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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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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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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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다.

DUMMY

“고맙습니다. 이렇게 지원을 나와 주셔서.”


열차에서 내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날개 벙커의 사람들이 반갑게 맞았다.


그런데 이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찢겨진 의복과 땀이 뒤범벅이 된 얼굴과 손은 새까맸다.


“잠깐 보겠습니다.”


그 중 한 명의 얼굴에서 깊어 보이는 상처가 눈에 들어오자 박일민이 다가가 살폈다.


“저는 괜찮습니다. 벙커 안쪽의 사람들을 먼저...”


말과는 다르게 박일민이 상처를 만지자 깊은 신음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일단 눈에 보이는 사람들부터 치료해야죠.”


박일민이 말하며 배낭에서 치료를 위한 약품들을 꺼내며 말했다.


응급 치료를 끝낸 박일민이 팀원들을 따라 이동하지 벙커 안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붕괴된 건물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으나 의외로 현장에는 다친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다친 사람들은 12구역과 15구역으로 분산해 놓았습니다. 우리 구급대원들이 많이 조치를 취해 놓았지만 의약품과 의료 인원이 많이 부족합니다.”


의료팀을 안내하던 날개 벙커의 구급대원이 말하며 자신들의 팀원들을 불러 둥지벙커에서 가지고 온 커다란 박스에 든 의료용품들을 나르게 했다.


“박일민은 3팀원들을 데리고 12구역으로 가봐. 난 15구역으로 갈 테니까. 그리고 나머지 팀들은 현장을 돌며 남아 있는 부상자들을 살펴봐. 그나저나 약품이 많이 모자라겠는데...”


의료팀장이 걱정스러운 말을 하며 건물 벽의 통신 연결 단자를 보았다.


“아~ 둥지 벙커와 핫라인과 일부 회선이 복구 되었습니다. 지금 이 단자는 연결 가능합니다.”


날개의 긴급 시설팀 한 사람이 말하며 단자에 연결된 통신기를 연결하여 내밀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의료팀장이 반색하며 단자에 통신기를 받아 들고 신호를 보내자 둥지 벙커의 지휘부와 연결이 되었다.


전화를 통해 필요한 추가 의료품을 요청하는 팀장을 보고 박일민이 12구역으로 이동했다.





둥지 벙커의 핫라인이 울렸다.


- 날개 벙커장입니다.


기다리던 반가운 목소리였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구조 선발팀으로부터 일부는 보고 받고 있습니다만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잠시 ‘지직’거리는 잡음이 있은 후 답변이 왔다.


- 다행히 지진의 규모에 비해 피해는 나름 적은 편입니다.


“어느 정도입니까?”


“일부 구역이 손상을 입었지만 복구가 가능한 상태입니다. 다만 부상자가 1,000여명 정도로 집계되었습니다. 의료 장비와 약품, 의료진들의 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벙커의 복구는 천천히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다시 한 번 지휘부에 울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피해 정도가 작아보였다.


“우리 측에서 추가 지원 규모를 최대한 빨리 결정하여 파견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벙커장님. 이 신세는 반드시 갚아드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 날개 벙커장의 목소리가 한결 밝아지고 있었다.


“신세라니요. 서로 돕고 나아가야지요. 차후 벙커 복구에 필요한 것들도 준비해 두겠습니다. 언제든지 요청하십시오.”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날개 벙커장에게 보고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 감사합니다. 지금 현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다시 모두 모여 긴급 지원 추가를 위한 회의가 진행되었다.





12구역에 도착한 박일민은 3팀을 신속하게 분배하여 부상자 치료에 들어갔다.


여기저기에 누워있는 부상자들의 팔찌를 확인하여 응급 치료와 긴급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을 구분하여 침상을 배치하였다.


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간이 수술실을 만들어 나갔다.


“사망자들은 보이지 않네요. 따로 모셔 두었습니까?”


두리번거리던 박일민이 지나가는 날개 벙커의 구급팀에게 물었다.


“네. 사망자들은 벙커 밖으로 모두 배출... 아니 이동 시켰습니다. 그냥 두면 2차 감염병 우려가 있어서요. 장기의 적출이 필요하신 거죠?”


박일민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기 적출이 가능한 사망자들은 따로 모아두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마 우리 의료팀에서 작업하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일이었다.


죽은 사람의 애도보다도 그 사람의 몸에 든 것들이 더 우선적으로 생각났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벙커의 모든 자원들은 한정된 물량으로 인해 항상 리사이클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는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폐차되는 차량에서 타이어를 빼내어 다른 차에 다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잠시만요.”


앞서 가던 구급대원이 갑자기 멈춰 섰다.


구급대원의 시선의 끝에 누워 있는 여자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채령아~ 눈 떠... 눈 떠 보라고...”


구급대원이 앞에 서자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막아섰다.


“아내가 지금 막 잠이 들었습니다.”


구급대원이 말없이 남자를 밀치려고 하자 거세게 반항하며 소리쳤다.


“막 잠이 들었는데 깨우지 말고 다른 데로 가보십시오,”


소란이 일자 주위의 다른 대원들이 달려와 매달리는 남자를 떼어내자 구급대원이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맥을 짚었다.


이내 고개를 가로 저은 대원이 다른 대원들에게 눈 짓을 보내자 간이 침대를 들고 다가 왔다.


“안돼!”


절규하듯이 소리친 남자가 대원들을 밀치며 여자를 품에 안았다.


