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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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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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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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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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힘과 마법 (3)

DUMMY

잠깐 시간이 흐른 후, 진행 담당자와 역관이 앞으로 나왔다.


“브룩스 부인께서 판정을 끝내셨습니다. 정민화, 피홀 딘크, 두 사람의 요리는 모두 훌륭했습니다. 영국의 머핀은 좀 복잡한 맛이었고, 조선의 머핀은 가장 기본에 가까운 담백한 맛이었습니다. 머핀은 둘 다 좋았지만 굽기나 맛에서 정민화의 머핀이 좀 더 나았습니다. 다음 피시 앤 칩스입니다. 대구는 조선이 나았지만 감저튀김은 먹기 힘들 정도로 망쳐서 종합적으로는 영국의 음식이 좀 더 낫다 판단했습니다.”


여기까진 1:1인 셈이었다. 민화와 희선 모두 긴장하여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음 비프 웰링턴입니다. 질 좋은 소고기를 밀가루 등에 싸서 오븐에 익히는 잉글랜드 전통의 고기 요리입니다. 딘크씨는 전통적인 잉글랜드의 방법을 비교적 훌륭하게 해내었습니다. 맛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든 공으로 보나 맛으로 보나 조선측의 비프 웰링턴이 압도적이라 판단되었습니다. 정성껏 만든 뒥셀과 프로슈토가 소고기를 훨씬 더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희선과 민화가 손을 맞잡았다.


“따라서, 첫 번째, 지혜의 시험은 개풍 대장간 측의 승리입니다.”


“우와, 우와!”


구경꾼들 몇몇이 소릴 지르고, 밥 먹거나 술을 마시다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덩달아 환호했다. 사실 지혜의 시험은 관심 있는 사람들 소수 외엔 인기가 없는 종목이긴 했다. 맛도 못 보는 요리 대결이나, 체스 대결이 무어가 그리 재미가 있겠는가. 춤이나 노래였다면 좀 달랐겠지만.


하지만, 객석 한구석에서 엄청난 환호가 터져나왔다. 고급스러운 장옷을 걸친 여자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주변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야, 잘했다. 역시 내 딸! 최고다!!”



희선과 민화, 구봉이도 신이 났다.


“이겼다, 이겼어!”


“민화야, 정말 대단해! 영국 요리사를 영국 요리로 이기다니!”


“애기씨들 정말로 대단들 하십니다. 영국인을 이기는 분들이 있다니요!”



밀러 중령도 왠지 비실비실 웃었다. 그는 조선측이 이겼는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젊은 장교 하나가 다가와 쪽지를 그에게 전달했다. 주둔군 부사령관 존 그래함 장군의 서신이었다. 그걸 읽은 밀러의 표정이 변했다. 밀러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자 부사령관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명령이었다. 밀러는 입술을 깨물었다.



영국군 측에서 두 번째, 불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웅수가 희선의 곁에 잠시 왔다.


“한다르의 은총이 애기씨와 함께 할 겁니다.”


한다르는 네안더들의 신이었다. 불과 천둥을 다스리는 가장 위대한 신. 그들의 신화 속에서 한다르는 손을 한번 뻗는 것만으로 지옥에서 온 야수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들의 부흥을 이끈 대족장 크라막을 구하고, 신물을 그에게 주었다. 그 신물은 실제로 존재해서, 아직도 네안더의 성지인 프로이센의 네안더 계곡(Neandertal)에 있는 신전에 모셔져 있다. 그 신물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요즘이야 사피엔들의 종교인 불교, 천주교, 동방정교 등에 밀려 이단취급이나 받는 신이었지만, 그들 기저에 깔려있는 한다르에 관한 믿음은 아직 굳건했다.


“한다르는 네안더의 신인데 나에게도 은총을 줄까?”


“한다르는 공명정대하고 자비로운 분이시라, 애기씨도 돌봐주실 겁니다. 잘 하실 겁니다, 애기씨.”



영국군 대장장이 대니 도슨과 희선이 나와서 섰다. 그들의 앞에는 모루와 망치, 집게, 줄, 숫돌, 화덕이 준비되었다. 희선은 감탄했다. 영국군은 전쟁 중, 야전에서도 대장간을 운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동 가능한 화덕, 들고 다닐 만한 접이식 풀무, 바퀴가 달린 담금질용 기름통, 물통이 다 있었다. 다음에 밀러를 붙잡아 야외용, 야전용 물품들에 대한 정보를 다 토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안타깝게도 야심찬 다짐과 달리 희선의 왼손에선 피가 조금씩 계속 흘렀다. 욱신거림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이후 손을 못 쓰게 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할 작정이었다.


밀러 중령이 앞으로 나왔다. 희선이 그를 보고 살짝 웃었지만, 밀러는 희선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왠지 그는 화가 나 있는 듯 보였다.


“영국의 무기는 점점 총 중심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검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재장전이 안 되었을 때, 탄환이 총구를 막아버렸을 때, 비가 올 때, 바람이 많이 불 때, 우리의 목숨을 구해 줄 수 있는 건 검이나 창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화덕 안을 보세요.”


[저 아저씨, 어울리지 않게 뭐 저런 이야기를 하는거야. 총 안 나가면 칼로 싸운다는 당연한 걸 가지고.]


희선은 말이 길다 생각하며 화덕 안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가로 5, 세로 10cm 정도에 두께가 0.3cm 정도 되어보이는 잘 제련된 철판이 10개 정도 놓여 달구어져 가고 있었다.


