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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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최근연재일 :
2024.09.14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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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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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하지만 깊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일단 3층을 수색하고 2층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플레이워의 특징 중에 하나. '시간제한' 때문이었다.


1시간 안에 좀비 하나라도 죽이지 않으면 '위반'. 페널티가 적용된다.


그러니까 주어진 시간 안에 한 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끼리 움직이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일단 내 전투력이 너무 낮았고··· 뭐든 소수보단 단체에 힘이 실리는 법이었다.


"벌써 여기까지 올라온 건 아니겠지?"


우리는 문밖으로 머리만 빼꼼 내밀고 복도를 둘러봤다.


하얀 좀비가 올라왔다면 시끄러웠어야 하는데, 아직 조용했다.


"2층까지 올라왔으면 여기까지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2층도 조용한 걸 보면 아직 1층에 있는 것 같아."


윤지혜의 논리적으로 설명에, 이윤성이 바깥 상황을 어림짐작했다.


"조폭들이 막아주고 있는 건가?"

"조폭들이 다 죽였거나, 아니면 좀비들이 계단을 못 올라오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나는 윤지혜의 말을 듣다가 두 번째 가정에 힘을 실었다.


"계단을 못 올라오는 것 같아. 만약 조폭들이 좀비를 다 죽였으면 게임이 끝났을 테니까."


윤지혜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올, 추리 좀 하는데?"


나는 으쓱해지는 어깨를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3층에는 교실 5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있던 교실 말고는 전부 잠겨 있었다.


"이 층에 히든 맵이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히든 맵을 활성화하기 위해 교실 문을 전부 더듬었다. 하지만 히든 맵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무작정 형을 찾기엔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곧장 2층으로 내려갔다.


"헉, 씨··· 더는··· 못 하겠어요."


반층 정도 내려갔을 때 남자가 울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참가자 중 한 명이 분명했다.


우리는 눈빛을 교환하다가 재빨리 반층을 더 내려갔다.


"으윽!"


이윤성이 팔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얼굴 없는 좀비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그 좀비를 막고 있는 건 투명한 유리막이었다.


그리고 그 유리를 만든 사람이 울먹이는 남자였다.


남자는 '방어막' 기술이 있는 건지, 글러브를 낀 양손을 허공에 뻗어 좀비들의 질주를 막고 있었다. 그 옆에는 축구공처럼 생긴 로봇 펫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던 남자가 우리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흐, 씨발. 사람이었잖아···."

"그, 괘··· 괜찮으세요?"


내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은데, 더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걸 혼자 막고 있는 거지?


2층 복도 끝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리에는 형사님과 의사 누나, 젊은 남녀, 어려 보이는 여자애. 심지어 할아버지까지 있었다.


우리 형이 도와줬던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실종됐는데 게임에 있는 걸 보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찾으러 온 걸까?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조금만 더 막아주세요!"


나는 남자에게 간절하게 부탁하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윤성과 윤지혜가 뒤를 따랐다.


내가 다가가자, 무리의 앞쪽에 있던 형사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학생! 예전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학생. 맞나?"


시간이 오래 지나기도 했고, 사복을 입어서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날 알아봤다.


"네. 그런데 왜 저 형 혼자 막고 있는 거예요?"

"아, 그게- 1층에서 좀비가 막 뛰어 올라와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저분이 막아주셨지. 버틸 수 있다고 해서 부탁해놓고 우리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그런데 3층에서 발소리가 나니, 우리도 좀비인 줄 알고 긴장했던 거다.


우리는 대충 상황 파악을 하고 통성명을 한 뒤. 1층에서 있었던 일을 전달했다.


"미친! 유리를 깼단 말이에요?!"

"씨발, 그 조폭들이 우릴 다 죽이려고!"


사람들이 노발대발했지만 화를 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좀비들이 벌써 올라왔다는 건 조폭들이 다 죽었다는··· 아니, 속단하긴 이르다.


조폭을 걱정하는 것보다 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별로 없네요."


소환된 사람은 몇백명이나 될 텐데. 복도에 있는 사람들은 서른명이 조금 넘어 보였다.


형사님이 고개를 떨궜다.


"거의 다 밖으로 나갔어. 위험하다고 했는데···. 내 말을 못 들은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밀폐된 장소가 더 위험하다고 학교 뒤쪽으로 달려가던 사람도 있고."


공무원을 믿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뜻이 옳다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분열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형사님도 미션 받으셨죠?"

"좀비 하나씩은 잡아야 하는 그 미션? 받긴 했는데, 힘이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마침 얘기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윤지혜가 맹랑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각자 무기 들고 좀비랑 싸우죠?"


형사 아저씨가 놀란 듯 얼굴의 모든 구멍을 확장했다. 눈과 코가 벌렁거리고 귀를 의심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박한 사람은 이윤성이었다.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잖아. 규칙도 바뀌었는데, 사람도 죽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실종자까지 생겼고."

"그럼 손가락 빨다가 또 페널티 먹을래?"


윤지혜와 이윤성의 마찰에 나는 짓눌린 풀처럼 숨을 죽였다.


다친 사람이 생기고 실종자가 나왔을 때도 애써 외면했던 사실이 있다.


