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씨는 조총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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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빨간돌고래
작품등록일 :
2024.07.19 11:52
최근연재일 :
2024.08.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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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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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힘과 마법 (4)

DUMMY


일본도나 중국 언월도의 일부, 작년에 큰돈 주고 샀던 화란(和蘭-네덜란드)의 쯔바이핸더에도 이런 물결무늬가 있긴 했다. 밀러 중령이 아까 숯불 속에서 달군 판이랑, 그냥 달군 판을 차곡차곡 겹쳐서 접쇠 단조를 하고 비틀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문제는 저 우츠라는 철을 어느 정도 달아올랐을 때 단조를 하고 접쇠를 해야 하는지, 몇 번 정도 접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대충 무늬를 보고 접거나 비틀 횟수를 파악한 후 자리로 희선은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서도 잠시 서서 생각하던 희선은 구봉이에게 말했다.


“모래는 여기 있고. 구봉아, 굵은 소금하고 동물기름 아무거나 좀 구해다 줘. 달려서 힘빼지 말고 천천히 가져와도 돼.”


“알겠습니다, 애기씨.”


얼굴과 목의 땀을 닦으며 민화가 말했다.


“풀무질 좀 더 할까?”


화덕 안을 들여다 본 희선이 대답했다.


“아니, 이 정도면 된 것 같아. 풀무질 더 해야할 것 같으면 시킬 테니 방심하지마. 그런데 넌 풀무질로 머리가 헝클어지고 땀범벅이 되어도 예쁘구나. 재수 없어.”


“농담 하는 걸 보니 여유를 좀 찾았나 보네.”


“아니, 미인한테 시비를 걸면 마음이 좀 안정될까 해서. 멀가중 멀가중 멀중가중. 이제 시작해야겠다.”


화덕에서 철판들을 꺼낸 희선은 모래와 흙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철판들을 겹쳐 접합해야 하는데 표면이 더럽거나 불순물이 많으면 분리되기 때문이었다. 뜨겁지 않은 철이면 줄로 살짝 가는 듯 문질러 주면 좋지만, 시간상 미리 화덕 안에 넣어둔 터라 그건 힘들었다. 희선이 모래로 문지르고 망치로 두들기고를 반복하기 수차례, 겉이 좀 깨끗해진 듯 보였다.


망치로 철판들을 두들기며 희선이 말했다.


“민화야, 내 옆에 쇠 지팡이 보이지? 가죽 손잡이 달린 거. 그거 화덕안에 쑤셔 넣어 줘. 제일 뜨거워 보이는 곳에다가. 뜨거울수록 좋아.”


“이 지팡이 말이지? 알았어.”


그러면서 희선은 상대를 보았다. 대장장이 도슨은 철판들을 붙이는 데 애를 먹는 듯했다. 철판 몇 개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상대가 밀러 중령도 아니잖아. 할 수 있다.'


혼자 마음을 추스르고 망치질을 하는 중에 구봉이가 소금과 소기름을 가져왔다.


“고마워, 구봉아. 이제 내가 철판을 하나씩 옆으로 펼치면 소금하고 기름을 뿌리고 여기 줄로 가볍게 문질러. 가볍게. 뜨거우니 조심해.”


철판 표면의 불순물을 최대한 적게 하려는 것이었다. 재빨리 표면처리를 한 희선은 철판을 차곡차곡 겹친 후, 망치로 두들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철판들을 이어붙이는 단접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우츠철이나 다마스커스 강 제련은 처음이었지만, 철을 여러 번 접고 두들겨 검이나 창을 튼튼하게 만드는 건 수도 없이 해보았다.


“됐다. 구봉이 넌 내가 부를 때까지 쉬고 있어. 민화야, 아까 화덕에 넣은 쇠지팡이 달아올랐어?”


“응. 새빨개.”


“빼서 내게 보여줘. 뜨거울 테니 조심해야돼.”


“그래. 걱정마. 이 정도면 돼?”


“응, 딱 좋네.”


민화가 새빨개진 쇠 지팡이를 건네자 희선은 그 지팡이로 차곡차곡 쌓은 철판들 옆면들을 지지기 시작했다. 바깥만 녹여 붙여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거였다. 엄청나게 달아오른 지팡이가 철판들에 닿자 옆면들이 조금씩 연해지면서 살짝 붙었다. 약하게나마 철판들이 붙어 철괴 같은 모양이 되자, 희선은 집게를 집어 다시 화덕에 넣었다. 다시 뜨겁게 달구어질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잠시 철판 가열을 기다리는 동안 희선은 다시 밀러 앞으로 갔다.


