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세계인구 2천 명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17. 세계인구 2천 명
“아이고~ 우리 아들 왔나? 차가 많이 막히던가 베!”
마루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정훈의 어머니가 버선발로 뛰어나온다.
설날에 뵈었으니까 아직 두 달도 채 안 됐는데 2년은 된 것처럼 반긴다.
“별일 없었어요? 하하.”
정훈이 어머니를 껴안으며 어린애처럼 군다.
“어디 봐! 어째 얼굴이 타고 핼쑥해진 거 같노?”
어머니는 아들 모습이 조금만 달라 보여도 걱정이다.
“엄마 보고 싶어서 그렇지 뭐. 하하.”
낼 모레 장가들 녀석이 아직도 엄마다.
“차 타고 오면서 봄볕에 그을려서 그런가 봐요, 하하.”
정훈이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서둘러 마루로 올라선다.
안방으로 들어간 정훈은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큰 절을 올린다.
“그간 별일 없으셨습니까?”
“음, 그래. 먼 길 오느라고 힘들었지?”
정훈의 아버지 이재성은 아들을 대견한 듯 바라본다. 자라면서 속 한번 안 썩인 아들이다.
제 아비 회사를 망가뜨린 경쟁사 음모를 파헤친다고 잘 다니던 대기업 연구소도 그만 두고 나온 아들이다.
지금은 전망 좋은 드론 제조업체를 자기보다 더 규모 있게 잘 운영하고 있으니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얼른 씻어라. 국 데울게, 저녁 묵자. 많이 시장하재?”
어느 어머니나 아들 밥 챙겨 먹이는 게 최우선이다. 오후에 온다는 연락 받고 토종 닭 잡아서 정훈이 좋아하는 닭도리탕 만들어 놨는데,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시 데우면 졸아져서 맛이 덜 할까 봐 걱정이다.
정훈의 할아버지, 이재성의 부친은 화개장터에서 도보로 10분거리에 있는 산비탈 골짜기 마을인 영당부락에서 태어났다.
전주 이씨 태조 18대, 효령대군 19대의 양반 후손이긴 한데, 무슨 연유인지 5대조부터 자리잡고 살아서 아주 가난한 집안이었다.
영당부락은 신라시대 때 합천 가야산에 은거하던 최치원선생이 들렀다가, `영롱한 기운이 나고 큰 인재가 나올 자리`라 하여 `영당`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재성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때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고시에 합격해 화개면사무소 면서기로 근무했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윗사람들이 물러나고 면장 맡을 사람이 없어, 운 좋게도 27살 젊은 나이에 화개면장이 되었다.
나중에는 교사임용시험을 통과해서 면장경력으로 금세 국민학교 교장이 되었다.
이재성은 부친의 악양국민학교 교장 시절에 2학년까지 다니다가, 부친의 전근을 따라 진주시내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래서 인지 이재성은 친척들이 살고 제당이 있는 영당부락에서 조금 떨어진, 이 악양에 자리를 잡고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재성은 처음에 자기 부친이 최치원선생이 예견한 `영당`의 큰 인물인줄 생각했었다.
그러다 나중에 자기가 대기업의 연구소에서 34살에 부장도 되고 한참 잘나가자, 자기가 그 큰 인물인줄 착각하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기 아들인 정훈이가 이 글로벌 시대에, 한국뿐 아니라 지구를 구할 큰 인물이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아들 정훈의 행보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조사하고 정리해서,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훈이 니 드론은 인자 한 달에 얼마나 파노?”
주방 식탁에서 저녁식사를 마친 세 식구가 안방에 둘러앉아 딸기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데, 망설이던 어머니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묻는다.
지난번에 한달 매출 2억은 되고 금년 목표는 3억이라고 말했는데 그새 좀 늘었는가 싶어 또 물어본다.
아들이 사업한다는데 큰 부자는 안 바라도, 제 아비처럼 문닫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가 보다.
“한 달에 2억 넘게 팔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하하.”
“아직도 2억밖에 못 파나? 그래가꼬 어느 세월에 문도 따라잡겠노? 문도는 한 달에 5억이나 판다더마는···”
진주사투리가 입에 밴 정훈 어머니가 실망의 눈초리로 아들을 흘겨본다.
