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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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최근연재일 :
2024.09.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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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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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

DUMMY

산 꼭대기의 소녀는 바위 위에 앉아 턱을 괴고 멀리 건너편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릉!’


소녀가 있는 산에도 큰 진동이 있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멀리 20km밖의 바위 산의 일부가 크게 흔들리며 무너지는게 보였다.

날개 벙커가 있는 곳이었다.


“참...니들도 사는 게 고달파.”


소녀가 흰색원피스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한 달음에 껑충 뛰어 몇십 미터씩 아래로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산 아래로 내려온 소녀가 조그만 카트 위에 올라탔다.

꼭 장난감처럼 생긴 탈것이었지만 그 성능과 속도는 아니었다.


‘부아앙!’


출발과 동시에 200km 이상의 속도로 가속한 카트는 멀리 들판을 가로질렀다.





“웬 소란이야?”


가는 도중에 있는 애니멀의 서식지에 일어난 소란을 보고 카트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소녀가 카트에서 내려 원피스를 나폴거리며 서식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식지 안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던 많은 애니멀들이 소녀를 보고 겁 먹은 눈을 하며 슬슬 뒷걸음질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소녀가 큰소리로 묻자 애니멀 한 마리가 앞으로 다가와 한 쪽 무릎을 꿇고 경외심을 표했다.

그 놈의 왼쪽 어깨 위에는 긴 흉터가 있었다.


“왜? 뭐가 문제야?”


일어선 애니멀이 소녀와 눈을 마주치며 뭔가를 전하는 듯 했다.


“아~ 지진 때문에 그런 거야?”


애니멀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겪는 일이라 놀랐겠지만 너희들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곳까지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야.”


애니멀이 크게 안도를 하며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다.친.동.료.들.이.있.습.니.다.”


어깨에 상처가 있는 애니멀이 '그러렁'거리는 소리를 섞어 소녀에게 말했다.


“참~ 신기한 일이야. 너만 어떻게 그렇게 진화했지?”


소녀가 고개를 들어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을 하며 말했다.


“도.와.주.실.수.있.습.니.까.”


애니멀이 간곡한 의미를 담아 보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어린 애니멀을 안고 어미가 다가왔고 그 뒤로 다친 개체들을 부축하여 애니멀들이 줄지어 다가왔다.


아마 지진의 여파 같았다.


“흠...내가 너희들에게 개입을 안 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지만...”


소녀가 하늘을 향해 오른 손을 높이 치켜 들었다.

오래지 않아 벌판 멀리서 차량 한 대가 달려와 서식지 안으로 들어왔다.


각 종 의무장비와 로봇팔이 달린 의무로봇들이 차에서 내려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반색하며 기뻐하고 있는 애니멀에게 소녀가 물었다.


“너희들도 이름 같은 게 있겠지?”


“그.렇.습.니.다.저.는.천.지.입.니.다.”


그러렁거리며 자기 소개를 하는 애니멀에게 기가 찬다는 듯이 말했다.


“하늘과 땅? 이름이 너무 거창하잖아!”





잠에서 깬 강윤이 메모리를 찾았으나 벙커에는 없는 것 같았다.


한참을 지난 후에 바구니에 있던 과일을 먹고 있을 때 벙커의 문이 열렸다.


“어디 갔다 온 거야?”


당연히 메모리일거라고 생각한 강윤이 돌아보지도 않았다.


“크르렁~”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돌아서며 경계했다.


“네놈은?”


“네.놈.은.”


둘이 동시에 같은 말을 했다.


눈에 들어온 애니멀이 손톱을 세웠다.

강윤도 헌터복에 숨겨져 있던 칼을 꺼내들었다.


기껏해야 20cm 정도 되는 칼로 싸움이 가능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강윤이 마주보며 자세를 낮추고 긴장한 채로 놈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순간 놈이 풀쩍 뛰어 공격할지 몰랐다.


“둘 다 그만해!”


갑자기 앙칼진 소리가 귀를 찢는 듯이 들려왔다.


애니멀의 등 뒤에서 메모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왔다.


“너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우려고 그래!”


메모리의 잔뜩 짜증 난 목소리에 둘 다 자세가 엉거주춤해졌다.


