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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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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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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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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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DUMMY


'수행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테니.'


나는 판이 했던 그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처음 들었을 때 의아하게 생각했던 그 '대가'. 벌레를 죽였으니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


"이제 여러분이 벌레가 되어 보십시오."


슈빌의 경고를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와 절망이 스며들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슈빌을 노려봤다.


"우리가 왜?"


내 물음에 슈빌에게 쏠려있는 공포의 눈동자들이 움직였다.


과장된 광고로 우릴 끌어들이고 벌레를 죽여 돈을 받게 한 건 플레이워였다. 게다가 개미나 다른 벌레들이 진짜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잘못이라곤 돈에 홀려 게임에 참가한 것뿐.


그렇게 말하자 슈빌이 눈매를 가늘게 조여들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정말 벌레가 단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냐 물었습니다."


우리가 물어볼 때는 대답하지 않더니, 지가 질문할 때는 대답을 강요하고 있었다.


내가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이윤성이 지원군으로 나섰다.


"대답을 듣고 싶으면 너도 말해. 위반자들은 어떻게 되는지, 저 좀비들이 사람이 맞는 건지."


이번에는 슈빌이 새 주둥이를 다물었다.


"너도 대답 못할 거면서, 왜 우리는 얘기해야 하지?"


논리적인 말에 슈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게임을 종료하죠."


슈빌이 날개를 한 번 퍼덕였다. 그러자 엄청난 돌풍이 일더니 주변의 모든 것이 쓸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번쩍.


눈을 떴을 때 나는 어두운 길바닥 위에 누워 있었다. 집에서 나왔다가 강제 소환됐을 때 멈췄던 그 자리였다.


"···허. 이게 대체···."


상체를 일으키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지금까지 꿈을 꾼 건가? 하지만 꺼져있는 핸드폰 전원을 켜니 1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핸드폰 상단에는 선생님과 박건우한테서 줄기차게 온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떠 있었다.


무슨 연락을 이렇게 많이 했나. 하고 있는데 이윤성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이수호]


이윤성의 목소리가 푹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 그거 꿈 아니었지?]


이윤성도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 가는 것 같았다.


"그런 것 같아. 시간도 1시간이나 지났고···."

[좀 만날래? 윤지혜도 부르고.]

"그래. 어디서 만날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우리는 플레이워 건물이 가까운 을지로의 한 카페에 모였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진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내 말에 음료를 마시던 윤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래. 그 브릿지 한 여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머리카락이나 피부색이 다 달랐잖아."


이윤성이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 여자, 살충제를 썼다고 했지? 그건 위반이었잖아. 그래서 좀비가 된 건가?"


이윤성의 말을 듣고 나서야 머리에 번쩍 불이 튀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좀비 떼가 꽤 많았잖아. 지금까지 플레이워가 12번, 오늘까지 13번 열렸으니까 4천 명 넘게 게임에 참가했을 거야. 중복까지 있으니까 적어도 2천 명 이상."


그게 뭐가 중요한지는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실종 신고를 한 사람도 있지만, 안 한 사람들까지 있다면?"


내 말에 이윤성과 윤지혜가 고개를 돌렸다.


"게임 첫날에··· 거지가 엄청 많았어. 그 사람들은 가족이 없을 거 아냐. 그럼 실종 신고도 안 들어갔을 거고."

"그러네."

"우리 학교 애들처럼 가출했다고 생각하거나, 나처럼 플레이워에서 가족이 없어졌다고 하는 사람들도 실종 신고를 안 했을 거야."


윤지혜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게 왜?"

"···앞으로 실종자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야."


형사가 게임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 형사님 한 분의 증언으로 경찰이 움직일까?


형이 누누이 한 말이 있었다. 약자의 편을 드는 경찰도 있지만, 소수라고. 약자의 도움을 외면하는 경찰이 더 많다고 말이다.


그 말 때문인지 나는 경찰에게 형을 찾아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형을 찾는 것도, 실종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플레이워 능력치도 낮고, 미션이 주어질 때마다 맵이 달라지니까.


"나, 플레이워가 뭔지 알아내고 싶어. 게임에 분명히··· 뭔가가 있으니까."


나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이윤성과 윤지혜의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같이 해볼래?"


조심스럽게 묻자 이윤성이 천장을 올려다봤고, 윤지혜는 말없이 음료만 마셨다. 나는 다 말하지 못한 진심을 털어놨다.


