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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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최근연재일 :
2024.09.14 21:45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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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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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1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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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사이버렉카(3)

DUMMY

현준은 잠을 꼴딱 샌 채로 분한 마음에 소속사 회의실로 새벽에 날아간다. 여름이었으면 해가 이미 솟았을 이 시간에 회의실은 적막함이 감돈다. 회의실은 아무도 오지 않아, 텅 비어 있어 현준이 움직일 때마다 현준의 발걸음 소리가 허공에 울린다.


“회사 꼴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몇 시인데 아직 안 오는 거야”

현준은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인상을 찌푸린다. 밖은 이제 막 해가 밝아 오르고 있다. 현준은 태양을 피해 휴게실로 들어간다. 현준은 당장 회의실을 뒤집어엎어야겠다고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정리한다. 마음과는 달리, 걱정으로 쌓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닥치며 현준의 눈꺼풀이 저절로 감긴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뜨자, 벌써 시간이 정오를 향해 다가간다. 현준은 허둥지둥 핸드폰으로 자신의 몰골을 정리하고는 다시 회의실로 빠르게 걸어간다. 핸드폰에는 새봄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회의실을 열자, 눈이 부실 것 같은 조명등 아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본다.


“야 마침 잘 됐다.”

사장이 현준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반긴다. 일순간에 붐비던 회의실에 고요가 깃들고, 모두 이야기의 주인공인 현준을 숨죽여 바라만 본다.


문가 옆 구석에 앉아 있는 매니저가 자신을 보고는 놀라, 귓속말로 속삭인다.


“자숙하라니까 여기 오면 어떡해. 기자들 판치고 있는데”


“조심해서 잘 왔어.”


현준이 매니저를 보며 윙크하고는 자리에 앉는다.


“우리가 열심히 고민해봤는데···. 현준아 네가 직접 브이 앱에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게 나을 거 같아.”


홍보팀에서는 머쓱하면서도 미안해하고, 소속사 사상은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고. 엘디는 자신은 모르겠다는 듯 삐딱하게 턱을 괴고 있다. 분명 다들 반대했지만 소속사 사장이 빡빡 우겨서 저렇게 진행할 것이 틀림없다.


“지금 당장 사죄 영상 찍으라고요?”


“일을 그딴식으로 처리하고는 저한테 뒤집어씌우는 거예요?”


“편지 쓰는 것보다는 브이앱 찍는게 더 편하지 않아?”


“그냥 욕받이 하라는 말이잖아요. 공식 입장문은 내지도 않고 뭐 하는 거예요”


“공식입장문은 당연히 내야지.”

엘디가 지루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말한다. 피곤함에 찌든 홍보팀 직원이 주섬주섬 종이를 챙기기 전에, 현준은 매니저가 들고 있는 공식 입장문을 뺏어서 본다.



-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해당 연예인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으며, 해당 영상을 악의적으로 편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몇 줄밖에 적혀 있지 않은 글에 현준은 종이를 앞뒤로 쳐다보며, 더 쓰인 글이 없나 바라본다.


“와 미치겠네. 몇 줄 쓰려고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고요.”


“그러니까. 팬들이 얼마나 걱정하겠어. 안부도 전할 겸 브이앱 찍어 봐.”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사장이 말한다.


“회사 안 망하게 먹여 살렸더니 꼬라지 봐. 이러니 맨날 재계약 안 하고 튀지.”

현준이 옆에 있는 매니저에게만 들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법무팀 이럴 때 뭐하냐고, 전관 변호사 많이 고용하라니까.”


“연예계 쪽에 친한 사람이 다 그런 걸 어쩌냐.”


“돈을 많이 줬어야 할 거 아냐.”


“이게 무슨 맛집 검색하는 것처럼 쉬운 줄 알아. 다 미국에 연락하고 확인받아야 해서 다 돈이야 돈.”


사장이 입을 크게 벌려 말한다. 주변에 침이 튀고, 가려진 어금니까지 다 훤히 보인다.


“그 돈 아까워서 대응 안 하고, 남은 일 년 동안 손가락 빨아 보든지.”

현준이 차분하게 말한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또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냐.”

연기했어도 성공했을 듯, 금방 대표는 비굴하게 눈을 내리깐다.


‘매번, 저렇게 불리할 때만 억울한 표정이지. ’


저 표정에 속아서 여기까지 온 자신을 탓하며,


“영상은 안 올릴 거야. 변호사는 알아봐 줘요. 능력있는 데로, 엘디”


현준이 뒤로 젖힌 의자에서 느리게 일어선다.


엘디는 의욕 없는 눈빛 아래 손으로 ok 사인을 보낸다. 게슴츠레한 눈 사이로 눈빛이 형형하게 반짝인다.


