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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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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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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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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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은밀한 비행(2)

DUMMY

인적 없는 산으로 현준은 돌아와, 짙은 밤을 감상한다. 폐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워진 동기를 흠뻑 들이마시며, 밤하늘이 닿을 것 같이 높다란 산속 나무 위에 올라가 드러눕는다. 멀리서 어둠 속에 모든 사물은 빛을 잃어 살금살금 움직인다. 새로운 내일을 위해 잠을 자는 것들 사이로 조용히 수풀 소리가 들린다. 빨갛고, 노란 낙엽은 짙음 어둠에 집어삼켜 또 다른 낙하를 위해 준한다.


현준은 떼어날 수 없는 이 어둠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워진 공기와 이파리 끝에 맺힌 이슬들이 등 뒤를 기분 좋게 적신다. 어둠이 자라나는 세상의 끝만이 선물하는 고요함이 좋다. 모든 것을 바랠 듯이 조명 아래 모든 것은 창백해지고, 좁은 실내 콘크리트 방 안에서 느껴지는 답답한 공기들이 그를 숨 막히게 했다. 짙은 화장이 땀으로 얼룩져 무너져 내면 다시 더 두꺼운 화장으로 다시 얼굴을 덮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 같다. 눈 깜짝하는 그 순간을 위해 몇 시간을 대기하며 앉아 있다 보면, 형광등이 빙빙 돌기도 하고, 준영과 스타일리스트의 대화가 신경질적으로 귀에 거슬리기도 한다.


질식할 것 같은 그곳에서 도망치다 싶게 나온 현준은 뒤따라 올라온 태욱을 바라본다. 태욱은 붙임성 없이 가져온 술병을 들이마신다. 비닐 속의 술병 꾸러미가 용케 저 아득한 땅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나뭇잎 위에 버티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밥 안 먹었냐. 적당히 마셔”

현준이 묻는다.


“야무지게 먹었지. 이번에 기가 막히게 잘하는 제육 덮밥집 찾았거든. 형도 같이 갈래?”


“옷에 냄새 밸 일 있냐”


“인간 음식에 적응 좀 해봐. 나는 형이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더라”


“나도 너 하는 짓 보면 이해 안 되거든.”


“맨날 약 먹지 잠 못 자고 죽어라 일하지. 뱀파이어가 밤에 깨는 거지, 잠을 안 자는 건 아니잖아? 왜 그러고 살아?”


“오늘도 나 좋다고 몇십 명이 잔뜩 꾸미고 달려와서 좋다고 하는데. 잘생기게 태어난 뱀파이어의 숙명 같은 거지. 너는 팬도 없잖아.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돌려서 말하는 것도 병이야.”


“네네 그래서 어디도 못 나가고 산에만 있으세요?”


“숨어 사는 건 뱀파이어 숙명이야. 일석이조. 가만히 있어도 인간들이 몰려드는데. 이왕이면 인류에 봉사하는 것도 좋잖아?”


“연예인이 되었네. 인류애 같은 소리나 하고”


“나 어렸을 때는 인간은 믿으면 안 된다고, 적당히 이용해야 한다고 설교했잖아.”


“내가 그랬었나?”


“조기 교육한다고 맨날 사건 일어나는 데 가서 저거 보라고 설명해줬잖아.”

태욱이 말한다.


현준이 조용히 떠올린다.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에덴동산의 기억이 잊혔듯, 야속하게 더 숨어버린 기억에 현준은 닿을 수 없다. 이미 충분히 얼룩지고 하루하루 정신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그 이전에 끝없이 펼쳐지던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파편처럼 남아 있는 기억은 남의 일처럼 실감나지 않고, 무덤덤하다. 짙푸른 어둠만큼이나 기억들은 흐리하지만, 달빛의 여명 속에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가슴을 콕콕 쑤신다. 무엇이기에, 분명 지금보다 더 자유로웠을 텐데, 왜 나는 그 삶에서 도망쳤을까.


현준은 오히려 당장 앞에 쏟아질 플래시들과 팬들의 환호성이 더 걱정스럽다.


곧 몇 시간 뒤에 출발하는 비행기 안이 생각난다. 이륙하기 전에 시끄럽게 움직이는 엔진 소리 굉음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숨 막히는 공기가 떠오른다. 아무리 뒤로 의자를 눕힐 수 있더라도, 그 자리에 갇혀있어야 한다. 환기되지 않아 온갖 음식 등의 냄새들이 뒤섞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마치 통과의례처럼 안전 라인을 손쉽게 무너뜨리며 뛰어올 팬들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플래시, 혼돈의 도가니라고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소음, 한 치 앞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인간들이 만든 장벽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 이후에는 떠돌이처럼 캐리어 속의 짐을 다 풀지도 못하고 이곳저곳을 다 떠돌아다닐 것이다. 매일 생활의 냄새는 완벽하게 제거된, 세탁 세제와 디퓨저의 인공적인 냄새로 가득한 호텔이 자신을 반겨줄 것이다.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또 다른 곳에서 눈을 뜨겠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뒤바뀐 시간에 괴로워하고.’


