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를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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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제
작품등록일 :
2024.08.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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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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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옥

DUMMY

바위 위에 올라선 교관이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의 주먹이 뻗쳐나올 때마다 펑- 마치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생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교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며 타격한다. 팔꿈치를 지면과 평행하게 유지하고, 힘은 반드시 어깨와 허리에서 나와야 한다”


오후에 이어진 기초적인 권각법 시간.

교관의 시범과 구령에 따라 아이들이 일제히 팔을 내질렀다.

말이 수련이지, 교관 한명이 이백여명을 한꺼번에 가르치니 전달이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각 등급간의 격차는 이런 곳에서 더더욱 벌어진다. 일급이나 이급 같은 상위 등급일수록 교관 대비 아이들의 숫자가 적으니, 더욱 더 집중적이고 세밀한 교육과 전수가 가능해진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어차피 이런 기초적인 교육 따위, 어떤 방식으로 받든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앙증맞은 팔과 다리를 열심히 뻗어보았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매 주먹에 진심을 담아서.

하나 하나의 모든 움직임들이 모여, 나를 무인으로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하게 나의 것이 되지 않은 오른팔은 확실히 문제였다. 약방 구노인이 곧 회복될 것이라고 장담하긴 했지만, 갈길이 바쁜 나로서는 매우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너, 장애가 있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왔냐?”


제대로 뻗어내지 못한 내 오른팔을 보며 한 녀석이 이죽였다.

다른 조 녀석이다.

사방에 시비거는 녀석이 가득한 것을 보니, 교가 싹수 노란 아이들을 참 기똥차게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옆에서 열심히 주먹을 뻗어내던 덩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슷한 말로 나를 도발했다가 쓰디쓴 대가를 치뤘던 기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이, 우리 조원에게 말 조심–”


“됐어”


때아닌 조장 역할을 하려는 덩치를 만류하자, 녀석이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났다.

시비를 건 녀석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네가 조장 아니었어? 이런 꼬맹이 말에 꼼짝도 못하나?”


“그러게. 덩치값을 못하네”


“아이고. 저 조엔 다들 찐따만 모여있나보지”


옆 조 녀석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마치 좋은 먹이감을 발견했다는 듯이.

덩치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우리 조원들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


하는 수 없지.

만만히 보이면 계속 잡아먹으려 드는 것이 이들의 습성이다.

귀찮게 하는 녀석들에게는 확실하게 경고를 할 수 밖에.


어차피 다음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한번쯤 소란을 피우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교관의 눈을 피해 순진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팔에 마비가 온 것 같은데. 잠깐만 여길 잡아줄래?”


“미친, 내가 왜?”


“잠깐이면 된다”


녀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의 팔을 잡았다.

그가 내 팔을 잡는 순간, 왼손으로 그의 팔꿈치를 단단히 붙잡아 돌리며 무게를 실어 몸통을 걷어찼다.

녀석도 나름 내가 무슨 수작을 부리는가 싶어 경계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윽!”


짧은 비명과 함께 녀석이 땅을 뒹굴었다.

녀석의 어깨가 탈골되어 덜렁덜렁거렸다.


“너, 장애가 있구나?”


녀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벙쪄있던 녀석의 조원들이 곧 득달같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네놈 뭐야?!”


하나 둘 셋···.

달려드는 녀석들을 순서대로 처리하기 위해 뒤로 살짝 물러나는 순간,


“뭐긴, 우리 십삼조원이다!”


덩치가 내 앞을 불쑥 가로막으며 주먹을 날렸다.

퍽! 신명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다 붙어!”


이번에는 다른 조원들까지 쓰러진 녀석 패거리에게 합세했다. 우리 조원들도 갑자기 우르르 몰려들었다.


“감히 우리 조원에게 시비를 걸어?!”


아비규환이 되어갔다.

조원들이 다함께 달려드는 것은 뜻밖의 상황이었다.

이제 동굴 생활 이틀차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의리를 지킬 일인가.


정작 선빵을 날린 나는 뒤로 빠져 상황을 바라보고 있자니,

덩치가 꽤나 날렵하게 다른 아이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그래. 이 녀석도 오급에 있기에는 아까운 녀석이다.


“패싸움이다!”


소동이 일어나자, 바위 위에 올라가 자세를 시범보이던 교관이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버럭.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새끼들. 전부 다 대가리 박아!”



#



“이상하네··· 이상해”


뒤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임풍 교두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때마침 상황보고를 위해 그의 숙소를 찾아온 교관이 물었다.


“교두님. 뭐 찾으십니까?”


