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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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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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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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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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DUMMY

화적들은 덕팔의 아내 막심이를 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막란도 막심이를 구하려 바다로 뛰어들 기세였으나 윤서가 겨우 말렸다. 화적들은 가족들이 관군들에게 잡히면 포기해야 한다. 특히 백운산 화적들은 잡히면 스스로 자결한다. 오랫동안 화적들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래서 막심이도 아이들에게 자기를 잊고 덕팔에게는 잘 살라며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막심이는 백운산 화적들의 전통을 따라 그녀 방식대로 자결을 할 것이다.


강화목사는 윤서와 막란의 행선지를 최이척의 집요한 추궁에도 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평소 자식이라 해도 서자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최이척은 이 일로 강화목사를 탐라(제주도)로 내려 보냈다.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평생 살라는 뜻이다. 운명인지 몰라도 광해가 탐라로 다시 유배를 오고 나서, 광해가 죽을 때까지 강화목사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다. 광해는 육십 육세에 죽었다.


강화목사가 탐라로 내려가기 전 ‘귀 잘린 어부 할아범’에게 화적의 자식 바우가 숨어 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바우에게 부탁해 배를 윤서와 막란이 있는 함박도로 보낸 것이다. 윤서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



화적들의 배는 명나라 남경으로 향했다. 편서풍을 받아 배를 쉽게 이동하여 관군들을 따돌릴 수 있고, 재물만 있다면 세상 각지에서 들어오는 물자가 풍부해 사람 살기에는 천당과 같다고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화적들에게는 황금 열 근이 있다. 무기를 구입하라고 최이척이 준 것이지만 과부의 천삼으로 대신하였고, 곽주의 쌍바윗골에 윤서와 막란이 숨겨 놓았던 것이다. 화적들을 남경에 내려놓고 윤서와 막란이가 찾아오면 된다.


남경에는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홍자성’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다. 홍자성은 윤서의 아버지 최이현이 상대했는데, 다른 공물(貢物)은 필요 없고, 공녀(貢女)를 바치라며 건방떨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하루는 시(詩)를 좋아하는 홍자성이 조선은 시인이 없다며 대놓고 조롱하고 멸시하자, 최이현이 집으로 초대해 당시 계례식(성인식)이 막 지난 윤서를 상대하게 하였다.


앳되고 천진한 얼굴을 가진 윤서였다. 홍자성은 비웃었다. 시조를 논할 상대가 아니라 판단했다. 차라리 공녀가 되어 명나라로 가자며 치욕스런 말까지 윤서에게 했다. 윤서는 시로 답했다.


<조선 팔도에서 부모와 이별하여,

천 리 만 리 길에 눈물 뿌려가며,

내나라 버려두고 꽃가마 타고 가서,

비단 옷 치장하고 산해진미 들어도,

내나라 고국산천 어느 누가 잊을까>


홍자성은 공녀를 달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윤서의 총명함이 조선의 여인들을 살린 것이다. 윤서가 의향만 있다면 명나라 황태자비로 추천해 주겠다고 까지 했다. 조선의 세자비도 거절한 윤서였다. 명나라 사신의 콧대만 꺾어 놓으면 그걸로 만족할 일이다.


이후로 명나라 사신이 오면 윤서를 만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윤서는 조선뿐만 아니라 명나라에서도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윤서가 명나라에 오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홍자성의 말이 있었다. 자기에게 뻑 간 그를 믿고 화적들을 남경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




함박도를 떠난 지 나흘이 되어서 명나라 진안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는 좋았고 사촌오빠 강화목사가 보낸 배가 크고 날렵해서, 관군들의 배보다 기동력이 좋아 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북쪽의 후금이 세력이 좋아 명나라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선에서 온 사람들에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항구는 세계 각지에서 온 상인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객주(客駐)들은 술과 고기들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화적들은 제법 규모가 있는 객주를 택해 가진 것을 모두 털어 열흘을 빌렸다. 그 기간이라면 윤서와 막란이 충분히 곽주에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다. 윤서 외에는 말이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오히려 속 편하다.


