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테스7
기간테스7
-콰쾅
천장을 찢어발기고 들어온 것은 지금까지 본 메테오 중에 가장 큰 것이었다.
정확히 레베카를 노리고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지면 근처 사람은 증발해 버릴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그때 거인 하나가 몸을 날려 떨어지는 메테오를 한 손으로 덥석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손바닥에서 불이 뿜어지며 살타는 냄새가 온 사방으로 퍼졌다.
"조심해. 이따위 것은 사용하지 말아."
거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메테오를 한 손으로 으깨버리며 돌아섰다.
레노번은 두 눈만 껌벅껌벅 한 채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조심해요."
그제야 레베카가 고함을 쳤다.
세렌이 바이올렛을 거두었다. 아수라멸천검은 정확히 프랜시스를 향했고 그가 있던 자리의 바닥은 박살이 났고 뿌연 돌가루가 심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이곳은 지하다. 횃불의 불빛에 의지하고 있는 터라. 조금 전 소동으로 횃불이 심하게 흔들리자 각자의 그림자 또한 심하게 흔들렸다.
칼멘은 세렌이 검을 거두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프랜시스를 찾았다.
"레노번 우리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어요?"
레베카는 마녀다. 그녀의 전투력은 형편없을뿐더러 마법도 구사하지 못한다. 즉 물리적 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조금 전 거인이 메테오를 낚아채지 않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다.
그녀의 품속에서 수많은 까마귀가 일제히 날아올라 레노번을 둘러싸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가 메테오 주문을 또 외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이다.
"멈춰시오."
레베카의 뒤쪽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베카는 기겁하며 돌아서려 했지만, 그의 손이 더 빨랐다.
레베카는 갑자기 온몸을 경직시키더니 뻣뻣하게 굳은 채로 쓰러졌다.
뒤에서 그녀를 받쳐 든 것은 프랜시스였다.
레베카는 열 살 아이 몸이라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성군은 싸움을 멈춰라. 레베카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성군은 바로 검을 거두고 물러났다. 다행히 실력이 비등한 탓에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다.
"조심해요. 레노번께서 메테오를 사용할지 몰라요."
"걱정하지 마. 칼멘 이곳은 마나가 없는 차원이야. 그는 가진 마나를 모두 쥐어짜서 메테오를 사용했어. 마나 부족으로 이제 더는 사용하지 못해."
레노번은 이미 죽을 각오로 가진 마나를 총동원하여 메테오를 소환했다. 적어도 레베카만은 잡을 셈이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거인의 반사 신경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현자님 너무 비약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거인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내면 되는 겁니다. 저도 함부로 거인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저들을 무슨 수로 통제한다는 말인가?"
"기다려 봅시다. 저들의 말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프랜시스는 세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렌 네가 레베카를 맡아라. 그러는 편이 성군이 제일 조용할 거야."
"알겠습니다."
세렌은 고분고분하게 말하며 걸어가 프랜시스로부터 기절한 레베카를 받아 들었다.
칼멘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전까지 아수라멸천검까지 써가며 죽이려 하더니 이번에는 프랜시스의 말을 깍듯하게 받아들인다.
그 찰나의 순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주변에 정적이 찾아왔다.
성군은 날카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고 베틀 워락도 프랜시스를 행해 적의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현자인 레노번의 말을 신뢰한다. 프랜시스의 정체를 믿을 수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그는 절대로 평범한 베틀 워락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점혈을 풀어도 될까요?"
"그러고 싶으면 그래도 돼. 하지만 워낙 교활한 마녀라 조심하는 편이 좋을 거야."
세렌은 레베카의 점혈은 풀었다. 대신 말을 하지 못하도록 아혈을 되짚었다.
레베카는 눈만 말똥말똥하며 말을 하려고 애를 몇 번 쓰다가 포기하고 세렌의 팔에 대놓고 축 늘어졌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 찾아온 고요함은 차가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언니, 그가 아수라멸천검을 피했어요? 어떻게 된 거죠?"
칼멘은 세렌의 행동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중에. 지금은 아니야. 나중에 말해 줄 테니까."
그때 프랜시스가 세렌에게 다가와 품 안에서 포션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마셔 빈 병으로 만든 뒤 단검을 꺼내 주저 없이 레베카의 왼팔을 그었다.
성군이 움찔했지만, 프랜시스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게 그녀의 피를 조금만 받는 것뿐이니까."