학창시절에 문도보다 훨씬 공부도 잘했고 대학교도 좋은데 나왔는데, 아들이 뒤처지면 안타까워서 못 봐줄 것이다.
“문도 가~는 사업한지가 오래됐고, 야는 인자 1년 됐는데, 벌써 같을 수가 있는가? 직원 스무 명이 금년에는 한 달에 3억 매출 한다니까, 내 할 때보다는 훨씬 낫구먼 뭘! 허허.”
이재성이 나서서 점잖게 부인에게 핀잔을 준다.
정훈의 어머니는 정훈이 드론으로 대북지원사업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 정훈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 이재성도 아내가 걱정할까 봐 일부러 얘기해주지 않기로 했다.
“너무 염려 마세요, 엄마! 드론이 뜨니까, 금방 문도 훈제칠면조 따라잡을 거에요. 하하.”
정훈은 문도의 칠면조 가공공장인 진주 `비행 육류가공`의 주주이다. 문도와 정훈, 하동 칠면조농장 사장인 강호준 등 3명이 5억씩이고 최근상이 2억 투자해서 자본금이 17억이니까, 정훈의 지분이 29%를 넘는다.
문도가 매출 많이 올리면 정훈의 이익배당금도 증가하는데, 정훈이가 이 사실은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어머니도 모르고 있다.
당연히 정훈의 납입자본금 5억은, 이재성의 태성을 무너뜨리고 무선중계기 시장을 독식해서 벌어들인 우주통신의 돈이다. 우주통신 드론 신설업체 설립자본금 돈가방을 배명호교수로부터 드론 BB를 띄워 탈취한 CD 20억 중에서 투자한 것이다.
그 20억 중에서 5억을 다시 뽑고, 문도와 근상, 태성 여비서출신 윤지은 남매 등 4명이 투자한 2억5천을 합해서, 납입자본금 7억5천으로 지금의 드론 제조업체 ㈜뉴젠을 설립했다.
어찌 보면 이재성의 태성 후광으로 정훈이 현재 사업활동을 하고 있으니, 정훈은 이미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 바둑 한판 두실래요?”
부친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는 정훈이 꾀를 냈다.
“그럴까? 서재로 가자.”
“서재서 두지 말고 바둑판 가져와서 여기서 두면 안 되요?”
아들과 더 얘기하고 싶은 어머니가 아쉬워한다.
“당신은 바둑판만 보면 머리가 아프다면서! 허허.”
이재성도 아들의 뜻을 눈치채고 부인을 책망하며 일어선다.
`예전에 배워준다고 할 때 배워뒀으면 좋았을 거 아닌가? 미련한 사람 같으니! 미리 말해주면 못 알아듣고 꼭 그 때가 되어서야 후회한다니까.`
“한판만 금방 두고 와서 함께 티브이 볼게요, 엄마. 하하.”
정훈이 눈 흘기는 어머니를 위로해주고 일어나 부친을 따라 서재로 건너간다.
“아버지, 우리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가 맞는가 보죠? 하하.”
바둑판 위에 초반 포석이 어느 정도 진행되자 정훈이 말꼬를 튼다.
아버지가 작성한 파일을 대충은 읽어보았고 나름대로 관련자료를 조사도 해봤지만, 아버지와 대화하다 보면 인류에 대한 새로운 내용이 더 나올 수도 있지 않겠나 싶다.
“그런가 보더라. 19세기에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인류가 침팬지에서 진화했을 거라고 추론했을 때, 누가 그 말을 믿었겠냐? 기독교인이 대부분이던 유럽사람들이 창조주 신을 모독한다고 욕이나 했겠지! 그런데 거의 100년이 지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유전물질 DNA 이중나사구조 분자모형이 제시되니까, 다윈의 주장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됐다는 거지.”
DNA는 유전자 본체이고, DNA에 있는 유전정보에 따라 단백질을 합성할 때, 직접 작용하는 핵산의 일종인 화합물이 RNA이다. 이중나사구조인 DNA와 달리, RNA는 외가닥인 단일 사슬로 되어있다.
