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 잡았더니 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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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알디
작품등록일 :
2024.08.24 15:46
최근연재일 :
2024.09.14 20:31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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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35

작성
24.09.1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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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DUMMY


학교가 끝나고, 박건우가 시무룩한 얼굴로 내 팔을 툭툭 쳤다.


"조심해. 하, 씨발··· 나도 그냥 같이-"

"뭔 소리야. 빨리 집 가라."


나는 울상을 짓는 박건우를 뒤로하고 플레이워로 향했다.


'교우관계가 좋군요.'


언젠가 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맞아, 난 좋은 친구를 뒀다.


박건우도, 이윤성도, 윤지혜도 좋은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는 없었다. 울지 않으려 해도 형의 빈자리를 보자마자 저절로 눈물이 났던 어젯밤처럼.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을 구할 거다.


"너도 강제 소환 싫어서 먼저 왔냐."


뒤에서 이윤성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매번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것도 점점 익숙해졌다. 내가 놀라지 않자 이윤성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제스처를 했다.


"와, 눈빛이 사람 뚫어버릴 듯."


이윤성답지 않은 말투에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텅 비어있던 모습을 봐서 그런지 올라올 때마다 역한 기분이 들었다.


"플레이워 문자가 안 오면 평범한 건물이거든. 근데 문자 오자마자 바로 바뀌는 거 보면. 아무래도 이건 외계인 짓이야"


내 말에 이윤성이 심란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 그게 진짜··· 말이 돼?"


말이 안 되지만, 말이 안 되는 일을 수도 없이 겪었으니··· 우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커다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윤지혜가 우릴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존나 예쁘네."


이윤성이 윤지혜를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이윤성을 흘낏 올려다봤다.


잘생긴 놈이 예쁜 애를 칭찬하니, 퍽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윤지혜 옆에 작은 여자애가 앉아 있었다.


차가운 인상의 윤지혜와 달리 청순한 얼굴에 긴 머리를 반묶음 한 여자였다.


"안녕하세요!"

"어, 그 학교에서 봤던. 아닌가?"


이윤성의 물음에 여자가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이름은 김미래. 우리보다 1살 어렸다.


윤지혜의 가족은 아니고, 강당 의자에 앉아 훌쩍거리는 애한테 윤지혜가 말을 걸었다고 한다.


우리한텐 얼음보다 차갑게 굴더니, 여자애한테는 살가운가 보네.


의외의 면에 놀라길 잠시. 김미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꼭 페널티 없어야 하는데···. 언니, 또 좀비일까요?"

"글쎄···. 저번에 바퀴벌레 나왔을 때 사람들이 못 잡으니까 다음 회차에 나방으로 바꿨거든?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바, 바퀴··· 언니 잡았어요?"

"어, 나 800마리 잡았는데."



파, 팔백···. 나와 이윤성, 김미래까지 입을 떡 벌렸다.


"그거 돈 다 받았어요? 그 돈을 줬어요?"

"어. 받아서 썼지."


그 많은 돈을 다 썼다고? 어디에다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마른침만 삼키고 있을 때.


"800만원을 다요? 어디에 썼어요?"


김미래가 천진난만하게 물었다.


윤지혜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병원비'하고 답했다. 김미래는 더 물어보는 건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했는지 와, 언니 대단하시다. 하고 말 뿐이었다.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는 건가.


덤덤하게 앉아있는 윤지혜도. 관심 없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이윤성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형 찾아야 한다고 도와달라고 했으니···.


두 사람은 부담 갖지 말라 했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민폐 끼치지 말고 최대한 혼자 힘으로 해보려고 하자. 두 사람이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주저하지 말고 잡게 하자.


스스로 다짐하며 나는 게임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없지 않아요?"


김미래의 말처럼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도 열댓명 정도만 보이고, 눈으로 대충 봐도 100명이 채 안 되어 보였다.


아마 플레이워의 실체를 알고 다들 도망친 거겠지.


그때 뒷문이 쾅- 소리 나게 열리더니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각목을 든 남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위협적인 표정으로 외쳤다.


"씨펄, 여기 관리자 어데있쏘?!"


무리 중간에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찬 박철웅이 서 있었다.


안 죽었구나. 다행이다.


조폭이고 나쁜 사람이지만, 게임 안에서 사람이 죽는 게 싫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조폭들이 갑자기 벌레 떼처럼 퍼지더니 강당 안을 부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앉아있는 의자를 치기도 했다.


"염소 양반! 퍼뜩 나오시오!"

"시부럴 것들···. 우리 용팔이··· 삼덕이···. 살려내라고 씹새들아!"


조폭들은 무대 바닥을 깨고 뒤에 덩그러니 붙어있는 하얀 문까지 망치질했다.


강당에 있던 그나마의 사람들이 조폭들을 피해 밖으로 도망쳤다.


일단 우리도 튀어···. 말하는 와중에 판이 하얀 문을 열고 나왔다.


"오, 이 씨팔. 염소 새끼. 넌 뒤졌어."

"너, 이 아스팔트에 갈아버릴 새끼. 면상 좀 보자! 가면 벗어 씨펄 새꺄!"


조폭들이 판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때 판이 점잖은 말투로 말했다.


"아직도 가면처럼 보이십니까?"

"···뭐라는 겨."


남자가 뒤로 주춤 물러나자 판이 고개를 숙이며 낄낄 웃었다. 그러자 조폭이 열에 받친 듯 각목을 휘둘렀다. 오른팔로 각목을 막은 판이 검은 안광을 빛냈다.


