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천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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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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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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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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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만남

DUMMY

상단전은 그 자체로 머리이므로, 당연히 모든 정신 활동을 주관한다. 지금 의심되는 건, 혹 회영의 상단전이 강제로 열렸던 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말이지. 혹 천운이 겹친다면...’


추리는 이어졌다.


‘회영은 청호의 이능에 당한 후 환각과 환청을 경험했다. 이건 달리 말하면 상단전의 이상. 그 상태에서 강제로 첫 타통까지 당했으니, 주입당한 내력이 상단전에 침투해서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닐까?’


게다가, 야생마들이 평생 별식이라고 먹어온 것들은 하나같이 영약이었으니, 주옥이 강제로 불어넣은 내력에 대한 반응도 아주 빨랐을 것이다. 만약 내력이 직접 상단전을 오가는 상태가 일주일간 이어졌다면, 저런 급격한 변화도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상단전의 이상, 그리고 강제 타통이라는 두 단계를 거쳐 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얘기. 진짜일까? 그럼 다른 말들을 같은 방식으로 자극한다면, 그들도 강하고 똑똑해진다는 의미?


‘일단은 단념하자. 억지로 비슷한 자극을 줄 수야 있겠지만, 벌써 시험해 보기엔 너무 위험해.’


마음만 먹는다면, 이 가설은 혼자서라도 검증 가능했다. 청호의 이능만은 못할지라도 천마후 역시 상단전을 교란시키는 효과가 있었으니.


하지만 고작 그 정도만 믿고 야생마들에게 바로 강제 타통을 시도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상단전을 직접 자극하는 건 강제 타통에 버금가는 무림의 최대 금기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인간이었다면 둘 중 하나만 겪었더라도 죽었을 확률이 높고, 운이 아주 좋더라도 주화입마에 이은 폐인화를 겪었을 것이다.


여태껏 위험한 짓을 많이 해왔고, 전부 성공하긴 했지만 그건 전부 주옥 본인의 몸에 한해서였다. 멀쩡히 살고 있는 말들을 맘대로 개조시키는 일을 함부로 시도할 순 없었다.


‘그래. 말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야. 회영의 운이 억세게 좋아서 성공한 걸 수도 있으니, 일단 방법을 좀더 찾아 보자.’


야생마들이 회영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똑똑해진다면 여러 모로 일이 편해진다. 언젠가 이들과 헤어질 날이 올 거라 어렴풋이 생각해 왔지만, 인간만큼 유능해진다면 얘기가 달랐다.


인간의 두뇌와 말의 몸을 가진 건 온 천하에 자신 하나뿐이었지만, 이제는 동족이 생길 가능성이 열렸다. 막연한 기대감이 샘솟았다.


* * *


증천은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그는 수행원 둘과 함께 중모현 밖을 순찰하는 중이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상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단독 행동이었다. 지현을 비롯한 아문의 수뇌부는 아직도 사람에 의한 범행을 의심하고 있었으니, 현내에 머물고 있는 외지인들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을 하달했다.


하지만 증천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신임하는 포두들이 1주 내내 현내를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용의자를 특정 못한 데다, 문제의 푸른 털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분명 짐승일 거다. 비록 상부의 생각은 다르다 해도.’


증천은 이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문에서는 짐승의 털 색이 아니다, 중모현 근처엔 대형 맹수가 없다 등의 근거를 들어 현내 수사에 집중하고 있었고,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염색공들까지 들쑤셔 볼 기세였으니 그 열의도 분명 대단했다.


그런 아문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이유라곤 순전히 십 대 중반부터 포쾌 생활을 해 온 증천 자신의 직감 뿐이었으니, 상부를 설득하지 못한 채 이렇게 측근만 데리고 현 밖으로 나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외지인을 통틀어, 현내에 이렇게까지 신출귀몰하고 담대하게 범행을 저지를 인물은 없다는 게 증천의 판단이었다.


그런 생각에 젖어 걷다 보니, 어느새 현으로부터 꽤 멀리 나왔다. 따라 걷던 길의 양 옆은 어느새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 눈에 약간의 휴식을 주는 것 같았다.


저런 자연의 푸른색을 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됐던가. 지난 몇 주간 증거와 증인을 탐문하느라 현내의 우중충한 갈색과 황토색에 시야가 적응해 버렸으니, 멀리 보이는 초록색 지평선은 작은 사치 같았다. 초록을 만끽하던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범인이 짐승이라면... 그 놈이 사람들의 길을 따라다닐까?’