현준은 회의실을 나온다.


“아, 정말 이 몸이 움직이기는 싫은데 말이야.


참, 귀찮게”


“역시 인간을 써야 하나.”

휴대폰에 연락처를 찾아 전화한다.


“오랜만입니다. 현준님. 이제 연락하지 않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지긋한 중년의 남성 목소리가 들린다.


“뉴스 봤잖아.”


“며칠동안 연락이 없길래 이제는 변하셨나 싶었죠.”


“그럴 리가. 이번 건은 얼마나 걸릴 거 같아?”


“글쎄요···. 이번에는 처리가 힘들겠는데요. 유투브 서버가 캘리포니아에 있는데 어떻게 확인을 합니까. 구근에 신원확인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요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이슈에 사업자들이 되게 민감하지 않습니까.”

용건만 확인하는 딱딱한 말투가 이어진다.


‘아, 이래서 내가 이 인간을 좋아하는 거라니까-. 구구절절 변명만 늘어놓던 누구랑 다르게.’ 현준은 흡족해하는 미소를 짓는다.


“이길 가능성도 없고, 소송도 민·형사 합쳐서 네 건 같이 들어가야 하는데. 굳이 해야겠어요?”

현준은 초를 치는 듯한 단어들에 의아해한다.


“내가 그런 이야기 들으려고 전화한 거 아니잖아.”

현준이 의자에 앉아 꼰 다리를 바라보며 말한다.


“흠···.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휴대폰 너머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소속사가 영 못 미더워서 말이지.”


“아···미국 법률을 좀 확인해보긴 해야 할 텐데요, 미국 법원에 정보 공개 명령부터 요청하고···. 흠···. 구근에 신원확인 받고 계정 폐쇄부터 하시죠. 그런데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요”

급하게 노트북으로 검색하는 소리가 들린다.


“난 지금 당장 해결했으면 좋겠는데···.”

현준은 턱을 계속 매만지며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길어지는 말투에 상대방도 직감을 한 듯 원칙대로 답한다.


“법이 원래 그런 거 알지 않습니까.”


“흥신소에 좀 확인해줘. 나머지는 그때 생각해 보지. 소속사 좀 시켜 볼까? 돈값 좀 하게”


“그것만 하면 되죠?”


“물론. 알잖아.”


“흥신소 비용은 따로 청구하겠습니다.”


“아마추어같이 왜 그래.”


“금전과 애정 관계는 확실히 해서 나쁠 것 없습니다. 소송당하지도 않고요.”


현준은 전화를 마치고 흡족하게 쳐다본다. 현준은 아침에 온 것처럼 습관적으로 날아가기 위해 창밖을 바라본다. 해가 하늘 높게 떠 있고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아래가 복닥거린다.


‘아차’

현준은 매니저에게 전화를 건다.


“어디야”


“나 아직 회이실”

매니저가 조그맣게 속삭인다.


“아까 회의는 끝났을 텐데···.”


“대표 알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나 봐 계속 반복 중이네”


“집까지 데려다줘.”


“사장이 쳐다 볼 텐데”


“가는 거 기억도 못 할 걸?”


“그래도 너무 분위기가 안 좋은데”


“너 내 매니저잖아.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린다.”


한마디에 소환을 당한 매니저는 서울 한복판으로 운전한다. 긴 회의에 잔뜩 지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매니저가 말을 꺼낸다.



“근데 아까는 어떻게 왔어?”


“아 택시 타고.”

꽉 막히는 대로변에서 매니저는 앞만을 바라 보며 말한다.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이참에 푹 쉬어, 곧 해외 투어 시작해야 하잖아.”


“아까 대표가 해외 투어 이야기도 하고, 언제 활동 종료할지 겸사겸사 많이 했어. 걱정이 많이 되나 봐”


“개뿔”


“공식 입장문은 그사이에 올렸는데 기자들에게 전화가 더 오나 봐. 역시 현준아 당분간 집에서 나오지 말고 있어. SNS 절대 하지 말고”


“응 금방 해결되겠지.”

현준이 활짝 웃으며 대답하자, 매니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현준을 다시 바라본다. 현준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며 한낮에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신기하게 구경한다.


“그래 때로는 네 느려 터진 성격이 좋을 때도 있는 거 같아. 이참에 인생을 즐기자”

매니저가 안심하며 편하게 말한다.


“나보다 더 느린 대표가 문제인 거지.”


“아···. 악플이랑 안티는 연예인이면 항상 있는 거니까 마음 편히 먹자. 바로 될 것도 아니고”


“지금 악담하는 거야?”

현준이 정색한다.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고. 이참에 역사 책 한 권 사서 공부는 좀 해둬. 언제 터질지 모르잖아.”