구급대원이 재촉의 눈빛을 보내고 다른 대원들이 달려들었다.


“잠시 시간을 주시죠...”


박일민이 구급대원의 팔을 가만히 잡으며 말했다.


“기다려.”


박일민을 흘깃 쳐다보며 잠시 망설이던 구급대원이 다른 대원들에게 나지막하게 말하며 남자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았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시간을 가지게 된 남자가 흐느끼고 또 웃으며 인사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의료팀원들은 세지도 못할 만큼의 치료와 수술을 했다.


약한 여진이 몇 번 있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휴우~”


이제 막 12살 아이의 몸에서 파편 조각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마친 박일민이 마스크를 벗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히 급격히 나빠져 가던 아이가 수술을 잘 견뎠고 이제 상태는 좋아지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좀 쉬셔야죠.”


날개 벙커의 의료진 한 사람인 유현식이 다가와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커피를 받아 든 박일민이 갑자기 쓴 웃음을 내뱉었다.


“하하하”


“왜 그러십니까?”


옆에 앉은 유현식이 박일민의 갑작스러운 웃음을 보며 물었다.


“참... 웃기지 않습니까?”


“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박일민이 말을 이었다.


“그 옛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기호 식품을 챙겨 온 우리 선조들이나 지금 식량의 자급도 벙커 내부에서 되지 않아 지상팀들에게 위험한 임무를 주며 보강해오면서 커피를 생산하는 시설을 굳이 유지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커피잔을 돌리며 박일민의 말을 듣고 있던 유현식이 말을 받았다.


“아마 이 음료가 주는 강력한 각성 효과가 필요했겠지요. 그리고 지금처럼 긴장을 늦출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박일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 선조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유현식이 말을 끝내며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갔다.


자리에서 미처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하고 눈을 감자 순간 잠이 쏟아졌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어느 새 꿀 맛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잠결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천근 같은 무게의 눈꺼풀을 떴다.


눈을 뜨자 간호팀의 누군가가 박일민을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깜빡 잠이 들었군요.”


“이틀 만에 눈을 붙이시는 거라서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밝게 웃는 간호사의 표정에서 뭔가 좋은 일이 있는가 싶었다.


“지금 막 우성이가 깨어났어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

우성이는 직전에 수술을 끝내고 상태를 지켜보던 12살의 아이였다.


“그래요?”


“바이탈 등 모든 게 좋아 보입니다.”


일어나서 우성이에게 향하는 박일민을 따라오며 간호사가 말했다.


병실로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기특한 마음에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다가가 아이의 볼을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 큰 수술을 거뜬하게 이겨 낸 아이가 고마웠다.


“자식~ 수고했어. 고맙다.”


아이가 말없이 손을 내밀어 박일민의 손을 잡았다.


침대 곁에 서서 아이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산소 공급기 때문에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미소를 지으며 박일민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마치 자신이 의료팀이 된 보람과 이곳에서 잠 못 들고 지낸 이틀을 이 아이로 인해 모두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쿵!’


갑자기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를 들었다고 느낀 순간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엄청난 충격파에 맞은 것처럼 사정 없이 흔들렸다.


“어어어!”

“어...무슨 일이야?”


병실 안의 의료진들과 환자들의 놀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쩍!’

‘우지끈!’

‘와지직!’


그 진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병실의 벽과 천장에 균열이 가면서 무너지고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들이 대피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자신 머리 위의 천정이 금이 가며 붕괴되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박일민에게 덥썩 안겼다.


박일민이 아이를 보호하려고 자신의 몸으로 덮었다.


그러나 거대한 암반과 콘크리트의 아래에서 마치 종잇장처럼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쿠쾅!’


굉음과 함께 천정이 완전히 무너지며 아이와 박일민의 몸을 덮쳤다.


그 순간 박일민은 생각했다.


‘이 일이 우리 벙커에서 일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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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다행이다. 24.09.13 7 0 10쪽
37 벙커에 닥친 위기 24.09.12 11 0 11쪽
36 다음을 위한 계약 24.09.11 11 0 13쪽
35 창조 벙커 2 24.09.10 10 0 10쪽
34 창조 벙커 1 24.09.09 11 0 10쪽
33 반격을 위한 진화 2 24.09.06 14 0 13쪽
32 반격을 위한 진화 1 24.09.05 13 0 12쪽
31 학살. 생존이라는 변명 24.09.04 13 0 12쪽
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5 0 12쪽
29 그들? 24.09.02 15 0 10쪽
28 메모리 24.08.30 15 0 9쪽
27 붉은 색 인식카드 2 24.08.29 14 0 10쪽
26 붉은 색 인식 카드 1 24.08.28 14 0 12쪽
25 철민과 민희 24.08.27 15 0 10쪽
24 추방자들 2 24.08.26 13 0 11쪽
23 추방자들. 1 24.08.23 17 0 12쪽
22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2 24.08.22 18 0 10쪽
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8 0 9쪽
20 선민 2 24.08.20 16 0 15쪽
19 선민 1 24.08.19 17 0 11쪽
18 PICKER 24.08.16 19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1 0 12쪽
16 친구들 24.08.13 24 1 11쪽
15 HUNTER 24.08.12 25 1 10쪽
14 AFTER RESET 24.08.11 25 1 9쪽
13 그 날이 오다. 2 24.08.09 24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4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3 1 14쪽
10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1 24.08.06 2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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