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뱀파이어 아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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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아설
작품등록일 :
2024.05.08 23:18
최근연재일 :
2024.09.1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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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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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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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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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y Bloody(1)

DUMMY

몇 개의 도시를 거치자, 현준은 이제 갑갑한 밴과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는 게 너무 갑갑하게 느껴진다. 기지개하면 닿을 것 같은 이 밴과 졸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부을 것 같은 느낌, 안전벨트가 너무 자신을 꽉 옥죄는 것 같다.


“이것도 돈 아낀 거 아냐.” 현준이 괜히 주변을 툭툭 건든다.


“에이 왜 그래.” 준영이 자신의 인스타 팔로워 수를 보며 말한다.


“우리 정도면 빌딩을 세웠는데, 아직도 안 푹신하잖아. 저번에 객실도 돈 아끼려고 모든 호실 예약을 안 해서 그런 거라며, 경호원은 또 그 시간에 어딨었어.”


[빌보드 1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돈 아깝게 다 빌려야 하냐. 너네는 둘밖에 안 되잖아]

현준은 소속사 사장이 실눈같이 작은 눈을 더 작게 웃으며 말했을 게 눈에 훤했다. 다짜고짜 전화하면 [아니 거기는 몇 시길래 아직도 팔팔하니. 월드 투어 하려면 체력 비축해야지] 라는 훈수만 더 둘 것도 덤으로.


‘좀생이가 진짜’


현준은 속으로 분통을 터뜨린다.


“우리 이제 월드 스타라며, 리믹스 버전 음원 내자고 하지 말고 대우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냐?”

현준이 말한다.


“빌보드 리믹스 버전 누가 피쳐링한대. 매니저는 들은 거 있어? 우리 정도 급이면 누가 오려나.”

준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떠올리고는 꿈에 부푼다.


“아니요, 저도 잘 못 들었어요”

새로운 매니저는 앞만을 바라보며 말한다.


“유명 가수 매니저를 하니 이런 일도 있네요”

매니저는 둘 사이에 눈치를 보며 웃는다.


“너는 지금 웃을 기운이 나니? 좋겠다. 웃음이 많아서.”

현준은 새 매니저가 정말 능글맞다고 생각한다. 전 매니저였으면 괜히 자기가 잘못한 거처럼 미주알고주알 없는 이야기 하면서 친절하게 대할 텐데.


현준은 차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노을빛에 인상을 찌푸린다. 낙엽이 모조리 떨어져 앙상한 바깥에 햇살은 약해져도 현준의 기분에 영향을 줄 정도로 아직은 건재하다.

사람들로 북적인 거리에 둘이 내린다. 천변에 옛날 거리를 생각하는 듯 다리 밑으로 실개울이 흐르고, 개울 옆으로 많은 식당이 들어서 있다. 간간이 높은 나무들이 세월만큼이나 오래 솟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번화가인 듯 천변을 나란히 걷는 사람들과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아직 해가 떠 있는데 준영 일행은 식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주변을 구경하자고 잔뜩 들쑤신다.


“이따가. 배고파”


다행히 준영의 꼬르륵 소리에 식당에 들어가, 현준은 잔뜩 피가 흐르는 레어 스테이크를 시킨다. 뚝뚝, 고기보다도 빨갛게 접시에 뒤범벅이 된 피가 달콤하지만 부족하게 느껴진다.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간 고기로 시켜, 거의 날것 그대로로 겉만 살짝 갈색으로 그을린 덩어리 고기가 큰 접시에 넘칠 듯이 담겨 나온다. 한 덩이씩 입으로 집어넣기엔 너무나 부족하고 한 조각 한 조각이 너무나 입맛만 다신다. 오랜만에 먹는 피가 입에 찰싹 달라붙는다. 여전히 감칠맛이 돌고, 약간의 소금과 후추의 간이 풍겨오지만 속은 여전히 피의 향으로 풍부하게 넘쳐 흐른다. 현준은 물컹하게 흐르는 고기를 입맛을 다시며 마치 광기에 휩싸인 듯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사각사각

접시 위로 톱날같이 작고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히며 고기를 잘근잘근 썬다.

현준은 은은하게 퍼지는 보랏빛 눈빛이 은은하게 눈동자 주위로 퍼지고, 송곳니가 삼각형의 모양으로 살짝 길어지지만, 일행은 다들 음식으로 허기를 채우기 바쁘다. 현준은 길어진 송곳니로 연한 날것의 고기를 베어 잘근잘근 씹는다. 다들 각자의 맛에 감탄하며 게눈 감추듯 음식이 금방 동이 난다. 현준도 배가 부를 때까지 꾸역꾸역 입에 다 넣고는 주위를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흡족하고 나른한 표정에 준영이 흠칫 놀라며 입을 닦는다.

