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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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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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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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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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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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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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DUMMY

"시끄러워. 이제 그만할 거야."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자 부기가 요란하게 말풍선을 띄웠다.


[넌 토끼야!]

[넌 토끼야!]

[넌 토끼야!]

[넌 토끼야!]

[넌 토끼야!]


"시끄럽다니까!"


버럭 소리를 지르자 부기가 커다란 눈을 글썽거렸다.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바르르 떠는 부기를 보고 얼어있는데 주위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졌다.


'혼자 왜 저래?'

'어휴, 자기가 더 시끄러운데 뭘.'

'아까도 그러더니. 좀 이상한 것 같아.'


사람들이 날 보며 수군거렸다. 사람들 옆에 붙어있는 펫들도 까만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입술이 마르고 목이 탔다. 사람들한테 죄송하다고 말하고서 거북이를 피해 몸을 옆으로 돌렸다.


쪽팔려. 저 이상한 펫 때문에 이게 뭐야.


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날 화나게 했던 원흉이 쫄래쫄래 다가와 앞에 섰다.


울 것 같았던 얼굴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지금 넌 토끼야.]


토끼든 겁쟁이든 상관없었다.


"알았으니까 그만해. 네가 뭐라고 해도 이제 안 할 거야."


내 말에 부기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많이 잡았으니까."


[겨우 23마린데!]


23만원이면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벌었다.


형이랑 맛있는 거 사 먹고 반으로 나눠도 일주일은 충분히 쓰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물론 더 벌면 좋겠지만···.


개미가 줄어들자마자 바닥을 핥을 기세로 기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의욕이 떨어졌다.


그런 걸 NPC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부기가 옆으로 다가오더니 풀썩 앉았다.


앉은 건 상관없지만, 팔뚝에 딱딱한 껍질이 느껴졌다.


포기한 건 좋은데 왜 나한테 기대?


어이가 없어서 부기를 내려다보는 순간 나는 엄청난 난제를 마주했다.


NPC 펫인데 왜 무게가 느껴지지?


파란 창처럼 펫도 그저 홀로그램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기가 몸에 닿는 순간 묵직함이 느껴졌다. 무게가 있다는 건 부기가 가상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존하는 물체라는 뜻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거북이가 프로그램이라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거북이가 날 건드렸을 때도 분명 느낌이 있었고, 이윤성도 목에 뱀을 두르고 있었다.


그걸 이제 와서 이상하다고 느끼다니. 내 무신경함이 어이없었다.


"너 뭐야?"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내 팔에 등껍질을 대고 기대있던 부기가 고개를 돌렸다.


[내 이름은 부기]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잖···."


나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부기의 모습이 흐려지더니 완전히 사라진 탓이었다. 어리둥절하게 허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게임이 끝났습니다."


판이 문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러자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요?"

"개미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개미를 다 잡으면 게임이 끝나는 건가? 시간이 남아도? 그래서 부기가 없어진 거야?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머리를 굴렸지만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다친 분이 있군요."


그가 손짓하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두 명이 들어왔다.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린 그들은 안경 쓴 남자를 들것에 올리고 재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불안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옮겨서 치료해주세요."


판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방 주변에 널려있는 검은 먼지들, 즉 개미 사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 한 분씩 오셔서 돈을 받아 가십시오."


다친 사람을 걱정한 지 채 10초도 되지 않았다.


돈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서로 앞다퉈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방의 맨 안쪽에 앉아있었던 탓에 맨 뒤에 서게 됐다.


급할 건 없었다. 맨 마지막으로 나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속이 울렁거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손으로 입을 막고 속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였다.


"어, 이수호다."


세 칸 앞에 서 있던 이윤성이 날 보고는 줄을 벗어났다. 그러고는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몇 마리 잡았어?"


놈이 내 뒤에 서며 조용히 물었다. 친하지도 않은데 자꾸 말을 걸어 불편했다.


"23마리."

"내가 졌네."


지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이윤성을 돌아봤다.


"넌 뱀이었지?"


이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NPC가 만져지는 거 이상하지 않았어?"


내 물음에 이윤성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곧 이윤성 머리가 아래위로 천천히 흔들렸다.


"이상했지. 여기 있는 거 전부 다."

"······."


천장으로 향했던 이윤성의 고개가 점점 내려왔다. 미소 짓고 있던 얼굴에 웃음이 싹 가신 채였다.


"근데 너도 그냥 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사람들은 지금 염소의 탈을 쓴 남자 앞에 일렬로 서 있고. 나도 그 줄에 서 있었다.


이윤성 말처럼 뭐가 어찌 됐든 돈만 잘 받으면 끝이다.


"다 똑같아. 그냥 한 거야, 돈이 필요하고. 갖고 싶으니까."


이윤성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앞에서 쾌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싸! 50만원!"


