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모으는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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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富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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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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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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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용광로에 불을 지펴라 (1)

DUMMY

“그건 무기라고 할 수도 없어. 악마의 물질이지.”


“마왕한테라도 바치려고 했답니까?”


“어쩌면 마왕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지.”


그때.


“에취!!!”


길을 지나가던 드워프 하나가 재채기를 했고

페리오 형제는 수배범이 된 듯 화들짝 놀랐다.


“너무 자세히 알려 하지 말게. 어쨌든 나는 다 말해줬네. 나중에 우리 공방에서 만나자고 이 골목을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쭉 직진하면 우리 공방일세.”


“알겠습니다. 저는 방어 마법으로 해주시고 로레인과 카리스한텐 각자 필요한 걸 물어서 만들어주세요.”


“알겠네.”


드워프들의 눈에 열의가 활활 느껴졌다.

일반 무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난이도.

그들은 도리어 이 높은 난이도를 즐기고 있었다.

운동하는 사람 중에도 무거울수록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던데.

그런 느낌일까?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1주일.”


“드워프 3명이 만드는 데 3일 안엔 해주셔야죠.”


“5일. 그 이상은 우리도 힘들어.”


“알겠습니다! 5일. 이건 계약금입니다.”


페리오 3형제에게 5만 루크를 선금으로 건넸다.


“고맙네.”


‘...... 돈을 줬는데 무슨 돌덩이 받은 표정을 하고 있네.’


그들에겐 손에 쥐어진 돈보다

돈을 받기까지 쥐고 있는 망치가 더 좋아 보였다.

그렇게 페리오 형제를 뒤로한 채 나는 다시 감옥으로 향했다.


“뭐? 감옥 침대의 편안함을 잊지 못해 왔다고? 파하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그렇지. 누가 만든 침댄데. 들어가라고!”


토론토의 면회는 의외로 쉬웠다.

철창 앞, 토론토는 벽을 본 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악마의 무기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만든 거야. 나는 거든 거지.”


“혹시 그 무기. 기물입니까?”


토론토의 몸이 움찔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토론토가 날 바라보는 눈빛은 혐오가 아닌 묘함이었으니까.


“그래서. 달라고?”


“달라고 하면 줄 겁니까?”


“택도 없는 소리.”



“그럼 누굴 줄 겁니까?”


“.......”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기물.

나는 다음 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며 감옥을 나섰다.


“오지 마.”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기물에 관한 얘기나 해주시죠.”


다음 날.

나는 감옥에선 꿈도 꿀 수 없는 물건을 가지고 토론토를 다시 찾았다.


“오지 말라니까.”


“자. 자. 그러지 말고. 한잔하시죠.”


임펠리시아는 여러모로 자유로운 감옥이었다.

내가 먹을 걸 가지고 오던 술을 가지고 오던 드워프는 막지 않았다.


치익!


맥주의 탄산 터지는 소리

이건 못 참치.


“안 줄 거야.”


“저 그 기물에 관심 없습니다.”


“처음엔 다 그런다. 관심 없다. 받을 생각 없다. 그러다가 그래도 제가 한 게 있는데 한 번쯤 생각해 줄 수 있는 거 아니냐.”


“애초에 저 검 쓰는 놈입니다. 만든 사람이 안 팔겠다는데 구매자가 무슨 능력으로 그걸 사요. 일단 한 잔 마셔요.”


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드워프들이다.

이 맥주가 먹고 싶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푸하!”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한 표정을 짓는 토론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가 흠칫 놀랐다.

나의 노림수에 넘어갔다고 생각한 모양.


“안 줘.”


다시 고집 가득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장인이 타협할 수 없는 고집이다.

똥고집이 아니다.

영혼의 일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선한 사람이었다.

단지 이 선한 사람이 왜 이곳에서 군말 없이 사는지 궁금했을 뿐.


한 잔.

두 잔.

세 잔.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토론토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에 그는 미친 듯이 달렸다.


“이런다고 내가 마음 변할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토론토의 혀가 꼬부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먹는 술이라 그럴까?

