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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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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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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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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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DUMMY

집에 들어오자마자 돈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버스에서 꾸역꾸역 참았던 울화가 터져 나왔다.


"씨발, 좀만 더할 걸."


그럼 이렇게 후회할 일 없었잖아. 혼자 씩씩거리다 바닥에 흩어진 지폐를 눈으로 훑었다.


한참을 서서 돈을 노려보다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


돈은 잘못한 거 없다. 잘못은 내가 했지. 혼잣말하며 구겨진 종이를 허벅지에 문질렀다.


형에게 줘야 하는데 구겨진 채로 줄 수 없었다. 주름이 남은 지폐를 가지런히 정리해 협탁에 올렸다.


"제발, 제발 또 해라."


나는 협탁에 놓인 돈 앞에서 간절하게 빌었다.


다음에 또 하면 진짜 미친 듯이 할게요. 염불 외는 것처럼 중얼거리는데 퍼뜩 정신이 들었다.


"밥해야 하는데."


형이 종일 일을 하기 때문에 저녁은 내가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라면을 끓였다.


찬장을 열어 라면이 있는지 확인했다. 어제 끓인 게 마지막이었다.


"아··· 오면서 사 올 걸."


돈이 있으면 뭐해.


슈퍼를 봐도 다음을 기약하며 지나치는 게 버릇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를 털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8시 30분. 형이 열시에 퇴근하니까··· 라면 사고 밥하면 늦진 않을 것 같았다.


"빨리 가서 사 와야겠다."


협탁에서 만원만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23만원. 남들보다 적게 받았지만 내 형편을 생각하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


사람을 때린 조폭이 350만원을 받아간 건 씁쓸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나처럼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놈이 1시간도 안 돼서 그 돈을 벌은 게 기적이었다.


처음엔 10만원 생각했잖아. 좋게 생각하자, 좋게.


22만원 남았으니까 치킨 하나 시켜 먹고 남은 건 형이랑 반땅하면 돼.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기분 좋아 보이네."


슈퍼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라면 네 개를 사고 지폐를 내밀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현금이여."


할머니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쩌다 생겼어요."


실실 웃으며 대답하자 할머니가 허파에 바람든 것 같다며 웃으셨다.


"봉투 줘?"

"아뇨. 그냥 가져갈게요."


나는 라면 네 개를 주머니에 구겨 넣고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슈퍼를 나오면서 라면 때문에 꽉 찬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었다.


내가 처음 번 돈으로 처음 산 라면이었다. 아쉬운 것만 빼면 꽤 뿌듯한 하루였다.


얼른 형한테 자랑하고 싶다. 폴짝폴짝 뛰며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했다.


탁- 문을 여는데 신발장에 형의 운동화가 놓여 있었다.


"어?"


우리 집은 신발장 바로 옆에 부엌과 화장실 있고, 부엌과 방을 나눠주는 미닫이 문이 있었다.


미닫이문은 항상 열어뒀고, 나올 때도 열어둔 상태였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었다. 신발을 벗고 싱크대에 라면을 올렸다.


"···형. 왔어?"


평소엔 10시 넘어서 들어오는데 무슨 일이지?


방문을 열자 형이 팔짱을 낀 채 바닥에 앉아있었다.


"불도 안 켜고 뭐 해?"


그러자 형이 무서운 얼굴로 올려다봤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어? 나 라면 사러."

"학교 끝나고 말이야.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갔다 왔냐고."


아. 게임 때문에 화가 나서 핸드폰을 꺼내 볼 생각도 못 했다.


집에 와서는 돈 앞에서 발원하느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급하게 바지 주머니를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 에 있나."


아무렇게나 던져놨던 재킷 주머니로 다가갔다. 바깥 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있었다.


"폰을 여기 넣어놨···. 어, 이거 왜 이래."


폰이 꺼져 있었다. 내가 핸드폰을 껐었나? 주머니에 넣어두기만 했던 것 같은데.


"핸드폰이··· 왜 꺼져 있지."


형 눈치를 보며 전원을 눌렀다. 그동안 형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날 노려봤다.