해가 가시고 남색 빛이 감도는 저녁이 돌아오자, 일행은 식당 근처 천변으로 앞다퉈 달려간다. 현준은 주위에 이끌려 억지로 뒤에서 느리게 걸으며, 호텔에 당장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천변 주위는 커다란 하늘이 건물을 뒤덮을 정도로, 건물들이 낮고 아기자기하다. 스타일리스트와 준영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조른다. 현준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든다


위잉 서늘하지만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주위에 낙엽들이나 보이지 않는 작은 쓰레기들이 날 것의 바람에 날아다닌다. 준영의 머리를 흩트려 놓는다. 다시 머리를 매만져도 끊임없이 어지러워지는 머리에 준영은 포기한다.


‘이런 바람에 날면 정말 재밌겠는데’

현준은 몸이 피곤으로 잔뜩 누더기가 되었는데도, 세찬 바람이 현준의 본능이 일깨운다.


현준은 피곤하다고 일찍 자리를 뜨고는 호텔 주변을 살핀다. 가로등은 생각보다 듬성듬성 있고, 주변에 카메라가 잘 보이지 않는다. 호텔 방안에 들어서자 사인받기를 기다리는 포스터들이 수백 장이 테이블 위에 두툼하게 올려져 현준을 기다리고 있다. 현준은 불도 켜지 않고 모든 것은 내팽개친 채로, 호텔 방 앞의 창문으로 달려간다.


탁 트인 풍경이 지금까지의 피로를 눈 녹이듯 씻겨 내려준다. 현준은 조급하게 창문을 열자, 다시 세찬 바람이 방 안으로 몰려 들어온다.


‘그래 이거야’


서늘해진 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들어 현준을 차갑게 만들 때마다, 솜털이 하나하나 일깨워질 때마다 현준은 보름 달빛을 가득 받은 것처럼 마음이 강하게 들뜬다. 이대로 방 안에 있을 수 없다. 엉덩이와 발이 당장이라도 날아가고 싶어 엉덩이와 발이 들썩거린다. 현준은 참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창틀 위로 올라간다.


창틀 위로 올라가자, 방 안에서 본 것보다 공연이 있어, 트여 있다. 한국보다 맑고 투명한 공기가 현준의 폐 속으로 찬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건 짙은 어둠과 강한 바람이야.’

현준은 새삼 흡족하게 생각한다.


쏴아아 저 멀리 바람이 현준의 온몸을 감싸며 강렬하게 유혹한다.


‘날아봐, 달콤하지 않니’


현준은 주변을 살핀다. 호텔 주변에 인파도 없자, 현준은 그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지금같이 완벽한 타이밍이 어딨겠어,

현준은 나지막이 스트레칭을 하며, 솟아오르는 오랜만에 즐거움에 몸이 간질거린다. 내일은 까맣게 잊은 채, 새장과 같이 네모나고 작은 호텔 방에서 그를 해방시킨다.



현준은 힘껏 두 팔을 벌려 트인 밖으로 날아간다. 현준은 절로 미소지어지는 웃음에 입꼬리가 오랜만에 귓가에 걸리듯이 찢어진다. 나른한 그의 웃음 같이 여유롭게 세찬 바람에 몸을 싣는다. 세찬 바람이 자신의 몸을 세차게 맞아준다. 얼굴, 몸을 타고 바람이 알싸하게 올라오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고, 파라락 옷들이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출렁인다.


근처에 보이는 공원, 숲들 속에서 들리는 동물들의 발소리들이 귓속에 들린다. 저 멀리 흙과 나무들이 풍기는 냄새가 풍긴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진하게, 냄새를 풍기는 흙냄새와 나무의 청량하면서도 특유의 냄새가 멀리서 풍겨 온다. 향기에 끌려 몸에 맡긴다. 자세히 다가가자 꽤 오래된 나무들이 간간이 있고, 가운데에 뻥 뚫린 공원이 있어 주위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가지가 산 나이만큼이나 굵다란 나무들이 크게 곳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주차장에 많은 사람이 한 곳을 향해 달려간다. 현준은 사람들이 향하는 반대로 날아간다. 한국보다 더 살얼음 같은 추위에 몸이 더 으슬거린다. 뼛속으로 추위가 타고 들어오지만 현준은 멈추지 못하고 더 높은 곳으로 비행한다. 곡예를 하듯 어둠 속에 가려진 달을 향해 치솟는다. 깜짝 놀란 달이 어둠 속의 구름 속으로 숨어 들어가자, 다시 주위가 짙게 어둠으로 물들여진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사무친 어둠에 현준은 쾌감을 주체할 수 없다.


으슬거리게 빛나는 바람결을 따라 더 재빠르게 날아서 온몸이 세차게 흔들릴 정도로 하기도 하고, 겅중겅중 나무 정수리에 앉아 이나무에서 저 나무로 점프도 한다. 아무도 들리지 않는 곳에 포효하는 짐승의 소리를 내자, 공원들과 주위의 숲에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나무와 숲속에 깨어있는 작은 새들과 동물은 포식자의 등장에 조심히 몸을 숨는다.


