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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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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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3
추천수 :
41
글자수 :
119,017

작성
24.07.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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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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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22

DUMMY

우리는 이간책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는 이미 엘리엇의 훈련 이유와 전박적인 계획을 설명해두었기에 추가적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사전에 만들어둔 여러 구멍을 이용해 모험가들이 활동하는 층과 천장을 오르내리며 작업을 진행했다. 우리의 움직임은 신중하고 조용했다. 던전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여기?"

"응, 거기가 좋아."


엘리엇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가짜 유리 포션을 사용해 투명하게 만든 벽돌 몇 개를 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 염료로 글을 적었다. 허공에 피로 써진 글씨가 둥둥 떠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시체를 먹은 던전은 말하기 시작한다.-


"흠, 의미심장하군."


엘리엇은 자신이 쓴 글귀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 글귀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적어야 할 문장이었다.


우리는 이미 천장을 오르내리며 여러 살해 현장에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을 조금씩 써두었다. 이 마지막 글귀를 적은 곳은 베테랑 파티가 베이스로 돌아가는 길목이었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보게 될 장소였다.


우리도 베이스로 돌아와 대기하며 베테랑 파티의 반응을 살피며 기다렸다. 또 다시 한 파티를 살해하고 돌아오는 베테랑 쪽에서 우리가 적어둔 글을 발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뭐야?"

"이제 별게 다 생기는군. 여기는 죽은 던전 아니었어?"

"죽은 던전은 아니지. 함정이랑 몬스터가 없을 뿐이지, 기프트 강화가 작동하고 있잖아."

"그거나 그거나. 함정이랑 몬스터가 없으면 죽은 던전이지."

"어휴, 저 무식한 새끼."


가볍게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그들 사이에 깊은 갈등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래서 뭘 어째야하는 거야?"

"글쎄... 나도 이런 종류의 수수께끼가 나오는 던전은 별로 참여하지 않아서."

"다 비슷한 거 아니야? 어차피 몬스터 썰어 죽이는 곳이나 드나들던 놈들이잖아."


그들은 딱히 해결책을 찾지 못하자 빠르게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위협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아서인지 더 자세히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 염탐으로 그들의 그런 성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저 위치에 글귀를 적은 것은 단순히 그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저 루트를 지난 후 그들은 우리가 메시지를 남긴 살해 현장을 두 곳 더 지나게 될 것이다.


베테랑 파티의 발걸음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숨죽이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들이 첫 번째 시체 무더기에 도달했다. 이곳은 그들이 유인해 죽인 두 파티의 시체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 구역에 여러 글귀를 써두었다.


-증오하는 감정이-

-사람을 죽인-

-기프트를 선물 하리라-

-마음의 소리가 흘러-

-죽여서 빼앗으라-

-굶주린-

-파티는 와해되고-


이 글귀들은 던전의 음산한 분위기는 맞추면서도 의미는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드어둔 것이었다. 시체의 방향에 맞춰 적어둔 말들을 보며 베테랑 파티가 동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뭐야?"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잖아."


그들 사이에서 가벼운 술렁임이 일었다.


그중 한 명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비켜, 씨발, 재수없게!"


곧이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우리가 써둔 글귀를 무너트려 뭉개버린 모양이었다.


"이 새끼가 뭐하는 짓이야!"

"보고 있으면 답 나와? 그냥 치워버려, 재수 없잖아!"

"그걸 상의도 없이 네 마음대로 정해?"

"씨발, 그러면 뭐 어쩔건데? 뭔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게 써져있구만!"


나는 이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아직 복격적인 이간질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들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런 반응은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빠르고 격렬했다.


베테랑 파티는 옥신각신하긴 했지만 결국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이 자신들의 파티 일원이 죽은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작은 긴장감을 느꼈다. 이곳은 우리가 처음으로 살행을 했던 곳이었다. 방어력이 말도 안 되게 높았던 그 모험가의 시체가 있는 곳이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 마음이 흘러 나온다.-


이 문장을 일부러 완성시켜 둔 것은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기프트가 강화된 사람의 시체는 더 확실한 정보를 전달한다는 메시지였는데... 한 명쯤은 눈치채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내 기대감을 읽은 듯 엘리엇이 피식 웃었다.


"그 정도로 골통을 굴리는 건 너뿐이라고 했지."

"나,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래, 그래."


엘리엇은 핏힉거리는 웃음을 연발하며 성의 없이 대꾸했다.


로트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래도 케인은 똑똑하니까 케인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로트의 말을 듣고 나는 슬픈 기분이 들었다. 진심을 파악하는 기프트가 없어도 로트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로트는 거짓말을 너무 못한다.


엘리엇이 굳이 확인 사살을 했다.


"저거 거짓말이야."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 엘리엇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더 실실 거렸지만 나는 그녀의 반응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다시 베테랑 파티의 대화에 집중했다.


"도대체 무슨 뜻이지?"

"글쎄, 그거 알게된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넌 좀 닥쳐라."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 신경질적인 말에도 불구하고 딴지를 거는 쪽은 여유롭게 낄낄거렸다. 그들 사이의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 같았다.


"하... 마음 어쩌고 하는 말이 아까도 있지 않았어? 저 새끼 때문에 다 없어져서 이제 확인도 안되잖아."

"별 일 있겠어? 그냥 신경 끄자고."

"이번 탐사는 너무 이상해... 기계 소리도 그렇고.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 계속 일어나잖아. 안 보이는 벽 같은 것도 생기고."


기계 소리는 저들도 처음 겪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안보이는 벽에 대한 언급은 우리의 소행이었다. 천장을 가리기 위한 장치는 잘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때는 이럴 의도가 없었지만 덕분에 저들의 혼란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었다.


베테랑 파티는 뾰족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그들의 베이스에 도착했다.


반면에 우리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느꼈다. 우리는 베테랑 파티를 험악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들의 마음속에 의문을 심는 데 성공했다. 그 의문을 대하는 태도가 각자 다른 점도 만족스럽다.


이제 우리의 다음 단계를 실행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움직이자."

"난 준비됐어."


엘리엇이 기합이 들어간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천장을 통해 조심스럽게 베테랑 파티의 근거리까지 이동했다.


엘리엇의 훈련이 필요했던 이유는 또 하나가 있다. 그녀의 기프트는 특정 방향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그 힘이 사방으로 균일하게 퍼져나갔다. 그렇게 되면 청장에서 모험가들이 활동하는 층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특정 방향으로 기프트를 발산하면 다른쪽으로는 약해지는 대신 더 멀리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천장에 숨어 그들의 마음에 침범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아니라면 다소 위험을 감수하면서 저들과 같은 층에서 숨어 작전을 실행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접시를 이용해 베테랑 파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후 엘리엇에게 알려주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깊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준비한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아래층을 향해 그 의미를 쏟아냈다.


미약하게나마 나와 로트에게도 그 의미가 전해졌다. 엘리엇이 전하는 마음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였다.


'이 새끼들하고 같이 이짓을 계속 할 필요가 있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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