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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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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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글자수 :
119,017

작성
24.07.29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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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0

DUMMY

"나 별 계획 없는데... 너희들 너무 나만 믿는 거 아니야?"

"너만 믿는 게 아니라 머리 쓰는 건 원래 네가 하잖아."


거참. 우리는 고작 던전에 들어오면서 처음 계약하고 온 사이일 뿐이다. 엘리엇의 '원래'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린다.


베테랑 파티의 잡담으로 우리가 던전에 18일 정도 머물렀다는 걸 알게 됐으니 우리 인연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 사이에 뭔가 특별한 것이 생겼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보통의 관계보다 조금 더 끈끈한 유대감 같은 것. 아마도 생사를 함께 넘나들며 겪은 경험들이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든 것 같다.


엘리엇이 말했다.


"너는 머리를 쓰고 로트는 힘을 쓰고... 뭐 그런거지. 나는, 음, 임기응변 담당?"


엘리엇의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녀의 말투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름 없었찜나 문제는 강화된 기프트였다. 그것은 엘리엇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로트와 나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로트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일부러 심드렁한 태도로 대답했다.


"임기응변 맞지. 게다가 유용한 아이템도 많았고. 처음에 그 사기칠 때 썼던 물약도 가짜 유리도 다 좋았어. 게다가 우리가 멘탈이 흔들릴 때 잡아준 것도 너였잖아."


내 말은 순수한 진심이었다. 엘리엇을 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런 종류의 대화를 불편해하는 듯했다.


엘리엇의 귀가 또 다시 새빨갛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얘기는 관두지. 앞의로의 계획이나 짜보는게 어때?"


엘리엇이 화제를 돌리고 싶어하는 것이 역력했다. 나는 그녀의 제안에 수긍하며 대답했다.


"좋아."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기프트는 쉴 새 없이 작동하며 생각의 흐름을 도왔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줬다.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로트를 위해 우리의 행동 지침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다른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을거야."


내 선언에 로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내적 갈등이 읽혔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 무력으로는 베테랑 파티를 상대할 수 없어. 로트가 있다고 해도 저쪽은 무력 위주의 기프트를 가진 파티야. 우리가 상대할 수는 없어."


물론 그들 중 한 명은 예외였다. 전리품의 품질이 유달리 좋은 한 명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우리가 한 명을 제거했다고는 하지만 베테랑 파티에는 여전히 네 명의 생존자가 남아있다. 그중 세 명이 전투의 전문가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4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죽이며 기프트를 강화한 존재들이다.


로트의 괴력이 이번 첫 탐사에서만 강화된 수준임을 고려하면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다른 이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에겐 그럴만한 힘이 없다.


남을 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것은 주로 로트를 위해서였다. 물론 어느 정도는 나 자신을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엘리엇은 이런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상대적으로 편했다. 그녀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우리 파티, 즉 아군뿐이니까.


로트의 마음을 고려해 나는 우리의 계획과 그 이유를 세심하게 설명하기로 했다. 이번 탐사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상황을 억지로 짜맞추거나 정보를 숨기는 것보다는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었다.


내 설명을 들으며 로트의 표정이 조금씩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행동의 당위성이 명확해지자 그는 빠르게 상황을 납득하는 듯했다. 그의 어깨에서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이 보였고 얼굴에 드리워졌던 괴로움의 그림자가 조금은 옅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탐사에서 이 파티를 막지 않으면 저들은 이런 짓을 또 벌일거야. 또 백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나는 거지. 나는 이번 기회에 저들을 확실하게 제거할 생각이야."


내 말에 로트와 엘리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표정에서 결의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저들을 죽이는 데 집중하고 모든 생각을 거기에 초점을 맞출거야."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베테랑 파티를 제거하는 것.


여러가지 작전을 수립하고 동료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상황별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반복해서 예행 연습을 했다.


동시에 우리는 베테랑 파티를 계속 주시했다. 어느새 소리를 모아주는 접시의 방향은 항상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몇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생존자가 적은데. 근데 기프트가 강화된 놈들은 적어. 어떻게 된거지?"

"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다 처먹고 강해진 놈들이 있겠지. 그런 놈들이 보통 마지막쯤까지 살아있었잖아."

"꽝이 너무 많아서 하는 소리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예전에 내가 잠깐 생각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기프트 강화에 따른 느낌의 정도가 살해할 때마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베테랑 파티의 일원을 살해했을 때가 가장 격렬한 느낌이었고 살해를 몇 번 한 다른 파티들을 제거했을 때가 그렇지 않은 파티를 죽였을 때보다 강한 느낌이 들었었다.


이제 보니 내 가설이 맞았던 것 같다. 기프트가 강화된 자를 죽이면 우리가 그만큼 더 강한 힘을 흡수한다는 것.


휴식 시간이라 우리는 번갈아가며 자고 있었다. 엘리엇은 이미 잠들어 있고 나는 로트와 함께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베테랑 파티의 대화에서 들은 내용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로트에게 설명했다. 그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복잡한 감정이 읽혔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처음 한번 살해를 하고 한동안 얌전히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아."

"그런 이유라니? 기프트를 모아서 흡수하는 거?"


로트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겪어봐서 알겠지만 기프트가 강화되는 느낌은 꽤 나쁘잖아. 적은 수의 파티가 생존하면 그 나쁜 기분을 조금만 겪어도 될테니까."


물론 이건 조삼모사에 불과할 것이다. 적은 횟수로 기프트를 흡수하더라도 그 강도는 훨씬 강할테니까.


"또 둘이서 우울해지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군."


엘리엇이 부스럭거리며 느릿하게 일어났다.


우리가 대체로 비슷한 시간에 서로를 깨우다보니 어느새 우리의 몸은 불침번 교대 시간에 맞춰 깨는 습관이 들어있었다. 적응이라면 적응인 셈이다.


자리에서 상체를 일으킨 엘리엇은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며 중얼거렸다.


"결론은 이거잖아. 저새끼들 목을 따면 우리가 저 새끼들이 흡수한 힘을 다 먹게 된다는 거."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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