“치사하네요.”


“이건 내 뜻이 아니었소.”


“그거 따지려고 온 거 아니에요. 붕사 있어요?”


“그게 뭡니까?”


“보랙스요. 단조할 때 뿌리는 가루. 평소엔 비싸서 못 쓰는 거.”


“앞쪽 도구들 놓여 있는 곳에 한 컵쯤 있을 겁니다.”


“그것도 못 쓰게 할 건 아니죠?”


“그럼요. 쓰십시오.”


뒤돌아 가는 희선에게 밀러가 나지막히 말했다.


“저쪽에 시커먼 용액 보여요? 사기 항아리 같은데 담긴 거.”


“네. 보입니다.”


“저게 철가루를 산에 담가서 처리한 건데...아니, 희선양 그냥 마지막에 칼을 저기 한번만 담갔다 빼요. 이유는 묻지 말고.”


“제가 중령님 말을 믿어야 하나요?”


“미안합니다. 희선양. 하지만 마지막에 한번만 담그세요. 한 1분만.”


붕사를 가지고 돌아온 희선은 화덕에서 철판뭉치를 꺼냈다. 우츠 철판들을 집게로 잡은 후 모루 위에 놓은 희선은 붕사를 여기저기 뿌린 후 있는 힘을 다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망치질에 여념이 없는 희선에게 민화가 물었다.


“손은... 괜찮아?”


“아파. 그래도 어쩌겠어.”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내려치는 거야? 대답 안해도 괜찮아. 너한 테 말을 걸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냐. 뭐라도 말하면 좀 나을 것 같아. 요래 내려치는 건 말야, 우선은 요렇게 덩어리처럼 된 놈들을 납작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보기엔 이렇게 보여도 요 안쪽이 뻥뻥 비어 있는 곳이 많아. 두들겨서 빈 곳이 없도록 빡빡 누르는 거지, 밀도가 높아지도록.”


“반죽을 치대는 거랑 비슷한 건가?”


희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건 잘 모르겠다. 비슷한가? 그리고 재료가 여기저기 불균형한 것도 때리면 덜해져. 그러면 전체적으로 강해지지. 강도가 세져.”


왼손의 헝겊은 이미 피로 물들어 완전히 벌개져 있었고, 잠깐 멎었던 출혈은 다시 시작되어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민화는 걱정스러워 희선의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납작해지고 길어진 철괴를 희선이 잽싸게 화덕에 다시 넣었다.


“뭔가 엄청 무거운 것이 꾹꾹 눌러주면 편하겠다. 그런 신묘한 도구 누가 안 만들어주나. 하하.”


농담을 하며 웃던 희선이 구봉이를 불렀다.


“구봉아, 접쇠 할 거야. 내가 하려고 했는데 좀 힘드네, 길어진 이 철괴를 잘라도 되고 접어도 돼. 아무튼 겹칠 수 있도록 해줘.”


“알겠습니다.”


화덕 안을 살펴본 희선이 철괴를 꺼내서 모루에 놓고 가운데를 칼로 깊게 그었다. 양쪽 끝을 집게로 잡은 구봉이가 철괴를 반으로 접기 시작했다.


“와, 너 진짜 힘 세다. 부럽다, 정말.”


농담이 아니었다. 희선은 평소에도 남자들의 완력을 정말 부러워했다. 쇠를 다룰 때 힘이 모자라 애먹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애기씨. 담금질 하나 제대로 못해서 애기씨한테 늘 욕먹잖습니까.”


“그거야 배우고 연습하면 되는 거고, 힘은 늘릴 수 없는 거잖아.”


“애기씨도 운동하십시오.”


구봉이를 한번 째려본 희선은 구봉이가 접어 두터워진 철괴에 다시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깡, 깡, 시합장에 양측의 망치 소리가 울려퍼졌다.




늘린 철괴를 한 번 더 접어 형태를 잡은 희선은 시간상 더 이상 접쇠 단조를 반복하기는 힘들다 판단했다. 어디선가 듣기로 다마스커스 검은 수십번 접쇠 단조를 반복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희선은 수십 번은커녕 세 번 접기도 힘에 부쳤다.


