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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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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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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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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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광기의 밤

DUMMY

휘성이 산을 급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제는 나뭇가지 하나,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이 지긋지긋한 산을 잠시나마 벗어나고 싶었다.

예전부터 오컬트 분위기는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으므로.

할아버지의 의식인지 뭔지가 끝날 동안만 도시에서 분위기 전환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때마침 노인이 나타났다.

우리 집의 사과나무 그늘이 유난히 향긋한 냄새가 나서인지 모르겠지만,

노인은 사과나무 근처에 돋아난 뿌리에 걸터앉아 작업에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삽을 정리하고 있었다.


“총각. 어디 갑니까?”


여전히 장갑과 밀짚모자를 두른 채 심오한 분위기를 풍기시는 분이셨다.

그는 마당의 사과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사과 한 알을 주워들어 건넸다.


휘성은 사과라면 질리도록 먹었으며.

집 앞에 나는 사과는 그다지 달지도 않았기에,

정중히 할아버지의 권유를 거부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제가 며칠간 도시에 나갈 일이 생겼습니다. 김무람씨의 유골함은 창고에 쟁여놨으니, 의식이 끝나시면 다시 가져가 주십시오.”


휘성이 격식을 차려 인사한 뒤, 길을 나선다.

그러던 그때, 휘성을 불러세우는 노인.


“가면 안 돼!”


“예?”


“가면 안 돼. 아직 의식이 끝나지 않았어.”


“그치만···.”


“억울하게 죽어버린 자네 친구가 불쌍하지도 않은 겐가? 장산범의 영혼을 봉인하지 않으면, 자네도 불쌍해지는 수가 있어!”


“말이 나와서 말입니다만, 장산범이 정말 악귀입니까?”


“뭐라고?”

노인은 허연 피부를 쓸어내린 뒤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애초에 미신이죠. 일태를 죽게 한 산사태를 일으킬 정도의 악귀가 동네 뒷산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어리숙해서야 원···. 자네 군대는 다녀왔나?”


“그거랑 이거랑 별개인데요. 저 이래 보여도 최전방 GOP 출···”


- 깡!


"육시랄것!"


털썩-

그때, 뒤에서 날아온 묵직한 한방.

휘성은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최전방 출신의 호기로운 말로가 아닐 수 없었다.


쏴아아-

가을 밤하늘의 차가운 공기가 유리창을 경계로 하여 히터 바람과 맞부딪쳤다.

유골함을 맡은 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따라 바람 소리가 포효하는 짐승 같았다.


틱. 틱. 틱.-

주변이 고요해지자,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오늘따라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숨통을 조여오는 저승사자의 발소리 같았다.


우우- 우우-

이따금씩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밤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눈꺼풀은 무거워진다.

바위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들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꿈속으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

.

.

#


“일어났는가?”

어젯밤에도 들었던 김무람의 목소리였다. 그 여자는 분명 죽었을 터. 그러나 보란 듯이 스산한 기운을 뽐내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가까이 와보시게.”


“으윽. 으으윽. 여기가 어디야?” 내가 숨을 고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답답한 것이 너무 생동감 있어서 도무지 꿈같지 않았다.


“더 오시게.”


스윽-


“이제 아래를 보시구려.”


휘성은 여자의 말대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이게 웬걸.

자신이 나무에 꽁꽁 묶여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꿈이 너무 리얼해···.”


“푸훗. 웃기는구나. 아직도 꿈 타령을 하고 있다니.”


“그럼 꿈이 아니라고?”


“본인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네가 아무리 허구라고 한들, 나는 실로 존재하고 있으니.”


여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를 응시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 못 보던 얼굴이군. 혹시 외지인인가?”


“난 여기서 태어났고, 여기서 자랐고, 여기서 살고 있어. 외지인은 너겠지.”


“그렇구나. 과연 그렇군. 귀엽구나.”

여자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콧방귀를 뀌었다.

표정으로는 마치 ‘거짓말 치고 앉아있네.’라고 따지고 있는 것 같았다.


휘성은 억울하기만 했다.

왜 자신의 말은 믿어주지 않는가에 대한 서운함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휘성의 말을 간단히 무시한 채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나무 지박술. 정말 까다로운 술법이야. 풀어내려 하면, 금방 새로운 제물과 엮어 버리니···."


