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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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저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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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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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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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0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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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살

DUMMY

제2장. 자살


쿵.


내 눈 앞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아마 지금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밀친 거라고 생각하려나?


지금까지 귀신만 봐왔는데, 사람이 죽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전보미. 떨어진 사람은 나와 같은 반 학우 전보미이다. 보미는 반에서 엄청 튀는 아이는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도 아니였다. 성격이 둥글고 선하여 반의 모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그런 아이였다.

모서리 하나 없는 둥글한 아이였다

그런 보미의 이유 모를 자살은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리고도 남았다.


죽은 보미가 내 옆에 있다.

보미는 평온한 얼굴로 지금 내 옆에 서있다. 보미는 혼이 된 채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그런 보미에게 난 물었다.


“왜 그런거야? 왜··· 왜 떨어진거야?”

“그냥···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서··· 너 말곤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잖아. 마치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야. 그래도 내가 죽으니까 저렇게 달려와 주긴 하네.”

“그래도··· 그래도 이건 좀 아니잖아. 내가 도와준다니까?”

“알아. 넌 귀신을 보잖아. 난 널 믿고 떨어진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너가 내 억울함 풀어준다며. 약속했으니까 넌 날 도와주면 돼. 아마 너도 살아 있는 나와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 이 상태의 나와 움직이는게 더 편할걸?”

“지금 내가 편한 게 중요해? 너가 목숨을 잃었잖아. 지금 너가 이렇게 나랑 얘기할 수 있다는건 저 아래의 너가 즉사했단 소리야. 지금 선생님들이 119를 불러도 소용이 없다니까?”

“나도 알아. 즉사할거라 생각하고 떨어진거야. 이 높이에서 살아남으면 그게 더 불행할걸? 너도 알잖아.”

보미의 말은 그래도 조금 맞는 말이였다.

뇌사 상태로 육체만 간신히 살아 있는 경우, 혼과 육체가 서로 아등바등 힘을 가지려 싸우다가 결국 둘 다 힘을 잃어 육체도 죽고 혼도 남아 있을 힘이 없어 저승으로 가게 된다.

그래도 이건 아니였다. 분명 나는 보미가 죽지 않고도 보미를 도울 방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확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도우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미련도 없이 떨어지다니.

솔직히 이제부터 보미의 혼과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때, 옥상 문이 열렸다.


“문명월! 너 지금 전보미한테 뭐라고 얘기한거야? 뭐라고 했길래 애가 떨어지냐고!”


갑작스런 호통에 놀라 말문이 막혔다. 내가 떨어트린게 아닌데.

어른들은 할 줄 아는 게 호통치는 것 밖에 없는지. 자기들이 직접 보미를 말릴 생각은 안하고 옥상에 있는 보미한테 저 아래에서 내려오라고 소리만 지르더니 막상 애가 떨어지니 나한테 지랄인가싶다.

보미가 죽으면서 놀란 마음과 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말문이 막히다가 화가 나니 또 말이 술술 나온다.

“제가 떨어지라고 해서 떨어졌겠어요? 옥상에 올라와서 보미 말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길래 올라와봤더니···. 선생님이 그러고도 선생님이세요?”

“야··· 야! 너 지금 그게 선생님한테 할 소리야? 선생님들이 아래에서 얼마나 말렸는데!!!”

“아. 선생님들은 열심히 말렸는데 보미가 떨어져서 선생님들은 아무 책임 없다는 말씀인거죠?”

“그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진작에 보미 말 들어주고 관심을 주셨으면 애초에 애가 여기까지도 안 왔겠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거죠?”

“야 너 지금 그게 무슨,”


잔뜩 흥분한 채로 콧구멍 벌렁거리며 말 더듬는 선생님 보기가 역겨워 그냥 선생님을 무시한 채 옥상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어른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그냥 어른도 아니고 선생님이다.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이 상황이 너무나 화만 난다.

지금 상황에 대해 이해해보려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사태의 시발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이틀 전.


학교에서 역겨운 사건이 있었다.

각 반이 종례를 마치고 방과 후 수업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학교는 방과 후 수업을 이동 수업을 하기 때문에 듣는 과목에 따라 반을 이동하였다.

