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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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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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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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치기

DUMMY

한성 궐 내 사역원(司譯院). 예조판서와 예조참의가 문서 하나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조판서 손병도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판 조경서 대감의 첫째 딸, 한성부판윤의 정구윤 대감의 둘째 딸, 우의정 황희천 대감의 조카이자 전 영의정 황수관 대감의 손녀라...다들 명문가의 여식들이긴 하지만, 그렇게 세 명만으로 결정해서 괜찮겠나? 남인들이 불만스러워하지 않겠는가.”


세자빈 간택 문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달리 듣는 사람도 없는 곳이라 손병도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낸 예조참의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중이었다.


예조참의 김규원은 어릴 때부터 손병도의 집을 자주 들락거렸고, 손병도에게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김규원은 스물다섯이 된, 젊다 못해 어린 관료였다. 급제를 하고 출사(出仕)한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다.


김규원이 대답했다.


“그 외에 달리 적합한 처자들이 없습니다.”


“남인측의 규수를 누구라도 참가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나?”


“예판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대비전의 뜻이 강하게 들어와서...”



“예조가 바쁘십니다 그려.”


좌의정 이경도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이 영감이 언제부터 듣고 있었는지 뭘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좌상(左相) 대감, 안녕하시었습니까?”


“이 늙은이야 늘 골골하지요, 허허. 그것보다 예판께도 과년한 따님이 있지 않으십니까?”


“허허, 제 여식은 재작년에 혼인을 했습니다.”


“어허, 왜 이러시나. 셋째 따님이 있지 않소이까.”


손병도의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안된다. 안된다. 그 아이는 안된다.


“하하, 이미 매파가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기도 했고, 제 셋째 딸년은 많이 부족한 아이입니다.”


“매파가 오간 것이야 뭐가 흠이 되겠습니까. 또 세자빈 간택이 들어간 것도 흠잡힐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까 두 분 말씀하신 것도 있고, 크흠. 그리고, 예판의 셋째 따님이 인물도 출중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성과 경기 전체에 소문이 자자하지 않소이까.”


손병도는 북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딱히 남인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어중간한 위치인데, 북인이 아닌 집안의 여식을 하나 억지로 집어넣어 불만을 잠재우자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손병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좌의정 이경도가 나쁜 의도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대비전의 힘이 강하고, 현 상황에서 그걸 엎을 방법도 없었다. 정치색이 강하지 않은 손병도의 딸을 세자빈 간택에 참여시켜서 여론을 좀 희석시켜 보려는 것 뿐이다.


세자빈 간택에서 떨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검증된 규수라는 도장이 찍힌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 딸이 인물도 출중하고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는 좌상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셋째가 광기에 찬 이쁜 딸, 손희선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저, 병판대감 따님은 좀 곤란합니다.”


갑자기 김규원이 나섰다. 좌의정 이경도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참의께서는 또 무슨 말이신가? 뭐가 곤란하다는 건가?”


“저, 그게, 그 규수는 아직 배움이 적고 미숙하여 세자빈 후보로는 좀 부족합니다.”


예판 손병도와 좌상 이경도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동시에 질문했다.


“자네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가?”


“뭐? 희선이가 어디가 그렇게 모자라나, 엉?”


김규원이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아직 어려서 곤란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이경도가 손병도에게 물었다.


“병판 대감, 따님이 올해 몇 살입니까?”


“열여덟 되었습니다.”


손병도의 대답에 이경도가 다시 김규원을 심문하듯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다른 후보들도 다 열여덟, 열아홉이 아닌가?”


“제,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 뜻은 그런 게 아니었고...어...”


땀만 뻘뻘 흘리는 김규원을 보고 이경도와 손병도가 마주 보았다. 좌상 이경도는 그냥 웃었고, 손병도는 혹시, 하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왜 이제 와, 배고픈데.”


벽란도 큰나루 옆 회회떡 가게 앞에서 회회떡남이 희선을 보며 투덜거렸다.


“제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혹시 저랑 약속이라도 하셨던가요?”


희선이 돈주머니를 꺼내며 비꼬아봤지만, 회회떡남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누구든 호떡 사줄 사람 기다렸지. 몇 명 있거든.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안 오더라고.”


“이 회회떡만 드시고 사십니까?”


“그건 아닌데, 이건 비싸서 내 돈 주고 사 먹긴 힘들거든.”


떨떠름한 표정을 한 채 희선이 회회떡집 주인에게 말했다.


