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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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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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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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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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DUMMY


좀비들이 있는 방향으로 미약하게나마 시냇물을 흘려보냈다. 그냥 물은 아니었다.


일행 중에 요리사 누나가 있었다. 그 누나는 펫과 자신의 능력으로 기름을 만들 수 있었다.


"기름 더 부어줄까?"

"네!"


누나가 숟가락으로 기름을 떠 바닥에 부었다. 그걸 내가 시냇물로 밀어내 좀비들이 미끄러지도록 유도했다.


사실··· 하면서 좀 현타가 오긴 했다. 두 사람처럼 멋있는 방법이 아니라서.


하지만 효과는 좋았다.


좀비들은 윤지혜의 붉은 실에 가로막혔고, 이윤성의 독에 무력화되었으며 기름에 미끄러졌다.


선두에 있던 좀비들이 이리저리 뒤엉킨 것도 모르고, 다른 좀비 떼들이 밀고 들어왔다. 앞서 호기롭게 나섰던 사람들은 이미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다 들어온 것 같아요!"


복도를 예의주시하던 남자가 작게 외쳤다.


형사님은 조심스럽게 뒷문을 열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밖으로 내보냈다. 다리를 절뚝이던 의사 누나는 맨 나중이었다.


"제가 업어드리겠습니다."

"괘, 괜찮은데요."

"뛰기 힘드시잖아요."


전쟁 중에도 사랑은 꽃핀다고. 내가 봤을 때 저 형사 아저씨, 의사 누나한테 관심 있다.


나는 눈치껏 모르는 척하며 교실을 나왔다.


누나를 부축해주는 형사님, 이윤성. 마지막으로 윤지혜까지 나왔을 때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갇힌 줄도 모르고 좀비들이 교실 안을 활보했다.


윤지혜는 부서져 버린 앞문을 붉은 실로 촘촘하게 감쌌다. 안에 갇힌 좀비들이 나오지 못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제 1층으로 내려가죠!"


형사님의 말에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저거···."


창문에 비친 좀비를 보자마자 뇌가 깨지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난 좀비들이 NPC라고 생각했다. 팔이 길게 늘어나거나 손끝이 뾰족하길래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 프로그램이라고.


그런데··· 교실 안에 브릿지를 한 여자 좀비가 있었다.


창문 앞에 우뚝 멈춰서자, 앞서 달리던 윤지혜가 뒤돌아와 내 팔을 붙잡았다.


"미쳤어? 왜 가만히 있어?!"

"지혜야···."


나직하게 부르자 윤지혜가 동그란 눈을 굴렸다.


"저거··· 그 여자 아니야?"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인 윤지혜의 표정이 삽시 굳었다.


"···뭐야 저거. 이거··· 그냥 NPC 아니었어?"


이번에는 이윤성이 돌아오더니 나와 윤지혜를 끌어당겼다.


"문 부서진다고! 빨리 와!"


그의 말처럼 좀비들이 윤지혜의 붉은 실을 잡아 뜯고 있었다.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동안 나는 이윤성에게 브릿지를 한 여자에 대해 설명했다.


"···저것들이 다 사람이라고?"

"모, 모르겠어. 얼굴이 저러니까··· 모르겠는데···."

"으악!"


나는 1층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괴성을 질렀다. 각목을 든 남자와 야구방망이를 든 남자가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목이 돌아가 있고 온몸이 찢겨 너덜너덜했다. 그들 근처에는 핏물이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우욱. 우리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을 피해 벽에 바짝 달라붙어 운동장으로 나갔다.


죽었어···. 진짜 죽었어.


다른 조폭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죽어있는 사람들을 보니 살아남은 사람도 멀쩡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설마, 설마 형도··· 어딘가에서 좀비의 공격을 당했거나 좀비가 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정말 싫었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눈가가 불에 덴 듯 뜨거웠다.


"거북이."


[······.]


"부기야."


[왜 이수호야!]


나는 부기를 내려다보며 운동장 한가운데에 멈추어 섰다. 좀비를 겨우 따돌린 사람들이 울거나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는 긴장감에 온몸이 젖어 드는 것 같았다.


"저것들··· 진짜 사람이야?"


나는 제발 아니길 바라며 부기에게 물었다.


하지만 부기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침묵할 뿐이었다. 저런 무표정을 할 때면 정말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다. 부기의 커다랗고 새까만 눈은 마치 무저갱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대답하라고 닦달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 말없이 땀을 닦았다.


[5분 남았어!]


부기는 제 몫을 다할 뿐이었다.