우리 학교는 공학이지만 남녀분반이라 정규 수업은 분반으로 진행되지만, 방과 후 수업은 남녀가 같이 수업을 듣는다. 여학생들은 이 시간을 고문 시간이라 말한다. 여학생들은 남자 반에 들어갈 때 나는 남학생 특유의 땀냄새를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남자 애들은 청소 시간에 거의 대부분 나가서 축구를 한다. 교실에 남아서 청소하는 애들은 보통 조용한 애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매일 몸 부딪혀가며 싸우고 격렬하게 노는 보통의 남자 애들한테 불만을 표시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자기들끼리 청소를 한다.

그래서 청소가 다 끝나면 닿기만 해도 끈적거리는 땀 범벅인 남자 애들이 들어와서 책만 가지고 이동 수업을 간다.

이동할 때도 복도에는 땀 냄새가 심하게 난다. 제발 씻고 다니면 좋겠다.

그 날도 역시 땀 냄새 가득한 남자 반으로 들어가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였다.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여학생이였기 때문에 다들 냄새에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앞 자리에 앉은 여학생들은 책상에 올려진 생활복을 보고 말했다.


“아 시발. 진짜 더러워 죽겠네. 이거 누구 자리냐, 진짜.”

“책상 이름표 뭔데?”

“‘조철민’이라고 적혀 있어. 남자 애들은 왜 대체 책상을 안 치우고 가는 거야? 내가 지들 땀냄새를 맡아야 해?”

“야 그냥 걔 사물함 던져놔. 냄새도 나는데 그걸 올려 두고 수업 들을 순 없잖아.”

“아··· 씨··· 그래야겠다.”


그 여학생은 최대한 자신의 피부에 닿지 않도록 생활복을 들고선 교실 뒤 쪽으로 갔다.

이름표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조철민’ 이름표가 있는 사물함을 열었다.

남자 애들은 대부분 사물함에 자물쇠를 걸지 않아 쉽게 열린 듯했다.

여학셍은 옷을 거의 던지듯이 집어넣었다. 그러다가 한 공책을 떨어트렸다.

여학생은 짜증난다는 듯 표정을 구기곤 공책을 주우려 하다가, 공책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고는 멈칫했다.

“김수민? 내 이름이 왜 여기 있지?”

“수민아. 뭐해. 곧 수업 시작해.”

“아니, 얘 공책에 내 이름이 있어. 다른 여자애들 이름도 같이.”

그 말에, 그 반에 있던 모든 여자애들이 수민을 쳐다봤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수민이 들고 있던 공책을 보았다. 나 역시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공책을 보았다.

공책 제일 왼쪽에는 여자아이들이 위에서 아래로 쭉 나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름 옆에는 점수로 예상되는 숫자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김수민] 7 키스는 잘 하는데 가슴이 너무 작음 그나마 날씬해서 보기는 좋은데 가슴이 없음

[박혜연] 6 너무 뚱뚱하고 키가 너무 큼 여자답지 않아서 별로임 가슴만 만져야 함

[강지수] 9 가슴은 작은데 골반이 미침 그리고 가슴 작아도 커버 칠 얼굴ㅋㅋ

···


공책의 내용을 읽은 우리는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과 자신의 친구가 성희롱 당한 문장이 적힌 걸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 공책을 사물함에 숨겨둔 사물함 주인인 조철민이라는 애는 당연히 이 공책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책에 적힌 내용들의 필체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여러 명이 쓴 듯이 글씨체가 들쑥날쑥 했다.

그래서 이 공책은 남자 애들이 돌려 보고 같이 사용하는 물건일거라 생각했다. 자기들끼리 시선 강간한 여학생들의 몸을 평가하기도 하고, 여학생과 스킨십을 한 애들은 감상평처럼 성희롱을 늘어 놨다.

여학생들은 공책을 보고선 다들 심한 욕을 하고 있었다. 우는 아이도 있었다. 울고 있던 그 친구는 고등학교 와서 처음 남자와 교제를 하며 교내 커플로 유명한 아이였다. 그 친구 이름 옆엔 자신의 몸과 스킨십이 할 때 어땠는지에 대해 남자애의 성희롱이 적혀 있었다.

