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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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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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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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백(1)

DUMMY

-타백(拖白, Hand in a blank paper)-





나 백사는 도대체 얼마동안 혼수상태에 있었는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된다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개 짓는 소리에 부랴부랴 깨어보니 주변에는 짐승 냄새가 진동하더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보이는 공간으로 들어갔소이다.

악!

소스라치게 놀랍게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머리카락이 박박 밀린 대가리에 엉기성기 꿰맨 자국이 확연하지 뭐요.

당연지사 온몸엔 멍투성이구려.

어려운 말로 백공천창(百孔千瘡)이랄까.

이래서 꿈속에서도 찌르는 듯한 통증과 뻐근한 욱신거림을 느꼈던 것이었소.


그랬다오.

작금의 나의 대갈통과 몸통처럼 깨어진 시간의 파편을 추스른 결과, 지난번 파금(波金)으로부터 야구방망이로 난타를 당한 결과가 확실해졌나니.

더불어 어떤 미치광이가 뜬금없이 나타나 파금을 가위와 면도칼로 도륙 낸 것도 생각났다오.

여태껏 본 가장 엽기적인 살인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하오.

암튼, 난 도무지 알 수 없는 곳에 버려진 유기견인 양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한 위험을 감지했으니.

입을 막고 모지름(고통을 견뎌 내려고 모질게 쓰는 힘을 뜻하는 북한어)이나마 낼 수밖에 없었소.


그때 돌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반전 매력의 상냥한 목소리!

“이제야 깨어나셨군요.

여사님께서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인해 병원에 갈 형편이 아니라는 걸 감안해 제가 감히 응급처치를 좀 했습니다.

허락도 없이 치료한 점은 양해해 주세요.

비록 돌팔이일지언정 나름 성심성의껏 봉합수술에 임했으니까요.

전 교회에서 우연히 나를 관찰하시던 여사님의 눈빛과 온몸에서 풍겨오는 죽음의 진동을 감지하고는 같은 부류라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제 몸속 악마가 여사님 신체에 깃든 살인귀와 화답을 했다고 치죠.

그러한 까닭으로 전문 킬러만이 낼 수 있는 지옥의 향기에 취해 황홀경 속에서 여사님의 뒤를 밟았던 것이고요.

마침 어떤 자로부터 난타를 당하며 생명의 위험에 처한 당신을 극적으로 구해낼 수 있었답니다.

고맙게도 말이죠.

전 꼭 사람을 죽이고는 교회에서 회개하면서 울곤 한답니다.

불쌍한 희생양들을 위해서죠.

하지만 원래가 크리스천은 아니었고요.

일찍이 어머님께서는 제가 곤충이나 짐승들을 재미 삼아 죽이는 모습을 보시고 기겁을 한 나머지 어린 절 출가시키셨죠.

동자승으로요.

불교에선 살생은 금물이지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에도 엄연히 살인하지 말라고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지만요.

첫 번째가 아닌 여섯 번째 계명으로요.

허나 전 타고난 사이코패스라 그런 계명을 지킬 수 없기에 대신 짐승들을 알뜰살뜰 돌보고 있답니다.”


놈은 나와 대화하는 와중에서도 자꾸 한쪽 눈을 슴뻑이며 한참을 사골 국물 같은 것을 끓이고 있었소.

사뭇 유기동물 돌봄에 헌신한다는 자원봉사자의 포스로 말이오.

난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음에도 애환 서린 눈으로 끔찍한 얘길 실토하는 놈에게 기겁을 하면서도 갑자기 너무 궁금한 사실에 대해선 결단코 참을 수 없었소이다.

죽은 파금의 시체를 어찌했는지 말이오.

따라서 상냥한 살인자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하고 말았다오.


지나치게 상냥한 그놈이 무척이나 친절하게도 답해주길.

“그분의 죄 많은 몸뚱이는 여기 제가 길에서 주어온 불쌍한 ‘abandoned dog’에게 보시(報施)를 했답니다.

