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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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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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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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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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MMY

어둠이 짙게 깔린 던전 안에서 우리 모험가 집단은 한데 모여 있었다. 축축한 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음산한 적막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희미한 횃불 빛 아래로 보이는 동료들의 지친 얼굴이 우울한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막막하군."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말에 엘리엇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금발은 지저분하게 엉켜 있었고, 한때 반짝이던 가죽 경장갑은 이제 흙과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초췌한 얼굴에는 피로가 깊게 새겨져 있었고, 눈가의 다크서클이 그녀의 고단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와서 뭘 새삼."


엘리엇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앉은 로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년의 검사답게 굵은 팔뚝과 넓은 어깨를 가졌지만, 그가 입은 얇은 철갑은 여러 곳이 찌그러져 있었다. 싸구려 갑옷은 그의 위엄을 무색케 했고, 피로에 찌든 얼굴은 그의 나이를 더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로트는 무거운 손길로 우리 일행의 짐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식량이 떨어져간다. 이대로면 큰일이야."


로트의 경고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큰일은 이미 났어. 이미 식량이 떨어진 파티가 있을 거거든."


나의 말에 로트와 엘리엇은 주위를 곁눈질했다. 주변에는 다른 모험가들이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서로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잠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라. 식량은 중요한 문제니까."


내 말에 로트의 반응이 눈에 들어왔다.


로트는 천천히, 그러나 긴장된 손놀림으로 자신의 장검을 꺼내 살폈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칼날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허공을 응시했지만, 그의 굳은 어깨와 꽉 쥔 주먹에서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엘리엇 역시 조용히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그녀는 작은 단검들을 하나씩 꺼내 날카로움을 확인하고, 독이 발린 작은 다트들도 살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니, 치명적인 맹독은 이미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남은 독의 양을 가늠해보는 듯했다.


"우리 파티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야. 식량도 남아있고. 우리를 노릴거야."


로트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씨발, 쫄지마. 쫄은 티 내면 더 타겟이 되기 쉽다고."


엘리엇이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식량 있는 걸 어떻게 아는데? 일단 우리도 굶고있는 척해. 뭘 먹는건 거적대기라고 걸치고 번갈아가면서 숨어서 먹고. 안 쫄은 척 하는 거 보다 중요한게 식량 있는 티를 안내는거야. 명심해."


엘리엇의 말은 정곡을 찔렀다. 그녀의 조언은 우리의 생존 확률을 높여줄 귀중한 전략이었다.


엘리엇은 뒷골목 부랑아 출신이었다.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니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냉철함이 이해가 갔다. 어릴 적부터 거친 환경에서 자라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을 그녀에게, 이런 불신과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는 오히려 익숙할지도 모른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했고, 잠들 때마다 누군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갈까 두려워했을 그녀의 삶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를 의심하고,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는 이 긴장된 분위기는 그녀에겐 오래된 일상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직감과 생존 본능은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도시 모험가 길드에서 잡일을 하다가 흘러들어온 나와 촌에서 힘세다고 추켜세워주는 소리에 모험가가 된 로트와 종류가 다른 인간이었다.


"약한 소리하기는 싫은데, 난 사람 죽여본 적 없어. 로트도 그렇지?"


내가 말했다.


로트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커다란 체구가 마치 작아지려는 듯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 불리한 조건이잖아. 살인이 일어날 것 같지?"


내가 다시 물었다.


엘리엇이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장 입구가 도로 열리는 기적이 안 일어나면 무조건 일어나."


엘리엇은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천천히 움직이며 다른 이들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벽을 등지고 앉아 공간 안의 모든 모험가를 시야에 담았다.


"요란하게 굴지말고 티안나게 천천히 나처럼 이동해. 죽치고 앉은 새끼들이 전부 보이게 앉아야해. 등뒤는 비우지말고."


나와 로트는 엘리엇의 지시를 따랐다.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노력하며 천천히 움직였다.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자리를 옮겼다. 마침내 우리 셋은 벽을 등지고 앉아 전체 공간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그나마 다행인건 우리 파티 세명중에 두명은 멀쩡한 정신상태라는거야. 사람 죽여본적없는건 치명적인데 그래도 각오라도 하고 있으면 좀 나아. 죽일일 생기면 저지르고 나서 얼타지마. 얼타면 죽을 확률이 높아지니까."

"나, 나도 멀쩡해."


로트가 항의하자 엘리엇이 비웃었다.


"지 얘긴건 아네, 병신 새끼."


우리가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속삭이며 의논하는 동안, 다른 파티들 사이에서도 조용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긴장감 넘치는 침묵 속에서 미세한 몸짓과 눈빛 교환이 이어졌다.


그때, 다섯 명으로 구성된 한 파티의 리더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더니 모두를 향해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이렇게 시간만 죽이고 있을게 아니라 새로운 탈출 경로를 확보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찾으러 가 볼 생각인데, 함께할 파티가 있을까요?"


길드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던전 탐사를 하는 동안 그가 보여줬던 행동은 인상적이었다. 한두 해 모험을 한 솜씨가 아닌, 오랜 세월 던전을 누빈 베테랑의 경험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그의 말투, 자세, 심지어 주변을 살피는 눈빛까지도 수년간의 위험한 모험을 겪어온 이의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파티들이 그의 제안에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썹을 치켜올리는 등의 작은 동작들이 보였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각 파티의 구성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의사를 확인하는 듯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두 파티가 천천히 일어나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중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파티의 리더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고 거기 따르겠지만 저희는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지원 가능할까요?"


제안을 했던 베테랑 모험가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겠군요. 저희도 여유분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자 던전 안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희미한 횃불 빛 아래에서 모든 이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베테랑 모험가 리더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다독이는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상황이니 더 탈출 루트를 확보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깥으로 나가기만 하면 먹을게 문제될 일은 없겠죠."


하지만 그의 말은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던전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모두의 얼굴에는 불안과 의심, 그리고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엘리엇과 로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로트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반면 엘리엇의 얼굴에는 두 파티를 향한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잠겼다.


"있었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엘리엇이 곧바로 반응했다.


"뭔 소리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존지로 쌌던 식량을 먹는 걸 봤어. 그리고 저 파티에서 덩치가 매고있는 배낭에 똑같은 보존지로 보관중인 짐이 여러개 있는 거 봤고. 이꼴이 나기 전에 말야."


"보존지? 음식싸는 그거? 다른걸 싸뒀을 수도 있잖아."


엘리엇이 의문을 제기했다.


"뭐하러? 보존지 용도는 식량 보존 외에는 없어. 좀 더 응용한다고 해도 약재보관 정도가 있겠네. 물기있는 약재 보관. 그것도 나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별걸 다 아네."


엘리엇의 목소리에 약간의 놀람이 묻어났다.


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에버그린 허브를 모으는 퀘스트를 수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배운 지식 덕분에 보존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에게 '기프트'라는 재능을 받는다. 나의 기프트는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 능력은 기억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세 파티가 탈출 경로를 찾아 떠난 후, 이 공간에 남은 파티는 18그룹, 총 73명이었다.


식량 지원을 요청했던 파티는 베테랑 모험가의 설명에 완전히 수긍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실제로 식량이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저 파티의 의도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가장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은 실제로 탈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저 파티 기억해두자."


내가 말하자 로트가 물었다.


"저 싸움 잘하던 사람? 대단한 모험가같기는 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식량을 달라고 했던쪽."


이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우울해졌지만, 나직이 덧붙였다.


"그쪽에 식량이 있었잖아."


엘리엇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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