50만 원? 그 정도로 많이 잡을 수 있는 거였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돈을 받은 사람은 싸움이 났을 때 모른척하며 개미를 잡았던 남자였다. 싸움을 외면한 덕분에 남자는 50만원을 벌었다.


"김푸름님. 당신은 38만원입니다."

"하, 별로 안 되네."


어깨를 늘어뜨린 여자가 돈을 세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래도 나보다 많은데.


"윤지혜님 당신은 60만원입니다."

"······."

"박하영님, 당신은 40만원입니다."

"와, 미쳤어.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이게 말이 돼?"


판이 말하는 금액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열심히 할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내 앞엔 이제 열 명이 남았다.


엄지와 검지를 문지르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거지 행색을 한 남자가 손을 덜덜 떨며 소리 질렀다.


"유, 유··· 육십오만원!"


남자가 제자리에서 허겁지겁 돈을 셌다. 그러자 조폭이 거지의 등을 발로 차며 소리 질렀다.


"받았으면 빨리 꺼져! 냄새나니까 저리 꺼지라고!"

"죄··· 죄송···."

"자, 이상한 양반. 난 얼마야? 삼백은 넘지?"


삼백? 만약 조폭이 개미 숫자를 잘 셌다면 앞서 금액을 외쳤던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액수를 받게 된다.


설마. 아니겠지.


허공을 보던 판이 조폭에게 돈뭉치를 건넸다.


"박철웅님. 당신은 350만원입니다."


삼백 오십? 신나서 방방 뛰던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그와 반대로 난 입을 떡 벌렸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조폭이 받을 돈은 내가 상상도 못한 액수였다.


사람을 때려눕힌 인간이 저렇게 많은 돈을 가져간다고?


부지런히 움직인 사람이 많이 가져간다. 당연한 이치인데 나는, 그리고 사람들은 불만을 품은 채 얼어붙었다.


'사람을 때렸잖아. 이게 말이 돼?'

'돈 주면 안 되는 거 아냐?'

'저 조폭만 없었어도.'


사람들이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뒤통수만 보이는 데도 그들의 눈빛이 얼마나 사나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조폭이 몸을 틀자마자 전부 사라질 적의였지만.


조폭이 방을 나가자마자 다음 순서였던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저 남자, 사람을 때렸어요. 그런데 돈을 왜 줘요?"

"···그럼 당신은 왜 받아야 합니까?"

"저는 얌전하게 개미만 잡았잖아요!"


여자가 반박하자 판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방금 나간 박철웅님도 개미를 잡았습니다."

"사람을 때렸다니까요?"

"규칙에 사람을 치지 말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판의 말에 다른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사람을 때려도 된다는 거예요?"

"저는 플레이워의 규칙에 따를 뿐. 그 외의 것은 개인의 도덕과 윤리에 맡깁니다. 불만이 있다면 박철웅 님께 직접 말씀하시면 됩니다."


반발할 여지가 없었다. 항의한 여자도, 뒤에서 거들던 사람도 입을 다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박철웅이라는 남자에게 항의할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유지영님. 당신은 24만원입니다."


여자가 판의 손에서 돈을 빼앗듯 낚아챘다.


돈을 정확하게 받았는지 헤아린 뒤 방을 나갔던 사람들과 다르게. 그는 곧바로 방을 빠져나갔다.


여자가 나가자마자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도 조용히 돈을 받고 나갔다.


덕분에 금세 내 차례가 되었다.


"이수호님. 당신은 23만원입니다."

"···감사합니다."


현금 23만원이 손에 쥐어졌을 때 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난 토끼였다. 게으르게 움직여 남들보다 더 받지 못했다.


거북이가 재촉할 때 열심히 잡았더라면··· 형이 한 달 정도는 편하게 쉴 만큼 벌었을 텐데.


싸움을 말리지 못했을 때보다 더한, 나를 향한 원망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돈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판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음 게임도 있어요?"


나와 시선이 마주친 판의 가면이 움직였다.


"최하위는 면했군요."

"무슨···."


그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넌지시 웃었다. 그러고는 내 어깨 너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가면이··· 움직인다.


"이윤성님. 당신은 22만원입니다."


내게 졌다던 이윤성도 나보다 만 원 덜 받았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이윤성이 시큰둥하게 돈을 받았다. 다른 사람처럼 기뻐하거나 나처럼 아쉬워하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방을 빠져나왔다. 무대를 지나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이윤성이 뒤에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박철웅님. 당신은 350만원입니다.'


건물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내내 판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쉬지 말고 한 마리라도 더 잡을걸.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플레이워에서 느꼈던 이상한 감각들을 후회와 아쉬움 뒤로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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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24.09.10 21 1 9쪽
25 25 24.09.09 27 1 11쪽
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6 1 10쪽
22 22 24.09.07 32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5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19 19 24.09.04 42 3 12쪽
18 18 24.09.04 39 3 13쪽
17 17 24.09.03 43 3 10쪽
16 16 24.09.03 44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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