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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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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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17

작성
24.08.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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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4

DUMMY

쾅, 쾅!


벽에 육중한 무언가가 처박히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 충격음이 던전 전체를 울리는 듯 했다.


"으하하, 죽어, 죽으라고!"


힘은 큰소리로 웃으며 뭔가를 던지고 있었다. 그 광기어린 웃음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나는 그가 던지는 것이 아마도 이 던전을 이루고있는 석조일 거라고 추측했다.


던전 벽을 뜯어 무기로 삼는다. 로트가 바닥을 뜯어냈던 걸 생각하면 그럴듯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발도는 날아오는 방향을 가늠하며 필사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빠른 발놀림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피하는 쪽이 던지는 쪽보다 체력소모가 훨씬 클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아마도 결과는 발도의 패배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개자식, 숨어다니는 거 만큼은 잘하는구만."


힘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초조감이 느껴졌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다보니 그의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고 있는 듯했다. 힘이라는 녀석은 평소에 이런 식으로 원거리 공격 훈련을 했을 성격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편하게 근거리에서 힘으로 찍어눌러 상대를 제압했겠지.


그렇다고 발도에게 다가가 결판을 내기에는 두려울 것이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게 굴고 있지만 이 정도로 몰아붙였으면 발도도 탈출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를 죽이려 들 것이 분명했다. 굶어죽는 건 나중문제고 발도도 지금 당장 살아남아야 할테니까.


만약 힘이 발도에게 거리를 내준다면 그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발도가 승기를 잡을지도 모른다. 발도가 빠르게 힘의 목을 베어버리면 그가 자랑하는 괴력을 쓸 기회조차 없어질 것이다. 힘도 그걸 알고 있을 터, 그래서 접근하지 않고 자꾸 던져서 결판을 보려고 하는 것일 거라고 판단했다.


"어엇, 뭐, 뭐야?"

"이건...?"


힘과 발도가 동시에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소리만으로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 머리속에 의문이 가득 차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때 액체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도와 힘은 놀랐는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속으로 아래층의 지형을 떠올리며 최대한 안전한 위치를 계산했다.


그리고 로트에게 말했다.


"로트, 여기를 뜯어줘. 벽돌 한칸만."


잠시 가짜유리포션을 쓸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어차피 투명해지면 벽돌을 뜯으나 포션을 쓰나 매한가지일 테니까.


"알았어."


로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돌에 손가락을 박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그것만으로 벽돌은 마치 마법처럼 뽑혀나왔다. 우두둑하고 접착부가 뜯기는 소리가 없었다면 버터를 들어올린 줄 알았을 것이다.


나는 기둥 옆에 구멍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여겨 돌로 낮은 벽을 쌓고 조심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아래 상황을 관찰했다.


시체 두 구와 힘의 난동으로 난장판이 된 아래층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의 끝에 대치하고 있는 힘과 발도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나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또, 또 움직인다!"

"씨발!"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치 생명체처럼 저들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기괴한 광경에 힘과 발도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위에서 보는 우리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크게 숨을 들이키려는 로트의 입을 엘리엇이 황급히 막았다. 나는 엘리엇의 빠른 대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등신아, 닥쳐!'


엘리엇이 마음만으로 로트를 훌륭하게 갈구는 것을 느꼈다. 기프트를 훈련하더니 이런 쪽으로 써먹는군.


나는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피로 된 작은 물줄기들이 하나로 모여 강줄기를 이루는 듯했다. 비유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세 구의 시체에서 나온 피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시체들은 마치 모든 생명력을 쏟아낸 듯 비쩍 말라 납작해져 있었다.


한곳에 모인 핏물은 갑자기 움직임을 바꿔 둥글게 변하더니 구를 이루고 허공에 떠올랐다. 내 추측으로는 지름이 삼십 센티는 되어 보였다. 그 광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를 죽일 기세로 싸웠던 힘과 발도였지만 지금만큼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거대한 핏방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 스친 공포를 보며 나 역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 핏방울이 다시 모양을 바꾸어 길게 늘어지더니 발도와 힘을 향해 날아갔다.


"으아아아!"

"씨발... 씨발..."


힘은 완전히 패닉에 빠진 듯했고 발도는 망연자실한 채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필사적으로 물러나려했다. 하지만 파티의 거리제약 때문에 그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붉은 핏물이 두 사람에게 딱 절반씩 나누어져 들러붙는 모습을 보며 나는 숨을 멈췄다.


잠시 후 마치 마법처럼 그 핏물이 두 사람의 피부로 흡수되는 듯했다. 곧 그들은 겉보기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으으으... 우웨엑!"

"크윽."


모습은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두 사람은 몸을 급격하게 떨고 있었다. 힘은 헛구역질까지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장면이었다. 우리도 몇 번 경험했으니 당연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기프트 강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둘 다 정신없는 상황이었지만 발도가 이를 악물며 일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 힘은 여전히 상황 파악도 못하고 그저 헛구역질만 계속하고 있었다.


발도는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힘의 두 다리를 베었다. 이어서 오른팔도 잘랐다. 그 순간 힘의 비명이 던전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힘을 보며 발도는 승리의 미소도 짓지 못했다. 아직도 기프트 강화의 감각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발도는 비틀거리며 동료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 짐을 뒤지더니 치료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는 멀찍이서 힘의 절단된 팔다리에 포션병을 던졌다. 포션병이 깨지며 상처에 스며든다.


그렇군. 제압하고 죽이지는 않는다는건가. 왼팔만으로 던전 입구를 파내게 만들 생각인 듯했다.


힘이 괴력을 가지고 있기야 하겠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었다. 자세를 잡아줄 사지 중 왼팔만 남은 상황 아닌가. 아마 발도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살면서 던전을 탈출할 선택지가 그것뿐이라 한 행동이겠지.


현실적으로 전투가 가능한 베테랑 파티원은 발도뿐이다. 그리고 그는 기프트 강화의 감각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내 머릿속에 급격한 고민이 밀려들었다.


지금인가? 지금 싸워야하는 건가?


동료들의 목숨이 걸려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다른 파티와 베테랑 파티는 다르다. 내려가는 순간 기프트 강화가 끝나면 우리는 전멸이다.


첫 번째 살해 현장을 봤을 때 일격에 다섯 명의 목을 참살한 시체를 보았다. 그건 분명 발도의 짓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똑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럼 모두 죽는다. 나뿐만 아니라 엘리엇과 로트도.


하지만 여기는 우리가 싸우려고 상정했던 전장이 아니다. 이미 다른 곳에 전투를 준비해뒀는데 여기서 싸우는 게 맞나?


병신아, 여기지?


엘리엇의 마음이 전해졌다. 기프트로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고개를 들자 엘리엇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리엇은 내 고민의 원천을 읽어냈다. 그 잘난 기프트로. 나는 어느새 엘리엇과 로트의 목숨을 중시하고 있었다. 내 생존과 동일한 수준으로. 남의 것으로 상황을 저울질하려하니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은 것이다.


엘리엇은 내 판단을 믿는다는 마음을 전했다. 로트도 마찬가지라는 것도 전했다.


뭘 고민해. 죽으면 죽는 거지. 죽으면 지옥에서 갈궈줄게. 일단 질러.


다시 한번 엘리엇이 의사를 전했다.


조금 우습군. 내 기억에는 생존에 제일 필사적이었던게 엘리엇이었던 거 같은데 그런 마음을 전하다니.


나는 로트와 엘리엇을 보며 말했다.


"상황이 바뀌었어. 여기서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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