꿈속 세계임이 분명한데, 그녀의 목소리는 또박또박 머릿속에 박혀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전날 밤 급박했던 꿈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긴장감은 높아져 갔다.


여자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알을 굴렸다.


아래에서부터 오른쪽,


그리고 왼쪽,


마지막으로 위쪽.


위쪽에는 상당히 서늘해 보이는 나무 그늘이 있었다.


그녀가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나무 그늘을 바라본다.

“이번에 새로이 희생될 제물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네.”


쿵!


쿵!


쿵!


그러던 그때, 여자가 갑작스럽게 돌변하여 나무에 묶여있는 상태에서 발을 구르기 시작한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나의 질문 따위 가볍게 무시한 채로, 발을 구르며 나무 기둥을 흔들 뿐이었다.

나무 기둥은 여자의 무시무시한 괴력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스산한 바람을 만들어 냈다.


쿵!


쿵!


쿠우웅!


그때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무언가.

여자는 그 무언가를 보지도 않고 가볍게 집어낸다.

정수리에도 눈이 달린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의 반응 속도였다.


“그··· 그건.”

그녀가 잡은 것은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 한 알.

사과를 바라보며 묻는다.


“한 입 할래?”


여자가 내민 과일을 바라보며 내 두 눈을 의심해 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 두 눈은 정확했고,

그 사과는 우리 집 정원에서 자라는 것이다.


“너··· 뭐야. 이게 뭐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사람들은 나를 본디 ‘백호 장군'이라 칭하나, 세간에 알려진 이름으로 감히 말해보자면, 간악한 짐승 장산범이라 하오.”


“너. 그거 우리 집 사과지?”


“나야 모르지.”


“우리 집에서 무슨 짓을 벌이는 거야!”


“겁먹은 인간 진정시키는 것만큼의 난제가 또 없지. 미지의 것을 경계하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어. 인간 또한 짐승에서 비롯되었다는 방증일까.”


“개소리하지 말고 말해! 왜 너랑 내가 우리 집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냐고!”


여자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젯밤 꿈을 기억하나? 내가 자네에게 보내는 전언이었거늘···.”


순간, 잊고 있었던 어젯밤의 꿈이 머릿속에 선명히 스쳐 지나간다.

무람이라는 여자.

그래.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와 다를 바 없는 외견을 지닌 여자.

나는 어제 분명 그녀를 살리고자 했다.

분명한 목적도 없었지만,

내가 얻는 것도 없었지만,

분명 살리려고 했었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김무···! 김무람씨? 당신이 왜 장산범이야?!”

“당신 정체가 뭐야?!”

“김무람은 그때 죽었잖아!”


“김무람은 내 권속이었다.”

무람으로 보이는 여자는 자신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휘성에게 늘여 놓았다.

몹시 측은한 표정으로 말이다.


“꿈에서 보았던 가녀린 김무람은 범법자 따위가 아니다.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될 귀재였다. 평화롭던 장산 마을의 예비 이장이자, 모든 총각들의 정신적 지주였지. 중악이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중악?”


“중악은 권력을 강화하겠다는 명목 하나 만으로 지방에 흩어져 있던 마물들을 학살했다···. 평화롭던 우리 마을까지 전부.”


“내가 들은 이야기하고 달라.”


“지금 바른대로 말하지. 난 사람을 학살하는 악마가 아니오. 난 산사태나 일으키는 악귀가 아니오. 난 그저 구슬픈 산짐승이올시다.”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그때, 아침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인지 사과나무에서 얼쩡거리던 할아버지.

신수에 붙어있던 부적과 똑 닮은 사과나무의 부적.

그리고 살짝 엿볼 수 있었던 의식의 진행 방식.

나에게 집에 머물 것을 권하던 노인의 광기 어린 간절함까지.


“잠깐, 검은 제복은 분명 착한 편이랬는데?”

“할아버지는 왜 날 기절시켰고···.”

“그리고···.”“지금 나는 너랑 같이 묶여있고.”


정신을 차리고.

나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재차 현실을 직시했다.

나는 나무에 묶여있었다.

그것도 우리 집 마당에 위치한 사과나무에 말이다.