사이에 선 메모리가 둘을 번갈아 쏘아보았다.


“저 놈이 어떻게 여기에...”


놈의 왼쪽 어깨의 기다란 상처를 보며 이 이상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너희들 구면이지?”


메모리가 강윤을 보며 물었다.


“구면이긴 하지만 좋은 인연은 아니지.”


“저.놈.이.있.는.걸.알.았.다.면.오.지.않.았.을.겁.니.다.”


강윤을 노려보고 있는 애니멀에게 다가간 메모리가 놈을 올려다보며 나지막하게 경고했다.


“만약 안 온다고 했으면 내가 네 머리를 쪼개서 뇌만 들고 왔을걸!”


메모리의 섬뜩한 말에 애니멀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인사나 나누던가. 이 친구는 ‘천지’이름이 하늘과 땅이래. 쟤는 강윤.”


메모리의 말에도 둘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너희 둘. 밖에서는 뭘 하던 관계가 없지만 내 집에서는 그러면 안돼!”


메모리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겁을 줬다.


“야! 너도 저쪽으로 가!”


애니멀을 툭 치며 강윤의 옆으로 밀었다.


마지못해 강윤의 옆에 선 애니멀이 여전히 손톱을 세우고 있었다.


“너 말이야! 만약 네가 죽더라도 친구의 복수를 하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가 너 하나로 끝낼 것 같아?”


메모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애니멀이 주눅 든 모습을 하며 손톱을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혼자서도 잘 챙겨 먹었네.”


강윤이 먹던 과일들을 보고 마치 동생한테 말하듯이 하는 말투에 강윤이 ‘컥’ 하고 목이 막혔다.


“어디 갔다 왔길래 옷이 그 모양이야?”


메모리가 흙먼지로 엉망이 된 원피스를 툭툭 털어내자 바닥이 먼지투성이로 변했다.

어김없이 청소로봇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청소를 하고 갔다.


‘참 깔끔하단 말이야.’


강윤이 어디론가 가는 청소로봇을 보았다가 고개를 돌리자 메모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럼 저 놈하고 여기에 있으라고?”


“아니. 쟤는 유전자 샘플 채취하고 몇 가지 검사만 하면 돌려 보낼거야.”


“그럼 나는 언제 보내 줄거야?”


강윤이 바램을 담아 질문했으나 메모리가 흘깃 보며 답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저...이 씨!”


강윤의 입에서 궁시렁거림이 튀어 나왔다.


“너는 날 따라와!”


메모리가 뒷짐을 쥐고 애니멀에게 말하며 어딘가로 갔다.


애니멀이 잠시 강윤을 노려보았다.

강윤도 지지 않았다.


“빨리 와!”


메모리의 신경질이 잔뜩 담긴 목소리가 다시 울리자 애니멀이 급하게 뒤를 쫒아갔다.




두어시간이 지나서 메모리와 ‘천지’라는 이름의 애니멀이 벙커의 어느 방에서 나왔다.


“수고했어.”


메모리가 애니멀을 보며 말하자 놈이 메모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렁!’


벙커의 문이 열렸다.


“그럼 가봐! 가는 길은 알지?”


메모리가 빙긋 웃으며 애니멀에게 말했다.

놈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메모리에게 예의 그 경외의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강윤과 눈이 마주치가 ‘그러렁’소리를 섞어 말했다.


“다.음.에.밖.에.서.만.나.면.그.냥.두.지.않.겠.다.”


강윤이 움찔했으나 더 강력하게 놈을 노려보았다.




애님멀을 보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메모리가 돌아왔다.


“왜 저놈을 데리고 온 거야?”


“저놈만 특이한 변이가 왔어. 그걸 연구해 보려고?”


"저 놈들은 너한테 왜 저렇게 저자세야?"


강윤이 메모리에게 물었다.


"내가 오래 전에 혼내주었다니깐."


"그건 오래전의 일이잖아."


메모리는 고개를 끄덕하며 다시 말했다.


"아마 유전적인거겠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공포의 존재?"


"심연의 공포?"


"그래. 인간들이 밤을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대부분 두려워하는 것처럼."


메모리의 말이 이해되기는 했다.

모든 생명체는 배우지 않아도 위험과 공포의 대상을 유전적으로 알고 태어나는 것이다.


