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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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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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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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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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다. 2

DUMMY

벙커 밖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수 천의 사람들이 벙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타고 온 차량으로 문을 들이받기도 하였고 어디서 구했는지 폭약을 설치하여 입구를 파괴하려고 하였으나 엄청난 두께의 벙커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종말의 시간은 차츰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 위를 산발적으로 지나가는 빛줄기들은 지구 어딘 가에 상처를 내며 그 상처의 크기만큼 사람들을 쓸어갔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누군가 저 벙커의 문을 열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바램들은 쉽사리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SAFETY3 벙커 안은 어제 밤부터 시작된 논쟁이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 벙커의 시설들은 저들을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규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을 그냥 외면하고 이 안의 사람들만 생존하고자 한다면 이후 그 죄책감은 우리를 오히려 더 큰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리고 우리가 생존한들 우리의 후손들에게 얼마나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


벙커의 문을 개방하여 사람들을 수용하자는 측의 목소리는 강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또 다른 한 사람이 올라가 공존과 미래를 이야기하며 강력하게 수용을 주장하는 연설을 시작했다.

장장 1시간의 발의를 마치고 내려갔다.


이제 수연이 단상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마주하고 섰다.


“제가 미리 나눠드린 자료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충분한 식량과 자원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긴 기간을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인공 지능으로 분석한 자료들을 확인해보십시오. 자 영희야.”


영희는 수연이 개발한 인공지능이었다.

수연의 부름에 ‘네’ 라고 응답하며 작동을 시작했다.


“지금 계산 한대로 라면 벙커 사람들의 생존 가능 기간은 얼마나 되지?”


「시뮬레이션대로라면 20년 이상입니다. 이 수치는 벙커의 보유 자원과 생산 시설에서 나오는 모든 생산물의 수치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탄성이 회의실에서 터져 나왔다.


“그럼 지금 인원에서 1,500명의 인원이 추가 되었을 때 생존 가능 기간은?”


「3년 미만입니다.」


“그럼 3,000명이 더 들어 왔을 때는?”


「6개월 미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갖가지 자료들을 스크린에 띄우며 부연 설명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 탄성을 지르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아버렸다.


한 수연이 뒤돌아서서 벙커의 지도부를 보며 말했다.


“지금 들으신 바와 자료들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수천 명의 생사가 걸린 일에 무슨 컴퓨터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러십니까! 우리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의견을 구하는 겁니다.”


수연의 반대 의견을 견지하고 있는 의사 한 명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죠. 인간이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냉정해지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의사보다 더 큰 목소리로 수연이 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AI의 자료에 타당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벙커장 윤태현이 일어서며 질문한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 벙커에는 차후 생산되는 식재료 외에도 3,500명이 5년을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원 외에 3,000명이 더 들어온다고 생존 가능 기간이 6개월이라니요? 산술적으로 안 맞지 않습니까?”


수용 찬성자들 쪽에서 박수와 함께 수연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윤태현이 수연을 바라보았다.


“제가 나눠드린 자료에서 신중하게 보셔야 할 것은 벙커의 생태계입니다. 지금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는 지금 생태계에 외부에서 준비, 교육되지 않은 인원이 합류하게 될 경우 본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해 급속하게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과거 인류의 역사에서 보듯이 인류 문명의 어느 곳이 사라지는 것은 식량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딘 가에서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져 나갔다.


“뭐라고?”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한심하다는 겁니까?”


한수연은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인간은 한심하고 나약한 동시에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고성을 지르며 회의장이 소란에 휩싸였다.

쉽사리 평정을 찾지 못하는 회의가 계속 진행되었다.


“감염병전문의 유의선입니다.”


회의실 한가운데 쯤에서 한명이 손을 들었다.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잠시 소란이 가라앉자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으로 나갔다..


“저는 한수연씨와는 다른 관점에서 불수용을 주장합니다.”


의외의 의사의 말에 사람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 얼마나 많은 백신을 맞았는지 기억하십니까?”


의사가 따지듯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다정한 성격은 아닌 듯 했다.


“벙커 밖의 저 사람들. 저들은 모두 백신 미접종자들입니다. 만약 저들 중 어느 누군가 감염병수인자가 있을 경우 그 위험성은 식량이나 인간의 본성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겁니다.”


“잠시만요. 선생님!”


누군가가 손을 들어 질문을 하려 하였으나 의사는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고 이미 예상하였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백신을 맞았으니 괜찮을 거라고요? 누가 거기에 확신을 할 수 있습니까? 백신의 효능이 어디까지인지,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 전문가인 저도 예측을 못하겠는데요. 감염병은 예측과 완벽한 방비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밀폐된 이 벙커 안에서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대책이 없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의사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생각에 잠긴 듯 조용해졌다.

그것은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음이 분명했다.


수연이 의사를 말이 끝나고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저 벙커의 문을 열고 근처에서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그냥 우리의 생존에 집중할 것이냐. 지금 벙커 개방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과연 어느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방법은 공멸입니다. 저희 부서 역시 벙커의 시스템을 수도 없이 분석한 결과 영희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인류 역사를 계승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양심에 이끌려 어설픈 짧은 동거를 선택하실 겁니까?”


