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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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최근연재일 :
2024.09.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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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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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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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축제(2)

DUMMY


“아 놀래라”

새봄이 말한다.


“처음 보냐”


모자에 선글라스를 잔뜩 눌러쓴 현준이 본다. 선글라스를 벗자 벌써 아이돌의 진한 화장이 눈에 드러난다.


“무슨 일이야. 음침하니 남들 모르게 헌혈하기 딱 좋네”

현준이 말한다.


“피 안 준다니까요”


새봄이 검은색 비닐봉지째 현준에게 건넨다. 포시락포시락 검은 비닐 봉지가 손에 닿자 이내 물컹거리는 혈액 팩이 현준의 손에 닿는다. 현준은 내키지 않는 듯 조심스럽게 매듭을 푼다.


“이상한 거 아니에요”


새봄이 말한다.


이내 빨간색 혈액팩이 공기 중에 드러나자, 새봄은 주체할 수 없이 스스로가 대견하고 뿌듯하다. 자신이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새봄은 칭찬을 기다리며 현준의 표정을 살핀다.


현준은 혈액팩을 이리저리 만져보기만 한다.


이어지는 긴 침묵이 뒤따라 온다.


‘생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새봄이 생각한다.


“나 생각해주다니 고마워. 잘 마실게”

현준이 기계적인 웃음을 짓는다.

“피 부족할 텐데. 여기서 마셔요”


“아냐 지금은 안 급해서, 나중에 갈증 날 때 마실게”

고장이 난 듯 현준의 미소에 약간 빗금이 지어진 것 같다. 이상하다.


“피 부족한 거 아니었어요?”

새봄이 묻는다,


“지금 먹으면 아깝잖아, 언제 다시 구할 줄 알고”

현준이 시선을 피한다.


“그래도 한 번씩 갖다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힘들게 가져온 거야? 무리 안 해도 돼”

현준이 무미건조하게 말한다.

“왜 안 고마워해요?”

새봄이 목소리를 굳히며 화를 낸다


“아니야. 내가 언제 안 고마워했다고. 지금도 엄청 고맙다고 하는 건데. 어두워서 그런 거야.”


“그럼 지금 마셔요”


“아니 나중에 먹는다니까”


“그때 구해준다니까요!”


“피 보면 무조건 먹고 싶어 환장한 줄 아냐고”


“그러면 왜 내 피는 맨날 달라고 그러는데요!”


“그거야 네 피가 미친 듯이 향긋하니까 그런거고. 이거는 엄청 미지근하고 뽑은 지도 오래되어서”


현준은 아차 싶었는지 점점 목소리가 작아진다.

“냄새도 ···없···고··· 맛···없어.”


“아하! 나는 이거 구하려고 엄청 생고생했는데 그 와중에 편식하고 맛없어서 안 먹는다 이거죠? 내 피 아니면 안 먹겠다고?”


“너, 내가 피 빨아 먹는 모기라고 생각해?”


“네!”

새봄이 화를 내다,


갑자기 현준이 새봄의 어깨를 붙잡는다. 사람의 힘이라고 하기엔 강한 압력이 어깨에 전해져 내려온다. 갑작스럽게 현준을 새봄도 창문 아래로 몸이 숙여진다.


곧이어 우르르 복도에 달려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예민한 거라고. 피는 안 먹을 수 있고.”

현준이 차분하게 말한다.


“그럼 안 먹으면 되겠네”

새봄이 뾰로통해진다.


“안 되겠다. 내일 열 시에 뭐 해?”

현준은 불편한 듯 새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힘겹게 말을 잇는다.


“독서실에서 공부하죠.”


“거기 옥상으로 올라와. 가방 다 싸서.”


“싫어요. 저 열한 시까지 공부한단 말이에요.”


“알았어 그럼 열한 시 옥상에서 봐”

현준이 다시 몸을 일어서서 창문을 바라본다. 주위가 고요하니 복도에 인적 하나 없이 조용하다. 현준이 문을 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어둠 속에 새봄은 홀로 남겨진 채로 현준은 느리게 문을 닫는다.


“그런데 독서실 어딘 줄 알아요?”

새봄이 다시 문을 살짝 열고 문틈 사이로 현준을 바라 본다.


“당연하지”

현준의 느슨한 입꼬리가 보이다 금세 사라진다.


갑작스럽게 끊긴 대화에 새봄은 뒤늦게 화가 솟구쳤다. 교실 안에서도 조용히 올라 오르는 화를 삭이며 문제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어느새 교실에는 남은 사람을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분명 루키즈 공연을 보러 갔을 것이다. 밀린 공부도 해야 하니 굳이 콘서트를 안 봐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텅 빈 교실을 보니, 뒤늦게 솟아오르는 궁금증이 엉덩이를 들썩인다.