레베카는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붕어처럼 벙긋벙긋하려 해지만 아혈이 집혀 그것마저 되지 않았다.
레베카의 피를 포션 병에 가득 채운 프랜시스는 만족해하며 입구를 봉했다.
상처 난 레베카의 손목에 입술을 대고 핥아 주니 상처는 곧바로 아물었다.
사람들은 그가 왜 레베카의 피를 받는지 알수가 없었다.
현자 레노번만이 무언가 짐작을 한 듯이 말했다.
"자네는 레베카가 여기 온 이유를 알고 있구나. 도대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이미 제 정체는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큰 소리로 말해 다 들었을 텐데요?"
콜베르가 끼어든다.
"그러니까 마법사 평의회 조사관이면서 후아신 왕의 특사고 마교의 교주부터 무공 스킬을 배운 마교인이며 황제와도 관계있는 사람이란 거죠? 우와."
"맞아. 콜베르, 네 말이 정답이야."
"그럼 자신을 신분을 완벽히 노출하는 건데요?"
"그래야 이곳 사람들의 싸움을 말릴 수도 있고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타협이라는 절충안을 낼수 있는 거지. 세렌양과 불사왕은 솔직히 너무 강해 제압하기 힘들고 레베카님은 마녀니까 주술이 무섭지. 이들이 싸운다면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이나. 난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내 신분을 말한 거야. 중재가 가능한 사람은 나뿐이니까."
칼멘이 끼어든다.
"세렌 언니의 검을 어떻게 피했죠? 갑자기 레베카님의 뒤쪽에서 나타난 것은 어떤 속임수죠? 전이 마법인가요?"
"마나를 사용한 흔적은 없네. 그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어."
레노번의 말에 칼멘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되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프랜시스에게 쏠렸다.
다른 사람은 이런 환경에 대해 전혀 몰랐고 이질감 정도 느끼는 수준이지만 프랜시스는 마치 계획된 것처럼 차근차근 움직여 나갔다.
더욱이 그가 다크 디멘션 포탈을 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레노번이다.
만약 프랜시스가 엉뚱한 마음을 품고 기간테스를 밖으로 내보낸다면 인류는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그래서 프랜시스를 제거하려 했다.
"자네의 진정한 정체와 의도를 밝혀 주시게. 그러지 않는 한 내 목숨을 걸고 자네를 방해할 걸세. 나를 이해시키지 않는다면 자네의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겠네. 자네는 정확히 누구를 위해 일을 하나?"
"모두를 위해 일합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주신 제국의 인간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가 기간테스를 제국으로 내보내려 하는가?"
"그것에는 현자께서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해하는 날이 올 겁니다."
"모호한 답으로 상황을 넘기려 하지 말게. 나는 내 삶에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하네."
"이미 보유한 마나를 모두 써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다시 마나를 모으실 수 없을 텐데요?"
"날 보통 사람으로 착각하지 말게."'
"알고 있습니다. 현자께서는 마나가 가득 충전된 마나 구슬이 담긴 곳을 공간 전이로 불러낼 수 있을 만큼의 마나를 남겨 놓으셨다는 것도요. 그건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끝이질 않습니까?"
기간테스의 웅성거림이 더 크게 들려왔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 일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레노번은 현자다. 그들이 지금 무엇 때문에 저렇게 머리를 싸매고 토론하는지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프랜시스라고 생각했다.
"조금 전 한 명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지? 어디를 보여 주었나?"
"마교의 본산지 맨시티입니다."
"그러다 놈이 뛰쳐나가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하려고?"
"저 네 명은 거의 만년 가까이 이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서로의 살을 나눠 먹고 연명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오랜 세월을 버텨 냈다면 그들 중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쯤은 충분히 할 수 있죠. 저 네 명 중 그 누구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저렇게 오랫동안 의견을 나누는 것만 봐도 알수 있죠."
"저들에게 무슨 난제를 주었는가?"
"난제는 아니고 간단히 답을 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정도입니다. 절대 인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할 것 그것을 어길 때 어떻게 할지 내게 만족한 답을 내어 줄 것. 인간에게 큰 위협이 닥치면 인간을 위해 전선에 나가 싸워 줄 것. 역시 명을 듣지 않았을시 어떻게 할지 제게 만족한 답을 내어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저들이 그걸 지킬 거라고 보는가? 이미 인간의 고기를 또 먹었어. 만약 오랫동안 인간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최근 이곳을 방문한 몰레이그의 수하들을 먹어 치웠어. 천년이 지나든 만년이 지나든 인간 고기 맛은 잊지 않았다는 거지."
