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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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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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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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

DUMMY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그것은 나 자신을 명확하게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전 삶에서의 나는 훌륭한 살수(殺手)이자 해결사였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훌륭한 무인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살수와 무인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것이 정상급 살수, 혹은 정상급 무인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살행을 하는데에 있어서 신체나 내공의 제약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완벽하게 조사하고, 깊게 이해하며, 내가 가진 자원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갖가지 속임수나 변장, 연기는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그것은 지금의 이 어린아이 몸으로도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훌륭한 무인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상대방의 무공을 정면으로 분쇄하고 굴복시키는 것.

때론 일대 다수의 싸움도 이겨내는 것.

모두가 인정할 만한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서부터 차근히 쌓아올리는 기본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 이 시점을 기준으로 볼 때,

살인을 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홍옥과 내가 큰 차이가 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인으로서 그와 나 사이에는 적어도 십년,

혹은 그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체력과 근력, 그리고 체격 자체를 기존보다 훨씬 더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내공. 내공을 얻어야 한다’


전생에는 내공과 인연이 닿지 않았다.


첫번째 이유는 시기를 놓쳐서이고,

두번째 이유 또한 시기를 놓쳐서이다.


허드렛일을 하며 전전하느라 뒤늦게 암혼동에 들어왔고, 암혼동을 거친 이후에는 그대로 전문살수기관인 살혼대에 들어갔다. 홍옥을 만난 이후 나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내공까지 익힐 여유는 없었다. 이미 살수로서 완성된 상황에서 내공을 덧입힌다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어. 홍옥을 따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홍옥이 암혼동에 들어왔을 때 나이는 열 살. 지금의 나와 같다.

본래대로라면 전생의 나처럼 등급외로 구분되어 허드렛일이나 하는 쪽으로 빠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홍옥은 달랐다.

등급 판정 때부터 보여준 비범한 모습과 재능은, 오히려 그를 일급으로 분류하게 만들었다.

그 뒤로는 역사가 되었고.


이번 생도 홍옥은 어떻게든 그 찬란한 역사를 되풀이하겠지.

내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듣자하니 일급 녀석들은 어제 고기 반찬이 나왔다던데?”


첫 훈련을 위해 모인 아이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기 반찬이라는 소리에 아이들이 헉, 숨을 들이켰다.


“뭐?!?!”


“맞지? 내가 꿈꾼거 아니지? 분명 고기냄새가 났었다니까?”


어제 저녁 먼지가 더덕더덕 묻어있는 속없는 만두, 그것마저도 여러 조각으로 쪼개 먹어야했던 아이들로서는 청천벽력같은 소리일 것이다.


“뭐야. 옷만 다른 게 아니었어?”


“그럴리가 있냐. 옷부터 다른거지. 아마 모든게 다를거야. 밥먹는 것도, 훈련하는 것도, 붙는 교관들도···”


상대적 박탈감에 아이들이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한 녀석이 머리를 감싸안으며 주저앉았다.


“등급 판정 같은게 있다고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그렇게 잠깐동안 대충 봐놓고 이렇게 차별대우하는게 말이 되냐!!”


말이 된다.

대충만 봐도 아는 것이다.

될성부른 떡잎들을.


억울하면 증명해야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그래서 등급을 올리고, 자신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들어야한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내공.

빠르게 내기를 쌓을 수 있는 실마리도 일급에 있다.

일급 녀석들의 잠재력을 더욱 더 폭발시키기 위해 일찍부터 마화단(魔火丹)을 복용시키니까.


언젠가는 일급에 올라가게 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자원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구노인의 약방에 드나드는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


하지만 몇가지 더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



첫 훈련이 시작되기 전에 의외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에게 간단히 배를 불릴 수 있는 죽 한그릇씩이 주어진 것.

어제 저녁처럼 누군가가 쫄쫄 굶고 얼굴 붉힐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급 녀석들이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버린 아이들이 그것에 만족할리가 만무하다. 후루룩 죽을 해치우는 아이들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너희들이 들은 것이 맞다”


교관이 말했다.


“어제 일급 녀석들은 고기 반찬을 먹었지. 이급은 고기까지는 아니어도 속이 꽉꽉 들어찬 만두를 먹었고, 삼급이나 사급은 만두를 공평하게 하나씩 지급받았지”


“이런 니미럴···”


덩치가 얼굴을 구기며 작게 중얼거렸다. 교관의 눈이 번뜩이자 덩치가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그의 뒤에 멀뚱히 서있던 나와 교관이 눈을 마주쳤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을 이었다.


“훈련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면 등급을 올릴 수 있다”


“좋은 성적이라는게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한 훈련생이 용기있게 물었다.


“삼개월마다 정기적으로 시험이 치뤄진다. 그때 돋보이는 성적을 보이면 사급으로 올라갈 수 있지. 꼭 숫자가 정해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급 기준으로는 대충 열명 정도는 사급으로 올라가는 녀석들이 생기더군. 정말 돋보이는 성적을 거둔 녀석이라면 한번에 두개 등급을 올라갈 수도 있겠지”


“오오···.!”


한번에 두개 등급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술렁였다. 그렇다면 시험 한번에 삼등급이 되고, 다음 시험에는 일등급이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해진다. 고기반찬을 매일 먹을 수 있다는 일등급.

아이들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럼 갈수록 윗등급이 많아지는 겁니까?”


