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조우 (1)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18. 조우 (1)
“아하, 그랬군요. 유럽으로 진출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군요. 네안데르탈인은 덩치가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컸다는 거 같던데, 어디 북유럽 추운 데로 올라가서 얼어 죽었나 보죠? 하하.”
정훈이 신기해서 물어본다.
“음, 학자들 얘기로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에 비해서 언어능력이 부족했던 게 원인일거라고 생각한대. 의사소통이 잘 안돼서 협동력이 뒤떨어졌을 거라는 구만. 식량으로 먹을 큰 짐승을 사냥하는데, 서로 협조가 안되면 놓치고 못 잡아서 굶어 죽을 수 밖에 별도리가 없지 않았겠나? 우리 현생인류는 말이 많아 소통이 원활해서 네안데르탈인보다 유연한 집단을 형성했을 걸로 짐작된단다. 그건 추측일 뿐이지, 수 만년 전 일을 어떻게 알겠냐? 허허.”
얘기하는 이재성도 화석 이빨이나 두개골만 보고 연구한 고고학자들 주장이 믿기지는 않는다.
“그런데요, 아버지! 유럽으로 건너간 현생인류는 어떻게 흑인에서 백인으로 변했대요? 그건 언어능력하고는 상관이 없잖아요?”
정훈이 제일 궁금했던 오늘의 핵심질문을 꺼낸다.
“음, 그건 추운 지방으로 이동한 인류는 자외선을 막아주던 멜라닌색소를 잃고 피부가 밝아져서 하얗게 변한 거란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 갈색 곰이 북극지방에 가서 살면서 백색 곰으로 변한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겠지? 허허, 물론 학자들 얘기야. 내 주장은 아니고! 허허.”
이재성도 이런 대목은 동의하기가 어렵다. 물론 북극 여우니 뭐니 해서 몇몇 유사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적인 동물인 인류의 피부색 변화 원인을 그렇게 몇몇 동물의 진화와 비교해서 그럴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 좀 억지 같지만 학자들 얘기니까 그러려니 해야겠네요. 하하.”
정훈도 피부가 까만 흑인이, 우리처럼 누리끼리한 황인종으로 변했다는 건 모르겠지만, 완전히 하얀 백인으로, 그것도 불과 6만년도 안돼서 변종이 되었다는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면, 멜라닌색소를 잃었는데 자외선에 의한 피해는 어떻게 막았대요?”
정훈이 최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다.
“음, 그 문제는 인간의 몸이 자외선을 거부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외선을 받아들여서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 D를 합성할 수 있게 진화했다는 구나. 그래서 하루에 15분 이상은 반드시 햇볕을 쬐라고 권장하고 있지 않냐? 이것도 좀 애매하지만 학자들 주장이니까 맞는가 보다 해야지 뭐 어쩌겠냐? 허허.”
고고학이니 지질학이니 생물학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저명한 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결과로 주장하는 학설일 텐데 그런가 보다 해야지, 뭘 어쩔 겨?
*** *** ***
“어? 이럴 수가!”
정훈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진다.
꿈속에서 본 어느 곳과 너무나 흡사하게 닳은 장소가 나타났다.
집채만한 큰 바위가 있고, 폭은 좁고 더 높은 바위 3개가 둘러서있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에 들 때면 레이저 건 시험장소를 물색해 보았다. 바위가 많은 산이어야 하니까 산 이름에 `악`자가 붙은 산부터 떠올렸다.
가까이 있는 관악산, 북악산을 떠올리다가 등산객이 너무 많은 곳이라 도리질을 했다. 바위가 많은 산으로 인적이 뜸한 곳이 필요한데, 그런 곳이 이 근처에 어디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멀기는 하지만 온통 크고 작은 바위로 뒤덮인 악양루 뒷산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 맞아! 악양루 뒷산이 제격이네.`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고 인적도 아주 뜸한 곳이라서 레이저 건 시험장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소다 싶어 결심하고 내려온 것이다.