"오오. 이해하는 데 한세월이 걸리는구나. 드디어 자신의 처지를 깨닫다니. 아무튼 말이다. 새로운 제물. 그게 바로 너다.”


“나, 난 그, 그저 평범한 사람이야! 나, 난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평범한 사람? 가 평범했다면 고라니 사체가 나뒹굴고 신수가 상처투성이가 됐을 때부터 도망쳤을 거다. 산에 무서운 산짐승이 살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 그건 내 경고였고. 조언이었고. 자비였는데 말이야. 대가리 멀쩡한 인간이었으면 도망쳤어야지! 그리고 불길하기 짝이 없는 유골함은 왜 도맡아 집에 들이는 게냐?!”


“아니. 장사 잘 되게 해준다길래.”


“확실한 건, 자네 덕분에 나는 산 밖으로 탈출하기는 글렀다는 것이야.”


잠시 침묵이 흐른다.

휘성은 최대한 침착하게 이성을 유지하며 한 가지 정론을 제시한다.

“근데, 내가 지금 잠에서 깨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닌가? 당장 뛰쳐나가서 산 밖으로 피신한다거나. 한 번 시도해 보죠.”


“예끼 이놈아, 택도 없는 소릴! 이건 스스로의 의지로 깰 수 없는 깊은 잠이라네. 자네는 뒷통수가 얼얼하지도 않은 겐가. 최전방 주, 쥐옷피? 아무튼 부대의 수치로구먼.”


무람이 중얼거리며 휘성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통수는 피가 쏠려 퉁퉁 부어 있었다.

아까 노인이 삽으로 후려쳐서 생긴 흔적이었다.

.

.

.

#한편, 노인이 뚜벅뚜벅 산을 걸어 올라온다.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집어 던지고.

장갑도 집어 던지고.

검은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철야의 저승사자를 방불케 했다.


조용히 산을 오르던 그가 산 중턱에 위치한 매점을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매점에 다가가,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사과나무를 살짝 두드려본다.

이내 나지막하게 입을 여는 할아버지.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가 사과 나무에 불어 있던 부적 위에 새로 가져온 부적을 덮은 뒤,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부적에는 김휘성의 이름 석 자가 한자로 적혀 있었다.


“자네의 한자 이름 석 자 알겠다고 이미 뒤진 노모의 납골당까지 뒤졌네. 내 노고에 감동해 주게나.”


잠시 후, 장산범의 2차 봉인을 위한 노인의 작업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삽질을 조금만 해도 숨이 차고 호흡도 거칠어졌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잔뜩 흥분하여 땅을 파는 노인이었다.


“이이···. 어딜 나오려고! 더럽고 천박한 산짐승이 어딜 감히! 내가 역임하고 있는 동안은 절대 안 된데이!”

“이런 무지몽매한 녀석이···! 500년이나 되었으면 포기하고 소멸할 법도 하거늘. 잘도 이런 짓을···! 내 산을···! 중악의 산을···! 겁도 없이···!”

노인은 마치 눈앞의 누군가와 싸우기라도 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며 으르렁거렸다.


김무람의 뼛가루를 구덩이에 넣은 그.

잠시 삽을 내려놓고 숨을 몰아 내쉰다.

“헤엑. 헤에엑. 장산범이여. 내 특별히 장산 사람의 후손을 제물로 준비하였으니··· 이번에야말로 편히 잠드시게나. 영원히!”


휙!-

그러고는 목을 꺾어 휘성이 묵고 있는 오두막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달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

.

.

틱!

노인의 구닥다리 라이터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한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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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화. 신데라의 회상(1) 24.09.11 20 0 10쪽
31 31화. 해방 전선 본부의 연락 (9월 10일 복귀 회차) 24.09.09 21 0 14쪽
30 30화. 살아나는 연락망 (1막 마무리) 24.08.27 26 0 13쪽
29 29화. 일상과 재활 24.08.27 27 0 8쪽
28 28화. 소박한 희망 24.08.25 26 0 9쪽
27 27화. 입학. 24.08.22 28 0 10쪽
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7 0 10쪽
25 25화. 흔적의 흔적을 지우다. 24.08.20 27 0 10쪽
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20 20화. 마물의 밤 24.08.13 35 0 11쪽
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4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6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7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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