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범이 매점에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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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그림/삽화
옹골찬멸치국밥
작품등록일 :
2024.07.0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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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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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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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새침데기 김무람

DUMMY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니 죽으면 클럽 물은 누가 정화하니.”


“아직도 그 소리야. 뒤지게 처맞으려고.”

울려 퍼지는 새소리가 평온하기만 한 오전 11시.

산 중턱 매점에 태흥이 다시 방문했다.

불타 없어진 매점 말고, 화재 보험금으로 새로 지어낸 보금자리에 말이다.


“그건 그렇고 할아버지는? 의식은 잘 끝난 거야?”


“아니, 그냥 미친놈이더라고. 사과를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나무에 밤새 매달려서는.”


“그렇지? 너도 정신 좀 차려라. 괜히 장산범이니 뭐니 하니까 저주받아서 불이 난 거 아니냐.”


“그러게.”


“신고했냐? 어떻게 했어? 잡혀갔어?”


“어. 잡혀갔어.”


“죄목이 뭐래? 허위사실 유포? 영업 방해?”


“복식호흡이 마음에 들지 않은 죄.”


“뭐야 그게?”


“몰라도 됨.”


“그나저나, 이야~. 삐까뻔쩍하니 새집이 따로 없다. 나 오늘 여기서 자도 되냐?”


“괜찮겠냐? 장산범 나온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태흥은 뒤에서 느껴지는 매점 알바생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잠시 눈치를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의식이 마무리되던 날 밤에 불이 난 거잖아.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진짜 장산범의 저주였던 거 아니야? ㄷㄷ”


그때, 끝끝내 참지 못한 알바생이 대화에 끼어들며 훼방을 놓았다.

“장산범의 저주라니요.”


“아. 아닙니다. 일 보세요.”

계속해서 알바생의 눈치가 보였던 태흥은 적당히 말을 얼버무리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야, 아까부터 궁금했다. 저 사람 뭐야?”


“알바야.”


“넌 왜 중간이 없냐. 진짜 극한의 빈티지 성애자 이런 거냐?”

“유골함도 들여오고. 오색빛깔 저고리 입은 무당 알바생도 들여오고.”

“이제 귀신만 들이면 딱 맞겠다 야.”


“너 말조심해. 그 귀신 역할이 네가 될 수도 있으니까.”


“뭐야? 왜 갑자기 저 사람 편을 들어~? 좋아하는구나. 그치? 이쁘긴 하네.”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태흥이다.

휘성은 그런 태흥이 밉기만 하다.

‘할 말은 많은데, 말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저 녀석이 알까?’


“그래도 고맙다.”


“갑자기?”


“니가 쓰고 대충 던져놓은 공구함 덕분에 살았어.”

불이 나기 전, 태흥이 방문했을 때, 휘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흥에게 울타리 보수 작업을 맡겼었다. 그리고 그때 태흥이 트럭에 두고 간 공구함은 휘성의 생명줄이 되었다.


“나 그거 그냥 창고에 넣어 두기 귀찮아서 거기 처박아둔 건데?"


“알아. 썅놈의 새꺄.”


그렇게 평소처럼 수다를 떨던 태흥이 떠나가고.

매점에는 나와 과묵한 알바생.

그리고 바람과 나뭇잎과 약수터 웅덩이만이 남았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시원한 가을 전경을 바라보았다.


"어쩌다 저런 알바생을 들이게 된 걸까?"


잠시 과거로 돌아가서 이야기해 보자.

.

.

.


화재 사건이 일어나고 2개월 전.

매점이 다시 문을 열기까지, 하루하루가 고단한 시간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녀를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있었다.

신고할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개한 줄만 알았던 과거의 이방인은 미개하기보단 영악했다.

일단. 처음 만났을 당시의 고고한 자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기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말괄량이로 변모했다.


자신을 구해준 나에게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나이를 빌미로 존댓말을 ‘정중히’ 강요했다. 끽해야 학생으로 보이는 계집애가 다 큰 사람에게 존댓말 강요라니.

물론 완력으로 굴복당한 나는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인의 시체를 들먹이며 공범이라면서 협박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를 포도청에 잡아넣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별수 있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같이 살기로 했다.


오두막의 보수 공사가 시작되던 날.

우리는 우선 오두막이 새로 완공될 동안 묵을 숙소를 찾아 헤매었다.

내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는 유성이의 집에 얹혀살며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여사님이었다.

유성이가 마더 테레사가 아닌 이상, 무람까지 받아줄 정도로 아량이 넓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무람 본인은 산 중턱에 걸터앉아 자면 그만이라 했지만, 한참 오두막 수리 공사 중이었을 산 중턱은 소음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렇게 또다시 꼬장을 부리는 무람.