현준은 가장 오래되고 커다란 대장인 나무의 정수리로 올라간다. 승자의 여유를 늘이듯이 온몸을 잔뜩 늘이면서 어둠 속에 쌓인 주위를 바라본다. 저 멀리 공원의 저편에는 옹기종기 밝게 빛나고 있다. 주차장에서 빠져나간 인간들이 저기에 앉아 있나 보다. 짙은 구름 속에 별조차 보이지 앓자, 현준은 몇 빛을 대신해서 한가로이 조용히 인간들의 불빛을 구경한다. 인간들은 주차장에서 가득한 소음과 타이어 소리와 수다스러운 인간들의 목소리들, 부산스러운 소음들로 은밀하게 울리는 자연과 현준의 움직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듯하다.


세찬 바람이 방향을 잠시 변덕을 부리자, 저 멀리 반대편에서의 인간의 냄새가 훅하니 제일 높은 나무 위까지 풍긴다. 인간들의 냄새란 정말 숨기기 어려운 것이다. 어디에 가도 인간은 냄새 때문에라도 숨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이 뒤서


기름진 냄새, 가공식품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 기름진 냄새, 과일 냄새, 어디선가 예전부터 맡았던 냄새가 난다. 그 뒤섞인 냄새들 사이로 아주 머나먼 옛적, 이제는 하얗게 표백된 기억들 사이에 존재한 익숙한 냄새가 현준의 코끝으로 흘러들어온다.


‘무슨 냄새더라’,

현준은 자세를 고쳐 앉고 인간의 세계를 향해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커다랗게 뜬다.


고향의 냄새이자 불행이 싹트던 마지막으로 장렬하게 타오른 행복의 냄새.


저 멀리 인간들의 무리가 현준의 정복을 기다리는 듯 밝게 빛난다. 짙은 어둠과 나무에서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한 현준은 기지개를 잔뜩 켜며 일어선다. 가장 높은 나무 정수리 위를 두 발로 짓밟고 저 멀리 바라본다.


인간에게서 현준에게 오던 바람이 방향을 다시 바꾼다. 바람이 인간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고 상냥하게 인도한다. 이러면 식은 죽 먹기지.

‘자 이제 인간 구경 좀 해볼까?’


아직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은 뱀파이어가 행차한다. 인간들의 군락지로.


예전에는 인간들이 뱀파이어의 숲에 불행을 몰고 왔듯이, 현준이 인간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줄지 모르고. 현준은 한가롭게 세찬 바람을 타고, 인간을 향해 단숨에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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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The Vampire of Peace(2) 24.09.14 3 0 13쪽
59 The Vampire of Peace(1) 24.08.25 5 1 11쪽
58 Windy Bloody(3) 24.08.25 6 0 8쪽
57 Windy Bloody(2) 24.08.19 7 1 8쪽
» Windy Bloody(1) 24.08.13 6 0 11쪽
55 웰컴 투 뉴욕(3) 24.08.10 8 1 10쪽
54 웰컴 투 뉴욕(2) 24.08.10 8 1 8쪽
53 웰컴 투 뉴욕(1) 24.08.05 6 1 9쪽
52 님아 그 문을 열지 마오 24.07.30 10 0 10쪽
51 51. 은밀한 비행(2) 24.07.28 10 0 11쪽
50 50. 온라인 팬미팅(2) 24.07.23 11 1 8쪽
49 49. 온라인 팬미팅 24.07.21 11 1 9쪽
48 48. 홍삼 24.06.18 12 0 8쪽
47 47. 넌 내 팬이 아냐 24.06.15 13 0 14쪽
46 46. 은밀한 비행 24.06.12 12 0 9쪽
45 45. 축제(2) 24.06.11 9 0 11쪽
44 44. 축제(1) 24.06.10 9 0 12쪽
43 43. 사이버렉카(8) 24.06.09 11 0 12쪽
42 42. 사이버렉카(7) 24.06.07 11 0 10쪽
41 41. 사이버렉카(6) 24.06.06 8 0 10쪽
40 40. 사이버렉카(5) 24.06.04 9 0 8쪽
39 39. 사이버렉카(4) 24.06.02 10 0 7쪽
38 38. 사이버렉카(3) 24.06.01 9 0 11쪽
37 37. 사이버렉카(2) 24.05.30 13 0 8쪽
36 36. 사이버렉카(1) 24.05.29 12 0 9쪽
35 35. 새봄(2) 24.05.28 13 0 9쪽
34 34. 새봄(1) 24.05.27 11 0 10쪽
33 33. 피닉스(2) 24.05.26 11 0 8쪽
32 32. 피닉스(1) 24.05.25 1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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