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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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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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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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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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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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해자들

DUMMY

제3장. 가해자들


나는 보미를 찾아야 했다.

학교는 매희에게 맡겼으니 학교 밖의 일은 내 몫이다.

학교 앞 횡단보도에 있는 여자한테 물어봤다.


“안녕하세요. 혹시 조금 전에 학교에서 뛰쳐나오는 여학생 한 명 못 보셨을까요?”


여자는 가만히 날 쳐다봤다. 그리곤 조금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쪽 귀신인 거 알아요. 맨날 이 횡단보도에만 계시잖아요. 여기서 교통사고 당하신 거예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횡단보도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굴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학생이라면 여기 횡단 보도 건너서 있는 저쪽 아파트로 갔어요.”

“아,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귀신들은 보통 호의적이다. 그래서 그것만 잘 이용한다면 웬만한 사건은 다 해결될 것이다.

나는 귀신이 말해준 대로 아파트로 갔다. 차라리 주택이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이 많은 단지 중에서 보미 집을 찾아야 하다니 벌써부터 난관이 예상된다.

일단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갔다. 이 많은 집 중 어디가 보미의 집인지 모르니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 길 잃은겨? 아파트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또 처음 보네. 학생, 친구 찾으러 왔다가 길 잃은겨?”

“아, 하하. 맞아요. 할머니. 여기 혹시 저랑 같은 교복 입은 머리 긴 여학생 못 보셨어요?”

“에이, 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여 앞이 학교라서 맨날 보는 게 학생이구만.”

“하하. 그건 맞죠. 근데 지금이 학교에 있을 시간이라 학생이 많이 없었을 텐데··· 그 친구가 이쪽으로 뛰어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아아- 방금 전에? 그렇게 말을 해야지. 그 교복 입고 막 울면서 뛰어 가길래 기억혀. 저-기 2단지로 들어갔어. 애가 뭐가 그리 서러운지 펑펑 울어댔어. 너가 친구니까 가서 잘 위로해줘라잉.”

“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이 할머니는 집에서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나 보네. 잠옷을 입고 계신 걸 보니 이 아파트 주민이였던 것 같다.

난 할머니가 말한데로 2단지로 들어갔다. 이제 동과 호수만 알아내면 되는데···

도움을 될 만한 정보가 뭐가 있나 하고 둘러봤더니, 202동 앞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남자 아이가 보였다.


“저기, 꼬마야. 안녕?”

“어? 저한테 인사하신 거예요?”

“어. 맞아. 너 몇 살이야?”

“전 6살이예요. 누나는요?”

“난 17살이야. 고등학교 1학년. 혹시 그 지금 누나가 입고 있는 옷이랑 같은 옷 입고 있는 다른 누나 못 봤어?”

“아- 보미 누나요? 보미 누나 우리 집 윗층이예요!”

“아, 정말? 다행이다. 난 보미 친구인데 잠깐 전해줄 말이 있거든? 혹시 보미 집 좀 알려줄 수 있을까?”

“좋아요! 대신 누나, 다음엔 저랑 놀아주셔야 해요!”

“그럼, 물론이지.”


아이는 사람이 인사를 건네준 것이 처음인 티가 났다. 자신에게 인사한 것이 맞냐고 나에게 되물었을 때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외적으론 특별한 것이 없어서 이 아이가 어쩌다 죽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괜히 더 마음이 안 좋았다.

아이는 오랜만에 사람과 논다고 생각한건지 폴짝 폴짝 뛰면서 날 앞서 가는 게 신나 보였다. 아이의 작은 뒷통수를 바라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들었지만 이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순 있는거라곤 딱히 없었다. 그러니 괜한 동정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들어가 층 버튼을 누르려 하였다. 아이는 아직 키가 작아 발꿈치를 힘겹게 들며 5층에 손을 뻗었다. 그렇게 발꿈치를 든 채 5층을 계속 눌러 댔다.


“누나가 눌러줄까?”

“아니예요! 제가 누르고 싶어요. 저도 키 많이 커서 이젠 5층도 누를 수 있거든요!”