그 친구가 너무 서럼게 울어서 우리 모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 친구를 다독여주고 싶었지만 사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공책에 이름이 있었기에 모두가 피해자였다. 다들 본인의 멘탈을 지킬 여력이 없었기에 서럽게 우는 친구를 위로해 주지 못했고 그럴수록 그 아이의 울음 소리는 커져만 갔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수업 종 이미 쳤는데 뭐하고 있어. 다들 자리에 앉아.”

나는 수민이가 들고 있던 공책을 가져와 선생님께 드리며 말했다.

“선생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기 반 남자애 사물함에서 나왔어요.”

공책을 받아 읽어 보신 선생님은 충격을 받은 표정이였다. 선생님은 공책을 다 읽으신 후, 우리에게 일단 교실에 앉아 기다리고 하셨다.

우리는 모두들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다들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잠시 후,

교실 스피커에서 ‘조철민’ 학생을 교무실로 부르는 방송이 들렸다. 그러곤 조금 있다가 종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쉬는 시간은 단 10분밖에 없지만, 우리가 아까 50분 동안 겪었던 일은 5분도 안 돼서 모든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물론 여학생들 사이에서만.

남학생들은 왠지 모를 여학생들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에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곤 두 번째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됐다.

종소리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방송이 나왔다.

‘1학년 남학생들은 모두 지금 당장 강당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1학년 남학생들은 모두 지금 당장, 강당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방송이 끝나나 싶더니 또 다른 방송이 나왔다.

‘1학년 여학생들은 모두 하교해주시길 바랍니다. 1학년 1반부터 4반까지 담임 선생님들은 학생들 하교 지도 부탁드립니다.’

방송이 끝나자 1학년 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달리 하교하지 못하고 의문도 모른 채 강당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 짜증을 내며 강당으로 이동했다.

여학생들은 빠르게 본인 교실로 이동하였다. 곧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오늘은 일이 좀 있어 여학생들만 하교 조치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전 수업에서 있던 일을 직접적으로 말씀 안 하셨지만 여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강당에서 어떤 얘기가 오갈지 대충 짐작하였다.

평소보다 빠른 하교에도 여학생들은 마냥 신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더러웠고 수치스러웠다. 이름이 적히지 않은 친구들도 이 사태에 대해 거센 분노를 표출하며 다른 친구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줬다.



나 역시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난 남자 애들이랑 엮일 일이 아예 없었다.

그건 우리 교실 뒤에 있는 귀신 덕분이다. 이름은 한매희. 10년 전 이곳에서 왕따를 당해 자살해 죽은 학생이었다. 매희는 가해자 학생들과 학교 폭력을 감추려 했던 선생님들이 죽는 꼴을 봐야겠다며 이 학교에 남았다.

당연하겠지만, 가해자 학생들은 이미 학교를 떠나 각자의 삶을 잘 살고 있다. 가해자 학생들이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매희도 매번 찾아가 어떻게 사는지 지켜 봤지만,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더 고통스럽기만 하여 그만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머물면서 그때 그 선생님들이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또다시 하지 못하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매희는 밝고 재밌는 친구였다. 그래서 항상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들은 얘기를 나에게 전해주곤 했다.

사람과 얘기를 해본 지 10년이나 된 매희는 나를 자신의 베프라 생각하며 옆에서 매일같이 조잘조잘 떠들었다. 나도 매희가 전해주는 얘기들이 꽤나 재밌고 흥미로워서 매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볼 때, 종종 매희에게 왜 왕따를 당했는지 묻고 싶었다. 분명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어쩌다 왕따를 당해 자살까지 하게 됐을까.

이런 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매희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매번 질문을 하지 않고 혼자 궁금해만 했다.


매희가 나에게 전해주는 얘기 중 남자 애들 얘기도 있었다.

매희는 누구랑 누가 본인들의 여자친구 몸 평가하는 것을 들었다며 나에게 말해줬다. 여기서 누구라고 언급한 남자애들은 꽤나 많았다. 여자친구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여학생을 평가하고 성희롱 한다는 말을 해줬다.

그래서 난 원래도 남자에 관심이 없었지만 더더욱 남자애들에게서 거리를 뒀다.