한번 더 열을 가한 철괴를 집게로 든 희선이 말했다.


“이제 비틀어야겠다.”


“그 쇳덩어리를 비튼다고?”


“뜨거워서 가능해.”


“구봉이 총각 부를까?”


“아냐, 구봉이 힘 더 쓰면 안되고, 나랑 힘 차이가 많이나서 휘어질 수도 있어.”


“그럼...?”


“잡아라, 민화야. 젖먹던 힘까지, 삼간택에서 쓸 힘까지 지금 다 짜내.”


“으, 응.”


댕기머리를 한 처자 둘이서 달구어진 쇳덩어리를 양쪽에서 잡고 비틀어대는 모습을 본 관객석에서 또다시 웃음과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제 바로 모양을 잡아나가야겠다 판단한 희선이 자세를 고쳐잡고 망치질을 시작했다. 희선의 왼손과 땀에 완전히 젖은 얼굴을 본 구봉이 말했다.


“애기씨, 망치질 제가 할까요? 저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아냐, 괜찮아. 너 더 이상 힘쓰면 안돼. 그리고 지금부터가 중요해. 모양도 잡아 나가야 되고, 이건 조선에서 잘 안 쓰는 양날검이라 가운데가 두터워야 해. 좌우로 휘어도 안 되고, 상하로 휘어도 안 돼. 끝은 뾰족해야 하고, 비교적 무게 중심이 손잡이 쪽으로 와야 해. 그리고...응?”


말하다 말고 희선이 앞을 보았다. 구봉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애기씨, 이번 일 끝나면 저 꼭 좀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사람들 많은데 왜 이러는 거야? 일어나, 얼른.”


“사람들 많은 데서 이러지 않으면 안 된다 하실 것 아닙니까.”


“알았어, 약속 할테니까 일어나 얼른.”


“감사합니다, 애기씨. 히히히.”


“내가 그 결정 반드시 후회하게 해 준다.”


난데없이 무릎 꿇은 구봉이를 보고 관객들은 집안 가노가 규수한테 혼이 나고 있는 건가 하며 웅성거렸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민화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제지간이 되었네. 뜬금없어서 좋다.”



주최측에서 소리쳤다.


“1시간 남았습니다! 참고하십시오!”


희선은 온 힘을 다해 철괴의 가열과 단조를 반복했다. 왼팔의 소매까지 다 피에 젖어 붉게 물들었고, 땀방울과 핏방울과 불꽃이 다 함께 섞여서 흩날렸다.


그 뒤로 약 20분, 예조측 참관인 중 하나인 김규원이 보다못해 주최측에 뭔가 이야기하더니 희선에게로 다가왔다. 옆에 서 있던 민화에게 살짝 고개숙여 인사한 그는 희선에게 말했다.


“희선아, 그만 하자. 너 할만큼 했다. 다친 곳으로 독기가 들어가 크게 병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이 시합은 포기하고 힘의 시험으로 넘기자.”


망치를 휘두르며 독기서린 대답을 할 거라는 규원의 예상과 다르게, 희선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어, 오라버니. 오셨어요? 여기 막 들어오면 안 되는데.”


희선의 대답에 표정이 굳은 규원은 희선에게 가까이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희선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규원은 어색한 자세로 희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민화가 희선에게 슬며시 다가가 물었다.


“예조 참의 영감께서 뭐라고 하신 거야? 격려해주고 가신 거야?”


“저 바보 아저씨가 격려는 무슨 격려야.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혹시 부끄럽고 자존심 상해서 그만둔다 말하기 어려우면 대신 말해 주겠대. 난 한다고 했는데 자기가 중단시키는 걸로 해주겠대. 자존심 지켜 주겠다고, 살짝 말하래. 그래서 꺼지라고 했어.”


“그랬구나, 내가 뭐 도와줄 건 없어? 뭐든지 시켜.”


“네가 아까 만든 머핀이란 거 혹시 좀 남았어? 그거 입에 좀 넣어줘. 배가 고파서 쓰러지겠다.”


“으응, 많이 남았어. 가져올게.”


민화가 머핀을 가지러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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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입궐(入闕) 24.07.26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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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갈라치기 24.07.23 4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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