누군가와 먹는 술이라 그럴까?

그는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았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뭐?”


“왜 만든 겁니까? 굳이 이렇게 될 거 뻔히 알면서.”


“......”


사연 있는 침묵.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그가 이 감옥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감옥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쉽게 입을 열 수 없는 사연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5분. 10분. 15분.


그렇게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드르렁. 퓨우~ 드르렁 퓨우~~”


“아이 참. 침대에 옮겨주지도 못하게.”


지금 우리의 사이가 딱 이정도였다.

그는 나에게 쇠창살 너머로 사연을 말해주지 않고

나는 그에게 쇠창살 너머로 손을 뻗을 수 없었다.


3일 차.


“오늘은 술 없어?”


“술 먹은 다음 날은 국물로 속 풀어야죠.”


“해장술 몰라? 그리고 맥주가 무슨 술이라고.”


“술 무시하다 몸 망가진 드워프 여럿 봤습니다.”


“나이도 어린놈이 드워프는 얼마나 봤다고.”


이곳에서의 일상은 늘 똑같았다.

로레인과 카리스는 투닥거리고

나는 나와 그녀들의 장비 현황을 살핀 뒤 바로 토론토에게로.


“언제 떠나나?”


“이틀 뒤에 떠납니다.”


“그래?”


우리는 창살을 두고 말없이 음식만 먹었다.


“어쩌다 네크로맨서가 된 거야?”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던진 질문.


“어렸을 때 스승님이 주워줬습니다. 혹독하게 가르쳤지만, 매정한 분은 아니셨죠.”


“후회는 안 해?”


“처음엔 원망했지만 바꿀 수 없는 일에 미련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바꿀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라.”


토론토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안 줘.”


“아니. 저 진짜 필요 없다니까요. 아버지의 유품이잖아요. 저는 계속 얘기가 듣고 싶다 했는데 왜 남의 뜻을 곡해하세요.”


“기어코 그 얘기가 듣고 싶나?”


“네크로맨서의 기물은 대대로 내려오기만 했을 뿐 누가 어떻게 제조하는지 그 방법이 모두 소실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더 궁금한 거고요.”


토론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마음을 정한 듯 숨을 들이마셨다.


“이 얘길 하기 위해선 아까 네 말을 정정할 필요가 있다. 그 기물은 아버지의 유품이 아니야. 아버지가 시작해서 내가 완성한 거지.”


“아버지 성함은 뭐였습니까?”


“파이크. 파이크 스왈로프.”


“에?! 아저씨 파이크 아들이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네 친구냐? 파이크가 뭐야 파이크가.”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장비 앞에 모든 생명체는 동등하다 생각하셨네. 아 물론 마족은 빼고.”


그렇게 토론토의 얘기가 시작됐다.

그의 얘기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엔 룬디아가 있었다.


***


그건 대전쟁이 끝을 향해 달려갈 무렵이었다.


“자네. 아직도 용케 살아있었구먼!”


파이크가 특수부대를 찾았다.

주위를 둘러봤다.

특수부대원은 물론

우리 무기를 정비해 주던 드워프들도 많이 줄었다.


“이리 줘보게.”


나는 별말 없이 랜턴을 건넸다.


“랜턴으로 오크 대가리라도 찍었나? 이거 손봐준 지 얼마나 됐다고 상태가 이 모양이야?”


“정확히 보셨네요.”


“네크로맨서는 원래 뒤에서 시체 조종하면서 싸우는 놈들 아니었나?”


“아시잖아요. 특수부대는 화살받이인 거.”


“진짜 랜턴으로 오크 대가리 찍은 거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검술을 배우는 게 어떻겠나? 이대로면 얼마 못 살 거 같은데.”


“나가 죽으라고 만든 게 특수부대고 그걸 알면서 들어온 놈들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요.”


“그런 소리 말게.”


그는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나타샤 말고도 나를 이렇게 봐주는 이가 있다는 게.


“자네가 죽으면 이 랜턴은 어쩌라고. 주인 잃은 장비만큼 슬픈 놈들도 없어.”