교실에서 하교 준비를 할 때 사물함에 앉아 있는 매희를 슬쩍 보니 매희도 공책 얘기는 모르는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도서관으로 갔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는 아무도 신청하지 않은 도서부를 신청하였다.

도서부원은 나랑 3학년 선배 두 명이 더 있는데 수능이 끝나서 선배들은 학교에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사실상 도서부원이 나밖에 없는 지라 사서 선생님도 나에게 열쇠 하나를 주시곤 오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오라고 하셨다.


열쇠로 도서관 문을 열자 고요함이 날 반겨줬다.

정말 소란스러운 하루였다. 도서관 쇼파에 드러 눕자 매희가 바닥을 뚫고 나타났다.


“야, 야, 명월아! 내가 남자 애들 이상하다고 했지? 내 말이 맞았어. 너 남자 애들 멀리 하라고 한 거 나니까 저 공책에 네 이름 없는 거 내 덕분이다?”

“그럼 뭐 해. 다른 여자 애들 이름이 다 있는데. 왜 내가 죄책감을 가지는지 모르겠다.”

“너가 왜 죄책감을 가지냐. 그러면 너가 여자 애들한테 저 공책 본 사람들 다 말해주고 걔네 다 처벌 받게 하면 되는 것 아니야? 내가 강당 가서 무슨 일 있는지 보고 올까?”

“됐어. 그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애초에 남학생만 강당을 갔는데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어.”

“그런가? 에이.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내가 듣고 올게. 뭘 알아야 하든가 말든가 하지. 나 갔다 올게!”

“야, 야! 가지 말라니까!”


또 이렇게 지멋대로다. 어차피 매희는 내가 말려도 그냥 천장으로 솟거나 바닥으로 꺼져버리면 그만이니 매번 자기 뜻대로 한다.

사실 매희를 말리긴 했지만 나도 강당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굳이 남학생 전체를 부른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먼저 불려간 학생 조철민, 걔가 무슨 말을 했길래 다 같이 강당으로 가야만 했을까.

그 공책을 공유한 남학생이 1학년 남학생 모두라서 그랬을까?

진짜 그런거면 역겨워서 학교 못 다닐 것 같다. 계속 이런 생각만 하다 보니 괜히 피곤해져 그냥 집으로 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등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어제와 같이 소란스럽다.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지만 어제 일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굳이 알아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교실에 도착하자 여전히 아이들은 어제 일로 얘기하고 있었다.


“야, 너희 오면서 들었어? 남자 애들 어제 남아서 반성문 썼대. 부모님한테도 연락 다 가서 걔네 엄청 늦게까지 남았다가 갔다는데?”

“아니 그러면 남자 애들 전체가 그 공책 썼다는거야?”

“그건 모르겠는데 단체로 남아서 반성문 쓴거면 남자 애들 다 공책을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닐까?

“하긴 그래. 굳이 남자 애들 다 부를 이유가 없잖아.”


여학생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매희가 들려준 얘기들을 생각해보면 남학생 전체가 그 공책과 연류 되어 있다는 말이 신빙성 없는 얘기도 아니였다.


쾅.

그때, 갑자기 교실 뒷문이 거의 부서질 듯이 열렸다. 조철민이였다.


“야! 너희 중 누구냐. 누가 내 사물함 뒤졌는데!”

조철민은 발악하듯 우리에게 소리 질렀다. 우리 반 아이들은 조철민의 갑작스런 횡포로 당황스러운지 서로 눈만 굴리고 있었다.

조철민은 정말 자신의 사물함을 뒤진 사람이 궁금해서 온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다.

“안 뒤졌는데?”

“야, 시발. 넌 그게 말이라고 하냐? 사물함을 안 뒤졌는데 사물함에 있던 물건을 어떻게 보는데!!”

“아- 그 여자 애들 성희롱한 공책? 너한테 되게 소중한거구나? 그럼 다른 데에 잘 보관하지 그랬어.”

“그, 그게 무슨···!!”

“근데 우리 진짜 안 뒤졌어. 방과 후 수업인데 네가 네 책상에 존나 더러운 생활복 제대로 안 치우고 가서 그거 넣어두려고 사물함 열었더니 공책이 바닥에 저절로 떨어지더라. 뭐 하긴, 남 배려할 줄도 모르고 그딴 위생관념 지녔으면 사물함 꼴도 알만 하지 않니? 열기만 했는데 공책이 떨어진 것 보면 그것도 그냥 막 쑤셔 넣어 뒀겠지.”