침묵의 60초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이 빠진 듯 바닥에 전부 널브러져 있었다.


그때 학교 안에서 좀비 떼가 쏟아져 나왔다. 앉거나 누워있던 사람들이 그 무리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앞이 보이지 않을 텐데 우리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하얀 좀비들. 뾰족한 팔이 길게 늘어져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좀비는 빠르고 우리는 모두 지쳤다.


"덤비면··· 싸워야 해요."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먹먹함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이 모든 걸 돌이킬 수 있다면 집에 있는 돈뭉치를 전부 갖다 바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형 돌려줘!"


나는 가까워지는 좀비 무리를 향해 사시미칼을 들이밀었다.


그때였다.


띵-


[게임 종료. 살았어 이수호야.]


부기의 마지막 메시지와 함께 좀비와 무기와 펫들이 사라졌다. 도망을 치던 사람들과 다리를 떨며 싸울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흙바닥으로 쓰러졌다.


무기를 들고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있던 우리는 넋을 놓은 표정으로 두 팔을 떨궜다.


"···왔어."


이윤성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슈빌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내려와 우리를 바라봤다.


"여러분.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현금은 판이 나눠주고 있지만··· 여러분은 받을 수 없겠군요. 이거 참, 난처하군요. 페널티를 받을 인간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게 사라지고, 진이 빠진 사람들은 그에게 항의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들 절망스러운 눈으로 슈빌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동물이 싫다고 하기에, 다른 것으로 바꿔봤는데. 이것도 성에 안 차십니까? 벌레는 그렇게 쉽게 잡으면서 말입니다."


그가 한쪽 날개의 날갯짓을 멈추더니 위로 들어 올렸다.


"아, 인간이란 원래 이중적인 족속들이었죠."


사람을 비하하는 말투에 사람들이 얼굴을 와그작 구겼다.


슈빌은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구경하더니 기계처럼 말했다.


"어제 총인원 600명에서 페널티를 받은 인간들은 300명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참가자가 300명이라는 뜻이죠. 이 중 100명이 위반을 했고, 50명이 미션을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페널티를 받아야 하죠."


운동장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여기 있는 사람은 끽해봐야 30명이 조금 안 되었다.


의사였던 유지영 누나가 슈빌을 향해 소리쳤다.


"나··· 나머지 120명은요?!"


누나의 절박한 외침에 슈빌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120명의 생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데 궁금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또다시 플레이워에 참가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만약 게임 안에서 사람이 죽었다면··· 우리도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슈빌은 끝까지 그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여러분 29명은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다음 회차에서 또 만나 뵐 수 있겠군요."


깔깔깔. 슈빌이 잔인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숨이 멎을 것 같은, 소름이 끼치는 소리였다.


나는 한쪽 귀를 틀어막으며 슈빌에게 물었다.


"저 좀비들, 사람 맞아?!"


손가락으로 건물을 가리키자 슈빌이 눈을 동그랗게 띄웠다. 마치 '그걸 눈치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놀란 표정과 달리 입에서 나온 말은 기계적이었다.


"플레이워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게 사람이냐고!"


윤지혜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제야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사, 사람이라니, 가짜 좀비 아니었어?"

"팔이 막 늘어나는데··· 저게 어떻게 사람이야···?"

"너희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자 슈빌이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정말 곤란하게 하는군요. 좋습니다. 다음엔 다른 사냥을 선사해드리죠."

"사냥···?"

"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습니까? 플레이워, 우리는 전쟁놀이를 하는 겁니다."


슈빌에 말에 사람들이 턱 빠진 인형처럼 입을 벌렸다. 그때 형사님이 앞으로 튀어나와 슈빌에게 소리 질렀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벌레 잡는 게임이라며! 그게 어떻게 전쟁이 돼?!"


판의 얼굴이 무표정하게 돌변했다.


"자신보다 수천 배나 커다란 인간에게 쫓기던 벌레에겐, 전쟁이지 않았겠어요? 벌레를 죽일 때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랬다면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갔을 리 없겠죠."


빙 돌려 말했지만, 그의 말을 이해 못한 사람은 없었다.


"자, 여러분도 벌레의 기분을 느껴보셨습니까?"


그의 말에 사람들은 절망스럽거나 혹은 당혹스럽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책하듯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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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 24.09.11 1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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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 24.09.09 28 1 11쪽
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7 1 10쪽
22 22 24.09.07 33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6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19 19 24.09.04 42 3 12쪽
18 18 24.09.04 39 3 13쪽
17 17 24.09.03 44 3 10쪽
16 16 24.09.03 45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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