아이의 순수한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5층 버튼은 아이의 손이 아예 안 닿는 위치는 아니였다.

하지만 귀신이 물체에 접촉하는 것은 사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는 키가 닿아도 계속해서 5층 버튼이 눌릴 때까지 누른 것이다.

귀신도 물체를 만질 수 있다. 사람이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옮기고, 들고, 던지는 행위를 쉽게 바로 못할 뿐이지 집중해서 하면 그래도 어느 정돈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매희도 학교에서 날 지켜준답시고 사람을 밀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5층을 누르고선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마치 그 눈빛이 나에게 ‘봤지?’라고 물어보는 듯했다.

그러고선 아이는 나에게 물어봤다.


“근데 누나, 누나는 이름이 뭐예요?”

“누나는 문명월이야. 너는?”

“전 최아훈이예요!”

“아훈이구나- 아훈이는 그럼 보미랑 어떻게 알아?”

“저 어렸을 때부터 보미 누나가 저랑 놀았어요! 유치원 숙제도 도와주고요!”

“보미랑 절친이구나!”


아훈이랑 얘기하다보니 5층에 도착했다.

아훈이는 이번에도 재빠르게 날 앞서 가더니 502호 문을 가리켰다.


“보미 누나 집 여기예요!”

“고마워, 아훈아. 나중에 누나가 또 올게. 그때 꼭 같이 놀자. 알겠지?”

“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나한테 배꼽인사를 하는 아훈이를 보니 또 웃음이 지어졌다. 나도 같이 배꼽인사를 해주며 아훈이를 배웅했다.

아훈이는 미끄럼틀을 타듯 바닥을 통과하며 행복해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

귀신만 할 수 있는 행동에 또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아훈이의 웃음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닥을 뚫어지게 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바닥에 둔 시선을 502호라고 적혀 있는 문으로 옮겨 갔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혹시 보미가 집으로 안 들어왔나?

생각해 보면 아훈이는 보미를 안다고 말했지, 보미가 집으로 간 것을 봤다고 하지 않았다.

보미가 집으로 오다가 다른 곳으로 갔나? 아니면 집에 있는데 그냥 모른 척 하는걸까? 그렇다면 난 보미를 어떻게 만나야 하지?

이런 저런 생각에 휩싸여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색하던 중에 문이 열렸다. 보미였다.


“명월이···? 너가 우리 집은 무슨 일로···”


보미가 나올 거라고 생각 못 했던 나는 마주한 보미에 놀라서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보미의 얼굴을 보니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아까 그렇게 교실을 나가고 지금까지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보미는 대답 없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내가 이상했는지 다시 날 불렀다.


“명월아?”

“아, 어, 어. 미안. 그게 뭐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너가 아까 그렇게 간 게 마음이 걸려서··· 혹시 괜찮으면 같이 얘기할 수 있을까 해서.”

“아··· 그래... 뭐···”


보미는 몸을 틀어 날 집 안으로 들여 보내줬다. 난 신발을 벗으며 집 안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


“어? 아-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라서··· 그리고 난 외동이라 지금 집엔 아무도 없어. 원래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까···”

“아··· 그렇구나.”


보미와 나는 같은 반이긴 했지만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였다. 그렇다고 보미와 나는 학교에서 눈에 띄게 행동을 하는 편이 아니라서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물론 이번 사건 때문에 둘 다 주목을 받긴 했지만, 우리 둘 다 이런 주목을 원치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내 대답으로 대화가 끊긴 후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보미에게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거실 한가운데에 아무 말없이 어색하게 서 있으니 보미는 그런 나에게 앉기를 권했다.


“명월아, 앉아 있을래? 내가 물이라도 한 잔 가져다줄게.”

“아, 어, 그래. 고마워.”


나는 편하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쇼파에 앉았다. 괜히 어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곧 이어, 보미가 물을 건네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고마워.”

“아니야, 뭘··· 그보단 보미 너··· 아까 그 일 때문에 온거지?”