악양을 생각하며 뒤척이다 깊은 잠에 빠졌었는데 꿈속에, 안개 낀 산중턱의 요상하게 생긴 형체의 바위 무더기가 어렴풋이 나타났던 것이다.
잠을 깨고 나서 말끔히 잊어버렸는데, 지금 여기 이 장소는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곳과 너무도 꼭 같아서 꿈에 보았던 형상이 뚜렷이 기억난다.
어제 밤 부모님이 계시는 악양루에서 오랜만에 사회생활에 찌들었던 육신과 영혼을 누이고 모처럼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며 숙면을 취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겠다며 집을 나선 정훈은, 마땅한 레이저 건 시험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악양루 뒷산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넓은 대나무 숲 끝자락에 지어진 탱자나무 울타리 한옥 삼 칸 기와집 악양루에는 온갖 종류의 꽃나무와 유실수들이 심어져 있고, 흙 마당 너머 멀찍이 경사진 계곡에는 버들강아지 늘어진 맑은 개울물이 흐른다.
한창 봄이 무르익어 개나리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온통 개울을 뒤덮고, 민들레와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피어나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봄비로 계곡의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개울물도 제법 졸졸거리는 물소리를 낸다. 겨우내 바위틈에 숨어있던 가재도 기지개를 켜고 기어 나와서 커다란 집게로 먹이사냥을 할 것이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산 위로 오르던 정훈은 두 키도 넘는 폭포절벽을 비켜 관목 가지를 휘어잡으며 언덕위로 기어 올라갔다.
악양에 여러 번 오기는 했어도 이렇게 계곡을 따라 멀리 올라와 보기는 처음이다.
둔덕위로 오르자 무성한 잔디와 잡초로 뒤덮인 널따란 분지가 나타났다.
분지의 산기슭 쪽에는 산에서 굴러내리다 멈춰선 커다란 바위들이 선사시대의 돌무덤처럼 여기저기 거석 무덤을 만들며 우뚝우뚝 서있다.
계곡물 소리도 들리지 않는 주위는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절간 같은 고요한 정적에 휩싸였다.
`여기는 뭐지? 돌무덤 턴가? 어째, 으스스한데!`
정훈은 땀이 솟으려던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갑작스런 한기를 느꼈다.
`저 바위들은 일부러 가져다 모아놓은 것 같은데?`
그 중에 영국 스톤헨지 거석 유적지의 바위처럼 길쭉하고 큰 바위들이 서너 개 몰려 서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어서 섬찟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그 바위들이잖아!”
정훈은 너무 놀라서 큰 소리를 내뱉었다.
바로 꿈속에서 보았던 그 바위들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 가운데 위치한 집채만큼 큰 바위를 중심으로 폭은 그보다 좁지만 높이는 훨씬 높은 바위 세 개가 큰 바위를 에워싸고 둘러서있다.
큰 바위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꼭 엎드린 두꺼비 형상을 하고 있는데 등성이가 평평하게 생겼다.
높기는 해도 중간에 층도 지고 바위 표면에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서 맨손으로도 쉽게 꼭대기에 오를 수는 있을 것 같다.
둘러선 세 바위는 서로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게 생겼는데, 밑에서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폭이 반쯤 좁아져 수직 벽을 이루며 곧장 솟아 올랐다.
얼핏 보면 전통방식으로 혼례를 치를 때 신랑이 착용하는 사모관대의 배불뚝이 모자처럼 생겼다.
신랑모자 바위는 표면에 틈도 없고 매끄러운 수직면이라서 긴 사다리를 걸치지 않고는 오를 수도 없는 형상이다.
전체 바위들의 형태는 세 명의 신랑모자가 삼각형으로 둘러서서 두꺼비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다.
`어 허. 내가 예지몽을 꾸었구나! 그런데 왜 이제야 기억이 나지? 하하.`
여기가 레이저 건 시험하기에 딱 좋은 장소라고 조상님이 미리 알려준 모양인데 잠 깨고 나서 깜빡 잊어먹었네.
그런데 어째 바위들 위치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 같지가 않은데?