그분께선 비록 살인마일지라도 남의 생명을 빼앗는 데 대한 품격과 철학이 부재했어요.

반짝인다고 다 금이 아니듯이 살인이라고 다 같은 살인이 아니잖아요.

이런 분들을 정금(精金)으로 가기 위한 제련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B급 내지는 삼류라고 부르죠.

제가 보건대 앞으로 여사님과 마찬가지로 파금이라고 부르는 그분도 일평생을 도살자로 살아왔으니 가엽은 축구(畜狗)에게 좋은 일이나마 한 번이라도 하고 가야겠죠? 그깟 썩어 없어질 육신이 뭔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바로 이 건대요.

한 점 드셔보시겠습니까?

저도 이 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절간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거든요.

환속(還俗)이라고 하죠.

하지만 난 절대로 반려동물에게 인간의 날것을 먹이지 않는답니다.

야생의 본능이 살아나 주인인 저의 살점까지 넘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즉 깔끔하게 브라질리언왁싱까지 끝마친 뒤에라도 한번 데쳐서 주지요.

이런 얘기까진 뭐 하지만.

난 정체성에 있어서는 ‘극보수’로 분류된답니다.

좌우익을 스펙트럼으로 나타내는 그래프 상에서 오른쪽 끝에 있다는 ‘Individual Anarchist’라고 들어는 보셨나요.

만찬가지로 왼쪽 끝에는 ‘Social Anarchist’겠지요.

전 독특한 후각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체취에서 정체성이나 사상을 가늠할 수 있어요.

여사에게선 독특한 비빔밥 내지는 폭탄주 냄새가 났답니다.

원래 기본은 극단적 공산주의였음에도 자본주의와 심지어 최근 복음주의까지 혼합된 변태적 정체성이랄까요.

하긴 뭐 요즘 우리 한국의 정치판과 비교하자면 그딴 게 중요한가요.

예를 들자면 사회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서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인물들이요.

이런 투로 요것조것 갖다 붙이는 집단을 이단으로 규정하면 틀림없어요.

그러면서도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합쳐놓은 ‘Liberal Democracy’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더라고요.

이게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하나요.

대중을 미혹하기 위한 가증스러운 편법이잖아요.

기록된 바에 의하면 사탄도 인간 앞에 절대로 흉측한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대요. 그러한 이유로 저와 같은 탁월한 후각을 통해 사상의 갑옷에 숨어있는 인간성의 본질을 밝혀내야죠.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Ambrose Bierce)’가 〈악마의 사전〉에서 그랬다죠.

‘정치는 원칙의 경쟁으로 위장하는 밥그릇 싸움이다.’라고요.

그러므로 평소 법과 원칙만 따지고 앞세우는 자들을 잘 살펴야 해요.

내가 실로 존경해마지않는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께서는 ‘법은 힘센 자의 권리다.’라고 말씀하셨다면서요? 아닌가요?

그분은 모든 권력에 반대한 진정한 아나키스트랍니다.

법을 다루는 판‧검사나 변호사들은 인간의 시시비비(是是非非)나 따지거나 거래하면서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 을 가지고 상처를 주는 자들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그들 중에는 의금(衣襟-옷깃)에 무고(無辜)하고 가난한 자들을 죽인 피가 묻어있어서요.

이런 부류들이 궁궐과 여의나루에 너무 많으면 정작 상처받아 위로받고 싶은 민중들은 좌절하기 십상이죠.

심지어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를 한번 하라고 강권하기 일쑤더군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희 엄마는 동물병원 수의사였던데 반해 아버지는 개농장을 운영하셨지요.

정말 짝짜꿍이 잘 맞는 부부였답니다.

엄마에게 맡겨진 아픈 개들은 설사 가벼운 질환이더라도 바로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개농장에서 협업 중인 사철탕 집으로 직행했어요.

그러니 제발 너무 그렇게 황당한 표정은 짓지 마시고 제가 부모 대신 개들에게 속죄하는 셈 치세요.”


그랬다오.