“내가 왜 이러고 살지?”


문득 다시 떠오르는 내일의 모습에 현준은 긴장하고, 미소를 거둔다.


온갖 풍겼던 향수, 화장품의 냄새들과 그리고 앞에서 전해진 수많은 향기가 콧속에 다시 넘실대는 거 같다. 벌써 그 귓속에 혼란스러운 소음들이 쏟아지는 것 같다.


조용해진 공기에 태욱이 고개를 돌려 현준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캬 너무 좋다” 태욱이 말을 건다.

“있을 때 미리 날아둬. 이참에 미국까지 날아가는 건 어때?”


“추워 뒤지라고. 몇 달간 날기만 하라고 하지 그러냐” 현준이 퉁명스럽게 답한다.


“너 나는 거 좋아하잖아.” 태욱이 말한다.


“감기 걸려 안 돼”


“뱀파이어가 개뿔 감기는”


“아무튼, 안 돼. 내가 무슨 갈매기도 아니고”


“그나저나 피는 남은 거 없어? 막상 없으니까 되게 섭섭하네”

태욱이 일부러 말한다.


“왜 나한테 찾아. 병원장 여전히 잠수야. 필요할 때만 연락해, 이 인간이”


“솔직히 연락은 네가 했지, 원장이 불쌍하긴 했어. 너 때문에 머리도 하얘진 거 아냐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늙어서 그런 거거든”

이제는 피의 맛과 향기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현준에게 흐릿하다. 아니, 현준에게 단 한 인간만의 피만이 필요했고, 그 사람만이 생각난다. 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그 달콤한 살내음을 옆에서 맡는 것만으로도 그는 살 수 있을 것 같다. 상당히 다루기 까다로운 생명체일 뿐이지만, 그 정도의 노력을 못 들이겠는가. 내 평생이 달려 있는데, 현준은 속으로 생각한다.


볼이 얼얼해질 거 같은 새벽에 하얗게 입김이 서린다. 서늘한 촉감에 외투를 현준은 여민다. 이슬은 현준의 손에 닿자마자 형체도 없이 스며든다.


“다시 돌아오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려나. 눈 오면 햇볕 따가운데. 나갈 수도 없고. 갑갑해.”

현준은 오지 않는 먼 미래를 생각한다.


“중무장하고 날라니까”


“가오가 없잖아”

현준은 태욱의 헝클어진 머리를 힐끗 바라본다. 태욱은 고귀하고 희소했던 핏줄을 나타내듯 두툼한 이마와 짙은 눈썹과 윤곽을 지니고 있지만, 머리는 대충 까치집이 지어져 있고, 옷차림은 잔뜩 구겨져 흐트러져 있다.


태욱은 현준의 시선에 낄낄 큰 소리로 비웃는다. 꿀꺽 병째로 술을 들이켠다.


적막한 고요 속에 유일한 포식자들은 적막한 고요를 가로지르며 웃는다. 방울방울 떠 있는 안개들은 포식자들을 건너편 빽빽하게 솟아오른 고층 빌딩 숲과 세상으로부터 은밀하게 숨겨준다. 내일 아침이 되면 다시 일어날 인간들과 동물은 방금 산 위에서 일어난 비밀을 모른 채 살아간다.


점차 투명해지는 하늘 위로 요란하게 떠 오르는 빛을 피해, 현준이 나무 밑으로 떨어진다, 풍성한 나뭇잎들의 그림자 사이로 햇볕이 내려온다. 태욱은 나뭇잎 위에 태연히 술을 마시며 일출을 감상하다, 금세 짙은 구름 사이로 해가 숨어들자, 태욱은 애꿎게 화를 푼다.


“일출 제대로 꽝이네”


새벽인지 아침인지 모를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 하늘은 회색빛으로 가득하다. 시끄럽게 새들이 지저귀며 푸드덕 날아가는 소리만이 아침이라고 소리친다.


현준은 잿빛 하늘에 숨어있던 도둑처럼 재빨리 되돌아온다.


“아 뷰 너무 좋다.”

현준인 기분 좋은 기지개를 피자, 태욱이 애꿎게 말한다.


“햇볕 하나도 안 보이는 게 좋냐.”


“그럼.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자외선 더 받으면 안 돼”

지저귀는 새소리와 낙엽이 부대끼는 소리가 현준의 귀를 간지럽힌다.

아직 해가 밝지 않아서, 똑같이 흐르고 있는 시간이 더욱 더디게 흐르는 것 같다고 현준은 생각한다. 태욱은 옆에 까치집의 머리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다, 저 아득히 아래에 있는 바닥의 낙엽들을 굽어살핀다. 태욱은 자신이 보기에 여전히 탁한 갈색 같은 낙엽을 집어 신기하게 바라본다. 여전히 나잇값을 못 하는 듯 한 태도가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귀엽다.