빡! 각목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역시···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변하지 않았군요."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곤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하얀 문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벌떼처럼 쏟아져나왔다. 첫 번째 게임에서 다친 남자를 끌고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조폭들에게 달려들었다. 각목을 한 손으로 잡아 부러뜨리고, 내려치는 망치의 대가리를 손으로 막았다.


조폭은 무기가 있고 저쪽은 없는 데도 조폭이 압도적으로 밀렸다.


사람의 힘이라고 볼 수 없는 악력으로 무기를 부스러뜨린 남자들이 조폭을 진압했다. 그러고는 기절한 사람들을 하얀 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조폭들을 우리는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어, 어디로 데려가는 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치자 판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 위로 아까의 음성이 겹쳐졌다.


'아직도 가면처럼 보이십니까?'


가면이 아니었다. 가면이 아니었어.


진짜 괴물이다. 괴물이 대강당을 빙 둘러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참가자가 겨우 다섯 분인가요?"


조폭의 난동 이후 강당에 남은 사람은 우리들 뿐이었다. 그런데 다섯 명?


나는 문득 뒤를 돌아봤다.


박철웅이 입에 담배를 문 채 서 있었다. 부하들이 무대를 부수고 끌려갈 때까지 그는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다.


"염병할 새끼."


박철웅이 무서운 표정으로 판을 쏘아보더니 바닥에 담배를 지져 껐다.


나는 야차처럼 인상을 쓰며 달려드는 남자를 보자마자 윤지혜와 이윤성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두 칸 떨어진 김미래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각자의 눈앞에 하얀색 문이 철벽처럼 떨어져 내렸다.


"헉."


숨을 들이켜는 순간 우리는 그 안으로 거세게 빨려 들어갔다.


위장이 뒤집히는 것처럼 울렁거리는 이 더러움 감각 때문에 침을 삼키기를 한참.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잔디밭 위에 누워 있었다.


이번 화이트 맵은 어두운 하늘과, 광활한 초원과, 저 멀리 빽빽하게 세워져 있는 하얀 기둥이 눈에 띄는 공간이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하얀 기둥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전처럼 2층 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긴 무슨 배경이지? 여기가 어딘지 확인하기도 전이었다.


우리 주변으로 하얀 문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팔뚝만 한 두께의 문 수백개가 하늘에서 바닥으로.


쿵쿵쿵쿵! 말 그대로 진짜 비처럼 떨어졌다.


우리는 무거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리꽂히는 문에 깔리지 않기 위해 재빨리 몸을 피했다.


이윽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튕기듯 빠져나왔다. 마치 마루에 떨어지는 쌀알처럼 바닥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던 윤지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강제 소환이··· 이런 거였어."


내가 길거리에 있다가 끌려온 것처럼. 이윤성이 거실에서 끌려온 것처럼 도망쳤던 사람들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너무 많지 않아?"


이윤성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의문을 표했다.


"강제 소환될 사람은 29명 밖에 없었잖아. 그런데 여긴···."


이윤성 말대로였다. 어제 페널티를 받은 사람들은 우리를 포함해서 29명. 그런데 모인 사람들은 몇백명이 넘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쓰러져 있는 박건우를 발견했다.


"서, 설마."


박건우에게 달려가 몸을 흔들었다. 주황색 헤드폰을 쓴 채 끙, 신음을 흘리던 박건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수호? 너 왜 내 방에··· 여기 어디야?"


정신을 차린 박건우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왜 여기 있어?"


나도 영문을 몰라 얼어있는 사이, 또 다른 게임의 시작을 알리듯 하늘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플레이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슈빌이었다. 슈빌은 날카로운 눈매를 좁히며 낄낄낄 사악하게 웃었다.


"참가자가 적어 이전에 참여했던 분들도 불러봤습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박건우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페널티를 안 먹었더라도, 게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전부 끌려올 수 있는 거였다. 강당에 모이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어도 억지로 끌려다닐 수 있는 거였어.


나는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잔디밭에 엎드렸다.


그때였다.


"씨발, 이게 재밌어?! 재밌냐고! 페널티 없다며!"


머리부터 오른쪽 눈을 붕대로 칭칭 감은 남자가 잔디를 뽑아 슈빌을 향해 던졌다. 하지만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떨어졌다.


"씨발, 이 염병할 개새끼들아! 나··· 나 실명했다고! 병원이었는데···."


병원복을 입은 남자의 서글픈 외침에···.


이게 무슨 상황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 죽을 위기를 넘기며 게임을 클리어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일행들도 웅성거림을 멈추고 침묵했다.


정적이 흐르는 초원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슈빌이 양 날개를 쫙 펼쳐 보였다.


"한쪽 눈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군요. 자 그럼 플레이워를 시작합니다."

"미친."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 욕설을 시작으로 주변에서부터 사람들의 원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씨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겨우, 겨우 설득하고 있었는데···."


형사님이었다. 형사님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아수라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슈빌은 평정을 유지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는 조금 쉬울 겁니다."


그는 그 말만 남긴 채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띠링- 그가 사라지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파란 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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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24.09.08 26 1 12쪽
23 23 24.09.07 26 1 10쪽
22 22 24.09.07 33 2 12쪽
21 ​실종. 그리고 동료 24.09.06 36 3 11쪽
20 20 24.09.05 35 3 10쪽
19 19 24.09.04 42 3 12쪽
18 18 24.09.04 39 3 13쪽
17 17 24.09.03 43 3 10쪽
16 16 24.09.03 44 3 10쪽
15 15 24.09.02 48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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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1 24.08.25 119 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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