매니저가 현준의 표정을 살피며 말한다.


“준영이는 뭐 한 대?”


“신났지 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티가 팍팍 나”


매니저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현준은 텅 빈 숙소에 들어온다. 한낮인데도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숙소에는 곳곳에 운동 기구들과 가지런히 모여져 있는 술병들만이 눈에 띈다. 준영이 없어도 준영이 있었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현준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리며, 정적이 흐른다. 준영이 크게 틀어놓던 TV는 꺼져 있고, 시끄럽던 목소리, 항상 쿵쾅대는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니 어색하다.


현준은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시디플레이어를 꺼낸다. 바흐와 모차르트 클래식 중에서 고민하던 현준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골라서 튼다. 튼다. 한밤중에 말발굽이 달그락달그락 울려 퍼지며, 찬 바람 속을 가르며 비장하게 음악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병마와 죽음을 앞다투는 듯하다.


핸드폰에 탈덕레카의 알림이 뜬다. 새로운 게시글에는 현준이 성형외과 VIP라는 썸네일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오똑한 콧날, 현준의 트레이드 마크에 대해서 다들 자연산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성형외과 의사에 따르면 이 각도는 인간의 얼굴에서는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과하게 콧대 수술을 해서 몇 년이 지나면 구축이 심하게 오거나, 콧대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기계음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인간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느 하나 사실인 게 없는 내용. 실제로 성형외과 인터뷰를 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장례식을 거행하려는 듯 장엄한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신고하는 거야? 이거 누르면 되나?”

현준이 신고하기 버튼을 눌렀지만, 그 밑으로 개미 떼같이 실시간으로 악플들이 올라온다. 댓글을 하나씩 신고하다가 현준은 지쳐, 숨을 고른다.


“후··· 가만히 내버려 두려고 해도, 꼭 자기 명을 재촉해요”


“내 인내심을 계속 시험하네···.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사이버렉카의 프로필을 연다. 제보 바람이라는 글 아래로 이메일 계정이 쓰여 있다.


“W의원 직원이에요. 현준이 전담으로 상담해주고 있는데 한번 만나서 이야기할래요?”


현준은 미리 찍어두었던 원장의 병원 로비 사진을 하나 첨부해서 탈덕레카에게 메일을 보낸다. 전송 버튼을 누른 현준은 흡족해하며 탈덕레카의 썸네일과 프로필을 구경한다.


핸드폰이 다시 울리고, 읽지 않은 새봄의 메시지가 한 개 더 뜬다. 현준은 다시 여유를 되찾으며 메시지를 연다.


“괜찮아요?”

새봄이 묻는다.


“응 괜찮아”

현준이 활짝 웃으면서 답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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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The Vampire of Peace(1) 24.08.25 5 1 11쪽
58 Windy Bloody(3) 24.08.25 6 0 8쪽
57 Windy Bloody(2) 24.08.19 7 1 8쪽
56 Windy Bloody(1) 24.08.13 5 0 11쪽
55 웰컴 투 뉴욕(3) 24.08.10 7 1 10쪽
54 웰컴 투 뉴욕(2) 24.08.10 7 1 8쪽
53 웰컴 투 뉴욕(1) 24.08.05 6 1 9쪽
52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24.07.30 10 0 10쪽
51 51. 은밀한 비행(2) 24.07.28 10 0 11쪽
50 50. 온라인 팬미팅(2) 24.07.23 11 1 8쪽
49 49. 온라인 팬미팅 24.07.21 11 1 9쪽
48 48. 홍삼 24.06.18 11 0 8쪽
47 47. 넌 내 팬이 아냐 24.06.15 13 0 14쪽
46 46. 은밀한 비행 24.06.12 12 0 9쪽
45 45. 축제(2) 24.06.11 9 0 11쪽
44 44. 축제(1) 24.06.10 9 0 12쪽
43 43. 사이버렉카(8) 24.06.09 11 0 12쪽
42 42. 사이버렉카(7) 24.06.07 11 0 10쪽
41 41. 사이버렉카(6) 24.06.06 8 0 10쪽
40 40. 사이버렉카(5) 24.06.04 9 0 8쪽
39 39. 사이버렉카(4) 24.06.02 9 0 7쪽
» 38. 사이버렉카(3) 24.06.01 9 0 11쪽
37 37. 사이버렉카(2) 24.05.30 12 0 8쪽
36 36. 사이버렉카(1) 24.05.29 12 0 9쪽
35 35. 새봄(2) 24.05.28 13 0 9쪽
34 34. 새봄(1) 24.05.27 11 0 10쪽
33 33. 피닉스(2) 24.05.26 11 0 8쪽
32 32. 피닉스(1) 24.05.25 1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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