“아, 어, 맞아. 그··· 어···”


이미 상처를 받았을 보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내가 계속 말을 못하고 있으니 보미는 무언가 결심한 듯 허리를 세우고선 먼저 말문을 텄다.


“그 영상 내가 올린 거 아니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누가 찍은 거야. 날 강제로 벗기고선. ”


예상은 하긴 했지만 보미에게 직접 들으니 더 충격적이였다.

그래도 보미가 이렇게 먼저 말을 해준 걸 보니 보미도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의지조차 없으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편하게 보미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먼저 말 꺼내줘서 고마워. 너한테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망설였거든. 그리고 일단 난 그 영상 안 봤어. 너가 그렇게 학교 나가고 나서 상황이 어땠냐면, 어··· 일단 아침에 너한테 소리지르면서 조롱하던 애 기억나?”

“어··· 근데 누군지는 잘 몰라. 그래서 더 무서웠어. 내가 모르는 애들까지 그 영상을 봤구나 싶어서···”

“너 마음 내가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들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내가 최대한 돕고 싶어. 걔네는 너한테 그럴 자격 없고, 너도 걔네한테 그런 짓을 당할 이유 없어. 내가 너 돕게 해줘.”

“고마워. 명월아··· 우리가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선뜻 돕겠다고 해줘서···”

“당연히 해줘야지. 같은 반이잖아. 어··· 일단 하던 얘기 계속하면, 그 남자애가 ‘최민수’라는 애거든? 내가 걔 휴대폰을 뺏어서 폰을 좀 확인했어. 영상이 있나 봐야 할 것 같아서. 왜냐면 그 폰에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확인해 보니까 1학년 남자 애들 단톡방에 공유가 됐더라고. 영상은··· 내가 굳이 보진 않았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내 말을 들은 보미는 표정이 어두워지고 사색이 됐다.


“그럼 명월아, 나··· 나는··· 나는 이제 어떡해? 남자 애들이 그 영상을 다 봤으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학교를 다녀? 걔네가 다 처벌을 받더라도 1학년 남자 애들 전체를 다 강제 전학시킬 순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전학을 가더라도 그 학교에 또 그 영상이 퍼지면?”

“명월아. 그럴 일 없어. 학교에서 이 일을 제대로 처리 안하더라도 내가 할 거야. 너 영상은 내가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서 다 삭제시킬거고, 경찰도 안 도와주면 내가 디지털 장의사한테 의뢰해서라도 삭제 시켜. 그리고 남자 애들? 당연히 처벌받게 할거야. 단체로 강제 전학 못 시킨다고 하면 단체 정학이라도 먹게 할 거야. 평범한 일상을 살아도 될 자격이 있는 건 너야 명월아. 걔네가 아니라. 알겠지?”


단호한 말투로 냉철하게 말하는 나를 보며 보미는 오히려 안정이 느낀 것 같았다.

여기서 보미가 심리적으로 두려움을 더 느끼게 되면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작은 의지마저 다 꺾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 보미가 최대한 안정된 상태로 있어야 한다.

나는 보미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상황을 계속 말했다.

“아, 보미야. 내가 방금 말한 최민수 폰 있잖아. 그거 선생님께는 안 드렸어.”

“왜? 거기에 증거가 있으니까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그래도 폰 들고 학년 부장 쌤한테 갔거든? 근데 느낌이 좀 불안해. 내가 쌤이랑 얘기하면서 조금 불안해서 그냥 내가 다시 들고 왔거든? 혹시라도 너가 폰 드리고 싶으면 내가 전해주긴 할 거야. 넌 폰 쌤한테 드리면 좋겠어?”

“음··· 아니야··· 쌤이랑 얘기해본 너가 알겠지. 나도 이제 사람을 그닥 못 믿게돼서···”

“이런 일을 겪었으니 그럴만하지··· 난 믿어줘서 고마워. 일단 최민수 폰은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다가 걔가 신고할 수도 있는데.”

“영상만 너한테 보내서 증거를 남기는건 어때?”