짐승을 추적하려면 짐승의 습성을 고려하는 건 기본이다. 일단 갑갑한 마음에 뛰쳐 나온 증천이지만, 지금 이 순간 발동한 것은 포쾌로서의 감각. 증천은 두 수행원에게 말했다.


“너희들, 오늘 풀 좀 밟아도 되겠냐?”


“예이.”


수행원들에게 그 쯤이야 익숙한 일이었다. 직감에 따라 움직이는 총포두는 원래 뜬금없이 이상한 일을 시키곤 했으니, 풀 좀 밟는 것 정도야 당황할 일이 아니었다. 증천은 씩 웃으며 그대로 잔디를 밟아, 초원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 시진쯤 지나,


‘모르겠다.’


증천 일행이 길을 잃었다. 조금 멀리 나오긴 했지만, 그래 봐야 마을 근방이라는 생각에 방심한 게 화근이었다. 순찰로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눈에 띄는 기준점 없이 잔디만 깔린 넓은 초원에서 동서남북을 분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서쪽은 분간했다.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 쪽이 서쪽이겠지만 거기 중모현이 있는 지 알 수 없었으니 무용(無用)하긴 마찬가지였다.


“···이거, 오늘 안에 복귀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원 중 한 명이 물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에 말투 자체는 덤덤했지만, 순수한 질문의 의도는 아니었다. 오늘 안에 돌아가기는 글러먹었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가벼운 질책이었으며, 이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정도로 세 사람은 서로 가까웠다. 증천 역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야영할 준비 해라. 아주 뜻밖은 아니지?”


“풀 밟자는 얘기 듣자마자 예상했습니다.”


증천이 피식 웃음지었다. 이런 종류의 신뢰는 몇 번이나 확인해도 질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야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마땅한 곳을 찾아 더 깊이 걸어 들어간 초원에서 아주 이상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이게 뭐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한참을 걸어들어온 곳, 포쾌 3인이 발견한 것은, 다름아닌 짐승의 시체였다.


증천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 짐승의 털 색, 바로 실종 현장 곳곳에서 발견됐던 푸른 빛이었다. 푸른 빛에 충격을 받아 뒤늦게 전체적인 형상을 살펴보니, 죽어있는 짐승은 호랑이가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수행원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런데··· 호랑이란 동물이 원래 이렇게 큽니까?”


단지, 호랑이라기엔 너무 컸다. 몸 길이가 1장도 넘을 것 같았고, 두터운 몸통 골격을 봤을 때 무게도 250관은 너끈히 넘어갈 듯했다. 젊은 수행원들은 중모현에서만 나고 자라 호랑이를 본 일이 없었지만, 타지에서 넘어온 증천은 달랐다.


“아니. 보통은 이 놈의 삼분지 이 밖에 안 돼. 게다가 이빨도 저렇게 상어마냥 많지 않고. 호랑이의 모습이지만, 호랑이 이상의 뭔가가 분명하다.”


짐승 이상의 무언가, 즉 환수를 뜻했다. 그런데 이런 환수가 왜 죽어 있는가? 누가, 어떻게 이 환수를 죽인 걸까?


누구인지는 몰라도, 어떻게 죽은 건지는 자명했다. 늘어져 있는 호랑이 시체의 아랫배 부분이 뒤틀려, 꺾어질 수 없는 각도로 꺾어져 있었고, 뒷목뼈도 바스라져 있었다. 허리가 분질러진 저 공격이 치명타였고, 뒷목은 숨통을 끊은 확인사살이었을 것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중모현 인근은 기후가 따뜻해, 시체가 몇 시진만 방치돼도 썩기 시작하며 벌레가 꼬인다. 그런데 저 괴물은 입속과 핏자국이 바짝 말라붙은 것으로 보아 죽은지 최소한 반나절은 지났는데도, 썩기는커녕 파리 한 마리 꼬이지 않은 것이다.


호랑이의 생김새, 죽어있는 모습, 죽은 뒤의 이상현상까지. 증천에겐 그 모든 것이 괴기스러웠다. 수행원들도 똑같이 느꼈는지,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뭔가 불경한 걸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이 털은··· 연쇄 실종 사건의 범인이 누군지 알려주는 것 같구나.”