'화이트 맵' 안에서 사람이 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평범한 게임처럼 환생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플레이워에서는 사망도 가능!]


부기의 말풍선으로 확실해졌다.


플레이워 안에서의 죽음은 현실 세계의 죽음이다.


침울한 분위기를 깨고 남자의 절박한 외침이 들렸다.


"빨리 좀! 더 못 버티게··· 으, 으악!"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가려던 우리는.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남자의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아아악!"

"젠장! 다들 교실로 들어가요!"


형사님의 말에 사람들이 서로를 밀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콰직, 콱!


사람들이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섬뜩한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손이 덜덜 떨리고 옆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머리가 새하얘진다고 하는데.


반대로 나는 모두가 다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들어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발이 굳었을 때 이윤성이 내 등을 떠밀었다.


중심을 잡지 못해 미끄러지듯 넘어졌다. 그러자 부기가 내 발을 붙잡고 교실로 들어왔다.


"미쳤어?!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해?!"


윤지혜가 내 등짝을 착착 때렸고, 이윤성이 잽싸게 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가 문을 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좀비이 밀려들었다.


쾅! 콰앙!


문이 부서질 듯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우리는 책상과 의자를 높게 쌓아 문을 막았다.


"어후, 징그러워. 게임이라고 해도 저런 걸 만들다니."

"이딴 게임. 하는 게 아니었어."


좀비를 막아주던 남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지쳐 보이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차라리 페널티 받는 거 어때요?"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됐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다 같이 살기 위해서. 한 마리도 잡지 않고 게임이 끝나면 페널티를 먹지만, 저 좀비들에게 찢겨 죽을 일은 없었다.


우리가 받게 될 페널티가 또 '강제 소환'인지. 아니면 다른 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교실에 몰려 단체로 죽는 것보다 페널티를 받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경쟁자 없이 게임에 들어오기 위해서.


나는 형을 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임이 열릴 때마다 필참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정식 루트로 게임을 클리어하면 다음 게임도 정상적으로 열리게 되고, 플레이워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러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몇백 대 일의 경쟁자를 뚫어야 한다.


물론 두 번째 이유는 페널티가 '강제 소환'일 때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더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지만, 꽤 괜찮은 생각이었는지 사람들이 찬성에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래요! 저는 절대 못 잡아요!"

"다음에 또 끌려오면··· 그땐 다른 거 잡으라고 하겠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걸 또 하라고?! 미쳤어? 절대 못 해!"

"나도 그냥 잡을 거야! 다음 페널티에서 죽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


내 말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윤지혜가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아저씨. 저기 나가서 안 죽을 자신 있어요? 펫 보니까 능력치도 구린 것 같은데. 평균 능력치 70 넘어요? 난 넘거든요? 근데도 못 잡을 것 같은데."

"저, 저 어린 년이···."

"오늘 포기하면 하루 더 살 수 있잖아요. 잘 생각해요."


윤지혜의 말에 반대하던 군중이 잠잠해졌다.


평균치 70을 넘는 애가 못 잡는다고 하니, 자신은 가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거다.


나는 윤지혜에게 슬쩍 다가갔다.


"너··· 얼마 벌었어?"


윤지혜가 뭐 이런 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난 하인처럼 뒤로 물러나며 손가락을 접었다. 평균 70 이상이면 몇 마리를 잡아서 올린 거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많이 잡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 어린 년이잖아요. 그럼 어른 노··· 분들은 더 좋은 대안 있어요?"

"······."

"다들 없어서 여기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대박이다, 윤지혜.


선동을 잘한다고 해야 하나. 윤지혜의 목소리엔 파급력이 있었다. 귀에 쏙쏙 박히는 딕션으로 논리적인 말을 하니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데 윤지혜가 입술을 뻐끔거렸다.


'뭘 봐?'

'강제 소환. 나도 할 거야.'


잘 읽은 건지 모르겠지만, 대충 그런 말인 것 같았다.


윤지혜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게임을 포기하자고 말했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이윤성도 어느샌가 다가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중요한 말인 것 같아 귀를 기울이는데.


"윤지혜 얼마 벌었대?"

"안 가르쳐 주더라."


쩝. 이윤성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의자 하나를 들고 교실 앞문으로 향했다.


"와, 이거 문 부서지겠네."


이거 남은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으려나. 그가 의자를 더 높게 쌓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불안함을 자극당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무기를 꺼내 들었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비들이 들어오면 막기 위해서.


형사님이 삼단봉... 을 꺼냈다. 위협적인 무기는 아니었지만, 휘두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멋있어 보였다. 옆에 있던 호랑이 펫도 형사님을 보며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학생들 말이 맞습니다. 저 괴물들··· 악력으로 사람을 찢어요. 아까 보셨죠? 우리가 상대하긴 버거울 겁니다. 여자분들이랑 노인 분도 계시니까요. 시간은··· 이제 30분 남았습니다. 30분만 버티면 나갈 수 있어요."


공권력이 약하더라도 형사는 형사다. 그리고 권력은 곧 힘이다.


우리가 얘기했을 때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던 사람들이 형사님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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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3 24.09.07 27 1 10쪽
22 22 24.09.07 33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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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24.09.04 39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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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24.08.26 103 5 12쪽
4 4 +1 24.08.25 119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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