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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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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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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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UMMY

나는 식량을 요청했던 파티의 행동을 곱씹어보았다. 그들의 전략은 꽤나 영리했다.


"우리도 준비하는게 좋겠어."


내가 말하자 엘리엇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짜증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엘리엇은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눈을 굴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사이에서 엉켜 짜증스럽게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생략이 너무 많은거 아니야? 우린 케인, 너처럼 머리가 좋지 않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식량을 가진 파티의 행동에서 배운 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적긴해도 우리한테도 식량이 있잖아. 여기 있어봐야 좋을 일은 없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트가 몸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가득했고, 당장이라도 이 장소를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식량이 든 가방을 자신의 옆구리로 당겼다.


"그, 그럼 어쩌지. 지금 나갈까?"


로트의 말에 엘리엇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났다.


"너는 제발 가만히 있어라. 우리가 결정해줄테니까."


엘리엇의 반응에 로트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다음 행동을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엘리엇을 향해 진정시키는 손동작을 했다. 그녀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예상보다 얌전히 따라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평소보다 더 심한 초조함이 느껴졌다.


"조금 시간을 두고 나가자."

"왜?"


엘리엇의 날카로운 물음에 나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앞서 나간 사람들에게 우리가 뒤쪽에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않아. 그렇다고 놓칠 정도로 늦게 가고 싶지도 않고."


거기까지 말하고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엘리엇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니, 그녀는 이미 내 의도를 간파한 듯했다. 엘리엇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너도 참 단순하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놈들한테 식량이 많으니까? 뭘 망설여. 아까 했던 말이잖아."

"그래, 그렇지."


나는 쓴맛을 느끼며 로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순진한 눈빛을 마주하자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네가 활약해야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 안 생기면 좋겠지만... 저기 출구쪽 돌장식품 중에 네가 부술 수 있는 물건이 있어?"


로트는 고개를 돌려 출구 쪽을 살폈다.


던전 출구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끼 낀 벽돌들이 희미한 횃불 빛에 붉으스름하게 물들어 있었고, 그 불빛이 출구 주변을 어렴풋이 밝히고 있었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출구 양옆으로 1미터 정도 크기의 사자 모양 석조상이 두 개 서 있었다.


로트의 눈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자신감이 그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저 사자 조각상 정도라면 가능해."

"내가 '지금'이라고 말하면 부숴줘. 아무말도 하지 말고 그냥 부수는거야."

"부수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래."


엘리엇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설명 좀 하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설명했다.


"괜히 시비거는 놈들이 나올지도 모르고, 겁주기용이야. 피곤할 일이 안생기게 만드는거지."


내 머리속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던전 안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예측해보았다.


식량이 떨어져가는 상황에서 경솔하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인 파티는 반드시 타겟이 된다. 그들의 행동은 마치 깊은 숲속에서 피 냄새를 풍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주변의 굶주린 시선들이 그들에게 집중될 것이 분명했다.


찾기 쉬운 표적이 모두 사냥 당하거나, 혹은 힘의 우위를 가지게 되어 안정적인 방어를 하게되면 다음 표적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더욱 예민해질 것이고,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며 새로운 희생양을 물색할 것이다.


어느 파티가 식량이 있는 지 의심할 것이다. 모든 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식량의 흔적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의심은 가장 먼저 이곳을 빠져나간 파티들에게 향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그 의심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 했지만 우리를 사냥하겠다는 마음은 후순위로 들어야 했다. 다른 파티를 습격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이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를 사냥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로트에게 석상을 부수라고 한 진짜 이유였다.


우리의 힘을 과시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전략이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쇼맨쉽이 필요한 상황이라는거네. 이걸 쓰자."


엘리엇이 작은 포션을 꺼냈다. 푸른 용액이 들어있는 포션은 처음보는 종류의 물건이었다. 어둑한 던전 안에서도 그 푸른빛은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포션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꿈의 물결이라는 포션이야. 돌이나 금속을 경화시켜 쉽게 부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엘리엇의 설명을 들으며, 이런 절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 포션의 용도가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금고를 작살낼 수도 있겠군."


엘리엇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녀의 눈빛에는 여전히 날카로움이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약간의 여유가 느껴졌다.


"시끄러워. 귀한거지만, 그런 상황이라면 이걸로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겠지?"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템에 나는 내심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포션은 우리의 생존 가능성을 한층 높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이 포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네 말은 이해했어. 그럼... 아예 상황을 만들자."


"상황을 만들자니?"


엘리엇은 주의깊게 다른 파티를 살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주변을 훑으며, 각 파티의 상태와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단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네 계획은 너무 수동적이야. 시비거는 쪽이 없으면 그냥 나가자는 말이잖아. 혹시 모를 대비를 한다는거고. 내가 상대방이 시비걸 상황을 아예 만들어주겠다고. 경고를 할거면 확실하게 보여주고 가야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의 계획은 주변의 반응에 대한 대처법일 뿐이다. 엘리엇의 제안은 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그녀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확실히 우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위험도 따르는 전략이었다.