“넌 괜찮겠어? 나야 그 방법을 생각 못한 건 아닌데··· 어쩼든 영상이 또 유포되는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으려나···”


일단 폰은 최민수에게 돌려줘야 하긴 한다. 이러다 진짜 내가 절도범 되게 생겼다.

하지만 증거는 남겨야 했다. 뭐든지 증명해야만 하니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내 폰으로 남자 애들 톡방을 사진으로 찍어둘게. 아마 유포한 행위만 입증되면 될거야.”

“그게 낫겠다.”

“내가 일단 찍어볼게, 그럼.”


사진으로만 남기자는 결론을 내고 나는 곧장 내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곤 최민수 폰을 들어 남자 애들 톡방을 들어갔다. 그리고 또 혹시 몰라 다른 카톡방도 들어가서 확인을 했다. 개인 톡으로 보낸 것도 몇 개 있어서 그것들도 다 사진을 남겼다.

보미가 보면 또 상처받을 것 같아 보미가 폰 화면을 볼 수 없게 괜히 휴대폰을 내 쪽으로 틀고 불편하게 사진을 찍었다.

보미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보미도 괜히 딴청을 하며 시선을 창 밖으로 두었다.


“다 했어, 보미야. 그럼 이제 영상 찍은 사람이 누군지··· 혹시 말해줄 수 있을까?”

“아, 그게···”


보미는 굉장히 난처하고 두려워하는 얼굴로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아서···”

“이미 내가 도와주기로 한 마당에 내가 왜 안 믿겠어. 난 너 무조건 믿어.”

“고마워, 명월아··· 그럼 나 너 믿고 얘기 해볼게.”


다행이다. 보미를 잘 설득시킨 것 같다.


“그··· 나 특별반인거 알고 있지?”

“당연하지. 너 입학 때부터 계속 특별반이였잖아.”


보미는 성적이 좋아서 입학 때부터 쭉 특별반이었다. 전교 1등은 아니지만 우리 반 1등이라 항상 3~6등을 유지했다.

우리 학교 특별반은 전교 1등부터 20등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엄청난 특혜를 받는 건 아니지만 특별반 자습실도 따로 있고, 시험기간에 따로 수업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특별반이라니?


“혹시··· 범인이 특별반에 있어?”

“어, 맞아··· 그, 전교 1등인 가해욱 알아? 걔가 그런거야.”


가해욱은 매일 전교 1등만 하는 남학생이다, 인성 좋기로도 소문 나서 학생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2학년 때 전교 회장은 이미 가해욱으로 다들 예상하고 있을 정도였다.

보미가 왜 내가 못 믿을 것 같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공부 잘하고 인성도 좋은 전교 1등이 그럴 거라곤 다들 생각하지 못하니까. 심지어 가해욱 아버지는 검사, 어머니는 변호사이다. 법조계 집안의 전교 1등 학생이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곤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일이 더 복잡해졌다. 그런 애가 범인이라면 분명 학교에서는 이 사건을 덮으려 할 것이다.

가해욱의 부모님은 이미 유명한 검사, 변호사이다. 그런 사람들의 아들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사실을 세상이 알면 이 학교도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우리 학교는 성폭행이 일어나는 학교 이미지를 원치 않을 테니 이 사건을 묻을 거고.

그리고 학교에서 가해욱은 기대하는 바가 큰 학생이기 때문에 그러한 학생을 굳이 벌하려 하지 않을 거다.

결국 결론은 학교는 가해욱 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 이 일을 알려야 한다. 그 다른 곳이 어디든간에 증거가 있어야 신고를 할 수 있을 텐데.

보미에게 그 일을 상기시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지만 일단 실마리를 풀고 증거를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

“보미야, 정말 미안하지만··· 그때 어떻게 된 일인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어? 아까 말했듯이 학교는 우릴 돕지 않을 거야. 그러려면 이 일을 다른 곳에 알려야 해. 어디든 이 일에 대해 말하려면 아무래도 증거가 필요할 것 같아서···”


보미는 내 말을 듣고 수긍하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얘기하기를 망설였다. 보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왠지 모를 막막함이 보였다.