"말할까 말까 생각을 많이 했어. 왜냐하면··· 우리 형도 내가 하자고 해서 갔다가··· 없어진 거거든. 그러니까 싫다고 해도 괜찮아. 벌써 두 번이나 같이 찾아준 것만으로 고마우니까."


의견을 물어놓고 '네가 선택하라'며 한 발 빼는 건 비겁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날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싫다고 해도 난 두 사람의 선택이 응당 옳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에게는 두 사람의 생각과 삶이 있으니까.


그런데 윤지혜가 음료수 잔을 쾅 소리 나게 내려놨다.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윤성과 나는 깜짝 놀랐다.


"야, 나 동생 있거든? 여동생."


헐, 윤지혜한테 여동생이 있었구나.


"아··· 그럼···."

"끝까지 들어."


응. 나는 입을 합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동생이랑 둘이 있을 때가 많아. 근데 얘랑 같이 있다가 갑자기 강제 소환되면 난리가 날 거거든. 애가 어려서."


윤지혜는 반쯤 남아 있던 물을 원샷하고 장난기 있는 얼굴로 웃었다.


"나도 끼자."

"어?"

"그러니까, 강제 소환되면 골치 아프다고. 앞으로 뭘 잡으라고 할진 모르겠는데··· 아마 또 사람 잡으라고 하겠지. 그럼 난 못 잡을 거고, 계속 강제 소환 될 거 아냐."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던 이윤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윤지혜 말이 맞는 것 같아."


나는 곧바로 이윤성을 쳐다봤다.


"나도 계속 끌려다니는 거 싫거든. 그리고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셋이 움직이는 게 더 안전하기도 하고. 어차피 끌려갈 거면··· 호수 형도 찾고, 멈출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의미 있는 일하는 게 더 좋잖아."


두 사람의 말에 눈가가 시큰해졌다.


"너희들···."


입술을 꿈틀거리자 윤지혜가 물잔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고맙다고 하지 마. 내가 뭐 너를 도와주겠다. 그런 사명감으로 하겠다는 거 아니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와, 이수호. 우리가 막 네가 좋아서 도와준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었나 보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눈가를 팔로 벅벅 닦았다. 윤지혜가 내 쪽으로 휴대용 티슈를 던지며 웃었다.


"맨날 질질 짜네."


이윤성이 옆에서 거들었다.


"우리가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마. 그럼 부담스러워지니까. 그냥 이해관계가 일치한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의 말 몇 마디로 어쩐지 마음의 짐이 줄어든 듯한 기분이었다.



*


다음날 나는 학교로 갔다. 이 소식을, 내내 걱정하고 있던 박건우에게도 전하기 위해서.


"넌 절대 게임하지 마. 플레이워 근처에도 가지 마."


나와 윤지혜, 이윤성은 페널티를 받아 강제 소환되지만, 박건우는 아니었다. 뭣 모르고 게임에 들어왔다가 휘말리면 큰일이었다.


좀비 얘기까지 들은 박건우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와, 씨발. 미쳤네."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입을 몇 차례나 뻐끔거렸다.


"그러니까···. 플레이워 했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다는 말이지···. 너네··· 형도."


착잡함에 대답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다물자 박건우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손으로 가렸다.


"씨발···. 존나 좋아했는데."

"······."

"판 아저씨도, 강보··· 펫도 한패였던 거야?"


박건우의 질문을 나는 좀 고민해봐야 했다.


형이 게임에 갇혔다는 걸 알려준 사람은 판이었다. 그리고 펫들은 좀비를 피해 다니는 우리에게 게임을 강요하지 않았다. 부기도 줄기차게 강요하던 '더 잡아!'를 말하지 않았다. 되려 윤지혜의 총총이는 우리가 도망치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걸 플레이워와 한패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플레이워와 한패면 오히려 게임을 더 부추기지 않았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그런데 플레이워가 보통 게임이 아닌 건 확실해."

"나도 도와주면-."


나는 박건우의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들어 입을 막았다.​


"너 없어지면 부모님 어떻게 해. 난리 나고 집 뒤집어질걸."

"······하."


박건우는 아랫입술이 퉁퉁 부어터질 때까지 입을 잘근거렸다. 시험 기간마다 저래서 맨날 뭐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날 가만히 응시하던 박건우가 따끔하게 말했다.


"손톱 좀 뜯지 마."

"어? 어."


나도 계속 거스러미를 뜯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손과 입을 부단히 움직이며 어두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3시가 되었을 때.


플레이워 문자가 날아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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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24.09.10 21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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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6 1 10쪽
22 22 24.09.07 33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6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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