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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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최근연재일 :
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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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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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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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

DUMMY

천천히 밑을 내려다봤다.


밑에 있는 게 내 다리를 붙잡았다.


주변이 컴컴한 데도 느낄 수 있었다. 저것의 눈동자가 판처럼 검게 빛나고 있다는걸.


순간 형광등이 깜빡거리고, 점멸하는 불빛 사이로 맨질맨질한 머리통이 보였다.


"헉."


숨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불이 완전히 켜졌다.


시야가 밝아지자마자 나는 갈색 등껍질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발밑에 개미 떼가 우글거렸다.


"거부···"

"아아악!"


개미 때문인지, 아니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 때문인지.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숨넘어갈 듯 쏟아지는 괴성 사이에서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거북이?"


거북이가 커다랗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이마에 파스 같은 파란 테이프를 붙인 거북이는 평범한 거북이와 달리 두 발로 서 있었다.


얘네들 원래 기어 다니지 않아? 어떻게 두 발로 서 있는 거지?


생긴 건 꼬북이처럼 귀여운데 어딘지 모르게 기계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 정신이 없었다.


띵-


갑자기 오른쪽에 작은 창이 하나 떠올랐다. 마치 말풍선처럼 짧은 꼬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말풍선 꼬리가 거북이를 가리켰다.


[내 이름은 부기!]


"부기?"


아까 봤던 부기의 버프. 그 부기가 이 거북이인가?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거북이라서 부기야?"


어이없어 웃고 있을 때였다. 개미 군체가 신발을 타고 올라왔다.


악!


놀라서 다리를 털자 거북이가 까르르 웃었다.


웃음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어쩐지 비웃는 것 같았다.


한 마리면 나도 안 놀라지. 수십마리가 떼로 기어 올라오니 안 놀랄 수 없었다.


"웃지 마."


가슴을 쓸어내리며 거북이를 내려다봤다.


이게 판이 말한 펫인가?


의문을 느끼자마자 옆에 말풍선이 떠올랐다.


[58분 남았어]


"58분?"


[다른 사람들은 벌써 잡고 있어]


설마설마했는데.


이 거북이가 말풍선으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나는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발로 바닥을 내리치거나 손으로 벽을 때리고 있었다. 개미 잡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게 다 뭐야···."


한데 사람들 옆에 이상한 생물이 붙어 있었다.


눈사람처럼 생긴 기계도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안중에도 없는 듯 개미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파란색 창이 뭔지, 옆에 있는 이게 뭔지 안 궁금해? 안 이상해?


나만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얼이 빠졌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윤성이었다.


"으악! 너, 어, 어깨에···."


이윤성 어깨에 피부가 뾰족한 뱀이 붙어 있었다.


뱀을 손가락질하며 뒤로 물러나자 이윤성이 어깨를 들썩였다.


"뱀이야, 덤벨이래."

"···덤벨?"

"오른쪽에 말풍선 안 떴어?"


이윤성이 허공을 손가락질하며 물었다.


"아, 떴어."


역시 나만 본 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도 똑같은 걸 봤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그렇고, 이윤성도 그렇고. 다들 왜 이렇게 덤덤하지?


나는 머뭇거리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 뱀이, 아니면 게임이?"


전부. 전부 다 이상했다. 판의 뿔도, 걸어 다니는 거북이도. 옆에 뭔지도 모르는 것들을 달고 개미를 밟는 사람들도.


단순한 보드 게임 정도로만 생각했던 내겐 충분히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이윤성이 쪼그려 앉으며 거북이를 쳐다봤다.


"와, 넌 거북이야?"


거북이를 보며 태평하게 물어보는 이윤성도. 이윤성의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거북이도. 전부 이상해.


멍하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단발머리 여자애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날 빤히 응시했다. 그러다 뭔가를 발견하곤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또다시 말풍선이 떴다.


[55분 남았어]


거북이를 내려다봤다.


거북이는 저를 구경하는 이윤성을 무시하고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윤성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너도 그 뱀이 말 걸어?"


이윤성이 제 어깨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안 무서워?"

"채팅으로 자기 소개하는 뱀이 무섭냐고?"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잖아."


이윤성은 마구잡이로 개미를 죽이는 사람들을 죽 둘러봤다.


"여기서 제일 이상한 건 아무것도 안 하는 우리 같은데."

"······."

"아깐 뭐든 할 것처럼 했으면서, 이상하면 안 하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윤성이 시원하게 웃었다.


"이상해도 이미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 봐, 자기 옆에 있는 건 신경도 안 쓰잖아."


이윤성 말처럼 사람들은 개미만 잡고 있었다.


