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RESET : 인류 영속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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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나무
작품등록일 :
2024.07.24 16:35
최근연재일 :
2024.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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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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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메모리

DUMMY

한 달 전 애니멀에게 잡혀가던 강윤은 흔들거리던 진동에 정신이 들었다.


‘으...뭐지?’


자신을 메고 가고 있는 것이 애니멀이라는 것을 알았다.


강윤이 헌터복에 숨겨져 있는 나이프를 겨우 빼어냈다.


“이익!”


안간 힘을 다해 그 칼로 자신을 메고 가고 있는 놈의 옆구리를 힘껏 찔렀다.


“퍽!”


놈이 놀라서 옆구리를 감싸고 메고 있던 강윤을 길바닥에 패대기 쳤다.


길에 떨어진 강윤의 앞으로 분노한 놈들이 인상을 쓰며 다가오고 있었다.

칼날을 고쳐 세우며 싸울 태세를 취했으나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을 살피며 피할 곳을 찾았으나 달리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놈들의 손톱에 찢겨질 것은 뻔하였다.


왼쪽으로 깊은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오자 아무 거리낌 없이 낭떠러지로 몸을 날렸다.


‘퍼 퍼 퍽’


떨어지면서 암벽과 나무둥치들이 몸을 사정없이 때렸다.


“으아...”


거의 50m정도를 굴러 계곡 옆에 떨어진 강윤은 온 몸의 통증에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헌터복이 치명상은 막아주었으나 전해오는 충격까지는 막아주지 못했던 것이다.

강윤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느 새 계곡까지 내려 온 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그래...어차피 네 놈들 손에 죽느니...”


놈들이 20여미터 앞으로 다가오자 강윤이 헬멧의 잠금 장치를 풀어 벗어 던졌다.


놈들이 ‘이 놈 봐라.’하는 표정이 되어 잠시 멈춰 섰다.


코 끝에 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공기가 상쾌하네...’


강윤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곧 바로 목을 시작으로 온 몸이 따갑다가 뜨거워졌다.


“악!”


강윤이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이내 의식이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방법이 나아...’


스스로 자위하며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벙커의 사람들을 떠올렸다.


‘민희는...다른 팀원들은 모두...무사할까?’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팀원들 걱정이 앞섰다.


이상한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틀림없이 사람이었다.

그것도 어린 아이.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소녀 하나가 자신과 애니멀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위...험...해. 물러 서.”


쥐어짜는 목소리로 강윤이 이야기했으나 소녀는 강윤을 흘깃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 소녀가 애니멀들을 향해 손을 내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안돼!”


소녀의 말이 떨어지자 애니멀들이 즉시 멈춰 서서 소녀의 눈치를 살폈다.


“어지간히 하고 이제 그만 가!”


소녀가 애니멀을 향해 야단치듯이 말했다.

애니멀들이 소녀를 잠시 바라본 후 계곡위로 뛰어올라 사라졌다.


소녀가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와 뒷짐을 지고 강윤을 내려다보았다.


“괘...괜찮아?”


강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녀를 걱정했다.


“지금 내 걱정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소녀가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뭔가를 강윤의 목에 찔러 넣었다.


의식이 가라앉는 동안에도 ‘네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되뇌는 강윤을 소녀가 두 손으로 번쩍 들어 어디론가 사뿐사뿐 걸어갔다.





강윤이 정신이 들어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소녀의 맑은 눈이었다.


“안녕.”


짧게 인사를 한 소녀가 빙긋 웃었다.


“뭐 좀 먹을래?”


몸을 겨우 일으키는 강윤에게 소녀가 과일이 든 바구니를 내밀었다. .

얼떨결에 바구니를 받아 들고 소녀를 살폈다.


열 살 정도 되었을까?

커다란 눈과 ,뽀얀 피부.

그리고 그 얼굴에 찰떡 같이 어울리는 하얀 원피스. 까만 구두.

귀엽고 이쁘게 생긴 아이였다.

아마도 부모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것이다.


강윤이 기억을 되짚어 보니 애니멀들과 자신의 사이를 막아섰던 아이였다.


“어떻게 된 거지?”


강윤이 온 몸을 두드리는 근육통에 가볍게 신음하며 물었다.


“다친 곳은 모두 치료했어. 근육통은 백신 후유증이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소녀가 빙글 돌아서며 말했다.


치료했다고? 백신은 또 뭐야?


“아니 내 말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고?”


“내가 데리고 왔지.”


당연하다는 걸 왜 묻느냐는 투로 소녀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강윤이 사방을 둘러보니 뭔지 모를 복잡한 시스템들이 작동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자신이 있던 벙커는 아니었다.


“궁금한게 많겠지만 너 말이야.”


소녀가 고개를 한 쪽으로 기울이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했다.


“응? 왜 그래?”


“먼저 구해 준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지.”


소녀가 강윤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 참. 고마워. 그런데 날 데리고 온 어른들은 어디에 있어?”


“아이 참! 내가 데리고 왔다니깐!”


소녀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네가? 나를? 어떻게?’


“내가 너를 들고 왔다고! 아직도 이해가 안돼?”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지...

강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너는 어른들한테 사용하는 존칭어 같은 건 안 배웠어. 예를 들면 습니다. 했어요. 같은 말들 말이야.”


강윤이 살짝 야단치는 말투로 말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예의는 예의였다.


“뭐라는 거야. 지금 나하고 나이 따지자는 거야?”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미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구해줘서 고마워.”


강윤은 잘 삐지는 어린 조카와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서 피식하고 웃었다.