형 앞에 쭈그려 앉아 핸드폰이 켜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핸드폰이 비행기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비행기 모드를 꺼도 와이파이, 5G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전부 꺼져 있었던 탓이다.


"이게 왜···."


나는 연결 버튼을 하나씩 누르며 고개를 비틀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핸드폰은 보통 비행기 모드를 끄면 저절로 인터넷이 연결된다.


하지만 전부 꺼져 있다는 건 비행기모드를 하기 전부터 꺼져 있었다는 뜻이다.


핸드폰 상단에 부재중 전화 5통이 떴다.


[호수형]


"이수호."


형이 살얼음 낀 목소리로 불렀다. 나는 형 눈치를 보며 머쓱하게 말했다.


"아직 8신데 전화를··· 많이 했네···. 아, 형. 나 남잔데 뭘 걱정해···."


넉살 좋게 웃으며 넘어가려 했지만 형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핸드폰을 달고 사는 놈이 전화를 안 받으니까 그렇지."

"달고 살진 않았는데···. 아니, 라면 사 온다고 깜빡했어."

"지금 몇신데. 8시? 9시 다 돼가. 너 내가 7시부터 전화했는데, 그동안 핸드폰이랑 교복 다 벗어놓고 라면 사고 있었다고? 넌 라면을 2시간 동안 사?"


나랑 형은 8살 차이였다. 형 눈에는 내가 아직 어린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도 이제 18살이었다.


형한테 의지하지 않고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하고 싶은 나이였다.


하지만 형은 아직도 날 과보호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 그리고 귀가한 뒤에는 무조건 연락을 해야 했다.


심지어 알바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절대 하지 못하게 했다.


3년 전. 형이 전역한 뒤 맞은 생일날이었다.


형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다 같이 강릉으로 놀러 가던 길이었다. 뒤에서 졸음운전을 하던 SUV가 우리 차를 들이받았고 5중 추돌사고가 났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와 형은 중상이었지만, 트럭을 들이받은 부모님은 사고난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그 뒤로 형은 대학을 접고 일판에 뛰어들었다. 과보호가 심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형은 일 대신 공부나 하라며 날 책상 앞에 앉혔다. 그런다고 공부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형은 하루에 일을 두 개씩 하며 생활비를 대고 내게 용돈까지 주고 있었다.


"너 이거 뭐야."


형이 눈을 부릅뜨며 협탁에 있던 돈을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너 알바해?"


자랑하려고 했는데 형이 너무 화가 나 있어서 목이 탔다.


"아니? ···아니, 아니지, 알바는 알반가? 하루 단기 알바?"

"뭐?"


형의 미간이 종이처럼 팍 구겨졌다. 얼른 오해를 풀지 않으면 정말 화를 낼 것 같았다.


"아니, 형. 나 지금 개무서워."

"개?"

"아니. 완전 무섭다고. 그니까 화내지 말고 들어봐."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말 한마디 없이 얘기를 듣고 있던 형이 화를 삼키듯 숨을 들이켰다.


"너 거짓말할래?"

"어?"

"22만원이야. 라면 샀다고 했으니까 23만원. 그걸 개미 잡아서 벌었다고?"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진짜로."


내 말이 거짓말 같았는지 형이 나를 뜯어버릴 것처럼 응시했다.


형은 돈을 내 앞으로 밀고 차갑게 말했다.


"가서 돌려주고 와."

"어?"

"훔친 거든, 뺏은 거든. 진심으로 사과하고 돌려주라고."

"형!"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억울한 건 둘째치고 나를 그렇게 봤다는 게 어이없었다.


"내가 그런 짓 하고 다닐 것 같아?"


형이 여전히 화가 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부족하게 주는 거 알아. 그래도 돈을 이렇게-"


형의 얼굴엔 죄책감과 미안함, 분노가 한데 섞여 있었다. 자책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래, 부족해! 부족해도 뭐 어쩌라고. 나도 알고, 참을 수 있어. 근데 저건 진짜 아니라고!"

"뭐가 아냐?"

"훔친 거나 뺏은 거 아니라니까! 진짜 개미 잡아서 벌어왔다고!"