“아니다. 반대로 시험에서 하위성적을 받은 녀석들은 등급이 떨어지게 되지. 그러니 처음에 상위등급을 받은 아이라도 이곳 오등급으로 떨어지는 녀석이 생길 수도 있다”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쭉 오급에만 머무르게 되는 겁니까? 더이상 떨어질 곳은 없지 않습니까?”


“떨어질 수 있지”


“어디로···?”


교관이 손을 들어 동굴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석주를 가리켰다.


“저 바위 뒤로 돌아가면 시체나 쓰레기 따위를 버리는 깊은 구멍이 있다. 거기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농담이라기엔 교관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너희는 이미 제일 낮은 등급인 오급이다. 이 곳에서도 버티지 못하면 우리에게는 쓰레기나 마찬가지다. 아니, 쓰레기보다 더하지. 밥먹이고 재우고 훈련시키는데 들어간 자원을 생각하면 말이다”


밥을 제대로 주지도 않으면서 생색은 더럽게 낸다.


“사실 시험까지 갈 것도 없어. 훈련하는 와중에 죽어가는 녀석들도 부기지수니까”


“하지만 너희들이 이미 이곳까지 온 이상 무슨 수가 있겠느냐? 그저 죽어라고 훈련해서 너희들의 가능성을, 쓸모를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짧은 대화 속에서 희망과 절망을 모두 맛본 아이들의 표정이 헬쓱해졌다.

새파랗게 질린 한 녀석이 우욱- 속을 게워냈다.



#



암혼동의 첫번째 수업은 철저한 체력단련의 시간이었다.


“저기 솟아오른 바위까지 달리기 왕복이다. 반복 횟수는 백회”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무자비한 숫자다. 교관의 말을 들은 아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체력훈련은 조와 상관없이 개인별로 진행된다. 늦은 놈 이십명의 점심을 뺏어서 제일 먼저 들어온 놈들 이십명에게 주겠다. 출발은···바로 지금”


이백여명의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조금 전 냉엄한 현실의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아이들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제길.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훈련마저도 밥을 조건으로 걸 줄이야.


체력훈련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싸움과는 맥락이 다르다. 순수히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쌓아올린 것과의 싸움이었다.


어린아이로 돌아왔으니 수십년간 다져왔던 나의 체력과 근력도 완전히 무효가 되었다는 것과 동일하다. 더군다나 현재 기준 나의 진짜 나이는 열 살. 어려도 너무 어렸다. 어쩌면 점심을 굶어야 할 수도 있겠다.


커다란 아이들이 이미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적당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의 내 몸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부하를 걸어주면서.

딱 그만큼만.


“이상해. 너무 이상해”


내 뒤에 붙어 달리던 덩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렇게나 어린데, 뛰는 것만 봐도 고향의 내 동생보다도 작은데 말이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그냥 신기해서 말이지. 너라는 존재가”


“......”


“싸움도 이상하게 잘하고, 글씨도 읽을 줄 알고, 약재도 잘 안다고 하고··· 너같은 녀석이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된거지? 그리고 왜 오급 따위에 있는거야?”


“글쎄. 팔이 병신이라서?”


“...어제 놀렸던 건 미안하다. 정말로”


사색이 된 녀석의 표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건 개인전이야. 내 속도에 맞춰 뛰었다가는 너도 점심을 못먹을 수 있다”


“걱정마. 뛰는 것 하나는 자신 있거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 녀석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뛰어나갔다.

보아하니 녀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나다.


체력훈련은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발이 땅을 딛는 박자에 맞추어 호흡을 조절하고,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며 꾸준히 나아갔다. 아직까지는 계속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다만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지 않고 전진할 뿐.


문득 먼 과거,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날이 떠올랐다.


추격을 따돌리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어떤 때에는 그저 최대한 거리를 벌리는 것만이 정답인 때가 있다. 내공 따위는 없던 나로서는 그저 맨몸으로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계곡과 절벽이 가득한 깊은 산 속을 사흘 밤낮으로 달려 은신처에 도착했을 때, 내 몸무게는 열근이 넘게 감소된 상태였다. 다시 임무에 나갈 수 있는 몸으로 만드는 데에는 한달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배들이 가끔 묻곤 했다.


“정말 사흘동안 단 한번도 멈추지 않은 것이 맞습니까?”


“그렇지”


“...괴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달렸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긴? 반드시 살아남아서, 이따위 임무를 준 대장의 엉덩이를 걷어차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


배꼽을 잡으며 웃던 후배들은 어느샌가 하나 둘씩 임무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녀석들은 감히 대장의 엉덩이를 차 줄 배짱이 없었나보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웃던 날이 있었다.

내 농담에 답해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쓸쓸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달리다보니, 하나 둘씩 내가 제껴내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백회 왕복이라는 것은 꽤나 엄청난 숫자이다.

자신의 체력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달리던 아이들이 점차 나자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전체 이백여명중 나의 성적은 팔십등.

짧은 팔 다리의 꼬맹이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과다.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혹시나 네가 굶게 될까봐 내가 주먹밥을 확보해놓고 있었거든”


상위 이십등 안에 가뿐히 들었다는 덩치가 양 손에 주먹밥을 든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분의 주먹밥을 뚝 떼어 건네는 녀석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잘 성장하려면,

밥을 잘 먹어두는 것이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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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내력 시험 +2 24.09.16 493 19 14쪽
38 전생의 인연들 +2 24.09.15 610 22 14쪽
37 천무관 +2 24.09.14 603 22 14쪽
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8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7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2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7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1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2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4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20 씨앗 +3 24.08.28 1,028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6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6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5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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