“야! 말 다 했냐, 시발? 애초에 남의 사물함을 왜 여는데!!”

“아, 시발. 야, 너 학교에서 성희롱을 할 만큼 지능도 낮고 자제력도 없는 것 알겠는데 그만 소리 질러. 입냄새 여기까지 나. 그리고 존나 감정적으로 구니까 콧구멍 벌렁거려서 존나 역겨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나갈래?”

“아, 저 시발새끼가···!!!!”

조철민은 흥분해서 나한테 달려들었다.

그때, 사물함 위에 앉아 있던 매희가 내려와 조철민을 밀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조철민은 지 발에 헛디뎌서 넘어진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리 반 애들은 혼자 흥분해서 난리치는 조철민을 보고 한껏 비웃었다. 그렇게 교실에서 소란이 나자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너 지금 여자 반에서 뭐하는거야!”

“아, 그, 그게 아니고··· 어제 제 사물함 누, 누가 열었는지 물어보려고···”

호통 치는 선생님을 보고 겁을 먹은 조철민은 변명을 늘어 놓았다.

우리에겐 사물함 뒤진 사람 나오라고 곧장 싸울 기세로 소리치더니 선생님에겐 우리와 원만한 대화를 하러 온 척하는 걸 보고 토가 쏠렸다.

전형적인 강약약강 태도에 어이가 없었지만 놀랍진 않다. 그런 인격을 가졌으니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성범죄에 일조했겠지.

선생님은 바닥에서 난처한 표정으로 넘어져 있는 조철민을 일으켜 세우고선 교무실로 데려갔다.


우리 반은 조철민이 교실에 들어오고 끌려 나가기까지 조철민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다른 반 아이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우리 반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 중 남학생들은 우리 반을 보면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반성의 태도는 전혀 없고 지금 뭐 때문에 저렇게 웃고 있는 거지?

소름 돋는 웃음 소리에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낄낄대던 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야! 보미야! 나한테도 좀 보여주라! 너가 그렇게 야동 뺨친다던데!”


갑자기 언급된 이름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학생이 창문 앞에 앉아 있는 보미를 쳐다봤다.

보미는 창백이 된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보미와 남학생을 번갈아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매희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야, 명월아. 아무래도 공책 얘기 같은데?”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 남학생의 말과 보미의 반응을 보면 그것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그 공책에는 수많은 여학생의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왜 보미만 굳이 언급해서 2차 가해를 하는 걸까.

정상적인 내가 성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인간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보미가 난처해진 상황이다.

일단 난 교실 밖으로 나가 창문에 붙어 보미를 조롱하고 있는 남학생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리고 머리채를 끌어 바닥에 던졌다. 남학생은 아픈 듯 소리 질렀다.

“아악!!”

“야, 너 지금 이제 무슨 짓이냐? 그 정도 성범죄를 저질렀으면 반성은 못할지언정, 입이라도 닥치고 있어야지.”

“아, 이 시발년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남학생이 일어서려고 하자, 매희가 남학생을 밀쳤다. 그러곤 남학생 위로 올라가 누웠다.

분명 다른 사람들은 지보다 덩치가 한참 작은 여자애한테 밀쳐지곤 혼자 고꾸라져 일어서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난 혼자 바닥에서 난리 치고 있는 남학생을 무시하곤 걔와 같이 낄낄거리던 다른 남학생한테 갔다.

“야, 뭐냐고. 너가 대답해봐. 니들이 뭔데 보미한테 지랄이야.”

남학생은 당황한 채 나와 넘어져 있는 지 친구를 번갈아 봤다.

“아··· 시발 너희들 진짜 안되겠다. 그냥 고소를 하든 신고를 하든 할게. 적어도 뉴스는 나오겠지.”

자신들을 협박하는 내 말에 남자애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마치 생각하지 않고 내뱉은 것처럼 빠르게 말했다.

“우리 잘못 아니야! 저 년이 먼저 남자랑 떡치는 거 찍어서 올렸어! 우린 그냥 그것만 봤다고···!”