“네 개 주세요. 하나는 좀 크게, 한 100g 짜리로 해주세요. 뻔뻔한 각설이가 하나 있어서.”


“오, 좋다좋다. 주인장 크게요! 그런데,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묻자. 그...그램이라는 거는 유럽 전체에서 다 쓰는 거야?”


회회떡남이 신이나서 외치다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네. 유럽의 서쪽에선 거의 다 쓰는 걸로 알아요. 조선에서도 요즘은 근, 돈, 냥보단 이걸 많이 써요. 확실히 좋기도 하고요.”


“길이나 부피도 미터하고 리터를 쓰고?”


“그램을 처음 듣는 듯 물어보시더니, 미터와 리터는 또 자연스럽게 말씀하십니다?”


“다 쓰나보네. 그래, 여기는 야드파운드가 없어서 다행이다.”


“네? 그게 뭡니까?”


“없어서 다행인, 정말 지옥에나 쳐박을 것들이 있어. 모르는 걸 다행으로 알아.”



잠시 후, 회회떡남과 희선과 종효, 얼금이 이렇게 넷이 나란히 벽란항 입국 접수대 근처에 나란히 앉아 회회떡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확히 뭐하시는 분이세요? 여러번 뵈었는데 아직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네요.”


“나도 네가 잘나가는 집 딸이라는 것만 알고 이름도 모르는데 뭐. 넌 가르쳐 줬냐?”


“전 손희선입니다. 그냥 놀기 좋아하는 처자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나는 강.......팔복이야. 그냥 호떡 좋아하는 아저씨입니다.”


“강팔복....자기 이름을 말하기 전에 그렇게 한참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르쳐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 하시지.”


“가끔 내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나더라고. 것보다, 저거 뭐하는 거야?”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상대로 조선의 관원들이 이름을 적고 입국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배니까 어떤 사람들이 내렸는지 알아야지요. 이름을 적고, 신원을 파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팔복이 자신의 얼굴 앞에서 손바닥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아니, 저기 네안더인들 얼굴에 자를 갖다 대고 확대경으로 눈을 보고 그러는데?”


“아, 저건 네안더인을 분류하기 위해서입니다.”


“분류? 네안더가 또 구분이 되나?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안 해 주던데?”


“누구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셨습니까.”


팔복이 볼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주점 윤씨 아줌마랑, 포목점 양씨, 물장수 억쇠 총각하고 이야기 많이 해봤는데, 다들 그런 말은 안 하던데?”


“다들 자기 코가 석자에 일하기 바쁘신 분들인데, 딱히 네안더의 구분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저처럼 놀기 좋아하고 팔자 좋은 처자나 아는 거지.”


“흠, 암튼 어떻게 분류가 되는 건데?”


“눈동자와 머리털의 색깔, 쇄골의 길이하고 또 뭐더라, 음, 인중과 코의 길이를 재어봅니다. 정확한 기준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몇 가지나 나뉘는 건데?”


“제가 아는 건 두 인종입니다. 기이길사, 한배도 이렇게요.”


“음차(音借)한 거 말고 원래 발음은?”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키르기즈, 헬베티라 부를 겁니다.”


“북유럽식 같기도 하고, 중앙아시아 유목민 같기도 하고, 뭐 그러네?”


“전 팔복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헛소리야. 그런데, 저게 의미가 있나?”


“예?”


“내가 보기엔 전혀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네안더끼리는 구별하나?”


“그게, 저도 가까운 네안더들에게 물어본 적 있습니다만,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눈이 청색이고 코가 길고 쇄골이 짧으면 헬베티, 눈이 녹색이고 코가 짧고 쇄골이 길면 키르기즈라고 하는데...”


“그런데?”


입술을 삐죽하며 희선이 팔복에게 말했다.


“눈이 녹색이고 코가 길고 쇄골이 어중간하면 무슨 인종입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특징이 섞이면 잘 모르지 뭐. 뻔한 거 아냐. 근데, 키르기즈와 헬베티 사이에 아이는 생길 거 아냐?”


“그렇죠, 네안더끼리니까 당연히.”


“그럼 나누는 게 뭔 의미가 있을까. 캬, 한 종족 안에서 또다시 인종을 가르고 자빠졌네. 그딴 걸 도대체 누가 정한 건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영길리의 기준일 겁니다.”


“잉글랜드 새끼들의 매뉴얼만큼 쓸데없는 게 또 어디 있다고. 그런데 왜 만들었는지는 알겠다. 두 인종 간에 차별은 좀 두겠네?”