보미는 곧이어 숨을 고르며 생각하는 듯싶더니 기억을 되짚는 듯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명월이 너 말이 맞지··· 어, 일단 가해욱은 공부를 잘해서 전교 1등 한 게 아니야. 물론 공부를 잘하긴 하지만 걔 노력만으로 된 게 아니야. 내 생각엔 학교 선생님 중에 누군가가 걔한테 시험지를 주나 봐.”

“시험지? 누가 그러는지는 알아?”

“거기까진 나도 몰라. 근데 너 말 들어보면 학년부장 쌤 같기도 한데··· 뭐 이건 확실하지 않아서 일단 넘어 갈게.

어쨌든 어떻게 된거냐면, 그 날은 내가 하루 종일 특별반에 있었거든? 그 날, 저녁 먹고 다시 특별반에 와 보니까 걔 책상에 뭐가 올려져 있더라고.

근데 가해욱은 특별반에 잘 있지 않거든? 사실, 특별반 애들은 거의 반강제로 특별반에서 자습을 해야 하는데 걔는 시험기간에도 항상 자리에 없었어.

일단 야자 시간엔 거의 없고, 그나마 시험기간일 때, 수업 중에 선생님이 자습 주면 그때 잠깐 가서 공부하는 정도? 난 학원도 안 다녀서 거의 매일 특별반에 있거든. 그래서 걔 책상이 거의 항상 깨끗한 걸 봤어.”


보미 말을 듣다 보니 가해욱은 학원 때문에 자습을 빼는 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가해욱만 특별히 빼주는 것 같다.

잠깐 스쳐간 이 생각은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보미 말을 끊고 싶지 않았으니까.


“근데 그 날은 자습 시간도 아니고 야자 시간이였거든? 그런데도 걔 책상이 뭐가 막 있는거야. 평소랑 달라서 나도 모르게 뭔 지 확인한 것 같아. 봤더니 시험지가 있는거야.

걔는 학원도 좋은 데를 다니니까 그냥 학원에서 나눠주는 모의고사 그런 건 줄 알았어.

근데 상단에 우리 학교랑 시험 날짜가 적혀 있었어. 그때 보면 안되는 걸 봤다는 느낌이 들어서 바로 주위 둘러보니까 나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가해욱이 언제 올 지 모르니까 일단 특별반 문 열고 복도도 확인해봤어.

특별반이랑 같은 층 끝에 교무실 있는 거 알지? 그쪽에서 학년 부장 쌤이랑 가해욱이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 거리가 너무 멀기도 하고, 나도 왠지 들키면 안 될 것 같아서 숨어서 살짝 봤어. 그래서 둘이 무슨 대화했는지는 몰라.”


분명 가해욱은 뒷돈을 주고선 시험지를 받았겠지. 정확한 대화는 뭔지 몰라도 분명 그 시험지에 관한 대화일 것 같다.


“둘이 대화하는 거 보고선 바로 문 닫고 들어왔어. 내가 봤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시험지도 제자리에 두고.

난 일단 모르는 척하려고 자리에 앉아서 계속 공부했어. 그러고 조금 있다가 가해욱이 들어오는거야.

놀라긴 했는데 놀라면 더 이상할까봐 그냥 무시하고 있었어. 걔가 내 뒷자리라고 했잖아.

걔가 책상으로 가더니 종이를 막 만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급하게.

그러다가 소리가 멈추더니 걔가 내 뒤로 걸어왔어 그러곤 내 뒤에서 날 불렀어.”



[그 날, 보미의 상황]


“전··· 보미?”


어떡하지. 모르는 척하려고 이어폰 꼈는데 계속 안 들리는 척해야 하나?

그때, 가해욱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더 이상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어, 어? 왜?”

“너 혹시 내 책상 봤어?”

“책상? 나 저녁 먹고 방금 들어와서 바로 공부해서··· 혹시 없어진 물건 있어?”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그럼 지금까지 너 혼자 있었어?”

“어. 그러곤 아까 석식 시간에 밥 먹고 이제 막 왔어. 없어진 물건 있으면 내 책상 확인해 봐도 돼.”

