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시작
만남의 시작편1
탈로스는 한 장의 편지를 껄끄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이놈이 승부수를 과감히 띄우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뭘 어떻게 해? 초대장을 받았으니 초대에 응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그럼 최소한 장로 네 명은 데리고 가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탈로스는 메흘린을 응시하며 말했다.
"넌 그걸 걱정이라고 하는 소리냐? 아니면 날 믿지 못해 그러는 것이냐?"
"제가 다른 생각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걱정···. 아니 뜻대로 하십시오."
"그래, 그게 좋은 거야. 바로 그거지. 나대로 생각이 있으니까 말이야. 동행은 세렌과 칼멘 둘이면 충분해."
"조금 시끄러워 질 수도 있습니다. 야생왕이 아칸으로 진입하기 직전입니다."
"아, 지긋지긋한 추적꾼 놈. 이참에 말 대가리를 뽑아 버릴까?"
"···."
"뭐? 왜? 진짜 해 버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나 없는 사이에 많이 쪼그라들었다? 왜 그런 거야? 음, 어반마르스에 있는 가족들 때문에?"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너희 둘 다 가족들 볼모로 잡혀 있지? 언제든 내 뒤통수 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메흘린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 지옥에서 가족을 구해주셨으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 영감에게? 충성하라 하면 충성하겠다? 이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갑자기 무슨 일이 있으셨기에 저를 이리 몰아붙이십니까? 저와 아드리안은 언제나 태자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태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저희가 알고 있는데 설마 미치지 않고서야 그 일을 하겠습니까?"
"그래 알면 다행이다. 난 세상에서 나 자신 외에 다른 놈을 믿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늘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하거든. 이거도 알고 보면 꽤 피곤한 삶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으면 떠안아야 할 책임이 더 느니까요."
"세상을 빨리 안정시키면 되는 거지?"
"제가 태자님을 모시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풋! 인마 넌 평생 편히 살기는 글렀어. 제국이 평정되더라도 끊임없이 업무에 시달릴 팔자야."
"즐거운 임무면 상관없었습니다."
"바보, 세상에 즐거운 임무가 어딨어? 죽을 때까지 진기 쪽쪽 빨려 가며 봉사하다 결국 관짝에 들어가는 거지."
"제 운이 거기까지라면야."
"둘째는 잘 지내? 건강하고?"
"아니 그걸 어떻게?"
"얀마. 난 귀도 없는 줄 알아?"
"···."
"보고 잡냐?"
"아무래도 아비의 손길 한 번 받아 보지 못했으니."
"곧 잡아 보게 만들어 줄게."
"생각해 주시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성군은 대기 중이지?"
"어제 불사왕이 어반마르스를 떠나 북상하였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마 국경의 성군과 합류하여 그들을 지휘할 모양입니다."
"그래? 황제도 아칸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한 모양이군."
"그럼 케이사르의 초청장 이야기는?"
"보고해. 황제도 알아야 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참 레베카님이 일전 이곳에 들렀을 때 사령 쥐를 한 마리 두고 가셨습니다. 새로운 놈이라고 하시며. 이제 연락은 이것으로 하시겠다며···"
"허, 내 허락을 먼저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 일루 줘봐."
메흘린은 급히 허리에 차고 있는 사령 쥐 한 마리를 풀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탈로스는 손바닥 위에 사령 쥐를 올려놓고 주문을 외자 삐쩍 마른 사령쥐가 피를 넣지 않았음에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이건 테츠가 만든 사령쥐에 마녀의 주술을 덧씌운 작품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뭐죠?"
"어라? 오랜만이야. 웬일로 이렇게 빨리 받아?"
"흥, 제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를 것 같군요."
"야. 네가 한 일을 생각해봐. 황제의 멍멍이가 되어 내 옆에서 꼬리만 처 흔들다가 내뺐잖아. 멍멍."
"아 놔. 미쳤나? 예전의 개망나니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다. 멍멍."
"개 짖는 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이죠?"
"요즘 분위기 어때?"
"무슨 분위길 말씀하시는 거지요? 여기는 늘 한결같아요."
"에르제베트 일황비는 여전하시고?"
"옥살이나 마찬가지예요. 거처에서 한 발짝도 나오시지 못하세요."
"쩝, 나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 영감은?"