“헬베티 족이 좀 더 소수이고, 사피엔과 가깝게 지냅니다. 그래서 좀 더 우월한 인종이라 봅니다. 한성이나 여기서야 그런 게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만, 변방이나, 특히 북방으로 가면 네안더들이 다수 종족인 지역들도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그런 곳에서는 사피엔들의 지배 하에서 헬베티가 사피엔들을 돕겠지.”


“맞습니다. 그런 헬베티 족들은 중인계급까지 올라가기도 하구요.”


팔복이 희선을 한번 보더니 웃었다. 뭐야. 이 인간 왜 웃어, 싶은 생각이 든 희선이었다.


“어디나 똑같군 그래. 거참.”


“뭐가 말인가요?”


“그런 게 있어.”


“뭐에요, 말을 꺼냈으면 확실히 설명해 줘요. 안 그럼 이제 회회떡 안 사줄 거에요.”


단호한 희선의 표정에 팔복은 대견하다는 듯 씩 웃으며 말했다.


“영국말 좀 알지?”


“네.”


“「Divide and rule」, 뭔 뜻이야?”


“나누다, 그리고 규칙?”


“아직 배울 게 많네. rule에는 지배하다 라는 뜻도 있지?”


“그래요.”


“분리 통치, 분할 통치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사실 분할 통치, 분리 통치보단 갈라치기라고 번역하는 게 딱인데 말이야. 자, 어떤 힘이 센 나라나, 힘이 센 종족이 약한 놈들을 지배할 때 말이지, 두 가지 중 어떤 게 효과적일까? 그냥 마구 두들겨 패는 거랑, 그 약한 놈들 중 내 편을 좀 만드는 것.”


“당연히 내 편을 만드는 게 좋겠지요.”


“내 편을 만들 때 가장 좋은 방법이 그 약한 놈들을 나누어 분류하는 거야. 종교라거나, 문화, 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종이나, 지금 보이는 것처럼 눈동자 색깔, 코 길이 같은 걸로. 보통 숫자가 적은 놈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 약간의 권력도 주고. 그 다음엔?”


“당연히 그 소수는 우리의 앞잡이가 되겠네요.”


“아우 똑똑하네. 또 어떤 장점이 있을까?”


“문화나 종족, 지역의 특성도 잘 알 테니 지배를 좀 더 효과적으로 해 주겠죠.”


“그리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우리가 힘이 약해졌을 때, 혹 그 나라나 지역에서 물러나야 할 때.”


희선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답을 낼 수는 있었다.


“지배당하던 자들의 분노를 앞잡이들에게로 돌릴 수 있겠군요.”


“정답입니다~ 너 진짜 머리 잘 돌아간다, 이야.”


희선으로서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영국이 네안더를 구별해서 분류하는 건 그냥 그 자체로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뿐, 그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멍해졌다. 이 사람 뭘까.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


“저, 저는 그런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어요.”


“당연하지. 이런 방식은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지배 당하는 놈들을 조지는 거야. 나도 배워서 아는 거지. 이런 걸 스스로 깨우칠 수 있으면 천재지, 천재.”


“그런 걸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가르쳐 주는 곳이 있습니까?”


희선의 진지한 질문에 팔복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는 하늘을 보며 자신의 귀 뒤편을 긁었다.


“엉? 그게 말이지....저어~ 먼 곳에 그런 데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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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불, 힘과 마법 (2) 24.08.09 20 0 13쪽
19 불, 힘과 마법 (1) 24.08.08 21 1 12쪽
18 게임의 법칙 24.08.07 21 1 11쪽
17 총은 요술 부리는 막대기 24.08.06 21 2 11쪽
16 얼금이와 감실이와 흰돌이 24.08.04 22 2 11쪽
15 집으로 24.08.03 24 2 11쪽
14 그깟 대장간 24.08.02 26 1 13쪽
13 네안더의 전통에 네안더는 없다 24.08.01 30 1 13쪽
12 그지같은 영국음식 24.07.31 29 1 11쪽
11 화승총과 수석총, 매치락과 플린트락 24.07.30 34 2 11쪽
10 소와 양 24.07.28 30 2 13쪽
9 경국지색(傾國之色) 24.07.27 31 1 12쪽
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7 총열과 세자빈 24.07.25 40 2 14쪽
6 야공 손희선 24.07.24 40 1 12쪽
»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4 개풍 대장간 24.07.22 50 0 15쪽
3 몰래카메라 청년 24.07.19 69 0 14쪽
2 빨간 원숭이 24.07.19 119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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