“아니야. 됐어.”


휴, 다행히 안 들킨 것 같다.


“그냥 CCTV 확인해 보지, 뭐. 물건 없어졌다고 하면 확인시켜 주실 거야.”

“어, 어? CCTV? 그렇게까지? 진짜 내 책상 확인해봐도 되는데···!”


CCTV 확인하면 내가 시험지 본 게 들킬 거야. 절대 그렇게 둬선 안돼.


“보미야, 뭐 그렇게 놀라? 진짜 너가 뭐라도 훔친 것처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뭐··· 훔친 게 아니라 뭘 본건가?”


그 순간, 너무 놀라 눈이 커진 게 느껴졌다. 표정에서 다 티가 났을 것이다.


“본 거 맞구나. 공부도 잘하는 네가 저게 뭔지 모를 리 없고··· 근데 너가 선생님께 말하면 어떡하지?”

“아니야···! 나 절대 말 안 할게!”


시험지를 들킨 건 가해욱인데 왜 내가 이렇게 약점 잡힌 사람 마냥 굴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가해욱은 약점이 잡히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한 태도로 먹잇감을 찾아 신난 포식자의 표정이였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비밀을 지키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뭐··· 뭔데···?”

“둘 다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 돼. 너도 나한테 비밀 하나 알려줘봐. 그러면 우리 서로 빚진 거니까 괜찮잖아?”

“나··· 난 비밀 같은 거 없는데···”

“아.. 시발, 보미야. 왜 협조를 안 해. 진짜 선생님께 말하려고? 존나 귀찮게 두네, 진짜···”

“아니야, 정말···! 나 진짜 안 말할게. 정말이야!”

“그걸 내가 어떻게 믿냐고. 말귀 못 알아들어? 야, 안되겠다.”


가해욱은 갑자기 한 손으로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케..케켁··· 컥···!”

“보미야, 진작에 협조했으면 좋았잖아. 뭐, 근데··· 나도 이 쪽이 더 좋긴 해.”


내가 발버둥치는 사이, 가해욱은 내 교복을 벗기기 시작했다. 난 그 짓을 막으려고 가해욱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 목을 더 세게 졸랐다.

너무 고통스러워 내 목을 쥔 가해욱 손을 떼어내려 다시 손을 목으로 올리면 그때 가해욱은 또 옷을 마저 벗겼다. 이 짓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옷을 무작위로 대충 벗겨 놓고선 가해욱은 자신의 폰을 들었다. 내 목을 쥐었던 손을 내 입으로 옮겨 내 입을 막고선 폰으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영상을 찍기 전에 가해욱은 이렇게 말했다.


“보미야, 내 이름 말하면 안돼, 알겠지? 뭐··· 어차피 넌 아무 소리도 못 낼테지만.”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떨어졌다.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가해욱은 폰으로 내 몸 이곳 저곳을 찍었다. 나는 어떻게든 손으로 내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해욱은 내 입을 우왁스럽게 막은 손이 내 얼굴을 일그러트려 그것 또한 고통스러웠다.


죽고 싶은 날이였다.


그 날, 가해욱은 영상을 찍고 나에게 협박을 했다.


“네가 선생님이든 친구든 그 누구든, 말하려고 하는 것만 봐도 난 이걸 온 세상에 올릴거야. 알겠지, 보미야?”


옷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나는 고개를 떨군 채 그 어떤 말도 안 나왔다. 가해욱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다는 듯 지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나더니 짐을 싸고 곧장 나갔다.


만신창이가 됐어도 누가 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힘겹게 일어나 꾸역꾸역 옷을 입고 나도 나왔다.

그리고 집 가서 몸을 씻어냈다. 내 자신이 너무나 더럽게 느껴졌으니까.


난 그 날 이후로 학교든 집이든, 평소처럼 굴었다. 학교를 나가지 않으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건 절대 아니였다.

그 영상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가끔 사람들이 날 볼 때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래도 평소처럼 굴어야 다들 내가 아무 일도 없는 애라고 생각할테니 억지로라도 표정을 고치고 숨을 골라야 했다.