“나한테서는 뭘 연구하려는 거야? 왜 안 보내주는 거지?”


강윤과 눈이 마주친 메모리에 표정에 살짝 변화가 왔다.


어쩐지 자신을 보는 눈빛에 측은함을 담은 것처럼 느껴졌다.


“뭐야?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별거 아니야.”


메모리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뭐야?”


둥지 벙커를 뒤흔드는 진동에 다시 벙커 안은 소란에 휩싸였다.


“여진입니다. 날개 벙커입니다.”


“저 번보다 더 큰 지진입니다.”


지휘부 안의 모든 회선이 울리며 각 부서에서 상황을 보고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날개... 날개 벙커는?”


벙커장이 소리치며 핫라인을 담당하는 통신 담당을 보았으나 별 다른 연락이 없는 것 같았다.


“날개 벙커 쪽에서 감지된 진도는 8 이상입니다.”


지질 담당관이 경악하며 소리 질렀다.

경악한 것은 지질 담당관뿐만이 아니었다.


어차피 둥지 벙커에서 발생한 진동 정도는 별 다른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었으나 날개 벙커는 다를 것이었다.


이미 지진의 피해로 약해진 벙커의 구조물이 이번 지진으로 견딜 수 없을지도 몰랐다.


“준비중이던 2차 구조팀들을 파견 준비하겠습니다. 튜브는 현재 운행이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작전 부장이 벙커장에게 다가와 관련 사항들이 적힌 메모를 내밀었다.


“아니요. 대기만 시켜두십시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결정하셔야 합니다.”


작전 부장이 재촉했으나 벙커장의 생각은 굳건했다.


“지금 상황이 전혀 파악이 안 된 채로 추가 지원 인력을 파견했다가는 모두가 위험합니다. 만약 기존에 파견 된 인력 외에 추가 인력이 손실을 입게 되면 날개뿐만 아니라 우리 벙커 역시 차후 극심한 인력 난에 부딪치게 될 겁니다.”


“맞습니다. 지금 구성된 지원 인원 중 의료팀이 200명 이상입니다. 만약 이 사람들을 잃게 되면 앞으로 우리 벙커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대처가 어렵습니다.”


상황 부장이 작전 부장을 보며 말했다.


“기다려봅시다. 선발대로 지원을 나간 쪽에서 아마 연락을 해올 겁니다. 지금은 그 연락 이후 방향을 모색해 보는 게 최선입니다.”


벙커장이 지휘부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하지만 정확한 판단이었음은 분명하다.


이제는 날개 벙커도 위기지만 둥지 벙커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초조한 시간이 속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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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난민 수용 NEW 9시간 전 4 0 11쪽
» 조우 24.09.18 8 0 10쪽
38 정말 다행이다. 24.09.13 12 0 10쪽
37 벙커에 닥친 위기 24.09.12 15 0 11쪽
36 다음을 위한 계약 24.09.11 15 0 13쪽
35 창조 벙커 2 24.09.10 13 0 10쪽
34 창조 벙커 1 24.09.09 12 0 10쪽
33 반격을 위한 진화 2 24.09.06 15 0 13쪽
32 반격을 위한 진화 1 24.09.05 14 0 12쪽
31 학살. 생존이라는 변명 24.09.04 15 0 12쪽
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6 0 12쪽
29 그들? 24.09.02 16 0 10쪽
28 메모리 24.08.30 16 0 9쪽
27 붉은 색 인식카드 2 24.08.29 16 0 10쪽
26 붉은 색 인식 카드 1 24.08.28 16 0 12쪽
25 철민과 민희 24.08.27 16 0 10쪽
24 추방자들 2 24.08.26 14 0 11쪽
23 추방자들. 1 24.08.23 18 0 12쪽
22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2 24.08.22 20 0 10쪽
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9 0 9쪽
20 선민 2 24.08.20 17 0 15쪽
19 선민 1 24.08.19 18 0 11쪽
18 PICKER 24.08.16 20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2 0 12쪽
16 친구들 24.08.13 25 1 11쪽
15 HUNTER 24.08.12 26 1 10쪽
14 AFTER RESET 24.08.11 26 1 9쪽
13 그 날이 오다. 2 24.08.09 25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6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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