신석기시대 때 원시인들이 고인돌 무덤으로 만든 게 저 두꺼비바위고, 옆에 둘러선 신랑모자 바위는 수호신으로 만든 선돌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바위들이 너무 커!
그리고, 섬진강 강가면 모를까, 이 높은 산중턱에다 무덤을 만들었을 이유도 없지.
그것 참 자연적인 모양새 치고는 희한하게도 생겼네.
어쨌거나, 조상님이 꿈에 알려준 장소니까 여기서 시험하면 되겠다.
인적도 없고 조용한 것이 아주 딱 이네. 하하.
`온 김에 큰 바위 위에나 한번 올라가 볼까?`
정훈은 키의 두 배 높이쯤 되는 두꺼비바위에 조심스럽게 올랐다.
맨손이지만 등산화 신은 발로 밑을 잘 딛고 받치니까 올라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흰색과 회색이 섞인 바탕이 화강암처럼 보이는데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표면은 우둘투둘하고 검은색이 많이 박혀있다. 바위의 경사가 들쭉날쭉해서 한참을 바둥거리며 겨우 두꺼비 등 위에 올라탔다.
두꺼비 등판은 안방크기만 한 게 아주 편편해서 네댓 명이 들어 누워도 되겠다.
오른다고 어찌나 용을 썼는지 코끝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바위 위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평사리 앞 악양 들판이 보인다.
섬진강 강물이 범람해서 옥토가 된 논이 수 십만 평은 되는 평야나 마찬가지인 넓은 벌판이다. 지금은 이른 봄이라 아직 볍씨를 심어 벼 모종 만들 모판도 안 들어섰지만, 가을에 와서 보면 무르익은 벼 이삭이 고개를 숙여 바람결에 몸을 부딪치며 황금물결을 이룰 것이다.
볍씨 한 말을 심어 농사짓기에 적당한 논의 면적이 한 마지기다. 한 마지기는 대략 200평의 면적으로, 가로 세로가 25미터인 정사각형의 크기이다.
한 마지기 농사를 잘 지으면 한 가마니에 80Kg인 쌀 4가마니가 수확된다. 성인 한 명은 1년에 80Kg짜리 쌀 2가마니를 먹는다.
그러니까 200평의 논 한 마지기를 농사지으면 성인 2명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쌀이 생산되는 셈이다.
심청전에 나오는 공양미 300석의 `석`은 쌀 2가마니를 뜻한다. 그러니까 성인 300명을 1년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이다.
1,000석이면 성인 1천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옛날에 천석꾼, 만석꾼이라고 불렸던 부자들은 자기가 소유한 논에서 1년에 1천석, 1만석의 쌀을 수확할 정도의 많은 논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쌀로 1천명, 1만명을 먹여 살릴 정도이니 얼마나 그 유세가 대단했겠는가?
위에 설명한대로 천석꾼이 가진 논을 거꾸로 역산해보면 그 면적이 10만평이나 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 최참판은 얼마나 많은 논을 소유하고 있었을까?
저기 보이는 광활한 평사리 앞 악양벌판의 논이 20만평이라고 가정하면, 그 절반인 10만평은 최참판 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최참판은 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천석꾼 반열에 올라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수확기 쌀 산지 가격이 80Kg 한 가마니에 15만원 정도니까, 한 마지기 농사지어 4가마니 수확해서 팔면 60만원 돈 받을 수 있다.
농부인 부부가 논농사 지으려면 네댓 마지기가 적당할 텐데, 1년간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고작 300만원 남짓 손에 쥐게 된다.
여기서 비료니 농약 값이니 제하고 나면 한숨만 남게 되지 않겠는가?
“어~이, 천석꾼 최참판은 양민에게 쌀 좀 나눠주시오!~”
정훈이 기지개를 켜더니 양손을 입에 모아 고함을 지른다.
뻥 뚫려 휑한 벌판을 향해 날려보낸 정훈의 외침은 메아리 되어 돌아오지 않고 허공 속으로 흩어져버린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잠시 후
- 어이.. 청서..꾸.. 양미.. 싸알··· 나노···.
하고, 메아리가 들려온다!
정훈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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