그러다가 며칠 후,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평가하고 성희롱 한 것들이 적힌 공책이 발견됐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또 한 번 숨이 안 쉬어졌다.

그 공책에 내 영상 얘기가 있으면 어떡하지?

쉬는 시간에 그 얘기를 듣고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과호흡이 왔다. 바닥에 주저 앉아 숨을 제대로 못 쉰 채 눈물만 흘렸다.

그 와중에 나는 울어서 눈이 부은 채로 수업 시간에 제때 들어가지 않으면 친구들과 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싶어 얼른 눈물을 닦고 숨을 골라야 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교실에 들어가니 다들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짝꿍인 채현이에게 물어봤다.


“채현아, 다들 왜 벌써 짐 싸?”

“아, 보미 너 화장실에 있어서 못 들었구나. 아까 그 남자 애들 공책 있잖아. 그거 때문인가봐. 남자 애들은 단체로 강당으로 불려 갔고, 여자 애들은 일찍 하교하라던데? 방금 선생님도 종례하고 가셨어.”

“아··· 그래? 그럼 나도 짐 싸야겠다.”

“응응, 얼른 싸! 내일 봐, 보미-“

“잘 가-“


나는 이유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남자 애들이 벌을 받아서인지, 그 공책에 내 얘기가 밝혀지지 않아서 인지, 이유는 모른다.

그래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교를 했다.


다음 날, 학교에 나와 보니 다들 아직 어제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철민이라는 남자애가 우리 반을 들어오면서 난리가 났다.

다들 우리 반으로 몰려왔고, 몰려 온 남자 애들 중 한 명이 내 영상 얘기를 했다.


왜지? 분명 가해욱은 내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그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난 가해욱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 숨도 못 쉰 채 학교에 꼬박꼬박 나왔다.

그런데 대체 왜지?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가 영상에 대해 알고 있다면 대체 누구까지, 어디까지 영상이 퍼진거지?


모두가 날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난 눈을 뜬 채로 눈 앞이 흐려졌고, 가위에 눌린 듯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명월이와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작가의말

최애의 아이 최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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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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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정보의 바다 시대에 도서관이라니 24.09.16 6 0 8쪽
31 31. 화해의 도서관 24.09.13 10 0 7쪽
30 30. 손발도 맞아야 아주 큰 소리가 난다. 24.09.11 10 0 8쪽
29 29. 들리지 않는 대화 24.09.09 12 0 10쪽
28 28. 쌈닭들 24.09.06 14 0 10쪽
27 27. 일석이조 24.09.04 13 0 9쪽
26 26. 보호막 24.09.02 14 0 9쪽
25 25. Just One Second. 24.08.30 19 0 10쪽
24 24. 헤쳐 모여. 작전이다. 24.08.28 17 0 9쪽
23 23. 바쁘다바빠 초능력사회 24.08.26 23 0 11쪽
22 22. 결투를 신청한다. 24.08.23 18 0 10쪽
21 21. 제대로 수업을 하는 날이 없음 24.08.22 18 0 7쪽
20 20. 도망쳐야 하는 순간도 있다. 24.08.20 19 0 8쪽
19 19. 이러다 다 죽어 24.08.17 20 0 8쪽
18 18. 자, 이제 잠에 듭니다 24.08.14 32 0 10쪽
17 17. 쉬는 시간 24.08.12 31 1 11쪽
16 16. 죽고 싶은 사람 이리 모여라 24.07.09 34 2 11쪽
15 15. 우리 반 24.06.23 32 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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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 수용할 줄 아는 능력 24.06.16 38 0 24쪽
12 12. 견학 24.06.14 36 0 19쪽
11 11. 선택 24.06.12 36 0 15쪽
10 10. 마지막 미션 24.06.11 46 0 16쪽
9 9. 갑작스러운 의문 24.06.09 39 0 14쪽
8 8. 사실 초능력이 행운일 수도 24.06.09 40 1 20쪽
7 7. 저세상 베프 24.06.04 41 0 19쪽
6 6. 조력자 24.05.30 43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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