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에서 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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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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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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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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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DUMMY

비록 기력이 쇠하여 초췌해 보였으나, 옷깃 사이로 보이는 꽉 찬 근육들이 대단한 무인임을 알렸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 거만하던 이 공자와는 다르게, 행동거지가 격조 높고 품행이 정순하다.


“가주씩이나 돼서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고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별말씀을요. 아무리 사람이 만물에 영장이라 한들, 자연에 일부일 뿐입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 괘념치 마십시오.”

“그리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허”


남궁천은 양기를 보해주는 약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속이 부대끼지도 않으면서 기운이 나는 것이 천하일미라 칭해도 좋은 정도였습니다. 그 요리는 대체 뭐라 부릅니까?”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삼을 품은 닭, 삼계탕이라 하는 음식입니다.”

“삼이라... 역시, 이름 한번 잘 지었습니다. 허허허 ”


남궁천이 미소를 지었다.


“의원이셨습니까?”


그리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쓴디 쓴 약재를 음식에 결합하여 사용했음은 물론, 맛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더했다. 더군다나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력이 소진된 몸을 회복시켰다.


“의원은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저 녀석이 요리했을 뿐입니다.”

“최수완입니다.”


뒤에 잠자코 서 있던 수완은 앞으로 나서 포권을 취했다.


“재주가 대단한 식구를 두셨습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수완은 겸양을 떨었다.


쿵!


튼튼한 참나무로 만들어진 탁상이 울릴 정도로 묵직한 주머니 둘이 올라왔다.


“진명이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금자 백 냥이 필요하시다고요.”

“그렇습니다. 고려인삼을 매입할 작정입니다. 어제 드신 인삼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영약이지요. 장복하면 내공을 쌓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인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약이라...”


남궁천은 턱을 매만졌다. 필시 어제 경험한 인삼에 효능에 생각이 닿았으리라. 인삼은 먹자마자 기운이 오르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기감이 예민한 초절정 무인인 남궁천도 분명히 그것의 가능성을 알아차렸으리라.


“본인 역시도 고려인삼이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피로감에 찌들어 흐리멍덩해 보였던 남궁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났다.


“금자 백 냥입니다. 이자는 약속했던 진명이의 6분지 1갑자로 받겠습니다. 자신하십니까?”


그러자 마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비록 가주님께 비할 바는 아니나, 저 또한 절정의 무인. 정교하기로 익히 소문난 남궁가의 내공심법을 더하면 그 효과는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잠시 동안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하하하 역시 천금장주님입니다. 내 명성은 익히 들었으나, 실제로 뵈니 대협이시구려.”

“비록 소인은 장사꾼에 불과하오나 신의를 지키는 것을 목숨보다 중히 여깁니다. 해를 넘기기 전에 이자와 원금 모두 상환하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나 했는데, 남궁천이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설마 지금 와서 돌려달라는 건가? 하긴 금자 백 냥이 큰돈이긴 하지.’


마운 역시 남궁천이 말하려다 말기를 반복하니 쉽사리 주제를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준비된 차가 동이 났다.


“차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그 삼계탕의 요리법 좀 우리 조리장에게 알려주고 갈 수 있겠습니까? 대신 합당한 선에서 최 공자가 원하는 걸 주겠소.”


남궁천은 민망한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딴 곳에 두었다. 무공도 아니고 고작 요리법이라니. 그래도 군침을 삼키는 걸 보니 여간 탐이 났던 모양.


수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 있겠습니까. 그리하겠습니다.”


수완은 까막눈이기에 조리장을 불러 삼계탕 레시피를 구술해 주었고, 덤으로 주방 위생에 대해서도 교육했다. 이는 남을 돕고 선을 행해야 한다는 거창한 철학도 아니었고, 그저 요리사로서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배웅은 남궁진명이 나섰다.


“장주님.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표정이나 행동이 예의 발라졌다.


“이 공자께도 큰 신세를 졌습니다. 여기서 영파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무사히 잘 다녀오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 삼계탕의 요리법과 무엇과 바꿀지는 돌아와서 결정하겠습니다.”

