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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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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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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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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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8

DUMMY

"여기까지군. 대략 7미터네."


나는 측정 결과를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는 내 제안에 따라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우리 파티 구성원들이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실험의 중요성은 우리가 모험가 길드에서 맺은 파티 계약에서 비롯됐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 우리는 서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지 않겠다는 조건에 동의했다. 통장적으로 사용되는 파티 계약서였으니 별 생각없이 서명했었다.


이는 우리 파티뿐 아니라 이 던전에 들어온 모든 파티에 적용되는 규칙이다. 애초에 이 던전의 진입 조건이 파티를 맺고 들어오는 것이었으니까.


상황이 변질되어 서바이벌 살인 게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얼마나 떨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진작에 했어야 했지만 다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미루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으니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


"로트, 이번에는 한번 앞으로 이동해보겠어? 있는 힘껏 밀면서."


우리가 느끼는 파티 거리의 제약은 마치 가상의 벽과 같았다. 로트와 내가 서로 등 뒤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실제 벽에 기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특히 이 '벽'을 밀었을 때 어떤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했다.


"알았어."


로트는 순순히 응했다. 그는 뒤로 돌아 나에게서 등을 돌린 채 힘껏 밀기 시작했다.


"오...!"

"이건 제법 신기한데."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엘리엇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실험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앞으로 밀러나는 듯한 느낌으로 질질 끌려가며 이동했다.


"로트, 얼마나 힘들어?"

"조금 힘들긴한데 계속 할 순 있을 것 같아."


로트의 대답은 다소 모호했다. 아마 더 정밀한 표현을 로트에게서 제공받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조금 힘든 정도라면 나나 엘리엇으로서는 불가능한 수준일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곧바로 추가 실험을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엘리엇과 함께 7미터 간격을 두고 섰다.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그 가상의 벽이 느껴졌다.


"엘리엇 먼저."

"그럼 사양않고."


엘리엇이 자신이 느끼는 가상의 벽을 힘껏 밀어보았다. 하지만 내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내가 시도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보이지 않는 장벽을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안되는군. 그럼 이번에는 우리 둘을 끌어봐."


엘리엇과 나는 로트와 최대한 멀어진 뒤 앉았다. 로트가 우리 두 사람을 동시에 끄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그의 놀라운 힘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두 사람을 한꺼번에 끄는 것도 로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듯했다. 그는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은 채 여전히 '조금 힘들지만 계속 할 수 있겠다'는 평가를 내렸다.


"현자님, 대단히 기쁜 모습이군요.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은 역시 즐겁지요?"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기자 엘리엇은 또 다시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도를 간파하고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하찮군.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우매한자야.


"그래, 기쁜 일이지. 너무 기쁘니 엘리엇을 칭찬하고 싶어지는군."


내 예상대로 엘리엇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굳게 다물어진 입술이 살짝 삐죽거리며 불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칭찬에 몸이 오그라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고, 또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엘리엇의 기프트가 나에게 알려주는 이상 이제 우리의 역학 관계는 달라지는 게 당연했다.


만약 엘리엇이 한 번 더 이런 시도를 한다면 귀가 새빨갛게 익을 때까지 칭찬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전투에 승리하자 나는 기분이 더 좋아졌다.


다음 실험을 준비했다.


"잠깐 이동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실험 장소를 바꾸기로 했다.


우리 일행을 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우리가 얼마 전 접시 유물을 발견했던 장소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던전의 모험가들이 흔히 활동하는 층을 관통해 더 아래로 이어지는 구조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우리를 제약하는 이 물리적 한계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를 중심으로 7미터 반경을 이루는 제약은 원형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층에서는 이미 원형으로 제약이 형성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건 꽤 간단한 일이었다. 등으로 벽을 느끼며 빙 돌아보기만 하면 됐으니까.


이제는 수직 방향으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는지 확인할 차례였다. 이번에도 로트가 우리를 지지하는 역할을 맡았고 엘리엇은 수직 통로에 대기했다.


"발에 느낌이 와?"

"어, 땅에 디딘 거 같은 감각인데."


엘리엇이 통로에 걸터앉은 채로 대답했다. 이로써 우리를 둘러싼 제약이 입체적으로도 원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가설이 확실해졌다.