증천은 호랑이 시체에서 털을 한 움큼 뽑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 증거품은 연쇄 실종 사건 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길을 잃은 데다,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는 상황. 지금 당장 길을 찾아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오늘 밤은 야영을 하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중모현으로 돌아가는 게 여전히 최선이었다.


후두둑-


“비가 옵니다.”


“젠장, 그렇구나.”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석양이 지는 시간대에 비까지 내리자, 해는 빠르게 떨어졌다. 시야가 완전히 암흑에 잠기기 전, 증천 일행은 겨우 큰 바위를 찾아냈다. 집채만하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무지막지한 바위, 중간쯤의 돌출부가 비를 막아주어, 비를 피할 수 있는 협소한 공간이 있었다.


일행은 앞뒤 가릴 것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렸다. 바위 밑에 들어간 증천은 흠뻑 젖은 몸을 툭툭 털며 내뱉었다.


“후··· 을씨년스럽구나. 그런 괴물을 보고 난 직후에 비까지 오고, 해는 떨어지고.”


“여기도 심상치 않군요. 보십시오.”


수행원은 바닥에서 까만 막대 하나를 집어들고는 말했다. 증천이 보아 하니, 타고 남은 나뭇가지로 보였다. 누군가 이 장소에서 불을 지폈다는 말이었다.


심상찮음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푹신한 짚더미로 만든 잠자리도 보였고, 작은 동물의 뼈처럼 보이는 흔적들도 널브러져 있었다. 판단을 마친 증천이 말했다.


“누군가 여기서 먼저 야영을 했구나. 그것도 여러 날 지낸 모양이야.”


“그렇습니다. 이건 불 피운 흔적이 분명하니, 짐승이 아니군요.”


수행원 중 한 명이 맞장구를 쳤다.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도저히 이 세상 짐승 같지 않던 호랑이 괴물이 죽어 있다. 그리고 그 근방에 사람이 야영을 한 흔적이 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가령, 호랑이를 죽인 인물이 여기서 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그가 중모현과 포쾌들 편이라면 다행이었지만, 그 반대라면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몰랐다. 증천은 신중히 지시를 내렸다.


“지금은 여기를 떠날 여유가 없어. 사람이 오면 대화를 해 보되, 경계를 늦추지 말자.”


“예.”


지금으로선 이 야영지의 주인을 기다리되, 그 자가 말이 통하는 상대이기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행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야영지의 주인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어지러운 말발굽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증천은 당황하여 몸을 일으켰다. 낭패였다.


“얘, 얘들아. 일어나서 무기를 들어라. 마적인 것 같다.”


그 말을 들은 수행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일어나 무기를 뽑아들었다. 수염을 기른 수행원이 물었다. 말소리가 조용조용한 것이, 그 역시 말발굽 소리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 그렇군요. 몇 기 정도 되겠습니까?”


“넷. 그것도 아주 빠르다. 단단히 준비해 둬.”


“네.”


수행원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무기를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중모현이라는 대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포쾌들은 그 실력이 얕지 않았으니, 네 포쾌들은 주먹과 무기술을 어느 정도 쓸 줄 알았다. 마적 넷 정도라면 충분히 싸울 만했지만, 낯선 곳, 낯선 시간에서 싸움을 벌이려니 긴장감이 팽팽히 감돌았다.


이윽고 시야 끝에 말 네 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가운데 달리고 있는 말은 다른 말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 커서, 마적 무리의 대장이 탈만한 위용을 자랑했다.


그들과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전속력으로 돌진해 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여, 그 기세에 증천은 저도 모르게 조금 위축됐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말들의 형체를 살펴보자,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잠깐, 사람은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빈 말이야.”


“예? 그럼 마적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건···모르겠다. 긴장 풀지 말고.”


“예.”


하지만, 가장 큰 말의 등에 올라탄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증천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우선 눈에 띈 것은 확연히 작은 체구, 남자가 아니었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뚜렷이 보이는 이목구비는 익숙한 여인의 그것이었다. 바로 장녹아가 안장도 없이 말을 탄 채, 등 위가 빈 말 세 마리를 이끌고 이 야영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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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협상 24.09.08 1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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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무풍 24.08.25 3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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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중모현으로(2) 24.08.23 48 3 14쪽
19 중모현으로 24.08.22 51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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