아무래도 싸워봤자 손해일 것 같아서 궁금증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지? 벙커 같기는 한데.”


“여기는 사이언스 벙커야. 대충돌 직전에 모든 기업들이 모여 그 당시 최고의 기술들을 갈아 넣어 만든 곳이지.”


“사이언스 벙커?”


강윤이 처음 들어 본 것이며 그 동안 어떠한 수색활동에도 보고되지 않은 곳이었다.


“너희 선조들이 너희들에게 과학 기술을 전파해 주기 위해 만든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또 하는 거야?

그런 벙커라면 강윤은 모르더라도 벙커의 지휘부들도 모르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면 벙커 지휘부도 숨기고 있었나?


“그런데 왜 알려지지 않았지?”


강윤의 질문에 테이블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닥까닥하며 소녀가 말했다.


“내가 꼭꼭 감춰두었으니까.”


소녀의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강윤이 일어나서 벙커를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위치한 공간 이외에도 게이트들이 여러 개 있는 걸로 보아 상당히 큰 규모 같았다.

손잡이를 돌려 열어보려고 했으나 문들은 모두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야! 넌 왜 주인 허락도 없이 아무거나 막 만지고 그래?”


소녀가 짜증을 내며 소리 질렀다.


“아...미안.”


“이리 와!”


소녀의 성질을 못 이겨 다가 와서 홀의 중앙에 커다란 원기둥을 만졌다.

강윤이 팔을 양쪽으로 뻗어 세 번은 둘러야 할 만큼 큰 크기였다.


“아무거나 만지지 말라니까!”


소녀가 다시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아...미안.”


“아이 씨. 미안할 짓을 왜 자꾸 하고 그래!”


강윤이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소녀를 보았다.

뾰로퉁한 표정으로 강윤을 쏘아 보고 있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살피며 다음 궁금증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날 만든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 리셋 되고 50년 만에.”


뭐라고?

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너를 만든 사람들이라니? 부모님? 그리고 300년 전에?”


테이블에서 폴짝 뛰어내린 소녀가 강윤의 앞으로 다가왔다.


“난 ‘메모리’라고 해. 너희 선조들이 만든 인공지능이지.”


깜짝 놀란 강윤이 소녀의 모습 여기저기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사람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이상한 점은 소녀의 정신 상태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뭐야? 지금 미친 사람 보는 것 같은 네 표정은?”


소녀가 강윤을 쏘아보았다.

아무래도 성질머리가 보통은 아닌 것 같았다.


한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원통형의 시스템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 선 강윤이 다시 물었다.


“그럼 이건 뭐지?”


“그것도 나야. 메모리.”


소녀가 뒷짐을 쥐고 걸어오며 말했다.


“도대체...”


“아무래도 믿기 힘든가 봐.”


소녀가 중얼거리며 테이블에 있던 잔 하나를 손에 들며 말했다.


강윤이 무엇을 하나 지켜보았다.

잔을 든 소녀가 가볍게 힘을 주자 잔이 ‘파삭’ 부서지며 가루가 흩날렸다.

틀림없이 강윤이 물을 마시던 단단한 잔이었다.


손을 '툴툴' 터는 소녀와 부서진 잔의 조각들을 놀란 눈으로 보고 있던 강윤의 몸을 무언가가 치고 지나갔다.


‘쉬익~ 쉬이~익~’


그것은 키가 1m 정도의 원통이었는데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며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과 가루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어디 론가 ‘웅웅’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조금 전 깔끔 떨던 그 애도 나야. 인정하기는 싫지만.”


멍하니 서 있던 강윤에게 메모리가 다가 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나야. 벙커 전체가 메모리이고 내가 곧 벙커 자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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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정말 다행이다. 24.09.13 5 0 10쪽
37 벙커에 닥친 위기 24.09.12 9 0 11쪽
36 다음을 위한 계약 24.09.11 10 0 13쪽
35 창조 벙커 2 24.09.10 10 0 10쪽
34 창조 벙커 1 24.09.09 10 0 10쪽
33 반격을 위한 진화 2 24.09.06 12 0 13쪽
32 반격을 위한 진화 1 24.09.05 12 0 12쪽
31 학살. 생존이라는 변명 24.09.04 13 0 12쪽
30 지상으로 가는 열쇠 24.09.03 14 0 12쪽
29 그들? 24.09.02 13 0 10쪽
» 메모리 24.08.30 14 0 9쪽
27 붉은 색 인식카드 2 24.08.29 14 0 10쪽
26 붉은 색 인식 카드 1 24.08.28 12 0 12쪽
25 철민과 민희 24.08.27 13 0 10쪽
24 추방자들 2 24.08.26 12 0 11쪽
23 추방자들. 1 24.08.23 16 0 12쪽
22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2 24.08.22 17 0 10쪽
21 지상에서의 일은 지상에 묻어 둔다. 1 24.08.21 17 0 9쪽
20 선민 2 24.08.20 14 0 15쪽
19 선민 1 24.08.19 16 0 11쪽
18 PICKER 24.08.16 18 0 11쪽
17 여장부 24.08.14 20 0 12쪽
16 친구들 24.08.13 22 1 11쪽
15 HUNTER 24.08.12 23 1 10쪽
14 AFTER RESET 24.08.11 23 1 9쪽
13 그 날이 오다. 2 24.08.09 23 1 11쪽
12 그 날이 오다. 1 24.08.09 24 1 11쪽
11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2 24.08.07 21 1 14쪽
10 누구나 악마가 되어간다. 1 24.08.06 24 1 11쪽
9 정의의 사도 24.08.05 2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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