나는 자기를 부기라고 소개한 거북이를 내려다봤다.


그래. 이게 뭐든 신경 쓰지 말고 돈만 받아 가자. 판의 뿔이 가면이라고 합리화했을 때처럼.


"넌 안 잡아?"

"이제 해야지. 많이 잡아라."


이윤성은 가볍게 말하고는 멀찍이 떨어졌다.


따로 잡을 거면서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개미는 중심부에 몰려 있었다. 중심에 많은 만큼 사람들도 방 중앙에서 개미를 잡았다.


모퉁이 쪽은 비교적 사람이 없는 편이었다.


나는 그 틈을 노렸다. 개미는 적지만 사람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혼자 잡는 게 편할 것 같아서 였다.


거북이를 놔두고 구석으로 달려갔다. 벽을 기어 다니는 개미를 보다가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이건 게임이다.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색 창도, 거북이도, 그리고 개미도 모두 가짜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때려잡고 있잖아.


개미가 도망치듯 빨빨거리며 벽을 기어 내려갔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 발을 들어 올렸다.


"잡았나?"


밟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발을 떼보니 개미가 작게 뭉쳐 있었다. 그걸 보니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되려 먼지나 이물질처럼 보였다.


나는 개미를 잡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때리기도 하고 발로 밟기도 했다.


한창 집중하고 있는데 왜인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손으로 내려칠 때마다 개미가 손 틈으로 쏙쏙 빠져나갔다.


"···왜 개미가 나보다 빠른 것 같냐."


움직이는 내 손을 보니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설마 이거 너프 때문인가. 내가 느려진 원인을 깨닫자마자 거북이가 내 옷을 잡아당겼다.


[40분!]


"왜 자꾸 알려주는 거야? 네가 무슨 타이머야?"


띠링-


[부기 스킬]

거북이 헤엄 : 속도 + 50

깨물기 : 힘 +30

토끼 견제하기 : 타이머


토끼 견제하는 거랑 타이머랑 무슨 상관이야? 눈을 가늘게 뜨고 부기를 노려봤다.


그런데 부기의 이마에 붙은 파스에 17이 쓰여있었다.


저거··· 처음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나는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죽이고 거북이를 바라봤다. 이마의 숫자가 18로 올라갔다.


"···부기, 내가 지금 개미 몇 마리 잡았어?"


오른쪽에 창이 떴다.


[방금 잡아서 십팔!]


"십팔···."


아니, 욕처럼 들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제야 나는 게임 시작 전에 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펫은 여러분의 상성에 맞게 배치되며 능력치를 나눠주게 됩니다.'


'펫은 여러분이 잡은 개미의 수를 정확하게 파악해주죠. 의심이 간다면 펫의 몸을 살펴보십시오.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그럼 내가 거북이라는 거야?"


아니지, 상성이라고 했으니 나랑 잘 맞는 펫이 거북이라는 뜻이다.


"에이씨, 그게 그거잖아."


어쩐지 내 능력이 구려서 구린 펫이 배치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20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18마리나 잡았다.


이대로 계속 잡으면 30마리까지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기가 충전되려는 순간이었다.


"씨발!"


갑자기 오른쪽에서 남자의 욕설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문신을 한 남자가 안경 쓴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싸움 난 건가?


"구석에 처박혀서 얌전히 잡을 것이지. 왜 자꾸 치고 지랄이야?!"

"아, 안 쳤어요!"

"개새끼가 어디서 눈깔을 똑바로 떠? 뒤지고 싶어?"


남자가 주먹을 확 들어 올렸다. 당장이라도 때릴 기세였지만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어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퍽! 기어코 싸움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것! 한참 잘 잡고 있는데! 개새끼가!"


문신한 남자가 기절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 위에 올라타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구경났어? 뭘 꼬나봐? 눈 안 깔아?"


나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왜 저래···. 진짜 조폭 맞나 봐.


아무리 방해했다고 해도 저렇게 때릴 건 없었다.


플레이워에 싸우지 말라는 규칙은 없나?


남자의 폭력을 멈춰줄 사람이 없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다. 남자의 협박 때문인지 다들 고개를 숙이고 벽에 붙어서 있었다.


개미를 잡느라 정신이 팔린 상태였는데, 그제야 방 안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눈치를 보며 다시 개미를 잡는 사람들. 널브러진 사람을 곁눈질로 살피는 사람들. 신경도 안 쓰고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


조폭은 의식을 잃은 남자를 계속해서 때렸다. 그러다 남자의 몸에 기어오르는 개미를 발로 밟으며 씩씩거렸다.


저걸 어떻게 말리지? 당황스럽게 눈을 굴리고 있는데 부기가 팔을 쫙 벌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토끼가 오고 있어! 집중해!]