사람의 유전자가 만드는 단백질 중 30%는 침팬지와 동일하고, 각 단백질은 평균 300여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두 개의 아미노산이 다를 뿐, 298개가 같아서 99.3%나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과 침팬지는 약 600만년 전에 공동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친척이고, 침팬지와 보노보는 약 200만년 전에 갈라져 나온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이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약 50만년을 사이에 둔 매우 가까운 친척이고, 사람과 고릴라와 침팬지와 보노보는 약 700만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종이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올라가면 약 15억년 전에는 식물들이 모두, 인간과 하나의 조상을 가졌었다는 말도 된다. 그래서 사람이 숲 속에 들어가면 편안하고 친근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나서고 있다.
“예, 저도 들었어요. 사람과 침팬지 유전자가 99%나 일치한다면서요! 하하. 그런데요 아버지, 인류의 조상이 왜 하필 흑인일까요? 뜨거운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에 살아서 그런가요?”
정훈이 아버지의 풍부한 지식에 맞장구를 쳐가며 자기가 묻고 싶은 질문으로 근접해간다. 아무리 부친이라도 다짜고짜 알고 싶은 걸 질문부터 하는 것 보다는, 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즐겁게 해드리면서 부추기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아, 그거는 고생인류가 털을 잃어서 그래! 인류는 300만년 전부터 직립보행을 했고, 200만년 전부터 도구를 사용했단다. 그 기간 동안 털을 잃은 거야. 끊임없는 육체활동으로 땀이 나니까, 체온조절능력이 절실했겠지! 점차 몸의 털을 버리고 피부의 외분비 땀샘을 증가시킨 거지. 그런데 털이 없어지니까 이제는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야 되는 문제가 생긴 거야. 그래서 털을 잃은 인간은 검은 피부의 `멜라닌 색소`로 자외선을 차단했던 거지. 흑인은 썬크림이 필요 없겠지? 허허.”
부친 이재성의 해박한 지식이 거침없이 술술 터져 나온다.
“아, 그랬군요! 이제야 알겠네요. 하하. 아프리카 흑인들이 자외선 차단용 선크림 피부를 가지고 있네요. 그런데, 현생인류의 조상은 호모사피엔스인데, 네안데르탈인도 사하라에 함께 살았어요? 아니면, 유럽에서 따로 발생했나요?”
정훈이 궁금하던 부분으로 다가가는 질문을 한다.
“음, 인류의 원조인 고생인류는 모두 20여종인데 모두 그 당시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초원이었던 사하라에서 발생했다는 구나. 수십 명에서 수백 명 단위의 소규모 무리사회를 이루어서 수렵채취생활을 하면서 떠돌아 다녔겠지.”
“그러면 고생인류 전체 인구가 얼마 안됐겠네요? 몇 백만 명이나 됐을까요?”
“글쎄, 누가 그걸 알겠냐? 허허. 그래도 고고학자나 생물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지난 20만년 동안 총 인구가 늘 몇 만 명 수준에 불과했단다.”
“몇 만 명이요? 생각보다 되게 적네요! 하하.”
“사하라가 점점 사막화 되어가니까 호모사피엔스보다.. 50만년 정도 먼저 출현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이 지금으로부터 7만년 전쯤에 먼저 아프리카를 떠나서 유럽으로 진출한 모양이야. 그리고 우리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도 좀 늦은 6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서 이동을 시작했나 봐.”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예전만 못한 이재성이 바둑은 거의 두지 못하고 얘기에만 집중한다.
“아 하! 드디어 `출 아프리카 기`를 했군요! 하하. 아프리카 얼룩말이나 누 떼가 이동하듯이 수만 명이 떼를 지어 나왔을까요?”
정훈이 머리 속으로 원시인처럼 생긴 그 당시 조상들이 사하라를 무리 지어 떠나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니야! 그게 참 나도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인데, 약 6만년 전 그때 아프리카를 떠난 우리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모두 합해서 고작 2천명 정도밖에 안 됐단다!”
“예? 현재 74억 인류가 고작 2천명 조상의 후손이라고요? 아, 참. 아니구나! 먼저 떠난 네안데르탈인도 있지! 깜빡 했네. 하하.”
“아니다. 네 말이 맞다! 먼저 유럽으로 떠났던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약 3만년 전에 멸종했으니까, 현 74억 지구인의 조상은 6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사피엔스, 총 2천 명의 흑인이 맞는 거다! 허허.”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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