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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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평타석
작품등록일 :
2024.07.08 08:11
최근연재일 :
2024.08.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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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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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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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8

DUMMY

갑자기 쇼크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했다.


이전에 느꼈던 기프트 강화의 반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떨림과 구토감이 몰려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것 중 가장 강력한 기프트를 지녔던 발도를 제거한 대가였다. 그의 죽음으로 인한 반작용이 우리의 육체를 강타한 것이다.


"케인!"


로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천장의 벽돌 몇개를 제거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서 줄줄 땀이 흐르고 있다.


그의 손에서 로프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내가 미리 부탁해둔 행동이었다.


기프트 강화의 강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이런 지시를 해둔 것이 다행이었다. 이런 취약한 상태로 복도에 있는 건 좋지않으니까.


"모, 못 움직이겠어."


엘리엇의 목소리가 떨리며 들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나 역시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였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엘리엇의 몸과 내 몸을 로프로 감았다. 우리 둘을 하나로 묶은 뒤 위를 올려다 보았다. 로트가 우리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즉시 로프를 당기기 시작했다.


로프가 허리를 조이는 감각이 불쾌했다. 마치 짐짝처럼 천장을 향해 끌려 올라가는 기분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는 천장이 우리를 반겼다.


로프를 풀어내자마자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옆을 돌아보니 동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든 상태였다.


문득 발도와 힘이 떠올랐다. 그들도 강화된 기프트를 가진 동료를 죽였을 텐데 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닸다. 그 생각에 불평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혹시 이런 고통스러운 감각도 반복해서 겪다 보면 내성이 생기는 걸까? 하지만 이제 그걸 알아볼 방법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게 끝났으니까.


그때 갑자기 모릿속으로 이상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마치 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로트의 삶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단순히 시야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의 감각이 감정이 로트가 되어 체험해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곧 엘리엇의 삶도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당황한 표정의 로트가 나와 엘리엇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엘리엇도 로트만큼은 아니지만 약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금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는 기프트는 엘리엇의 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녀의 능력이 또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강화된 모양이었다. 이 상황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킬킬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엘리엇과 로트가 굉장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 나는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실례군. 내가 미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번에도 엘리엇의 기프트가 이상하게 발전했는데."


내 말에 로트는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고 엘리엇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어떻게? 또 뭐가 전해졌는데."


자신의 능력에 관한 일이다 보니 엘리엇은 짜증을 내면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자신의 능력인데 그 결과를 남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니.


"네 삶을 대리체험 했다고 할까. 로트의 삶까지."


엘리엇의 삶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로트의 삶까지 전해진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로트는 결국 엘리엇에게 타인이니까. 그녀의 기프트가 이 정도로 강화되었다는 사실에 경괴감마저 들었다.


"진짜로? 나만 느낀 건 줄 알았는데. 씨발... 솔직히 내 삶을 체험해봤다는 건 기분 나쁘긴 한데 이건 공평하게 나도 겪은 거니까. 근데 전체를 다 경험해본 건 아니거든. 인상적인 장면 몇개를 체험 했다고 해야하나?"

"나도 그래."

"나도 그랬어."


엘리엇의 말에 나와 로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셋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엘리엇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이거... 가운데서 생각을 전해줄 수도 있게된 건가? 둘 다 이쪽으로 와봐."

"네가 움직여. 힘들어..."


나는 투덜거리며 말했지만 로트는 엘리엇의 말에 순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라 일어나야 했다.


온 몸이 욱신거리는 고통을 참으며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움직일 때마다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구토감이 심해져 입안에 신 맛이 돌았다. 돌아버리겠군.


로트와 내가 엘리엇 옆에 자리를 잡자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우리 둘의 팔을 하나씩 잡았다.


나는 로트의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속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했다. 그 단순함에서 오는 평화로움이 나를 감쌌다. 문득 평화란 결국 이런 단순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인 생각은 복잡해서 알기 힘드네."


로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통 담당이잖아."


엘리엇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왜 네가 대답하는데. 불만이 조금 생겼지만 말하지 않도록 하자.


"그럼 이렇게 하면?"


나는 의도적으로 '로트는 듬직해서 훌륭하지'라고 강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로트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흐흐..."


로트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엇의 새로운 능력에 대해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이것은 정말 대단한 발전이었다. 엘리엇이 중간에서 중계해준다면 우리는 이제 말을 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능력을 확인한 후 우리는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로트가 이 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고 우리도 동의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우리의 베이스로 향했다. 나 역시 이제는 베이스가 가장 편안하게 느껴졌다. 비록 몸을 완전히 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이지만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였으니까.


베이스에 도착한 후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전과는 달리 이제는 불침번을 한 명씩 번갈아 서기로 했다. 둘이나 깨어있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베테랑 파티가 사라졌으니 더 효율적으로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휴식을 마치고 나는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내 말에 엘리엇과 로트가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혼자 깨어있는 동안 소리를 모아주는 접시로 다른 파티의 행방을 찾아보았었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남은 생존자들은 모두 구해서 탈출 시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생존자가 둘 뿐이야."

"둘이서 나머지를 다 썰어먹었군."


엘리엇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내 말에 대꾸했다. 그녀의 표정에서 이런 상황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다만 이제 예전같은 짙은 경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황상 그렇지."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마무리하자. 이런 던전이 밖에 알려지는 건 위험해. 또 다른 베테랑 파티가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고."


우리는 통로로 내려갔다. 내가 앞서 안내하며 이동했고 덕분에 금방 나머지 생존자 둘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그 괴물이잖아."


생존자 중 한 명이 로트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쫄지마. 예전 같은 상황도 아니고."


다른 생존자가 동료를 향해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는 냉정함이 느껴졌다.


두 생존자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나는 내 기프트가 얼마나 강화되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들의 외형과 장비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왼쩍 인물의 검집에 난 상처를 보고 나는 그가 무기를 강화하는 기프트를 가졌다고 추측했다. 오른쪽 인물은 투척 무기 전문가로 보였다. 그의 무기 배치와 장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여러 가설을 떠올리고, 내 생각이 맞는지 소거법으로 정돈한 다음 엘리엇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말을 걸테니 바로 오른쪽 인물을 제거해줘.


내 생각을 읽은 엘리엇이 알았다는 뜻을 마음속으로 전했다.


의도적으로 타겟이 되기 쉽도록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을 걸었다.


"잠깐 대화는 어때?"

"대화 좋지."


냉정한 투로 말하던 왼쪽 인물이 대답했고 오른쪽 인물이 슬며시 손을 뒤로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엘리엇의 단검이 오른쪽 인물의 목에 꽂혔다. 즉사였다.


"씨발...! 무슨 짓이야!"


너희들이 하려던 짓이지.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에게 접근했다. 남은 한 명이 다급하게 검을 뽑았지만 내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그가 아래로 내리치는 검을 횡으로 피했다. 검술 실력은 대단치않다.


기프트가 강화되어도 실력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효과는 많이 옅어진다.


검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내 검으로 막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다.


나는 그의 시선을 계속 붙잡아두며 회피에 집중했다. 곧 엘리엇의 두 번째 단검이 그의 목을 관통했고 역시 즉사했다.


이제 우리가 이 던전의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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