“검술은 배워봤자 쓸모없습니다.”


“왜?”


“마나도 못 쓰는데 배워서 뭐 합니까?”


파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과 오러가 난무하는 전장이다.

거기서 내가 맡는 역할은 일개 병졸을 소모하는 역할.

나에게 강자와 싸울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렇구먼.”


그리고 떠올랐다.

예전에 그와 했던 대화.

예전엔 기억나지 않았던 그러나 지금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말.


“혹시 네크로맨서가 쓰는 무기도 만들 수 있습니까?”


***


“그래서요?”


“대전쟁이 끝난 후, 아버지는 오직 기물을 만드는 데 여생을 다 바쳤네. 하지만 미처 완성하지 못했지. 오래 못 갔어. 전쟁 후유증이었지. 그렇게 아버지가 떠난 뒤 내가 뒤를 이어받았어.”


그는 몇 날 며칠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은 채 기물의 완성에 몰두했다.

그리고 기물을 완성했을 때 그는 절망했다.


“손재주 하나만큼은 아버지에게 제대로 배웠다 생각했지. 하지만 오산이었어. 오만이기도 했지. 그건 너무나 기괴한 무기였어. 아버지가 불어넣은 영혼마저 훼손시킨 느낌이었지.”


토론토의 얼굴이 어두웠다.


“나는 죄인일세. 그것도 아버지의 마지막 유작을 망쳐버린 죄인.”


토론토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먹고 바로 누우면 몸에 안 좋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토론토가 가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감옥을 나서기 전


“한 마디만 해도 됩니까?”


“.......”


“네크로맨서의 무기를 기물이라 부릅니다. 그게 왜 기물인지 아십니까?”


“.......”


“기괴한 물건이라 해서 기물이라 불립니다. 아버지가 시작해 당신이 만든 그 작품. 기괴하다 하셨죠? 그건 망작이 아니라 걸작입니다.”


“..........”


그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이것은 그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그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진실이었기에.


***


율리안이 떠난 뒤,

토론토가 침대에서 스르르 일어났다.


[기괴한 물건이라 해서 기물이라 불립니다. 아버지가 시작해 당신이 만든 그 작품. 기괴하다 하셨죠? 그건 망작이 아니라 걸작입니다.]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말이

자기 도탄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도 한다.

토론토가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엔 묘지가 보였다.

그가 이 방을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아버지. 어쩌면 우리의 합작은 망작이 아닐지도 몰라요.”


***


토론토를 만난 뒤

파이크의 무덤을 찾았다.

그가 생전 좋아하던 술을 들고.


“미련한 양반아. 그냥 걸러 듣지. 연합군의 오물이라 불리던 내 말을 왜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서는.”


그의 무덤은 토르크 중심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미안합니다. 나 때문에.”


그의 무덤은 관리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고

비석은 푸석하고 갈라졌으며

찾아오는 이 하나 없었다.

토론토가 감옥에 갇혀있는 곳도

그가 이런 외곽에 잠든 것도 나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신 아들이 나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노을이 아름답게 내리쬐는 평야.

나는 비석 옆에 나란히 앉아 그가 궁금할 법한 얘기를 혼자 중얼거렸다.


“아들놈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감옥에 갇혀있지만 그건 억울한 옥살이일 뿐입니다. 토론토는 나쁜 짓을 할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해가 지고 달이 뜨도록 그에게 내 얘기를 들려줬다. 랜턴에 갇혔던 일, 자토스가 무너지고 나타샤의 후예가 얼음에 봉인된 일, 내가 3황자의 몸을 차지한 얘기까지.


“그래도 고맙습니다. 내 말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나는 비석 앞에 고개 숙여 진심으로 인사했다.


휘이이이이잉.


때마침 겨울바람이 한 자락 불어왔다.

나는 바람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파이크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답은 간단했다.


“잘못된 건 제자리로 돌아가야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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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대승절 (2) 24.09.05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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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한 남자의 명예를 위하여 (4) 24.09.01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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