남자애는 자신이 말하고선 말하면 안 되는 것을 발설한 듯 입을 틀어 막았다.

충격적인 말을 들은 나는 나도 모르게 보미를 쳐다봤다.

보미는 숨도 쉬지 못하는 얼굴을 한 채 눈물만 흘러내렸다.

숨 막히는 정적이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몸을 못 움직였고, 여자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애들은 들키면 안 될 것을 들켜 지들 나름대로 겁을 먹고 몸을 못 움직이는 듯 했다.


그때, 정적을 깨고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겁에 질린 채 앉아 있던 보미는 그대로 일어나 교실을 뛰쳐나갔다. 보미가 뛰쳐나가는 중에도 우리 중 그 누구도 아무 말 못한 채 보미를 쳐다보기만 할 뿐, 잡지 않았다. 아니, 잡지 못했다.


난 보미가 내 시야에서 없어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아직 바닥에 넘어져 있는 남학생의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매희가 잡고 있는 덕에 남자애는 몸만 허둥댈 뿐, 나에게 저항 하나 하지 못한 채 휴대폰을 뻿겼다.

얼굴 인식 잠금이 있어 남자애 턱을 잡고 휴대폰 화면을 들이 밀었다. 바로 잠금을 풀려 카톡부터 들어갔다.

역시나, 남자 애들이 모여 있는 단체방이 있다.

그 단체방에 들어가 파일을 보니 영상이 하나 있었다.

영상을 재생하지 않고 화면을 보았을 때, 영상에 잡힌 보미의 얼굴을 보고 남학생들이 말한 영상이 이 영상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재생할 순 없었다. 내가 보면 안 될 것 같았으니까.


난 남자애 휴대폰을 들고 교무실로 달려 갔다.

내가 복도를 뛰며 본 남학생들의 표정은 패닉이었다. 어떤 남학생은 날 가로 막았고, 또 다른 남학생은 내 팔을 잡아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매희가 남학생들을 밀쳐 넘어뜨렸다. 매희는 살아있을 때 씨름부였나.

뛰는 와중에 놀랄 정도로 매희는 자신보다 덩치가 2배나 큰 남자 애들을 잘 넘어뜨렸다.

난 매희 덕분에 휴대폰을 뺏기지 않고 교무실에 도착했다. 곧장 학생부장 선생님께 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지금 좀 보셔야 할 게 있어서요. 남자 애들 공책으로만 여자 애들 성희롱한게 아니예요. 성폭력까지 하는 것 같아요.”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그 본론 자체가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다보니 교무실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은 날 쳐다봤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휴대폰을 보시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 폰 주인이 누군데.”

“명찰에 ‘최민수’라고 적혀 있었어요. 폰 주인은 상관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보미가 피해자고 그 영상을 1학년 남자 애들이 다 있는 단체방에 공유됐으니까요. 그럼 남자 애들 모두가 가해자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고 애들 모두를 성범죄자로 몰 순 없어.”

“어디가 단정 짓는 거죠? 이건 그냥 확실하게 성범죄잖아요.”

“에이, 아니지. 일단 이 영상을 찍고 올린 애를 처벌해야지. 그게 사실 1학년 남자 애들 중에 있다는 보장은 없잖니. 보미 스스로가 올렸을 수도 있고.”


선생님 말에 벙쪄서 말이 안 나왔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이 사람 미친건가? 상황을 이해해보려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일단 영상을 확인해보고 보미가 스스로 찍은건지, 남이 찍어준건지 확인해봐야겠구나.”

그 말을 듣자마자 선생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물론 선생님은 정말 진위여부를 위해 의도없이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감이 그렇지 않다.

이 사람. 뭔가 쎄하다.


“아니요. 제 친구가 성폭력을 당한 영상을 굳이 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너 지금 선생님한테 이게 무슨 태도지? 선생님이 뭐, 그러면 나쁜 생각으로 이러는 것 같아?”

“에이, 설마요. 설마 선생님께서 여학생 몸 보려고 그러시겠어요? 그런 짓은 저런 저급한 남자 애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제가 선생님께 말씀 드린거죠.”

“크흠···”


선생님은 머쓱한 듯 헛기침을 하며 휴대폰을 슬쩍 보시고선 주위 눈치를 봤다.