나 백사가 아무리 북조선에 있을 땐 단백질 공급을 위해 단고기(개고기)를 꽤나 먹었소만 이런 식으로 개밥으로 전락하다니.

순간 상상력을 발휘해 상황파악을 해보니 이 연쇄살인마는 희생자들의 시신을 전문 암살자들처럼 야산에 묻거나 염산으로 녹일 필요도 없이 개나 고양이에게 먹였던 것이오.

몸소 뼈까지 고아서 말이오.

사방을 둘러보니 동물을 사랑하는 애견인 덕분에 이렇게 평소 인육을 섭취하는 귀족 갑질 축생(畜生)들이 삼십 여 마리는 족히 될 것 같더이다.


이러니 놈이 아무리 많은 생명을 앗아갔을지라도 아무 흔적도 남을 수 없는 거였소. 곧이어 내 사지가 개들에 의해 거열형(車裂刑)을 당하듯 뜯겨 나가고 능지처참(凌遲處斬) 보다도 참혹하게 뼈째로 개 혓바닥에 핥아지거나 탕으로 녹여진다니 눈앞이 새카매지는구려.

그럼에도 놈의 연장처럼 날카로운 분석력은 이미 고인이 된 파금에 대해 정확하게 해석하더이다.

마치 요즘 남조선 각계에는 파금처럼 철학과 품격이 부족한 인사들이 널브러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구 듣자니 참고로 이놈 직업은 의사나 헤어디자이너가 아닌 애견 관리사였소.

이놈들아!

동물의 품격만 중요하고 정작 북조선 인민들의 인권은 개에게나 주었더냐!


상황이 이러하거늘 이어지는 이젠 듣기도 싫은 ‘동물권 운동가’의 간증!

“제가 동물보호에 본격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BB 때문이에요.

혹시 모르시나요.

그 유명한 몸짱여신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를?

전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를 전후해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인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데 자극을 받아 회개하게 되었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무슬림과 불법이민자,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한 마디로 개만도 못하게 보는 극우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요.

그래서인지 네 번째 남편 역시도 바로 마크롱 대통령을 바짝 위협 중인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간부가 아니던가요.

단지 심장이 약한 분께선 그녀의 전성기 시절 사진만 보시고 근황에 대한 절대 열람을 금지하기를 바라요.

잡다한 여담이지만 BB여사께선 동물 보호에는 앞장서면서도 자기가 난 친아들과도 냉랭한 관계라는군요.

자! 이제 여사님의 운명이 걸린 시험문제를 내겠습니다.

잘 모르시면 백지를 제출해도 괜찮습니다.

Hand in a blank paper?

묵묵부답(黙黙不答)은 멍청하게 보이기는커녕 겸손을 상징하죠.

괜스레 아니면 말고 식으로 오답을 내서 가혹한 운명에 처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제가 이 땅에서 아니면 말고 식으로 혀를 터는 중생들을 너무 싫어해 축생으로 환생시키는 작업을 본의 아니게 한답니다.

부디 여사께 ‘Gad(가드-god of fortune)’가 임하시어 정답을 맞히고 ‘Meni(무니-god of destiny)로부터 수명을 대폭 연장받기를 기원합니다.”


나 백사는 너무 황당무계(荒唐無稽) 한 놈의 제안에 치를 떨면서도 ‘물을 건 묻자.’라는 평소신념으로 말을 이어나갔소이다.

‘첫째 만약 내가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어떻게 처리되는지?

당연히 이 물음이 제일 궁금하잖소.

둘째 물론 사돈 남 말 하느냐는 살인마의 비난 여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느냐?

셋째는 내친김에 짐승의 목숨을 인간의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여기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냐?

넷째 저 많은 동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

다음으론 혹시 사람들 앞에선 유기 동물을 구조하는 사랑의 천사로 칭송받지만 뒤로는 안락사시키는 악마가 아니냐?

마지막으론 혹여 저 동물들에게 일일이 이름이나 지어 주었느냐?’ 등등이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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