"현자님 이곳에 먹을 것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년을 서로의 살점을 베어 먹고 살아왔는데 먹을 수 있다면 바퀴벌레라도 잡아 먹었을 겁니다. 맛을 위해 인간을 먹은 것이 아니라 충동으로 먹은 것뿐이죠. 인간을 대용할 먹거리는 차고 넘습니다. 거인을 위해 제공할 소와 다른 야생동물은 충분합니다. 나라에서 거인을 먹일 목장을 운용해도 될 일이죠."
"자네 말에 인간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본드래곤 같은 괴물이 또 등장하거나 마족이나 인간을 위협하는 것들을 대비해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는 거죠."
"자네 말은 그럴싸하지만 그건 자네의 망상에 지나지 않아. 저들을 보게 인간 이상의 감정과 욕망이 있어. 언제든 우리를 배신할 충분한 요건은 자네 말대로 차고 넘쳐 보이는군."
"맞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제가 답을 달라고 해 놓은 겁니다. 제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답을 주지 않는다면 이곳을 나갈 수 없다고 못 박아 두었으니 기다려 보시죠. 이참에 현자님께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네가 공감할 일은 하나뿐이네. 저것들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뿐일세."
"글쎄요. 기다려 보자니까요."
생각과 달리 거인의 토론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그들에게 시간의 개념은 없다. 만년의 세월을 비교하면 오늘 이 하루 정도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 뿐이니까 말이다.
싸움은 멈췄지만, 이상 기류는 계속 맴돌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가장 큰 무게 중심이 프랜시스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것이다. 전투력이 가장 높은 세렌과 칼멘이 프랜시스에 합류하는듯한 분위기고 나브와 네크로맨서 부부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자연히 프랜시스 쪽으로 넘어왔다.
레노번과 콜베르를 중심으로 한 베를 워락, 레베카를 중심으로 한 성군, 프랜시스 팀 이렇게 세 부류로 나뉘어 서로 거리를 유지한 채 대치 아닌 대치 중이었다.
사실 여기에 불사왕이 가세한다면 당장 판세가 뒤집힐 판국인데 하필 그는 아직도 거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프랜시스는 거인에 부탁하여 매달려 있는 반사르가의 기사와 살아남은 네크로맨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반사르가의 기사 일곱에 네크로맨서 세 명이었다. 네크로맨서의 몰골은 흉측했다. 그만큼 사기가 짙다는 소리다. 세 명 모두 소환형이 아닌 제작형 네크로맨서라 소환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자라키와 시소리는 동병상련을 느꼈는지 세 명의 네크로맨서를 설득했고 반사르가의 기사들은 자진해서 프랜시스에 팀에 붙었다. 그들로서는 성군이나 베틀 워락보다는 그나마 프랜시스의 마교가 나았다.
사실 이들도 거인의 뱃속으로 직행할 처지였는데 몰레이그의 입담으로 살아남아 있었다. 물론 몰레이그가 좋은 뜻으로 그들을 살려 둔 것은 아니다. 모두 죽여 사령을 만들어 사기를 뽑아내는 데 사용하려 했기에 그들은 몰레이그의 죽음에 애도조차 표하지 않았다.
거인은 잠도 자지 않고 계속 웅성거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머지 인원들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프랜시스는 레베카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아시죠? 당신의 행동은 황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에요. 하긴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세렌 때문이죠. 그녀는 세상에서 오직 단 한 사람의 명밖에 듣지 않거든요. 당신이 그녀를 불렀을 때 그녀는 망설임조차 없었어요. 오히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더군요. 제가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했겠어요?"
"허, 당신의 추론은 늘 한 박자 어긋나는군요."
"글쎄요. 어긋난 건지 당신이 모두를 속이는 건지 두고 보면 알 일이죠."
"후후, 그렇게 믿는 편이 차라리 저에게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한 번 속여보시죠."
"그러니까 전 레베카님을 속일 이유가 없는데요?"
"흥, 그럼 제가 마음 놓고 주술을 사용해도 되겠지요? 상당히 귀찮아질 텐데요. 제가 지금까지 주술을 사용하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아시죠? 특히 제 피를 가지고 있는 만큼 당신 하나 제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죠. 아니라고 해도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무슨 답을 듣고 싶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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