나는 결국 사비를 털어 그녀를 피시방에서 재웠다.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조선인을 현대 사회에 녹아들게 하는 상상 말이다.

물론 당연한 소리지만, 만화에서 보는 것처럼 그리 간단치 않았다.


첫 번째.

실제로 소통에 있어서 뜻이 어긋나는 단어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에서 배웠던 중세 국어를 총동원했지.

나는 그날, 유성이의 국어책을 뺏어 하루 종일 공부했다.

생각보다 통하는 단어가 많아서 신기했다

물론 무람쪽에서 오냐 오냐 하며 내 재롱을 받아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두 번째.

앞으로의 생활이 문제였다.

우리는 유성이가 학교에 가 있을 낮에나 몰래 모여 앉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루빨리 무람이 말하는 ‘중악'이란 집단을 처리하고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싶었다.


“오두막이 불탄 그날, 그 녀석이 이용한 것이 전화기라 하던가?”


“예.”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이 말인가?"


“예.”


“아아~. 설명하는데 너무 애먹지 말게. 이래 봬도 피시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몸이지 않은가.”


“예.”


“인터넷이란 것으로 공부를 좀 해봤네.”


“예.”


“거기에서 추가로 알아낸 것이 있네.”


“예.”


“미치광이 노인이 가지고 있던 연락처에 있던 전화번호를 일일이 검색해 본 결과···.”


“결과···?”


“유명 식당의 위치가 뜨더군.”


“아. 설마, 점심에 긁으신 12,000원이···.”


“잘 먹었네. 아, 너무 근심하지 말게. 그 ‘카드’라는 그것이 화폐라는 것쯤은 알고 있네. 그리 많이 쓰지 않았어.”


“예···.”


“각설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닐세. 그다음 전화번호로 전화해 보았는데···.”


“또다시 유명 찻집의 위치가 뜨더구나.”


“설마, 아까 긁으신 4,500원이···.”


“너무 상심하지 말게! 내 괜히 긁은 것이 아니라네. 자세히 한 번 보게나. 나한테서 뭔가 특이한 점이 없는가?”

무람이가 뻔뻔하게 얼굴 들이밀며 질문을 했다.

이미 통장 잔고에서 떠나간 16,500원을 추모할 틈도 없이 시작된 숨은그림찾기 시간에 몰입하는 휘성이었다.


“딱히.”


“자세히 봐라.”


“모르겠습니다.”


“이봐라, 내 배가 빵빵하니 복스러워지지 않았는가.”


분위기상 심각한 반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역시 나만 심각했나 보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뻔뻔함의 극을 달리는 태도에 기가 찼다.

사람 죽이고 저렇게나 태평하다니.


“김무람씨, 저···. 시체는 어떻게 하셨어요?”


“누구 시체 말이더냐.”


“그 영감탱이의 시체 말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


“네, 그, 네. 맞아요. 죄책감.”


무람은 잠시 공사 중이던 매점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내 손가락을 관자놀이 위에 빙빙 돌리며 방바닥에 드러눕는 것이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다. 아직도 이해를 못 하였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사람이죠.”


“틀려. 그 녀석은 사람으로 둔갑한 마물이다. 중악에게 복종해 버린 천인공노할 괴물!”


“당신도···. 괴물입니까?”


“하. 용감하군. 겁도 없이.”


“원래 그래요. 저.”


“너는 아직 나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구나. 나 또한 사람이 아니란다. 나는 김무람이라는 여인이 아니다. 앞으로도 평생을 김무람이 아닌 채로 살아갈 거다. 가짜로 남아 천천히 썩어가겠지.”



“그럼 안 돼요.”


“무엇이?”


“사람 아니면 채용 안 해요 저는. 당신 이제부터 사람 하세요.”


“마물더러 사람 하라면, 마물 역은 누가 할꼬.”


“지금 사회에 착한 사람이 너무 부족해요. 당신이 사람 역할 하세요.”

휘성은 의식의 흐름대로 핑계를 만들어 가며 본인의 이상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실상은 그냥 무서움을 달래고자 사람으로서 그녀의 존재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나도 착한 편은 아닐 텐데?”


“저 살려줬으면 착한 겁니다. 당신 이제부터 착한 사람 하시라고. 제 과학적 상식 깨뜨리지 말고 그냥 사람 하란 말입니다. 안 그러면 사회 진출 못 해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군. 게다가, 과학적 상식에 강박증이라도 있는 게냐?”


