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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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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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1
글자수 :
119,017

작성
24.07.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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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

DUMMY

"엘리엇, 진정해."


나는 엘리엇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리는 시늉을 했다.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린 것을 의식하며,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엘리엇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렸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고,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기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분노가 완전히 거짓만은 아닌 듯했다.


"아니, 이새끼들이 먼저...!"

"진정하라니까. 알잖아. 이런 상황에 들어줄 요구가 아니었다는 거."


엘리엇에게 경고했던 상대 파티원 중 하나는 검에서 손을 놓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엘리엇보다 로트를 신경 쓰고 있었다. 싸울 의사는 없었다는 듯 검은 검집에 얌전히 꽂혀있다. 로트의 괴력 앞에서 그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게 역력했다.


"그만두자. 여기서 이런 거래를 요구해봤자 들어줄 파티는 없어. 나가서 우리도 탈출로를 찾아보기라도 하자."


나는 엘리엇을 향해 설득하는 어조로 말했다. 목소리에 약간의 체념을 섞으며 주변 사람들이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들리도록 신경 썼다.


엘리엇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살짝 낮은 위치의 그녀의 눈빛은 '잘하는데'라며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하면서도 나는 그 표정이 들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씨발..."


엘리엇은 흥이 오른 듯 참담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의 표정은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져있었다. 이 상황이 재밌나 보다. 나는 그녀가 이런 위험한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히려 누가 그녀의 표정을 볼까 봐 식겁해 몸을 돌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노력했다.


"나가자."


내가 앞장섰고 로트와 엘리엇이 나를 따라 이 공동을 빠져나갔다. 걸어나가는 동안 주변의 시선이 등 뒤로 꽂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였고 그들의 반응도 예상한 대로였다.


적당히 자연스러운 이유를 만들며 저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괜찮다. 만족스럽다. 우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되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우리는 다른 이들의 눈에 강하고 위험한 존재로 비춰질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생존에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나는 다음 단계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쩔 거지?"


"앞선 사람들을 쫓을 거야. 너무 가깝지는 않게."


엘리엇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타부타 말 없이 앞장섰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지켜볼 겸 말 없이 뒤를 따랐고 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두운 던전 통로를 따라 걸으며, 우리 셋의 발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이쪽이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엘리엇은 고민 없이 말했다. 뭘 보고 말해주는지 알 수 없어 영문은 몰랐지만 적어도 그녀의 걸음에 확신이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직감이 우리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 설명이 부족하다며 짜증냈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 부조리하다고 느껴졌다. 딱히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난 감성보다는 이성을 우선시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투덜거릴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앞서 행동을 생각해보면 자신도 설명을 해주면서 우리를 이끌어야 하는 게 아닌가 느꼈을 뿐이다. 이런 행동은 우리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데 좋지 않게 작용할 수 있다. 자신이 요구했던 사항은, 자신도 남에게 똑같이 적용해서 행동해야한다. 물론 실랑이를 할 생각은 없다.


생존이 중요하다. 불만은 없다. 그 증거로 나는 엘리엇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쪽. 표정이 왜 그래?"

"표정이 왜? 뭔가 이상한가?"


엘리엇이 내게 물었고 영문을 몰랐던 나는 오히려 되물었다. 내 얼굴에 무슨 표정이 있었는지 의아했다.


로트가 나를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화가 난 거야?"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나는 조금 불쾌해졌다. 근거 없는 지레짐작은 원하지 않는다. 이런 오해가 우리 사이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화나지 않았어."


엘리엇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어? 어...?"


나를 보며 혼란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하다가 다시 앞으로 걸었다.


"다만, 우리 관계에 있어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가 난 것과는 별개지. 너는 지금 우리를 이끌면서 설명이 부족하다. 아까 나에게 했던 지적을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화났다는 짐작은 너희들의 착각이다."


로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화난 게 있을 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아니야.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탐사에 집중하자."


엘리엇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 이거 완전히..."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 생략된 거 같은데, 다시 말하지. 아니다."


엘리엇이 킥킥거렸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던전의 음산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울려 퍼졌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어떻게 처음부터 일일이 설명해? 네 의도를 설명하는 거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말이 많이 필요하잖아. 그리고 쫓아야 하는 상황이니 그런 데 낭비할 시간은 없고."


"이해했어. 근데 네 웃음은 좀 그렇군."

"아, 지병이 있어서 가끔 웃음이 터져."


