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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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881
추천수 :
41
글자수 :
119,017

작성
24.07.20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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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2

DUMMY

어린 시절 나는 모험가들의 기술을 늘 눈에 새기며 살았다. 모험가가 흔한 케브라에서 자란 덕에 훔쳐볼 교관들은 차고 넘쳤다. 그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밤이면 혼자 연습하며 그 동작들을 반복했다.


모험가가 되면 얼마든지 책을 사볼 수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모험가가 되어 던전에서 진귀한 책을 발견해 읽게 되는 상상을 하며 밤잠을 설친 적도 있다. 먼지 쌓인 두꺼운 가죽 표지의 책을 손에 쥐고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그 책장을 어스름한 조명불 아래에서 한 장씩 넘기는 상상은 지금 해도 설레일 정도다.


그렇게 훔쳐배운 기술은 늘 나를 도왔다. 가끔 실랑이가 있을 때 사용하게 되는 간단한 몸짓, 몬스터를 상대할 때 쓰게 되는 검술.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파앗.


내 검이 상대의 가슴팍을 스쳤다.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상대방의 눈이 커지고 잠시 균형을 잃는다.


나는 상대방 쪽으로 파고 들었다.


이를 악문 상대가 나를 향해 방패를 다급히 휘두르려 하고 있다.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지만 제대로 무게가 실려있지 않았다.


적이 방패를 휘두르는 방향을 정확히 읽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엎구리를 공격했다. 치명타다.


공격을 맞춘 직후 방패의 충격이 몸에 전해졌다. 나는 차라리 그 힘을 이용하며 몸을 옆으로 빠르게 뺀 뒤 턴을 하며 상대의 뒤를 잡았다. 노출된 상대의 목을 힘껏 내리쳤다.


끝났다.


상대의 표정을 볼 수 없어 다행이다. 나는 아직 이런 행위가 익숙치 않았다.


몸의 떨림과 메스꺼움이 더 심해졌다. 기프트가 강해지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로트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아직도 손에 커다란 돌 하나를 들고 있었다. 어쩔줄 몰라하며 손에 힘을 꽉지었던 터라 돌은 서서히 으스러지고 있었다.


내가 상대하던 두 명 중 한 명의 머리를 부순 것은 로트였다. 그 덕분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착찹한 마음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는 천천히 로트에게 다가갔다.


"로트, 정신차려."


로트는 내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동해야 한다. 마음은... 나중에 추스르자."


로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엘리엇이 다가왔다.


"나도 상황은 정리 됐어. 제길, 기분 더럽네. 저번하고 같은 반응이야."


엘리엇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녀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살해 직후 기프트가 강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와 똑같이 몸이떨리고 메스꺼운 감각.


엘리엇의 얼굴을 살짝 창백해져 있었고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휴식처가 있어. 그리로 가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로트를 이런 상황에 끌어들이기 위해 나선 아랫층 탐사였지만 나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머릿속으로는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다행인 점은 나는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예전과 느껴지는 죄책감의 깊이가 달랐다.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벽에 시선을 고정하며 기분을 전환하려 애썼다.


알 수 없는 고대 문자가 일렁거리는 불빛을 받으며 음영을 바꾸었다. 그 신비로운 광경에 정신을 빼앗기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식의 도피는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미리 머물려고 생각했던 휴식 장소에 도착했다. 던전의 음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곳은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였다.


우리는 지친 몸을 벽에 기대고 앉아 식량을 꺼내 먹으며 휴식을 취하려 했다.


뜻밖에도 로트가 음식을 거부했다. 로트는 그 체구만큼이나 먹성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좀 먹는 게 어때?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돼."

"나중에."


로트는 나의 말에 짧게 대답하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했지만 오히려 가슴을 더 아프게 만들었다.


로트도 충격이 상당하겠지. 나는 더 이상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필요한 건 시간일 것이다.


기프트가 강해지는 감각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이 현상의 이유에 대해 탐구하려 애썼다.


단순히 살해하면 똑같이 기프트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기프트의 양에도 비례하는 것일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런 메커니즘을 파악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이렇게 대규모로 수준 낮은 사람들로 구성된 모험가들을 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들보다 약하면서 전투에 특화되지 않은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모험가를 희생양으로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 내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알고도 그렇게 베테랑 파티가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 단순히 생각이 짧아서 이런 구성을 했을 수도 있고.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분위기 한번 개같네."


엘리엇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로트를 향했다.


"정신차려."


로트는 엘리엇의 날카로운 말에 움찔하더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어깨가 더욱 처져 보였다.


엘리엇은 식량을 씹으며 내뱉듯 말했다.