“인도나 투르크에서 생산되는 우츠 스틸입니다. 제공된 그 철판들로 다마스커스 식 글라디우스를 만드는 것이.......”


밀러가 잠시 말을 멈췄다. 희선은 왜 그가 말을 멈췄는지 알 것 같았다. 우츠 스틸, 우츠 강(鋼)은 그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최근 영국군이 인도에 주둔하게 되면서 우츠 강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 있었다. 다마스커스 단조강도 물결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하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뿐, 구경해 본 적도 없었다. 밀러는 희선에게 미안한 것 같았다.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마법의 시험을 지고 나서 영국측이 그냥 대놓고 비겁하게 나오기로 한 듯 했다.


즉, 그녀는 만져본 적도 없는 쇠를 가지고 본 적도 없는 단조강을 만든 다음, 영국측 장교중 극소수나 사용하는 글라디우스를 뽑아내어야 하는 것이었다. 삼중의 함정이나 마찬가지였다.



밀러가 잠시 멈췄던 말을 이었다.


“흠, 으흠, 글라디우스를 만드는 것이 불의 시험입니다. 제한 시간은 세 시간입니다.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여러분의 화덕에 우츠 스틸을 미리 넣어놓아 달구어 두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마스커스 검은 서로 다른 강도를 가진 얇은 쇠를 여러 겹으로 쌓으면서 접거나, 꼬는 과정을 반복하고, 이후 계속 고온에 가열하여 망치로 두드리면서 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때 성질이 다른 철들이 붙거나 합쳐지면서 물결 무늬가 되지요. 그러니, 일반적인 검보다는 꽤 고온 상태에서 단조를 해야 하는 정도는 다들 알고 계시겠지요?”


밀러가 주절주절 설명하고 있다. 저 이야기는 분명히 희선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밀러가 계속해서 단서를 조금이라도 풀어주려 하고 있었다. 영어로 빨리 말하는 통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희선은 그 내용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으로 정리하려고 했다. 역관이 대장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 통역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몇몇 철판은 숯덩어리와 같이 파묻어 가열하고 몇몇 철판은 불 위에 올려서 가열해 두면 성질이 좀 많이 달라질 겁니다. 그 판들을 교차시켜 겹쳐서 두들겨 붙이면 아름다운 다마스커스 단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허허. 여기, 판정관 탁자 위에 완성품이 있습니다. 만들 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판정은 세 가지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첫 번째, 얇은 동판을 뚫어서 날이 상하는지, 금이 가지는 않는지 볼 겁니다.

두 번째, 소가죽을 베어서 절삭력이 얼마나 좋은지 보겠습니다.

세 번째, 대나무에 대고 검을 내리쳐 유연성과 강도를 동시에 보겠습니다.


시간상 손잡이는 제가 미리 만들어 놓았습니다. 슴베랑 연결만 하시면 될 겁니다. 시간제한은 세 시간입니다. 그 시간 안에 명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냥, 두 분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영국군 대장장이 부부의 남편인 대니 도슨은 밀러 중령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저렇게 오래 하나 생각했다. 요즘 인도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우츠 철을 꽤 많이 입수해서 며칠 전까지 밀러 중령과 함께 두들겨 만들어 보지 않았던가. 수십 번 실패한 후 최근에서야 성공하기 시작했다. 밀러가 한 이야기들을 도슨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저 말들은 우츠 철과 다마스커스 제련을 전혀 모르고 있을 저 아가씨를 위한 설명일 것이다. 주제를 들었을 때, 그도 참 비겁하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더더욱 질 수는 없었다. 다마스커스 제련을 처음 해보는 손을 다친 열여덟 살짜리 소녀에게 진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민화가 희선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옆에 서 있던 구봉이에게 물었다.


“희선이가 왜 저러는 겁니까. 저 검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까?”


“소인이 영길리 말을 몰라 역관의 말만 들어 확실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려운 정도가 아닙니다. 제가 비록 아는 게 적은 1년차 메꾼이지만 저런 재료를 본 적도, 저런 칼을 본 적도 없습니다. 조선 사람은 아예 손대어 보지도 못한 것을 만들라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면 어쩔 것인가. 희선은 뭐가 어떻든 간에 생각을 하고, 만들어내야만 했다.



저쪽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힘의 시험에 나올 브라운은 그냥 옆에 앉아서 웃음이나 짓고 있었지만, 아까 지고 나서 시무룩하게 서 있던 요리사 딘크가 화덕에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희선은 피에 젖은 헝겊을 두른 왼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민화가 희선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희선아, 어떻게 할까?”


“저것들이 너한테 지고 나서 주제를 바꿨나 봐. 치졸하네. 생전 처음 보는 쇳덩어리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구봉이도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다 물었다.


“애기씨, 제가 일단 풀무질을 좀 할까요?”


희선이 턱에서 손을 내렸다.


“아니, 넌 힘 빼지 마. 나중에 망치질 할 때 날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민화야, 미안하지만 풀무질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럼, 우리집 잔치할 때 아궁이에 바람 넣는 풀무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맡겨 둬.”


관객석에서 우워, 하는 탄성이 나왔다. 절세미인, 천하일색이란 말이 어울릴 법한 양반가 처자가 풀무질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써 보았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생각보다 능숙했다.


희선은 판정단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 글라디우스 단검을 살펴보고 만져보았다. 브룩스 부인과 무술교관 메인 소령은 희선을 보고 웃어주었지만, 이 주제에 대해 잘 아는 밀러 중령만은 잠깐 쳐다보다 미안함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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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갈라치기 24.07.23 4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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