“그러면 그 영상이 어떻게 찍혔는지, 누가 그랬는지, 제가 다 알아 올게요. 대신, 선생님은 남학생들 꼭 처벌해주세요. 지금 남자애들요. 반성할 기미가 전혀 안 보여요. 지금 이 사실도 보미를 조롱하면서 2차 가해하다가 멍청하게 지들 입으로 술술 불어서 알아낸 겁니다.”

“뭐, 그건 그렇지만...”

“영상을 올리는 것만 아니라 영상을 공유하는 것도, 영상을 보는 것도, 그런 영상이 공유됐는데도 신고 안 하고 방관하는 것도 다 범죄라는 것 아시잖아요. 선생님이 처벌 안 하시면 저 이거 뉴스에 제보할래요.”

“야, 야. 일 좀 키우지마. 너 말대로 남자 애들 처벌할 테니까 신고든 제보든 일단 하지 말아봐. 이게 학교가 조용해야 보미한테도 너한테도 다 좋은거야.”


선생님의 헛소리는 무시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진짜로 선생님 얼굴에 토할 뻔했다. 위험했다.


일단 어쩌다가 그런 영상이 만들어졌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하지만, 과연 보미에게 가서 그 일을 보미 입으로 말하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이 영상에 대해선 1학년 남자 애들이 모두 알고 있다.

한 명을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좋은 말로 할 때 진실을 바로 말해주면 좋은데···

그런데 굳이 그런 추잡한 애들한테 좋은 말을 해줄 필요가 있나? 사실 난 진실만 들을 수 있다면 걔네에게 어떤 방법을 쓰든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을 선택해야지.

“매희야. 오늘은 남자 반에 있어줘. 그리고 걔네가 하는 얘기 나한테 전해줘.”

“당연하지. 계획은 있어?”

“응, 일단 학교 밖으로 가야지. 학교 밖은 귀신이 더 많으니까.”



작가의말

기신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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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보는 것도 초능력이야? 그건 그냥 무당이잖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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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정보의 바다 시대에 도서관이라니 24.09.16 6 0 8쪽
31 31. 화해의 도서관 24.09.13 10 0 7쪽
30 30. 손발도 맞아야 아주 큰 소리가 난다. 24.09.11 10 0 8쪽
29 29. 들리지 않는 대화 24.09.09 13 0 10쪽
28 28. 쌈닭들 24.09.06 15 0 10쪽
27 27. 일석이조 24.09.04 13 0 9쪽
26 26. 보호막 24.09.02 15 0 9쪽
25 25. Just One Second. 24.08.30 19 0 10쪽
24 24. 헤쳐 모여. 작전이다. 24.08.28 17 0 9쪽
23 23. 바쁘다바빠 초능력사회 24.08.26 24 0 11쪽
22 22. 결투를 신청한다. 24.08.23 18 0 10쪽
21 21. 제대로 수업을 하는 날이 없음 24.08.22 19 0 7쪽
20 20. 도망쳐야 하는 순간도 있다. 24.08.20 19 0 8쪽
19 19. 이러다 다 죽어 24.08.17 21 0 8쪽
18 18. 자, 이제 잠에 듭니다 24.08.14 32 0 10쪽
17 17. 쉬는 시간 24.08.12 31 1 11쪽
16 16. 죽고 싶은 사람 이리 모여라 24.07.09 34 2 11쪽
15 15. 우리 반 24.06.23 33 1 22쪽
14 14. 전학 24.06.16 48 1 23쪽
13 13. 수용할 줄 아는 능력 24.06.16 39 0 24쪽
12 12. 견학 24.06.14 37 0 19쪽
11 11. 선택 24.06.12 37 0 15쪽
10 10. 마지막 미션 24.06.11 47 0 16쪽
9 9. 갑작스러운 의문 24.06.09 40 0 14쪽
8 8. 사실 초능력이 행운일 수도 24.06.09 40 1 20쪽
7 7. 저세상 베프 24.06.04 42 0 19쪽
6 6. 조력자 24.05.30 44 0 19쪽
5 5. 레벨업 24.05.29 50 1 21쪽
4 4. 보디가드 24.05.26 49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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