“그러십시오.”


수완은 마운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설마 지가 받아 처먹으려나? 아닌가? 일순간에 장평을 바보천치로 탈바꿈시킨걸 보면···


‘끙... 정신 차려. 최수완. 아무도 믿어선 안 돼.’


수완은 마운에게 의지하려던 자신을 나무랐다.



9화. 손해만 보고 돌아갈 수는 없지


남궁세가가 있는 안휘성에서 무역 항구가 있는 영파까지는 평범한 사람의 걸음으로 보름 정도 걸린다. 하지만 무당의 경공인 제운종을 펼치자, 닷새가 되는 오늘 저녁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자네 정말 성취가 훌륭하군. 자네처럼 빠르게 성취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조화검 어른.”

“왜 그러시나?”


걱정으로만 남겨뒀던 생각을 묻기로 했다.


“이렇게 함부로 무당의 무공을 배워도 되는 겁니까.”


사실 배우면서도 께름칙 했다. 무협지에서 보면, 스쳐 지나가다가 잠깐 봤다는 이유로 아무렇지도 않게 목숨을 빼앗아 버린다. 그것도 협의(俠義)를 신념으로 삼는 무림인들이 말이다.


“원래는 안되지.”

“네?”


수완은 신나게 펼치던 제운종을 멈췄다.


“쫄기라도 한 거야? 너무 걱정 마. 괜찮을 테니까.”

“괜찮은 거 맞죠?”

“그렇데도. 도사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


수완은 머리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농이네. 하하하”


장평은 숨넘어갈 듯 웃었다. 무림에 익숙지 않은 수완을 놀리는 게 재미있는 모양.


“장주님께서 무당에서 나오기는 하셨지만 관계가 괜찮으셔. 나를 포함해서 아직 변을 당한 사람은 한명도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정말 다행입니다.”


어느덧 영파에 도착했다. 말을 타고 앞서가던 마운이 주루 앞에서 멈췄다.


‘배고픈데 잘 되었네. 맨날 벽곡단인지 뭔지만 먹었더니 헛구역질이 다 나오는구먼.’


마운이 주루 안으로 쏙 들어가며 말했다.


“죽엽청과 어향육사를 내오거라.”


그런데,


“수완이, 우린 거기 아니야. 이리와.”


*


“혼자 먹고 마시는 겁니까. 장주님 너무 하십니다.”


투덜대는 수완의 어깨에 장평의 두툼만 손바닥이 올라왔다. 그의 키가 수완보다 한참 작았으니 어깨동무보다는 손바닥만 걸쳤다고 봐야 한다.


“인상 피게. 벌써 닷새나 금자 때문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시지 않았는가.”

“···그래도 서운합니다.”

“그래서 꼽나? 꼬우면 자네가 장주 하시게.”


장평은 수완에게 벽곡단 몇알을 건넸다.


“칫!”


상해에서 왕서방 찾기는 어렵다지만, 영파에서 역관 김 서방 찾기는 그다지 어렵진 않다. 생김은 제법 비슷하나 의복이 다르고 결정적으로 고려관을 찾아가 물어보면 쉽다.


“너 그거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압니까. 역관이라면서요. 머물 곳이 거기밖에 더 있습니까.”


뜨문뜨문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민간이 주도하는 사무역보다, 관이 직접 주도하는 공무역이 주류를 이룬다고 알고 있다. 특히 정기 교류를 하는 이곳 중원에는 반드시 일종의 코리아타운이라 부를 수 있는 고려관이 있으니라 생각했다.


“대체 정체가 뭔가. 적어도 이틀은 개고생할 줄 알았는데.”

“요리사인데요.”

“아니, 대체 이런 건 어찌 알았고, 고려말은 언제 배웠냐 이 말이야.”

“아하~ 저 고려인입니다.”

“진짜?”


장평은 화들짝 놀라 거의 뒤로 자빠지다시피 했다.


“네.”

“왜 진작 말을 하지 않았나.”

“물어보시지 않으셨잖아요.”