화를 내며 씩씩거리자 형이 입을 다물었다. 곧 탄식 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너-"


지잉-


형이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내 폰이었다.


형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핸드폰을 잡았다. 문자 창을 열자마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플레이워]

플레이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플레이워에서는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첼린지가 펼쳐집니다!

벌레 한 마리를 잡을 때마다 만 원!


참여 방법 : 없음

인원 제한 : 100명

참가 비용 : 없음

위치 : 건물 3층 대강당

플레이 시간 : 1시간


1층 로비에서 봤던 전단과 똑같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게다가 참가 날짜가 내일이었다.


"형!"


오해를 풀 수 있다는 생각에 벅찬 기쁨이 밀려왔다. 게다가 또다시 돈을 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형에게 들이밀었다.


"이거 봐! 진짜라니까!"


형이 얼떨떨한 얼굴로 핸드폰을 잡았다. 순식간에 문자를 읽더니 인상을 쓰며 고개를 기울였다.


"···플레이워?"

"이거 진짜라니까! 아까 하고 왔다고! 그런데 내일 또 한대!"

"이걸로 돈을 벌었다는 거야?"

"어. 못 믿겠으면 형도 내일 같이 가면 되잖아!"


타이밍이라는 게 참 절묘했다. 내일은 마침 형이 쉬는 날이었다.


형이랑 함께 가서 게임을 하면 22만 원이 뭐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흥분에 못 이겨 몸을 들썩거렸다.


"제발, 한 번만 믿어줘. 내일 진짜 같이 가보면 되잖아. 나 진짜 훔친 거 아니라고!"


내가 진심으로 억울해 보였는지 형이 미묘한 얼굴로 미간을 찡그렸다.


"6시네."

"어, 나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갈게. 형도 맞춰서 나와."


형은 한참 동안 가만히 날 응시했다. 내 얼굴에서 거짓말을 읽어내려는 것 같았다.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진짜라고 거듭 강조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싸움하듯 시선을 교환하던 형이 눈을 감았다.


"그래, 알았으니까 내일 한번 보자."

"아싸! 진짜야, 형. 진짜면 오늘 나 오해한 거 미안하다 해야 해."

"······."

"미안하면 오늘 형이 밥해."


나는 형한테 엉덩이를 얻어맞고 부엌 앞에 섰다. 생활 근육으로 다져진 다리로 맞아서 꽤 아팠지만, 마음은 들떴다.


다음엔 350만 원 넘게 벌 거야.


사람들이 받아 간 액수만 해도 천만원은 훌쩍 넘을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플레이워가 준비한 돈도 1000만원 이상이라는 거겠지.


'돈은 차고 넘치게 준비되어 있고, 여러분에겐 힘과 용기가 있습니다.'


판 아저씨가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우릴 속이지 않았다.


사람이 다쳐 실려 간 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나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근데 내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쌀을 씻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핸드폰 번호를 남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문자를 보냈을까. 나한테 문자가 왔다면 오늘 참가한 사람들한테도 문자가 갔을까?


"아까는 왜 대답을 안 해줬지?"


게임이 당장 내일 열리는 거라면··· 아까 다음 게임이 있냐고 물었을 때 왜 아무 대답도 안 했을까?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라면을 끓이면서 나는 의아한 궁금증을 전부 외면했다.


나는 형의 오해를 풀어야 하고, 우리 집은 돈이 필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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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24.09.09 27 1 11쪽
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6 1 10쪽
22 22 24.09.07 32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5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19 19 24.09.04 42 3 12쪽
18 18 24.09.04 39 3 13쪽
17 17 24.09.03 43 3 10쪽
16 16 24.09.03 4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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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24.09.02 44 3 10쪽
12 12 24.09.01 49 3 10쪽
11 11 24.08.31 64 3 11쪽
10 10 24.08.30 65 4 13쪽
9 9 24.08.30 6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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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 24.08.28 82 4 13쪽
6 6 24.08.27 93 4 10쪽
» 5 24.08.26 103 5 12쪽
4 4 +1 24.08.25 119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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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24.08.24 156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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