뒤늦게 도착한 강당은 멀리서도 함성이 쏟아질 정도로 떠들썩하다. 이미 루키즈가 무대에 올라 1절을 부르고 있다.

“아 귀아파”


새봄은 혼잣말하며 빈자리를 찾는다.

이미 앞쪽으로 달라붙어 있는 아이들 사이를 휘저으며 움직인다. 비좁은 틈에 핸드폰을 높게 든 아이들이 움직이며 새봄의 몸이 같이 흔들린다. 발 디딜 틈 없는 사이로 저기 마룻바닥이 겨우 보이는 틈이 보인다.


전교 4등과 선생님들이 있어 학생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새봄은 뒤에 앉아 루키즈를 본다.


준영이 무대를 휩쓸며 윙크를 하며 팬서비스를 하고 다닌다. 격한 안무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없이 앨범을 틀어놓은 듯이 안정적으로 목소리가 MR를 뚫고 나온다. 준영의 솔로 무대라고 깜빡 생각이 들 정도로 압도적인 에너지가 강당을 뒤덮는다.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현준을 보자, 작은 무대에서 크게 움직이지 않는 채로 현준은 방긋방긋 웃고 있다.



자신의 코앞에서 춤을 추고 있는 준영에 비하면 현준은 정말 너무나 작고 아담하다.


‘이래서 강아지 컨셉으로 소속사가 밀었나?’ 새봄은 의심하며 현준을 바라본다.


‘저 자본주의에 찌든 미소 봐’

계속 공연 오기 싫다고 메신저로 연락을 했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고 있다.


‘편식하는 주제에.

위이잉 모기처럼. 피 한번 잘 못 줬다고 주위를 맴돌며 귀찮게 얼씬거리고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떨어지지 않고 기회를 엿보지.’


아무리 내쫓아도 모기 한 마리로 금방 방 안이 어지러워지는 것처럼,

현준은 떨어지지 않는다.


‘저 달콤한 미소에 속지마’

두 눈을 감을 듯이 해사하게 웃는 미소를 보며 새봄은 두근거리는 감정을 진정시킨다.


현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현준이 눈을 마주치는 곳마다 학생들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다. 미리 약속한 듯이 현준의 매력은 순식간에 강당을 초토화시킨다.


‘아휴 이번에 콘서트 가겠네.’

무고한 희생자가 늘었습니다.


비상비상비상 마음속에 붉은 경고등이 반짝인다.


‘공연할 때 얼굴 비춰주면 덧나나?’

멀리 현준의 옆모습과 뒷통수를 실컷 본 새봄이 현준을 삐딱하게 바라본다.


가려진 시야들 사이로 준영이만 실컷 보겠다고 생각할 때

노래 <FEVER>가 시작된다.


빌보드 100위 안에 진입한 노래답게 인트로가 시작되자마자 환호성이 쏟아지며 모두가 가사들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누가 부르는 건지 모를 정도로 함성소리에 우렁찬 준영의 목소리까지 묻힌다.


다시 현준의 파트가 돌아온다. 현준이 갑자기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 소절에 갑작스럽게 자신을 마주치는 것 같다. 바라보는 것 같아 숨을 멎는 것 같다.


[아름답지만 지독한 이 꽃이

피오르는 순간 알았어]



현준이 이쪽을 쳐다본다. 그 순간, 새봄의 숨이 멎을 것 같다.


[끝없는 꿈속에서

네가 웃는 모습이 보여서

꿈인 걸 알면서도 깨어날 수 없어서.]


방금까지도 괴롭히던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신기하게도 음소거가 된 듯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네 손길이 닿은 곳에

새빨간 꽃이 피어올라도]


현준의 고스란히 마이크 사이로 들리는 숨소리,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빛이 자신을 그대로 뚫고 오는 것 같다.


[행복했어. 그때가

차가운 손과 몸

네가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어]


안개 속에 달빛도 숨겨진 그 날에도 그의 송곳니가 자신을 뚫지 못했는데, 오늘은 수많은 사람 속에서 자신이 무방비하게 녹아 버리는 것 같다.


‘아, 실제로 현준이 노래하는 것을 처음 봐서 그런가.’

새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생각한다.


‘쓰러지기 직전에 골골대거나, 쌩얼만 보아서 그런가’


저렇게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옷도 제대로 갖춰 입으니


녹아 버릴 거 같잖아




후렴구로 달려가며 조명이 더 밝아지자, 현준의 눈빛이 한층 투명해진다. 눈동자가 자신을 좇아서 움직이다가 발견하고는 멈춘다.


삐용 삐용 목표물 발견. 사랑의 하트 발사.