"가족들이 있다며. 안 볼 거야? 볼거면 우선 살아야지. 케인도 나도 살려고 아둥바둥거리고 있잖아."


로트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의 침묵이 우리 모두를 무겁게 누르는 것 같았다.


엘리엇은 악착같이 음식을 먹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이것이 살기위한 필사적인 행위라는 듯했다. 그녀의 집념어린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도 죄책감과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방식으로 그걸 소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 차려야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번에는 엘리엇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종류의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그만 찌질거려. 잘한 일이야."


엘리엇의 말은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녀는 보존지를 적당히 구기며 던전 한 구석에 던져버렸다. 그 동작에는 분노와 피로감이 묻어났다.


"우린 잘하고 있다고, 씨발..."


엘리엇의 나지막한 마지막 말에 나는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종종 나 자신도 속이려드는 구석이 있다. 엘리엇의 반응을 보면 나는 결코 괜찮지 않은 상태였었나보다. 나 자신에게는 숨겨지는 감정이 엘리엇에게는 선명히 보이는 모양이다. 씁쓸했다.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숨을 깊게 쉬며 이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이상 자신을 속이지 않기로 했다.


의도적으로 변명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살인을 저지르려 계획했고 실행했다. 그게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비슷한 짓을 반복할 것이다. 그 죄의 대가를 어떻게 짊어질지는 나중에 생각하자.


톰이라는 모험가를 떠올렸다.


어렷을 적 나는 늘 그랬듯 모험가 길드 뒤편 그늘진 곳에서 숨어있었다. 조그만 눈동자를 굴리며 모험가들의 모습을 눈으로 배우며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를 보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될 것 같았던 날 나는 피투성이가 된 모험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부축당하며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톰이었다.


늘 넷이 함께 다니던 모험가였는데 그날따라 그런 몰골로 혼자 돌아온 것이다.


길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는 치료사를 부르러 달려갔다.


'헤이언은? 마커스는?'


누군가 물었지만 톰은 그저 고개를 떨궜다.


나머지 셋은 죽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항상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던 그들이 이제는 한 명만 남아 피를 흘리며 서 있다.


그때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모험가들의 곁에는 늘 죽음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나는 톰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길드로 향했다. 어제의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모험가들은 똑같은 모습으로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내눈은 톰을 찾고 있었고 금방 그를 발견했다. 그도 다른 모험가들처럼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옷 너머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붕대만이 어제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다시 모험을 떠났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톰을 기다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하루종일 톰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톰이 무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거리에서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고 톰이었음을 직감한 나는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를 향해 달렸다.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지만 톰은 무사히 돌아왔다.


'저, 저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는 용기를 내어 톰에게 말을 걸었다. 톰은 나를 보고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가볍게 웃었다.


'너를 알고 있다. 언제나 우리를 훔쳐보던 꼬마로군. 말을 걸어주다니 영광인데.'


나는 몰랐지만 모험가들은 대부분 나 같은 꼬마가 훔쳐보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고 한다.


'헤이언이 너를 마음에 들어했지. 네가 오면 언제나 그 꼬마가 또 왔다며 낄낄거렸어.'


그렇게 말하는 톰의 눈에는 그리움이 맺혀있었다.


'혹시 헤이언이 누군지 알고 있나?'

'빨간색 머리띠한 아저씨...'


톰은 그 말에 위안을 느꼈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길드를 향해 함께 걸었다. 톰은 내 보조를 맞추어 조금은 느리게 걸어주며 한참동안 자신의 동료들의 이야기를 했다.


동경하던 이야기를 모험가에게 직접 듣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나는 순간에도 톰이 걱정스러웠다.


'괜찮아요?'

'안 괜찮다. 그래도 어쨌건 살아야지.'


어쩌면 경솔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톰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어요?'


나는 그렇게 물었고 톰은 가볍게 웃었다. 톰은 뭔가 거창한 말을 하고 싶은듯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지혜가 톰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톰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는 거야.'


그때 악착같이 살기위해 평온한 모습으로 발악하던 톰의 삶을 생각하며 나는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살고 싶다.


우선은 살아남는다.


"우와... 너..."


엘리엇은 당황한 목소리를 흘리며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놀라움과 약간의 감탄이 섞여 있었다.


"회복력 끝내주는구나."


내 다짐이 의미있었던 모양이군.


엘리엇의 기프트는 나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는 데도 꽤 도움이 도니다. 그녀의 반응을 보니 내 마음가짐의 변화가 그녀에게 확실히 감지된 것 같았다. 괜찮은 피드백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회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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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24.07.22 31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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