“개인주의하고 이성적 사고가 요즘 트렌드라서요. 게다가, 요즘은 뭐랄까···. 이제는 무작정 믿고 신봉하기보다도요···. 신봉 받는 쪽이 천민층에서 같이 고통받는 걸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냥 적응하세요.”


“트, 틀앤드? 트랜드? 새로 생긴 주막 이름 같구나. 요즘 주막은 설정 만들어 장사하나 보지? 하! 내가 천민층이 되라고? 손님이 오면 ‘주인님~.’ 이런 식으로 아양 가득한 꼬리질을 떨라는 것이더냐?”


“좋네.”


“네놈이 정녕 내 우위를 점하겠다 이것이지?”


“아니. 제발 예의 없는 거 티 내지만 말라고요.”


“음.”


“그리고 겁 좀 그만 주세요. 당신이 날 구한 건 맞지만, 나도 당신을 구했거든?”


“음.”


“뭐가 불만인데요?”


“나는 이제 사람이라서 그런 거 모른다. 사람은 원래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착한 사람이 될 순 없는 건가요?”


“그건 내 맘이야.”


대충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봤다.

김무람 씨는 아무래도 자신을 몇백 년씩이나 봉인한 중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흔적을 조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뿌리 내린 부정부패를 완전히 제거하는 그 순간까지는 이 땅을 지키고 서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단언.

더불어 말하길, 나는 본인이 지키던 장산의 후예임으로, 중악이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매점을 지키고 서 있겠단다.


“아하하···. 사람 참 아름답다. 당신 덕분에 우리 매점이 살아요.”

나는 애써 부담스러운 미소를 감추며 농담인 양 받아들이기로 했다.

논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비과학적 존재는 나에게 너무나도 해로운 것.

솔직히 지금도 해롭다.

저 꺼슬꺼슬한 혓바닥을 날름 할짝거리는 모습이 여간 을씨년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사포랑 겹쳐서 문대 보면 사포가 먼저 헤져버릴 것만 같았다.


“언니, 쎄바닥 너무 부담스러워요.”


“난 인간이라서 혓바닥 잘 놀린다.”


“아, 시발.”


“씹할? 매도도 할 줄 아는 것이더냐? 의외로구나. 영특하여라.”


“아, X발.”


그날, 난 유성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저 미지의 존재를 애써 피해 다녀야 했다. 유성이에게 반강제로 야자를 째고 오라고 호통을 친 후에야 무람 씨의 폭주는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최전방 GOP 출신인 내가 정확하게 정의하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운 사건이었다. GP 경계 도중 미지의 생명체를 볼 일은 흔치 않다.

끽해야 총 든 북한군이나 아마존강 나무늘보 정도가 간간이 모습을 비출 뿐.

매점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은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비과학적인 사건이었다.

나름 이성적이었던 나로서는 이번 사건의 진실을 전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지럽네.”

나는 아직 장산범의 이름, 그리고 자질구레한 신체 스펙 밖에는 이해한 것이 현저히 적었다. 앞으로 천천히 두고 보면서 저 존재를 면밀히 관찰해야겠다.

.

.

.

#

다시 현재의 시점.

나는 태흥에게 하던 신세 한탄을 마저 하며 몸서리를 떨었다.

미지의 경험은 어김없이 계속될 예정이다.

과거, 이 땅에 존재했다는 [마물]의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있으니 당연지사인 것이라.

심지어 이제는 알바생으로 들어와서는 농성이니.

하루빨리 이곳을 떠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날로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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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남겨진 데라 24.08.22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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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초짜들의 몰락 24.08.19 29 0 12쪽
23 23화. 마무리 정리 24.08.17 28 0 12쪽
22 22화. 아침 작업 24.08.15 30 0 13쪽
21 21화. 귀기 누적의 부작용 24.08.15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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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데라의 심리는 24.08.12 32 0 11쪽
18 18화. 결계 속의 스몰 토킹 24.08.11 35 0 11쪽
17 17화. 접선까지만. 24.08.08 37 0 12쪽
16 16화. 결별과 추격의 때 24.08.08 35 0 9쪽
15 15화. 거래의 성립. 24.07.30 38 0 12쪽
14 14화. 빈민가 저항군들 24.07.30 38 0 11쪽
13 13화. 엄연한 정당성 24.07.26 39 0 10쪽
12 12화. 능력의 일각 24.07.26 34 0 9쪽
11 11화. 깊은 오해 24.07.24 38 0 12쪽
10 10화. 납치 공작 24.07.22 38 0 13쪽
9 9화. 미행범은 아군인가 24.07.19 40 0 12쪽
8 8화. 대항마의 움직임 24.07.18 4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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