하트하트하트 표뵤뵤뵹


세일러문의 요술봉이 있었다면 무선으로 하트 모양의 포물선을 그리며 새봄이 심장에 명중했을 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새봄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쳐다본다. 하트의 화살을 맞은 피해자가 한둘이 아닌 듯하다. 선생님을 포함해서 모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눈을 반짝인다.


‘참 얄미운 뱀파이어 같으니’



축제의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오늘 자습시간에 푼 문제들은 까맣게 사라지고 현준의 그 투명한 눈동자가 자신의 머리 안에 둥지를 튼 거 같다. 위우이이잉



새봄은 현준을 안 보고 안 좋아 할 수는 있어도, 현준은 한번 보면 안 좋아 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콧방귀를 끼면서도 분명 자신은 현준의 포로가 된 듯하다. 축제가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 쪽으로는 그냥 쳐다보기만 했는데’


‘앉아 있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뛰면서 손에서 땀이 왜 날까.’


‘간드러진 목소리를 들어서?


’그거 MR 깔았잖아!’

터질 것 같은 마음속에 유투브를 켜자, 현준의 영상이 올라온다.


똑같은 옷을 입은 무대를 보니 괜히 축제가 떠올라서 더 두근거린다.



[나는 이제 미쳤어요 떙벌땡벌]


아빠가 자주 듣던 트로트가 갑자기 머리에 맴돈다


노래가 갑자기 왜 생각이 나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지구 주위로 위성이 공전하듯 자신의 머리 위로 별이 끊임없이 도는 듯 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바라본 문제집은 한시간 넘도록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고, 종이에 자국이 깊게 나 있다.


‘그래 나는 아-주 제대로 미쳤나 보다.’


새봄은 책상 위로 머리를 콩콩 찐다. 이마는 벌게져도 정신은 아직도 얼얼하고 어딘가로 외출한 듯 돌아오지 않는다.


문이 벌컥 열리며 잠옷 바람의 아빠와 동생이 들어온다.


“무슨 일이야! 아무리 수능이 얼마 안 남았어도 그러지!”

아빠가 말한다.


“누나 죽지 마”

동생이 말한다.


“뭐라고 안 할게”


“응···.”

새봄은 아직도 돌아 오지 않는 정신을 기다리며 하하 웃는다. 그 사이에 아빠가 홍삼액을 가지고 들어와 새봄의 얼굴에 가까이 들이댄다. 아빠 표정이 심각한 걸 보니 홍삼을 먹을 때까지 가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괜히 연락해서. 이 손가락이 문제지’

새봄은 억지로 쓴 홍삼액을 입안으로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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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The Vampire of Peace(2) 24.09.14 3 0 13쪽
59 The Vampire of Peace(1) 24.08.25 5 1 11쪽
58 Windy Bloody(3) 24.08.25 6 0 8쪽
57 Windy Bloody(2) 24.08.19 7 1 8쪽
56 Windy Bloody(1) 24.08.13 6 0 11쪽
55 웰컴 투 뉴욕(3) 24.08.10 8 1 10쪽
54 웰컴 투 뉴욕(2) 24.08.10 8 1 8쪽
53 웰컴 투 뉴욕(1) 24.08.05 7 1 9쪽
52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24.07.30 10 0 10쪽
51 51. 은밀한 비행(2) 24.07.28 10 0 11쪽
50 50. 온라인 팬미팅(2) 24.07.23 11 1 8쪽
49 49. 온라인 팬미팅 24.07.21 11 1 9쪽
48 48. 홍삼 24.06.18 12 0 8쪽
47 47. 넌 내 팬이 아냐 24.06.15 13 0 14쪽
46 46. 은밀한 비행 24.06.12 12 0 9쪽
» 45. 축제(2) 24.06.11 10 0 11쪽
44 44. 축제(1) 24.06.10 9 0 12쪽
43 43. 사이버렉카(8) 24.06.09 11 0 12쪽
42 42. 사이버렉카(7) 24.06.07 11 0 10쪽
41 41. 사이버렉카(6) 24.06.06 8 0 10쪽
40 40. 사이버렉카(5) 24.06.04 9 0 8쪽
39 39. 사이버렉카(4) 24.06.02 10 0 7쪽
38 38. 사이버렉카(3) 24.06.01 9 0 11쪽
37 37. 사이버렉카(2) 24.05.30 13 0 8쪽
36 36. 사이버렉카(1) 24.05.29 12 0 9쪽
35 35. 새봄(2) 24.05.28 13 0 9쪽
34 34. 새봄(1) 24.05.27 11 0 10쪽
33 33. 피닉스(2) 24.05.26 11 0 8쪽
32 32. 피닉스(1) 24.05.25 1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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