신뢰하기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믿는 쪽이 덜 기분 나쁘겠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녀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은 우리 사이의 작은 갈등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쪽으로 갔다. 먼지가 부자연스럽게 흩어진 부분을 봐. 저기야. 사람이 지나갔군. 최근의 흔적이야. 최근의 것이 아니라면 얇아진 뒤에 다시 먼지가 쌓여야하지. 이해했니, 쫌팽아?"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한 건 좋지만 엘리엇은 쓸데없는 호칭을 붙이기 시작했다.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저 호칭은 나를 지칭하는 듯했다. 그녀의 말투에 담긴 조롱이 느껴졌지만,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정정할 것이 많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우리는 추적 중이고 그런 데 소비할 시간은 없어 무시했다. 때로는 무시가 좋은 대응이다. 이 상황에서 그녀와 말다툼을 벌이는 것보다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은 앞서 나가다 흘끗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승자의 미소가 그려졌다. 그 표정에서 그녀가 나를 자극하려 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오, 반응 좋네."


내 얼굴을 보고 하는 말을 보고 실실거리는 그녀의 표정이 꽤 거슬렸지만 탐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녀가 의미없는 도발을 하는데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로트가 나를 보며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여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지적하지 말자. 긍정적인 일이다.


"잠깐."


앞장 서서 걷던 엘리엇이 얼굴의 장난기를 지우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나는 긴장감을 느꼈다. 던전의 음산한 분위기가 갑자기 더욱 짙어진 것 같았다.


몸을 숙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와 로트도 무심결에 따라했다. 우리 셋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피 냄새다."


엘리엇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맞아."


엘리엇의 말에 로트가 동의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묻어났다.


로트는 겁에 질린 듯 배낭을 꼭 끌어안았다.


이 중에서 후각은 내가 제일 둔하군. 나는 맡을 수 없었다.


"천천히 엄폐물을 찾으면서 진행하자. 어쨌건 상황은 확인해야 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멈추고 대기하거나 후퇴한다."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각자 주변의 돌기둥이나 벽의 돌출부를 이용해 몸을 숨기며 이동했다.


거리는 제법 되는 것 같았다. 삼 분 정도 이동했는데 현장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거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니 감탄스러웠다. 엘리엇의 예리한 감각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나에게도 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저 모퉁이를 돌면 냄새의 현장일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혔다.


엘리엇이 멈추라는 신호를 했다.


나와 로트는 행동을 멈추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얌전히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긴장된 순간을 견뎠다.


엘리엇이 모퉁이로 바짝 가 얌전히 있는다. 그녀가 자신의 가방에서 물약 하나를 꺼내 소매에 바르자 놀랍게도 벽의 색깔과 똑같은 색으로 소매가 변했다. 엘리엇은 자신의 팔로 얼굴을 가린 뒤 모퉁이 뒤를 살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끝났어. 시체뿐이야. 아무도 없어."


엘리엇이 말했지만 나는 신중을 기했다.


"숨어있을 가능성은?"

"숨어있다면 이미 내 탐색 능력을 벗어난 수준이야. 있어도 알 수 없어."

"죽은 지 얼마나 되었을 것 같아?"

"여기서 알아보기는 힘들어."


우리는 앞서 출발한 사람들과 삼십 분 이상의 시간 차이를 두고 쫓아왔다. 쫓아오는 입장이었고 우리의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으니 거리가 좁혀질 가능성은 있지만 큰 차이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템포도 조절하면서 왔다.


가서 확인할 것인가? 이 자리에서 후퇴할 것인가?


후퇴하는 것보다 무슨 상황이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더 얻을 것이 많다. 리스크는 있지만 엘리엇의 말을 고려한다면 짊어질 필요가 있다. 어차피 우리의 탐색 능력을 넘어선 은신이 가능한 상대라면 언젠가 죽을 것이다.


"가보자."


나는 결심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엘리엇과 로트가 뒤를 따랐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시체들이 널브러진 현장으로 접근했다. 던전의 음산한 분위기가 더욱 짙어진 듯했다.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고, 죽음의 무게가 공기를 짓누르는 듯했다.


던전의 음울한 분위기가 더욱 짙어졌다. 노란색 벽돌로 이루어진 복도와 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 색조차 어둠에 잠식당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꽂혀있는 횃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만이 이 음산한 공간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로트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횃불의 붉은 빛이 그의 얼굴에 어른거리며 그의 두려움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그의 떨리는 숨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엘리엇은 시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각 시체를 하나하나 훑어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주 나에게로 향했다. 마치 내게서 어떤 답을 찾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천천히 시체들 사이를 걸어다니며 각 시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기프트에 의지하며 시체의 얼굴을 대조했다. 그러다 눈에 익은 얼굴 하나를 발견했다. 식량을 요청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한가지 결론을 얻었다.


"베테랑 쪽 파티원은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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