“흠··· 그랬구먼. 아무튼 잘 되었어.”


그때였다. 


“이보시요. 사람 앞에다 두고 둘이 뭐 하는 거요.”


고려관을 지키는 문지기가 인상을 찡그렸다. 수완은 장평에게 받은 은자 한냥을 문지기에게 찔러주며 속삭였다.


“김지언씨라고 아시오?”


문지기는 은자와 수완을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은근슬쩍 받아 넣었다.


“역관이랑 아는 사이요?”

“아, 내 그러니까. 보자... 음... 잃어버린 내 형님이요.”


수완은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문지기는 수완의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쯧쯧. 불쌍도 하는구먼.”

“저요? 그렇죠. 이 먼 중원 땅에 혼자 살고 있으니.”

“아니. 당신 말고 김가 놈 말이요. 아무튼 지금은 제조 영감을 메시는 중이니 다음에 다시 오시요.”


*


고려관 앞에서 밤늦게 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대충 보아도 역관이 속해 있음을 알려주는 행렬이 들어왔다. 행렬에 중앙에는 두 명의 사내가 있었는데 어느 쪽이 역관인지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왼쪽에 죽립을 쓴 남자가 김지언인가 봅니다.”

“그래보이는 구만.”


그는 어릴 때 두창을 알았는지, 곰보 자국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생김새는 쥐를 닮아 볼품없었으며, 수염까지 듬성듬성 나 있어 초라한 인상을 풍겼다.


“저런 것도 모르고 형제라고 했으니, 쫒겨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러게 말일세. 가보자고 자네의 잃어버린 형제를 만나러.”


수완과 장평은 한 시진을 더 기다렸다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군기 빠진 문지기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으니,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수완이 자네는 왼쪽을 맡게. 나는 오른쪽으로 가지.”


역관이 있는 방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찾냐고? 간단하다.


전수조사, 일일이 모든 방을 들여다본다. 역관은 비록 신분이 높지는 않으나, 꼭 필요한 인재이니 다른 사람과 섞여 지내지는 않으리.


잠시 후.


“찾았습니다.”

“가세나.”


역관의 방문 앞에선 장평은 뜬금없이 뻐꾸기 울음소리를 내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가만히 있게.”


“뻐꾹뻐꾹!”

“···"


“뻐꾹뻐꾹!”

“새, 새소리가 듣기 좋은 것이 화, 화조월석(花朝月夕)이로구나.”


역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장평은 방문을 스르르 열었다.


장평이 속삭였다.


“물건은 준비되었소?”


그러나 역관은 즉답하지 못하고 몸을 베베 꼬았다.


“저기, 그게...”

“왜 그러시오?”

“그러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요?”


장평의 목소리가 커졌다.


“조화검 어른, 들키겠습니다.”


역관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사연을 털어놓았다.


고려인삼은 관에서 주도한다. 지력이 아주 많이 소모되기에 일정 물량만을 정해두고 팔고자 하고, 중원은 그보다 한참 상회하는 물량을 원한다.


물론, 정식으로 물량을 배정받는 상단이 되면 금상첨화겠으나, 개봉에 기반을 둔 천금장이 배정받기란 하늘에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꾸민 계책.


‘밀무역.’


반드시 동행해야 하는 역관들은 암묵적으로 밀무역을 행한다. 한 번만 다녀와도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바뀌니,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뛰어든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는 것.


“절강성 도지휘사가 이미 눈치챘소. 나도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


장평은 급기야 사납게 얼굴을 바꾸고 칼을 뺴들었다.


“네 이놈! 감히 장난질을 벌이느냐. 네놈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

“조화검 어른-”

“너는 잠자코 있거라. 내 저놈을 단칼에 도륙 내겠다.”

“에구머니. 제,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


역관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싹싹 빌었다.


그때였다.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군사들이 몰려드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누구냐! 감히 제조 영감에 침소에 파고든 것이.”


장평과 수완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야 했다.


“조만간 다시 올 테니. 살아서 고향 땅 밟고 싶거든 방도를 마련해 놓거라.”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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