“내가 단검을 어디에 뒀었는지 기억이 안나네. 당췌 보이질 않아”


“그것, 꽤 아끼시던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임풍 자신이 원체 덜렁대는 성격이긴 하지만, 아끼는 단검을 어딘가에 놓고 왔을리는 없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단검을 꺼낼 일도 없지 않은가. 설령 경솔하게 냅뒀다 하더라도 누군가 감히 손댈 일도 없고, 자신의 품 속에서 단검을 빼어갈 수 있을리는 더더욱 없다.


“썅··· 어제 그 녀석이랑 밤새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나보다”


“홍옥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기특한 친구가 이 몸에게 감사인사까지 하겠다고 찾아왔더군”


“참 대단한 녀석입니다”


“녀석이 아니야”


“네?”


“곧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게 될거야. 그 난다긴다하는 천무관 수련생 중에도 이미 돋보이고 있는 모양이더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 각 단에서 녀석을 영입하기 위해 난리가 나겠지. 육대 무력부대 중에 하나에 들어가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최소 부대주 자리 정도는 보장받을껄?”


“허어, 그렇게까지···!”


“그런 녀석이, 아니 그런 분께서 이 누추한 곳을 굳이 찾아주셨다는 것 아니냐! 이 임풍 교두님의 지도편달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으하하하!”


이미 단검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임풍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휴··· 아무튼. 별일 없었지?”


그제서야 자신이 찾아온 본래의 목적을 떠올린 교관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밤 사이 일급 한명이 죽었습니다”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어쩌다가?”


임풍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훈련 과정에서 사망자가 생기는 거야 부지기수지만, 나름 일차적으로 엄선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일급 아이들이 죽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아직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도 안했다.


“살인입니다”


“살인?!”


“낮에 일급 녀석들끼리 시비가 붙었던 모양인데, 분이 안풀렸는지 밤 사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죽여버렸더군요. 저희도 아침에 현장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아직 무기같은 것도 안줬잖아?”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다.

더군다나 무기가 없는 맨 손의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아, 설마 내 단검이 없어진게 그 놈이 훔쳐간 것 아냐?”


“그건 아닐겁니다. 현장에 무기는 없었고···”


교관의 자세한 묘사를 듣던 임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열네살 먹은 아이의 손속치고는 지나치게 잔인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무인인 임풍이 듣기에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무인을 키워야 하는데 살수가 될 녀석이 왔군. 그래서?”


“일단 뇌옥에 가둬놨습니다”


“넉넉하게 일주일은 가둬놔. 물도 음식도 주지말고. 마화단 복용 전까지 고분고분하게 만들어놓고 시작하자고”


“네”


임풍은 혀를 쯧쯧 찼다.

마음같아서는 살수를 양성하고 파견하는 기관인 살혼대로 일찍 보내버리고 싶지만, 한명 한명이 아까운 처지라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오백여명의 훈련생 중 일등급의 자질을 보유한 아이들은 고작해야 열여덟명일 뿐이다. 그나마 지금 한명이 죽었으니 그 숫자는 열일곱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의 성과는 얼마나 좋은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여 상급 교육기관으로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잘 키운 일급 한명이 나머지 수백명보다 나을 수 있다는 것은 몇년 전 홍옥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던가. 그가 이례적으로 천무관에 입성하면서, 교 내에서 암혼동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임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나 달라진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터였다.


“그리고? 다른 일은 없었나?”


“나머지 일들은 별 것 아닙니다. 그저···”


오등급 아이들끼리 패를 나눠, 그것도 교육시간에 싸움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임풍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교육 첫날부터 패싸움이라··· 일급 녀석들이랑은 맥락이 다르군?”


“확실히 오등급 녀석들이 뭉치기는 빨리 뭉치는 것 같습니다. 절박한 자신들의 처지를 알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패싸움 또한 이곳 암혼동에서는 흔하디 흔한 일이다. 하지만 첫날부터 패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임풍의 기억에 없었다. 이번 기수는 아무래도 골치가 아플 것 같다는 예감이 강력하게 들었다.


“뭐, 그래도 살인에 비하면 귀엽군. 깜찍한 아이들이야!”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던 임풍의 머리 속에 한가지 잊고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하필 홍옥의 관심을 사게된 그 녀석.

유달리 작고 허약해보였던 꼬맹이다. 팔도 온전치 않은 것 같고.

하지만 다음번 방문에 녀석이 죽어 자빠져있으면 홍옥이 실망할 수도 있으니, 일단은 챙겨볼 수 밖에.


“아 참, 내가 말한 아이는 한번 살펴봤나?”


“그 팔에 이상이 있는 아이 말씀이십니까? 사백이십삼번”


“그래. 제딴에는 나름 그럴싸한 이름도 있다고 하더라고. 범···범··· 아무튼 그런 이름이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아침 일찍 구노인에게 다녀오게 조치했습니다. 팔은 금방 나을거라고 하더군요”


“그렇군”


“그런데 구노인이 한가지 요청을 했습니다. 사백이십삼번이 정기적으로 약방일을 도울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구노인이? 그 까칠한 노인네가 웬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약재방에서 일해봤던 녀석이라서 도움이 될 거라던데요. 협조 안해줄거면 저희보고 직접 와서 도와달랍니다”


구노인의 쪼글쪼글한 얼굴,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떠올린 임풍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비록 자신이 이곳의 총책임자이긴 하지만, 구노인은 결코 자신이 함부로 대할 인물은 아니다.