윤태현이 다시 단상으로 나서며 지도부에게 설명했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투표는 거수로 진행합니다. 벙커를 개방하여 수용 하시자는 분 손들어 주십시오.”



찬성 47표, 반대 53표, 기권 15표.


첨예하게 다투던 사안이 결국 투표로 결정이 났다.

이긴 쪽도 진 쪽도 말이 없었다.


벙커의 입구에서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최후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수천의 사람들은 이제 둥지의 사람들에게서 버려졌다.


벙커 개방을 절대 반대했던 수연과 그 주변 사람들도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 모두의 결정 사항이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수연과 대립하여 벙커 개방을 해야 한다고 장장 50분이나 연설을 했던 수경재배시설 책임자가 와서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수연이 눈물을 멈추지 않자 수연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다시 말했다.


“우리 모두 이 고통을 나눠지겠습니다.”





“엄마.”


아이가 엄마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불렀다.


“응? 왜?”


“우리 저 안에 들어가면 살 수 있는 거야.”


엄마가 아이를 머리를 어루만지며 마지막 남은 콜라 한 캔을 내밀었다.


“그럼. 당연하지.”


“와~ 빨리 문이 열렸으면 좋겠다.”


아이가 신이 나서 콜라캔을 따서 마셨다.

목이 말랐던 듯 벌컥벌컥 마시던 아이가 엄마에게 콜라를 내밀었다.


“아니야...너 다 마셔도 돼.”


엄마가 다정하게 말하자 아이는 얼른 콜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벙커의 문을 말없이 응시했다.


‘저 문은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저렇게도 단단한걸까?’


아이의 엄마는 모르고 있었다.

벙커의 문보다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단단하게 닫혀있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의 시간이 흘러갔다.

벙커의 사람들에게도, 벙커 입구에서 열리지 않는 철문을 들이받으며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똑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와~ 이쁘다.”


아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아이의 외침에 사람들이 하늘을 찢어 버릴 듯이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것들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나갔다.


“으아~”


“도망가!”


그러나...

갈 곳은 없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 빛줄기는 땅위에서 날카롭고 거대한 바람이 되어 불공평하게도 벙커 밖의 사람들을 쓸어가 버렸다.


벙커 안의 사람들은 세상을 끝내면서 울리는 그 무지막지한 강력한 진동을 거대한 벽을 통해 듣고 느꼈다.


“아악!”


수연이 머리를 감싸 쥐고 귀를 막은 채 몸부림쳤다.

세상이 끝나는 소리와 진동은 너무나 아프게 벙커 안을 휘저었다.


이제 내가 아는 세상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수연은 숙소의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고 수도 없이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혜성의 조각들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강타한 후...

불행하게도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만들어진 많은 벙커들의 70%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되었다.


그리고 30%의 남겨진 벙커들도 대부분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떤 벙커는 새롭게 생겨난 광신도들에 의해서...

어떤 벙커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체계가 무너지면서...

또 어떤 벙커는 패닉으로 인한 집단 자살이 이어져서...

차례차례 그 안에서 붕괴되어 나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재앙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일주일전 우리의 세상은 모두 RESET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남았고 또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사라진 모든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전 그 날을 RESET 원년으로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일어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들려왔다.


수연이 머리를 질끈 묶고 며칠을 계속 울어 퉁퉁 부은 눈을 문지르며 일어서서 숙소를 나섰다.

숙소 앞의 통로에는 정국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들의 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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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벙커에 닥친 위기 24.09.12 9 0 11쪽
36 다음을 위한 계약 24.09.11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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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창조 벙커 1 24.09.09 10 0 10쪽
33 반격을 위한 진화 2 24.09.06 12 0 13쪽
32 반격을 위한 진화 1 24.09.05 12 0 12쪽
31 학살. 생존이라는 변명 24.09.04 12 0 12쪽
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3 0 12쪽
29 그들? 24.09.02 13 0 10쪽
28 메모리 24.08.30 13 0 9쪽
27 붉은 색 인식카드 2 24.08.29 13 0 10쪽
26 붉은 색 인식 카드 1 24.08.28 12 0 12쪽
25 철민과 민희 24.08.27 13 0 10쪽
24 추방자들 2 24.08.26 11 0 11쪽
23 추방자들. 1 24.08.23 15 0 12쪽
22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2 24.08.22 16 0 10쪽
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7 0 9쪽
20 선민 2 24.08.20 14 0 15쪽
19 선민 1 24.08.19 16 0 11쪽
18 PICKER 24.08.16 17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0 0 12쪽
16 친구들 24.08.13 22 1 11쪽
15 HUNTER 24.08.12 23 1 10쪽
14 AFTER RESET 24.08.11 23 1 9쪽
» 그 날이 오다. 2 24.08.09 23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3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1 1 14쪽
10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1 24.08.06 23 1 11쪽
9 정의의 사도 24.08.05 2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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