태욱은 자신을 향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현준과 마주한다. 쾌활한 나르시스트 특유의 묘하게 자신에게 취한 것 같은 느낌에, 지금 술을 먹은 것은 자신이 아니라, 현준인지 헷갈린다. 아침에 새삼스럽게 팔에 소름이 으스스 솟는다.


태욱은 떨어질 것 같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낙엽들을 던진다. 멀리 못가 힘없이 떨어지던 낙엽이 운 없이 자신의 머리 위로 명중한다.


“아 머리가 헝클어지잖아!”


“어차피 모자 쓸 거면서”

태욱이 자신의 손을 털자, 현준은 옆에 꺾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아 태욱에게 던진다.


자신 있게 던져진 나뭇가지를 손으로 잡은 태욱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태욱은 다시 손에 잡은 나뭇가지를 힘차게 현준의 머리에 명중한다. 나뭇가지를 피해 현준이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나뭇잎들이 두두둑 떨어진다. 희미하게 낀 안개들 사이로 어느새 자취가 없어진다. 풍성한 머리를 가진 나무들은 조금씩 뾰족한 나뭇가지들을 드러내며 조금씩 현준의 몸을 콕콕 쑤신다.


둘이서 투덕거리자 나무가 둘의 무게를, 다툼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이고 있던 머리를 흔든다. 흔들리는 낙엽들이 후두두 떨어지고, 태욱과 현준도 밑으로 꼬꾸라진다.


코앞에 자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을 피하다 보니, 둘은 곧 지면에 추락할 정도로 아찔하게 수직으로 내리꽂힌다. 눈앞에 온통 홀과 낙엽으로 덮인 지면이 한가득 펼쳐진다. 급하게 위로 방향을 틀어 나무의 수풀 가지들을 뚫고 올라가자, 안개와 짙은 구름으로 뒤범벅된 불투명한 잿빛 하늘이 다시 반긴다.


중심을 잡은 태욱과 현준은 다시 허공을 날아 나무 사이사이를 유영한다. 수풀들 사이에서 다시 땅에 깔린 낙엽/땅으로 떨어질 때쯤 다시 날아오른다. 땅 위 서리에 적셔진 축축한 낙엽들의 냄새가 그들을 반긴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주위를 풍긴다. 고요 속에 일찍 깬 작은 동물들이 숨을 죽이듯이 걷다가, 갑자기 커다랗게 등장한 생명체에 겁을 먹고 가만히 쳐다본다.


촉촉해진 안개 속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알록달록한 붉고 노란 낙엽들을 - 이미 시들어 힘없어 보이는 갈색 낙엽들을 - 맞으며 지나친다. 지는 낙엽의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 채, 그들은 머리와 옷들 사이사이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쌓였는지도 모르고 나무의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


붉은 낙엽이 한눈에 보이는 전경을 포이르가 멀리 쳐다 본다. 포이르는 멀리 낙엽들을 잠시 바라보다, 열리지 않는,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본다.


“형 저 방은 뭐에요?”


작가의말

찰스 디킨스의 두도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래서 글이 길게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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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The Vampire of Peace(2) 24.09.14 3 0 13쪽
59 The Vampire of Peace(1) 24.08.25 5 1 11쪽
58 Windy Bloody(3) 24.08.25 6 0 8쪽
57 Windy Bloody(2) 24.08.19 7 1 8쪽
56 Windy Bloody(1) 24.08.13 6 0 11쪽
55 웰컴 투 뉴욕(3) 24.08.10 8 1 10쪽
54 웰컴 투 뉴욕(2) 24.08.10 8 1 8쪽
53 웰컴 투 뉴욕(1) 24.08.05 7 1 9쪽
52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24.07.30 10 0 10쪽
» 51. 은밀한 비행(2) 24.07.28 11 0 11쪽
50 50. 온라인 팬미팅(2) 24.07.23 12 1 8쪽
49 49. 온라인 팬미팅 24.07.21 12 1 9쪽
48 48. 홍삼 24.06.18 12 0 8쪽
47 47. 넌 내 팬이 아냐 24.06.15 13 0 14쪽
46 46. 은밀한 비행 24.06.12 12 0 9쪽
45 45. 축제(2) 24.06.11 10 0 11쪽
44 44. 축제(1) 24.06.10 9 0 12쪽
43 43. 사이버렉카(8) 24.06.09 11 0 12쪽
42 42. 사이버렉카(7) 24.06.07 11 0 10쪽
41 41. 사이버렉카(6) 24.06.06 9 0 10쪽
40 40. 사이버렉카(5) 24.06.04 9 0 8쪽
39 39. 사이버렉카(4) 24.06.02 10 0 7쪽
38 38. 사이버렉카(3) 24.06.01 9 0 11쪽
37 37. 사이버렉카(2) 24.05.30 13 0 8쪽
36 36. 사이버렉카(1) 24.05.29 12 0 9쪽
35 35. 새봄(2) 24.05.28 13 0 9쪽
34 34. 새봄(1) 24.05.27 11 0 10쪽
33 33. 피닉스(2) 24.05.26 11 0 8쪽
32 32. 피닉스(1) 24.05.25 1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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