안전을 위해 나는 통로에 로프를 설치하고 엘리엇에게 붙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로트의 위치를 서서 히 엘리엇 쪽으로 이동시켰다.


예상대로 엘리엇이 디딘 보이지 않는 '땅바닥'이 점점 가라앉으며 그녀도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엘리엇에게 다가가 물었다.


"단단하게 받쳐주는 것 같아?"

"응, 상당히 안정적인 걸."

"잠깐만 손에 힘을 풀어볼래?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로프를 꽉 잡고."

"알았어."


엘리엇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로프에서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는지 두 손을 아예 놓아버렸다.


놀랍게도 엘리엇의 몸은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원형의 제약을 받고 있었기에 통로의 벽 쪽으로 밀착되었지만 그녀는 매달리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실험을 통해 파티 거리 제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이 현상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우리는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거 진짜 쩌는데. 그래서 이걸 어떻게 써먹을건데?"


엘리엇이 내게 물었고 로트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별 계획 없는데."


내 대답에 두 사람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짓은 왜 한건데?"

"아니, 현상을 미리 알고 있어야 앞으로 써먹을 일도 생기지."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지식을 쌓는 것의 중요성을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약간 답답했다.


엘리엇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취미 생활에 우리가 협력하는 꼴이 된 건 아니고?"


솔직히 말해 실험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이는 분명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활동이었는데 이런 누명을 쓰다니 억울했다.


그때 로트가 순박한 얼굴롤 말했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데. 케인은 똑똑하니까 그럴 수 있지."

"로트는 듬직하지."

"흐흐..."


나는 로트의 현명한 대답에 포상으로 칭찬을 건넸다. 역시 나 로트는 기뻐했다. 항상 같은 말에도 행복해하는 소박한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엘리엇이 인상을 찌푸리며 로트를 나무랐다.


"이 등신아. 뭐가 괜찮아. 생존을 위해 머리를 써야지, 제 알고 싶은 거 호기심 채우는 데 시간을 쓰는 게 말이 되냐고. 골통 담당이 지 할 일도 모르고 저러는데 괜찮긴 개뿔이 괜찮아."


엘리엇의 날카로운 비난에도 불구하고 로트의 순박한 미소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리석은 엘리엇아. 네 기프트는 이제 너를 이 파티의 최약체로 만들었다.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걸까? 로트는 자신을 생각해주는 네 마음을 아는 이상 그런 하찮은 꾸짖음에 상처받지 않고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나는 이 어리석은 엘리엇에게 귀가 달아올라 떨어질 지경이 될 때까지 칭찬하는 형벌을 내리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엘리엇을 향해 말을 이었다.


"너도 재밌었잖아."

"지랄하네, 뭔 소리야."


엘리엇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나는 내 표면적인 생각과 말을 일치시키려 노력하며 계속했다.


"너에게도 찬란한 지성이 있잖아. 그 황금빛 머리결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지성이 있잖아."

"아, 미친 새끼 또 지랄하기 시작했네."


엘리엇이 질려하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내 의도를 알면서도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내 설명을 대부분 이해하잖아. 너에게 빛나는 지성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 지적 호기심이 덜하다고 그게 지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렇지, 로트?"

"응, 엘리엇도 똑똑해."


로트가 순수하게 동의했다. 그는 나처럼 엘리엇을 괴롭히기위한 의도가 업다. 순수한 칭찬인만큼 엘리엇에게 더 타격이 크다.


"로트는 듬직하고, 엘리엇은 똑똑하고, 나도 똑똑하고. 역시 우리는 궁합이 좋아."

"흐흐..."


훌륭한 아군인 로트를 위해 살짝 칭찬을 곁들여 말하자 로트는 기뻐했다.


"그만하라고, 이 미친 새끼야."


엘리엇이 애써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럴 수 없어. 너는 훌륭하니까. 왜 그렇게 자신의 훌륭함을 깨닫지 못하는 거야?"


나는 계속해서 엘리엇을 찬양했다. 그녀의 아름다움, 우리를 위한 버팀목으로서의 역할, 뛰어난 실핵력등을 사실에 기반해 과장하며 칭찬했다.


엘리엇의 자서전을 쓴다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미친듯이 칭찬했다.


"앞으로는 그런 딴지는 안 걸테니까 그만하라고..."


결국 엘리엇은 제발 그만하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나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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