"늘 똑같은 패턴이죠. 일어나서 성 한 바퀴 도시고 식사하고 점심까지 검술 연습. 점심 후 저녁까지 사열이나 사냥을 즐기시고 저녁 후에는 만남을 여시고 좋아하시는 체스도 가끔 두시고요."
"태평하게 노시는구먼. 그딴 거 말고 다른 건 없어. 성군은 왜 안 움직이고 국경에서 꼬물꼬물하는 거야. 확 가서 아칸 엎어 버리고 숨어 있는 쥐들 잡아내면 되지."
"황제는 하나를 두려워해요."
"아니 황제가 두려워하는 것도 있나?"
"있죠. 당연히."
"당연히? 당연히···. 나?"
"그럼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어요?"
"왜?"
"후, 그거 있잖아요. 황제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비더언스 샤우트 그걸 해결하기 전까지는 국경을 넘을 수 없어라고 말이죠."
"오비디언스 샤우트? 그게 뭐지?"
"당신의 특수 스킬이잖아요. 테에칸 시티를 침공한 토멘트 오버로드 공작의 군세를 단 한마디 말로 굴종시켰잖아요."
"아, 그거네 그거 태모의 정신은 모든 마족에게 이어져 있어. 소울 슬립을 걸 때 태모의 정신이 내게 흘려들었는데···. 난 각성자를 지배할 수 있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바로 그거죠. 황제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단 하나의 이유. 성군은 당신의 말 한마디면 끝이죠. 더군다나 당신 첩실에게도 가르쳐 주었더군요."
"첩실? 뭔···. 아. 로만 울프가의 딸내미 세일럼 이야기야. 쩝. 그네들도 뭔가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지 안심이 되는 거고 마교 쪽에서도 큰 빚을 하나 얹어 놓은 건데. 언제든 활용하려는 차원에서 해둔 것뿐이야. 성군은 로만 울프가의 드라고나 왕국을 침공하지 못할 거다. 세일럼의 한 마디면 성군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니까. 크크크."
"후후, 당신은 치밀함을 넘어 사악할 정도예요."
"야, 두 눈 뜨고 내 몸뚱이라 잃게 생겼는데 대비는 하고 다녀야지. 그리고 너 서방한테 하는 말에 가시가 있다? 왜 첩실 뒀다고 시샘하는 거야 뭐야? 야. 영감도 넷이나 데리고 다니는데 나도 질 수야 없지. 분명히 말하는데 영감보다 더 달고 다닐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내가 말이야. 소싯적에는 개망나니로 있을 때는 말이야. 여자 보기를 음식과 같이했다고. 맛있는 것도 오래 먹으면 질리니까 돌려 가면서 먹어야지."
"웩. 갑자기 구토가 쏠리려고 하네요."
"그래서 날 잡겠다는 거야 안 잡겠다는 거야?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거니? 이번에 기간테스 뺏겨서 어쩌나? 아직도 찾고 있다며?"
"저더러 숨겨 놓을 만한 곳을 유추해 보라고 난리예요."
"그래서 말했어?"
"제가 어딘지 어떻게 알고 말해요?"
"너 내가 가장 싫어···."
"네크로맨서 죽음의 사막요."
"···. 제길! 누가 내 마루나 아닐까 봐서. 네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어."
"걱정하지 말아요. 황제께는 말하지 않을 테니. 황제는 맨시티에서 많은 소와 양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까지 알고 계세요. 당연히 그것이 무엇 때문인 줄도 알고 계시겠죠?"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또 뭐 색다른 거 뭐 없어?"
"아까 한 이야기지만 오비디언스 샤우트를 후아신 왕도 알게 되었어요. 테에칸에도 킹덤 오브 소서러스가 파견된 건 아시죠?"
"그래서?"
"후아신왕도 난리 났죠. 세일럼이 할 수 있다면 자신들도 할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지금 레노번을 들들 볶고 있을 겁니다. 오비디언스 샤우트만 사용할 수 있다면 성군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죠. 저번 금서 사건 때문에 비굴함을 당했잖아요. 후아신 왕은 미쳐 날뛰기 일보 직전이세요. 그는 자기 딸에게 급히 공문을 보냈는데 그게 하필 황제가 보셔서. 여기도 그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요."
"쩝, 그건 함부로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야. 남은 포션도 몇 개 없어."
"포션? 흥, 특별한 포션이 필요한 거군요."
"그럼 그게 무한정 되는 것 같아. 아서라.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포션만 마셔도 안 돼. 내가 소울 슬립을 걸어 주지 않으면 부질없는 짓이야."
