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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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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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수 :
119,017

작성
24.07.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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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0

DUMMY

우리가 베이스로 삼은 곳으로 돌아와 한동안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소리를 집중 시키는 접시를 귀에 대고 있었다. 던전 곳곳의 소리가 내 귓가에 생생하게 전해졌고 이 정보는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그걸 달고 사는군."


엘리엇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틀며 접시의 방향이 움직여 로트가 자는 숨소리가 거대하게 울려 잠깐 기겁했다. 접시는 내려놓자.


엘리엇의 표정은 약간의 짜증과 미묘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정보를 모으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어쩐지 변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를 듣고 변명하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은 왜지.


엘리엇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네 말은 사실이지만... 신기한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애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그런 부분도 있기는 해."


솔직히 인정하자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내가 혼나거나 놀림 받아야하는 상황인건가?


"그래서?"


엘리엇의 목소리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라니?"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되물었다.


"고민하는 게 있지? 내 기프트도 강화되었으니까 알 수 있어."


엘리엇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물음에 차라리 안도감이 들었다.


로트가 자고 있는 지금이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 상담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다른 파티를 죽여야해."


내 입에서 나온 말의 무게감에 나 자신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엘리엇은 내 말을 듣자 마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게까지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맞네."


긴 설명이 없어도 엘리엇은 상황의 본질을 즉각 파악했다. 이런 그녀의 능력은 아마도 험난했을 그녀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뒷골목에서 생존을 위해 경쟁하며 자란 그녀의 경험이 이런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식량 부족 문제가 지속되는 한 다른 파티들의 살인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점차 기프트가 강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모든 생존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필연이며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테랑 파티처럼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기프트를 강화하려는 집단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필요한 일이야."

"내게 변명할 필요는 없어. 그래서 고민하는 이유는? 살인이 두려워서? 죄책감?"


엘리엇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것도 있지."


그런 고민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누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나는 로트를 끌어들이는 게 껄끄러워.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로트를 이 살인 게임에 참가시킬지 머리를 굴리는 게 혐오스럽고."


내 고백을 들은 엘리엇이 낮게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에는 이해와 동정이 섞여 있었다.


"로트는 너를 상당히 많이 의지하고 있어."


엘리엇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부드러워졌다. 그녀의 강화된 기프트 덕분에 내 고민과 감정도, 로트의 감정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네가 꽤 마음에 들고."


엘리엇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런 인간적인 고민도 안하는 새끼들보다 너 같이 좀 찌질대는 면이 있는 게 훨씬 보기 좋지. 나야... 워낙 조기 교육을 일찍 받은 그런 고민은 이제 안하지만..."


엘리엇의 말에 담긴 투정 섞인 투덜거림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찌질댄다'는 평가는 조금 억울하게 느껴졌지만 솔직한 표현에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나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거... 고맙군."


엘리엇도 나와 비슷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웃음소리에서 어떤 편안함이 느껴졌다.


"요즘들어 생각을 별로 안하고 있거든. 로트나 나나 둘 다. 네가 알아서 생각해주고 정리해주고 목표도 잡아주니 자연히 그렇게 되더라고. 그런면에서 너는 의지가 많이 되는 놈이고."


엘리엇의 말을 듣고 나는 그제서야 최근 그들이 자신의 의견을 거의 말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달았다.


의지받는 것은 꽤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찾아왔다.


엘리엇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울렸다.


"나도 로트도 네가 이끌면 우리는 따를 거야."


작은 조명이 흔들림 없이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 엘리엇의 눈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엘리엇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로트를 어떻게 끌어들일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고 말했고 그게 진심이라는 것도 알겠어. 하지만 내 기프트는 이제 더 깊은 마음까지 알려줘. 네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


그녀의 말에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엘리엇의 강화된 기프트는 내가 스스로 인정하기 싫었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실 머리를 쓰고 자시고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싸울 상황을 만들면 로트는 망설이면서도 결국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가 반복될 수록 그는 점점 무뎌질 것다.


"너한테 제일 마음에 드는 점이 뭔지 알아?"


나는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엘리엇은 금방 답을 알려주었다.


"좀 찌질거려도 결국 넌 할 땐 하는 놈이라는 거야."


괴물같은 방어력을 가진 상대를 죽였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기억은 여전히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가슴에 싫은 감정이 맺히게 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엘리엇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내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그것은 분명 내 장점이었다. 망설이고 고민하면서도 결국 필요한 순간에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 그건 분명히 필요한 자질이었다.


"피곤하군. 이제 내가 잘 차례야."


엘리엇이 그리 말하며 로트를 향했다.


고개를 숙이고 움직이는 엘리엇의 귀는 살짝 붉어져있었다. 아마도 이런 감상적인 대화는 그녀에게는 부끄러운 체험이었나보다.


엘리엇은 곧 자리에 누웠고 금방 잠이 들었다.


로트와 잡담을 나누다 내 순서가 오자 나도 금방 잠이 들었다. 짧은 악몽을 꾸었지만 동료들이 깨우는 소리에 금방 벗어날 수 있었다.


천장에서 보낸 시간은 평온했다. 우리를 쫓는 적도 없었고 죽이기 위해 싸워야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식으로 생활할 수는 없었다.


필요한 일은 해야한다. 더 미루면 우리의 생존 확률이 더 낮아질 뿐이다.


소리를 들으며 타겟은 이미 정했다. 나는 작은 목소리였지만 의지를 담아 말했다.


"이제 내려갈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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