나는 엘리엇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제안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조금은 과감한 선택도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저 빨간 머리 보여? 저쪽 파티 육포와 빵을 가지고 있었어. 물물교환을 하자고 내가 말걸고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어볼게. 이 상황에서 먹을 걸 바꿀 새끼는 없겠지? 게다가 대가리가 있는 놈이면 지내가 먹을거 있다고 광고한 놈은 짜증나는 인간으로 보일거고."


나는 동의를 표시하고 로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로트는 우리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소득은 없어 보였다. 그의 눈빛에는 혼란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로트 내가 적당한 때가 되면 아까 말했던 것처럼 '지금'이라고 말할게. 그럼 저 벽을 부서버려. 그것만 기억하면 돼. 엘리엇, 가능할까?"


"충분해."


엘리엇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로트는 벽의 두께를 기억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 없는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결심한 듯 말했다.


"알았어. 해볼게."


이제 앞에 간 사람들과 적당한 간격이 되었을 것이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황을 점검했다.


"시작하자."


내가 말하기 무섭게 엘리엇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말한 빨간 머리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자연스러웠지만, 나는 그녀의 긴장된 어깨 근육을 볼 수 있었다.


"어이, 제안할게 있는데."


엘리엇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뭐지?"


빨간 머리는 경계하는 눈빛을 하고 있지만 엘리엇의 말을 받았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의 파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무심한 척 하지만 조심스럽게 무기쪽에 손을 가져가고 있다. 그들의 움직임은 미세했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엘리엇이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 파티는 가뜩이나 소수라 피해를 입는 사람이 나오면 대단한 손해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상황을 주시했다.


나와 로트는 엘리엇과 이야기한 벽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엘리엇을 도울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로트의 큰 체구가 어느 정도 위협적으로 보일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긴장감이 공기 중에 감돌았다. 나는 엘리엇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언제든 상황이 악화될 경우 개입할 준비를 했다.


"던전에서 얻은 유물 몇개를 교환하고 싶은데. 너희가 가지고 있는 빵하고."


엘리엇의 제안에 빨간 머리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곧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한테 그런건 없는데."


"빼지말고... 있는거 봤다고. 유물이랑 빵조각 교환이라니 너희가 무조건 이득 아니야?"


엘리엇의 목소리에 약간의 초조함이 묻어났다.


"없다니까."


빨간 머리는 짜증섞인 표정으로 엘리엇에게 대꾸했다.


그의 다른 파티원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자신들에게 집중되는 다른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이는 듯 했다.


빨간 머리가 로트 쪽에 시선을 던지며 비아냥거렸다. 정확히는 로트가 가진 배낭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식량이 있는 너희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너희가 식량이 있는 거 봤거든."

"없는걸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네. 아, 기프트인가?"


엘리엇이 비아냥거리다가 앗차 하는 표정을 짓고는 다시 진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상황을 알고 있으니 저게 연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연기력에 나는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그러지말고, 싸우러 온게 아니야. 탈출 루트만 찾아내면 빵조각보다야 유물이 낫잖아."


엘리엇의 말에 주변의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돌발 상황은 없었다. 하지만 공기 중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씨발, 만약에 있다쳐도 이 상황에 유물과 식량을 바꾸자니 미친거 아니야?"


빨간 머리의 거친 말투에 주변의 다른 모험가들도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두가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이새끼가 참아주니까 욕질을... 그게 아니라, 그러지말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자는 거지. 유물하고 빵인데, 이게 나쁜 조건이야?"


엘리엇은 절박한 표정과 짜증이 섞인 표정을 절묘하게 섞어 말했다.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연기를 하는 기프트를 지닌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빨간 머리는 코웃음을 쳤고 엘리엇은 제대로 빡친 표정이 되었다.


"씨발, 같이 좀 살자는건데 너무하네, 이 개새끼들!"


엘리엇의 폭발적인 반응에 주변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근처에 있던 그의 파티원 중 하나가 검을 꺼냈다. 아직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봐, 입조심해. 아가리가 찢어질 수도 있어."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하게 포션을 발라뒀던 벽을 보고 로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로트는 엘리엇을 전혀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혹여 자신이 내가 주는 신호를 못 받을까 봐 잔뜩 겁먹은 표정이었다.


한심스럽고, 안타깝고, 대견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한숨 대신 그가 그렇게 기다리는 신호를 주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작은 소리라 남들은 듣지 못했지만 로트는 확실히 들었다. 그의 행동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우아아아!"


갑자기 굉음을 지르며 로트가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2미터 두께의 벽이 단숨에 박살났다. 엄청난 충격음과 함께 돌덩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던전의 사람들은 대부분 엘리엇과 빨간 머리의 실랑이를 보고 있었다. 덕분에 가까이 있던 로트의 행동도 모든 사람들에게 각인 되었다.


로트의 엄청난 힘 앞에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우리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이 공간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 파티의 힘을 과시했고, 동시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는 빠르게 엘리엇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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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24.08.04 21 2 8쪽
23 23 24.08.03 19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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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 24.07.29 21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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