"여기 토끼가 어딨어."


사람이 쓰러졌는데 집중하라니. 어떻게 저걸 보고 다들 모르는 척할 수 있는 거지?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조폭에게 다가가려 하는데, 단발머리 여자애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가만히 있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온 거지.


"네가 가서 뭘 어쩔 건데?"

"···하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 봐야지."

"저 남자가 학생이라고 안 때릴 것 같아?"


나는 조폭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람한 팔뚝에 달라붙은 셔츠가 곧 터질 것 같았다. 밑에 깔려있던 남자는 안경을 쓴 채 피떡이 되어 있었다.


조폭은 곧 화가 가라앉았는지 남자를 놔두고 개미를 찾았다.


"······."

"너도 개미나 잡아."


여자애가 내 어깨를 놓고 등을 돌렸다.


나는 슬금슬금 여자애를 따라가다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어깨에 까만 솜뭉치가 달려있었다.


까맣고 동그랗기에 먼지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미였다.


"야, 야! 어, 어깨에-"


내가 소리를 지르자 여자애가 인상을 팍 썼다.


"시끄러워. 나도 알거든?"


여자애는 어깨에 달랑거리는 거미를 손으로 툭 털어내고 짜증스럽게 개미를 짓밟았다.


그러자 거미 머리 위의 숫자가 29로 바뀌었다.


···저것도 펫이야? 왜 하필 거미를 펫으로 만들어?


아연실색하며 뒷걸음질 치는데 여자애가 신경질적으로 날 노려봤다. 눈빛이 사람을 때려눕힌 조폭보다 더 살벌했다.


"너 할 일 해."

"거기··· 내가 잡고 있었는데."

"···그래서?"


말투는 눈빛보다 더 차가웠다.


눈치를 보다 옆으로 물러나는데 말풍선이 떴다.


[겁쟁이]


반사적으로 부기를 내려다봤다.


자리를 뺏겨도 아무 말 못 하는 내가 한심했는지 부기가 커다랗던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다짜고짜 겁쟁이라고 말하는 게 화가 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낱 시스템이 하는 말을 일일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부기를 무시하고 제일 안쪽 벽으로 다가갔다.


게임 NPC면서 자기가 뭘 안다고.


구시렁거리며 개미를 찾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가득하던 개미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잡았는지 개체수가 부쩍 줄어 있었다. 방 중간에 몇 마리가 남아 있었지만, 조폭이 헤집고 다녀 다가갈 수가 없었다.


지금 얼마지? 몇 마리 잡았더라?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부기가 쫄래쫄래 다가왔다.


[18마리!]


"······."


나는 부기를 슬쩍 흘겨보고 벽 모서리로 다가가 앉았다.


벽 틈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뻗으며 앉자 부기가 옆으로 다가왔다.


내 무릎에 넓적한 발을··· 아니지. 두 발로 서 있으니까 손인가? 아무튼 손을 올린 놈이 문자창을 보냈다.


[30분!]


아직 30분밖에 안 됐다니.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았다.


이따금 내 쪽으로 기어 오는 개미를 잡다가 23마리까지 잡았을 때 손을 멈췄다.


이 정도면 됐어. 그만하자.


할 만큼 했으니 끝나기 전까지 좀만 자야지··· 싶었는데.


귀에서 띠링띠링 벨 소리가 울렸다. 부기가 말을 할 때마다 들리는 소리였다.


[더 잡아!]

[더 잡아!]

[더 잡아!]

[더 잡아!]

[더 잡아!]


나는 신경질적으로 거북이를 노려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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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 24.09.12 16 1 12쪽
27 27 24.09.11 14 1 10쪽
26 26 24.09.10 21 1 9쪽
25 25 24.09.09 27 1 11쪽
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6 1 10쪽
22 22 24.09.07 33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6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19 19 24.09.04 42 3 12쪽
18 18 24.09.04 39 3 13쪽
17 17 24.09.03 43 3 10쪽
16 16 24.09.03 44 3 10쪽
15 15 24.09.02 48 3 9쪽
14 14 24.09.02 44 3 12쪽
13 13 24.09.02 44 3 10쪽
12 12 24.09.01 49 3 10쪽
11 11 24.08.31 64 3 11쪽
10 10 24.08.30 65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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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24.08.29 69 4 12쪽
7 7 24.08.28 82 4 13쪽
6 6 24.08.27 93 4 10쪽
5 5 24.08.26 103 5 12쪽
4 4 +1 24.08.25 119 6 10쪽
» 3 24.08.24 130 6 13쪽
2 2 24.08.24 15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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