고작 하루만에 왜이리 귀찮고 신경이 거슬리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단 말인가!

그로서는 더이상의 보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두뇌가 남아있지 않았다.


“야. 알아서 하라 그래. 마화단 준비에 문제만 생기지 않게 하라고”


“예”


“그나저나 그 녀석은 이래저래 엮이는게 많군? 홍옥도 관심을 가지고, 구노인과도 얽히고 말이야”


“패싸움이 시작된 것도 그 녀석 때문입니다. 그 녀석도 옥에 가둬놨죠”


“빌어먹을. 잘 지켜봐. 혹시 알아? 건질만한 물건일지”


“고작해야 오급인데요”


“아. 그랬지?”


임풍이 혀를 쯧 찼다.


“그럼 꽝이군”



#



패싸움의 원흉으로는 내가 지명되었다.


뇌옥행.


시비를 내가 먼저 건 것도 아니건만, 단지 선빵을 날렸다는 것이 교관이 든 이유였다.

하지만 의도대로 잘 흘러간 셈이다.

뇌옥이야말로 내가 찾는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공간.


교관이 기관을 조작하자, 거대한 돌이 스르릉 움직였다.


입구를 지나자 성인 한명이 겨우 몸을 비틀어 지나갈만한 좁디좁은 통로가 이어졌다. 벽은 거친 돌로 이루어져 있어, 손을 짚고 지나가면 날카로운 돌기가 손바닥을 할퀴었다. 통로의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습기가 차 있어,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조심스레 발을 디뎌야 했다.


그 안에 또 다시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는 작은 동굴과 창살.


“들어가라”


쾅.

창살이 잠기고 교관이 열쇠로 문을 잠궜다.

어둡고 습한데다, 이 작은 몸조차 제대로 뉘일 수 없는 비좁은 공간.

짐승이나 가둬둘 법한 열악한 곳이다.


내가 갇혀있어야 하는 기간은 하루.

고작 하루이긴 하지만 아무 음식도 물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첫날이라 가벼운 처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라”


무인들을 양성하는 곳이니 고작 패싸움 때문에 처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수업을 방해하는 것은 강력한 징계의 대상.

그러니 교관의 말마따나, 고작 하루만 뇌옥에 가두는 것은 그나마 가벼운 형벌이라 할 수 있었다.


교관이 바깥의 문까지 닫아버리자 뇌옥 안은 자그마한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더라도 소용이 없다.

오래동안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져버릴 것만 같은 곳.


잠시 후,

나는 이곳에 갇혀있는 것이 나 혼자 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도 누굴 죽였냐?”


어둠 속 어딘가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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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전생의 인연들 +2 24.09.15 610 22 14쪽
37 천무관 +2 24.09.14 603 22 14쪽
36 졸업 +2 24.09.13 618 22 14쪽
35 삼년 뒤 +2 24.09.12 694 24 14쪽
34 떠나는 순간 +2 24.09.11 737 21 14쪽
33 취조 +2 24.09.10 727 21 13쪽
32 군사(軍師) +2 24.09.09 743 21 13쪽
31 사도(司徒) +3 24.09.08 827 17 13쪽
30 내가 그렇게 정했다. +3 24.09.07 881 23 15쪽
29 약속 +2 24.09.06 906 20 12쪽
28 예감 +3 24.09.05 931 15 14쪽
27 발단 +2 24.09.04 951 15 13쪽
26 시비 +3 24.09.03 943 20 14쪽
25 알 수 없는 일 +2 24.09.02 953 24 14쪽
24 환희 +3 24.09.01 1,007 20 12쪽
23 증명 +3 24.08.31 990 19 13쪽
22 질주 +2 24.08.30 989 20 12쪽
21 평가 +2 24.08.29 1,010 21 14쪽
20 씨앗 +3 24.08.28 1,027 20 13쪽
19 실험 +3 24.08.27 1,032 19 14쪽
18 자령화 +2 24.08.26 1,009 20 13쪽
17 수색 +3 24.08.25 1,018 18 14쪽
16 목표 +3 24.08.24 1,024 20 14쪽
15 두번째 만남 +3 24.08.23 1,065 18 12쪽
14 살인 +3 24.08.22 1,054 21 15쪽
13 사백이십삼, 사백이십사 +3 24.08.21 1,084 19 13쪽
12 마화단(魔火丹) +2 24.08.20 1,088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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