"와. 제가 그렇게 부탁해도 안 들어 주시더니 세일럼 그년에게는 그냥 대가 없이 후딱 먹여 줬다고요?"
"아니 입이 왜 이렇게 싸? 그년이라니. 둘째 부인한테 벌써 독을 품으면 어떻게 해."
"재수 없어. 이만 끊을래요."
"아니. 그런다고 또 삐치고 그래."
"여하튼 테일리아드 정세를 한 번 살펴보세요. 지금 난리 났으니까요."
"무슨 일이래?"
"직접 알아보시라니까요. 전 이만 가요."
"잠깐, 잠깐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았어."
"뭐예요. 이제 시간 없어요. 빨리 말해요."
"황제는 케이사르 그놈 왜 그냥 두는 거야?"
"말했잖아요. 당신이 두려워서 성군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요. 그러니 당신이 알아서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거죠. 그는 분명히 당신에게도 걸림돌이 될 테니까."
"영감은 내가 무얼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거야?"
"몰라요. 황제께서는 심안이 통하시지 않는 분이라. 속내를 저도 몰라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케이사르 따위가 아녜요. 뭔가 더 큰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그것까지는 모르죠. 이제 연락하지 말아요. 둘째 부인이나 껴안고 자든지 말든지."
"삐졌구나."
-피시시식
사령 쥐는 김이 빠져 쪼그라든 미라처럼 변했다.
"뭘 그리 헤벌쭉 웃는 거야?"
"아, 아닙니다."
"대충 들었지? 일단 테일리아드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좀 알아봐."
"네, 당장 연락해 두겠습니다."
"레베카가 기간테스의 위치를 꿰고 있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입을 잘못 놀리면 곤란한데. 사막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오직 에르제베트 일황비뿐인데 황제가 그 사실을 알면 일황비 입장도 곤란해져. 레베카가 입조심을 해야 할텐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레베카님은 황제 모르시게 저희를 많이 도와주고 계십니다."
"영감이 몰라? 웃기는 소리지 알면서 모른 체 하는 거라고."
"참 이번에 잉겔리움 광산 교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광석도 제법 모였고 윌슨도 거의 재료가 소진되어 갑니다."
"야, 이거 포탈을 열 수 있는 것이 나뿐이니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닌데?"
"주문을 안다 해도 라마단의 정수가 아니면 열 수가 없으니까요."
"이거 뭔가 방법을 마련해야 하겠어."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움직이시겠습니까?"
"가장 소란스러운 곳부터 가봐야지. 보니 마교 때문에 성군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 오비디언스 샤우트 인가 뭔가 하는 게 두렵긴 두려운 모양이군."
"그야 멈춰라! 이 한마디에 수만 명의 대군이 일시에 멈춰 버리니까요."
"칠무신도 각성자 포션을 마셨지? 칠무신에 통할까?"
"성력을 가졌으니 통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케이사르가 어둠에서 나오지 않는 것도 토멘트 오버로드를 통해 오비디언스 샤우트의 위력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그러고 보니 갑자기 기간테스를 찾는다고 난리를 친 것도 그렇고 본드래곤도 부활시키고 엉뚱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더니 각성자의 한계를 알고 뭔가 다른 힘을 찾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일 수도 있네."
"금서 사자의 서는 몰레이그가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일곱 권의 금서는 각각 독단적인 내용을 가진 별개의 책 같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이어져 있습니다. 기간테스의 존재는 오직 페로니우스의 서에서만 거론되죠. 그곳을 열 수 있는 포탈은 사자의 서에 기록 돼 있고 기간테스를 제어하는 방법은 마탄의 서에 기록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 세상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브리엄도 말라키의 금서를 탐내하고 원본을 다 모으려 하지. 그것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청난 비밀을 담겨 있는 것 같아."
"지금 여섯 권의 책이 나왔죠. 일곱 권째가 나오려면 여섯 번째 책의 마법이 활성화 되어야 합니다."
"아르마할에 여섯 번째 필사본을 해석하는 대로 연락해 달라고 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 아. 참 이놈의 세상은 피곤하게 돌아가는구먼. 언제 두 다리 쭉 뻗고 잠잘 날이 올까."
"곧 그렇게 되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잖습니까?"
"음, 나도 인간이야.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다시는 아칸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돼. 다시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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