, 들어가서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거라.”


“죄송해요, 어머니.”


“괜찮다, 희선아. 이건 비밀이지만, 난 딸년 셋 중 네가 제일 좋단다.”


“미선 언니에게도 그 말 하는 거 들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들어가 보거라.”


“네.”



별채에 들어가자 마루 끝에 규원이 걸터앉아 있었다.


“예조 참의 영감, 오셨습니까.”


“어디 갔다 오는 것이냐.”


“경상에 좀 다녀왔습니다.”


“살 것이 좀 있었느냐?”


“네, 뭐, 대충.”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하던 둘이 이렇게 어색한 것은 처음이었다. 규원의 손짓에 따라 그의 왼쪽에 앉은 희선의 눈에 규원의 흉터가 보였다.



어릴적, 희선을 자주 울리던 규원은 손병도에게 혼이 나면서도 희선을 놀려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규원이 열여섯, 희선이 아홉 살 때였다. 규원이 자신의 옆집 수찬(修撰) 댁 딸이 희선보다 스무 배쯤 예쁘다고 약을 올렸다. 나름 슬쩍 건드린 거였는데 희선이 울음을 터뜨리자 규원은 난감해서 자리를 피하려 등을 돌렸고, 희선은 금방 조립을 마친 화승총을 거꾸로 들고 규원의 머리를 내리쳤다.


화승총의 면착대는 규원의 귀 뒤쪽에 맞았고 피가 철철 나기 시작했다. 미운 스승놈이 아파하는 모습 정도를 보고 싶었던 희선은 너무 놀라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열심히 피를 닦은 규원은 괜찮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엉엉 울며 잘못했어요, 미안해요를 연발한 희선은 그 후로도 규원의 귀 뒤 흉터만 보이면 괜시리 주눅이 들곤 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규원이 입을 열었다.


“정말 안될 것 같으냐.”


“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 이제 그만 오십시오. 저도 힘듭니다, 참의 영감.”


“영감은 얼어죽을, 놀리려고 그러는 것이냐.”


“아닙니다, 예조 참의 영감. 다 큰 남녀가 이렇게 자주 집을 드나들며 만나는 건 곤란합니다. 참의 영감도 이제 스물일곱 되시지 않으셨습니까. 좋은 분 만나서 혼례를 치루셔야 할 분이 여기를 계속 오시면 곤란합니다.”


“희선아. 정말 마지막으로 묻겠다. 우리 집으로 시집오는 건 싫으냐.”


“이미 수없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


“그럼 이것도 이제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 내가 싫으냐. 나랑 혼인하는 게 싫은 거냐.”


“아까 질문이랑 무어가 다릅니까. 어렵습니다.”


“아니다. 다른 질문이다. 내가 싫으냐?”


규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희선이 말했다. 마주 보던 희선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아니요. 오라버니가 싫은 건 아닙니다.”


“넌 날 좀 한 가지로 불러주면 안 되겠냐. 아무튼, 되었다.”


“뭐가 말입니까?”


“내가 싫은 것만 아니면 다 해결됐다.”


희선은 이 인간이 또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규원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라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뭐가 해결됐다는 겁니까.”


“내가 회령 지방관으로 가기로 했다.”


“네? 갑자기요?”


“그래. 내가 자청했다.”


“함길도 회령이요? 회령이 부나 목입니까?”


“아니, 회령은 도호부다.”


희선은 깜짝 놀랐다. 육조의 참의는 정3품, 부윤은 종2품, 목사는 정3품, 도호부의 지방관인 도호부사는 종3품이다. 즉, 규원이 도호부사로 가게 되는 것은 한성에서 지방으로 가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품계도 깎이는 셈이었다.


“아니, 그런데 왜 회령 도호부사를 자청하셨습니까?”


“우리 집에서 멀어지려고. 그래서 네 대장간 마련해주려고.”


“아....이 미친....”


희선은 더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광기라면 그녀도 누구에게 뒤처지지 않았지만, 규원의 진짜 광기에 그녀는 항복하고 말았다.


“이제 되었냐. 나랑 혼인할 수 있지 않겠냐?”


“회령 도호부 부임은 결정이 된 겁니까?”


“그래, 2개월 후에는 부임을 해야 한다. 네가 나랑 혼인해주지 않더라도 나는 회령으로 간다.”


“이 정신 나간 인간이 정말.... 왜 그러는 거예요?”


“뭐, 몰라서 묻냐.”


규원이 갑자기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가 희선의 목을 왼손으로 잡았다. 머리를 꼼짝도 못하게 된 희선이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규원의 얼굴이 희선의 얼굴에 점점 다가갔다.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둘은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규원이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었다. 희선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의 오른손이 희선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희선도 규원의 등을 어루만졌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



“여보, 어떻게 된 거예요? 이야기 잘 된 것 같죠?”


종효의 처가 종효에게 물었다.


“그러게. 참의 영감 표정이 저렇게 밝은 건 처음 보네. 잘만 하면 하늘도 날겠는데?”


“그럼 애기씨 혼인하게 되는 건가 보네?”


“그러니까 저렇게 좋아하겠지?”


손씨 집안 식솔들이 대부분 나와 구경하는 가운데, 만면에 웃음을 띤 규원이 난데없이 민씨 앞에 엎드려 큰절을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희선은 뒤에서 계속 규원의 등을 때리며 말리고 있었다.


“장모님, 사위 큰절 받으십시오!”


민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보게, 참의 영감. 일어나시게. 갑자기 왜 이러시나.”


“아닙니다, 장모님. 이제부터는 제 어머님이시기도 하니까요. 절 받으십시오! 장인어른은 어디 계십니까, 절 받으셔야 하는데.”


“예판 대감은 아직 퇴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보다, 앞뒤 설명도 없이 왜 이러십니까. 참의 영감, 잠깐만요.”


“일단 절부터 받으십시오!”


앞에서 무조건 엎드리려는 규원의 팔을, 투전판 난장꾼 팔 잡듯 민씨가 낚아채 틀어쥐었다.


“규원아.”


“네.”


“정신 차려라.”


“알겠습니다.”


제정신이 돌아온 규원이 한 대 맞은 아이처럼 민씨 앞에 공손히 섰다.


자초지종을 들은 민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괜찮겠느냐.”


“안 괜찮을 게 있습니까.”


신이 난 규원을 본 민씨는 고개를 돌려 희선을 쳐다보았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희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둘이 좋다면 난 되었다. 대감께서도 기뻐하실 게다. 규원아, 나도 네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널 봐 왔다. 네가 희선이를 얼마나 아끼는 지도 잘 안다. 그래도,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을 거다.”


“걱정 마십시오, 장모님. 저희 잘 살 겁니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민씨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규원에게 정말 고맙고도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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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불, 힘과 마법 (5) 24.08.12 17 1 12쪽
22 불, 힘과 마법 (4) 24.08.11 17 1 11쪽
21 불, 힘과 마법 (3) 24.08.10 17 0 11쪽
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20 0 13쪽
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1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2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4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1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5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1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2 빨간 원숭이 24.07.19 11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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