조선에서와는 달리 화적들에게 관심을 둘 만한 사람도 없다. 여기선 신분의 차이는 재물의 양에 비례하는 것 같다. 막란과 윤서는 화적들이 객주에 자리 잡자 바우와 함께 배에 올랐다.




*




다시 곽주를 향해 배를 출발시켰다. 이틀이면 충분히 곽주에 도착할 거리이다. 그래도 바우가 덕물도에서 귀 잘린 할아범의 배를 몰아본 경험이 있어, 이 큰 배를 무리없이 운행할 수 있는 것이다.



“할아범은 기력이 좀 어떠셔?”



귀 잘린 할아범은 원래 백정이었다. 근수를 속였다고 양반 놈에게 귀를 잘리게 되자, 양반을 죽여 버린 것이다. 모지리는 그를 도와 덕물도로 보내 목숨을 살렸다. 보답으로 할아범은 모지리의 아들 바우를 거두었다.



“노망이 들었어. 나하고 모지리 아비하고 헷갈려 해”



모지리 아저씨가 살아 있을 때 할아범을 아버지처럼 여겼다. 할아범도 모지리를 자식처럼 여겨 온 정성을 다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할아범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지리는 목숨을 내놓고 구해 주었다.



“모지리 아저씨 죽은 것은 아셔?”


“죽은 건 알지. 그런데 나를 보면 아비 이름 부르면서 자꾸 밥 먹으라고 해.”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또 먹으라 그러고, 먹으면 또 먹으라 그러고....... 어쩔 때는 다섯 번이나 먹었어. 배 터져 죽는 줄 알았다니까.”


“할아범 자식들이 굶어 죽었대....... 그래서 먹는 거에 한이 돼서 그런 거야.”


“나두 알지....... 그래서 먹으라는 대로 먹고 있어.”



천민들 식사는 하루에 두 번이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양반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이다. 그러기에 밥그릇은 양반들과 달리 많이 크다. 될수록 많이 먹으려는 거다. 할아범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바우는 그 그릇에다 다섯 번을 먹은 것이다. 그것도 고봉밥을.......




*




명나라 진안에서 배를 띄운지 하루 반 만에 곽주에서 가까운 남포항에 도착했다. 남포는 석탄을 명에 수출하는 항구다. 그래서 사람이나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개들도 석탄가루를 뒤집어 써 본래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윤서와 막란 그리고 바우도 석탄으로 치장을 해 모습을 알지 못하게 했다. 그렇잖아도 못생긴 막란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었다.



“어울리십니다. 서방님.”


“제가 밤새 시조 하나 지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설마하니....... 가소로웠다.



“들어나 봅시다.”


“명사신 홍자성이다 건방떨며 공녀 찾으니,

조선의 꽃 최윤서가 시조로 답해주니,

공녀 찾던 홍자성은 흔적 없이 간데없고,

명나라며 조선이며 최윤서만 남아있네.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서당 개 삼년이면 서적을 입에 물고 다닌다는 속담이 맞는 듯하다. 그 무식하던 막란 서방이 어느새 농을 섞은 시조를 읊고 있는 것이다. 상으로 입맞춤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 바우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 그것은 못해 주겠고 대신 등짝을 씨게 후려친다.



“아픕니다. 내 시조가 그렇게 좋지 않습니까!”


“좋아서....... 환장할 정도로 좋습니다.”


“그럼 뭐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녁 때 주막에서 방 두 개를 잡으세요.”


“부인....... 고맙습니다.”


“.......바우 서방님과 같은 방 쓰세요. 오늘은 피곤해서 저 혼자 자렵니다.”



잔뜩 골이 난 막란을 억지로 끌어 곽주로 향한다. 날이 어둡기 전에 황천고개 밑에 있는 주막까지는 가야한다. 화적들은 조선이 아니어서 관군들에게 쫒길 일은 없겠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명나라다. 속히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




힘들어 막란의 등에 업혔다. 윤서의 발걸음이 늦어 예상보다 늦게 황천고개 밑에 있는 주막에 도착했다. 상인들이 많아 방은 여유가 없었다. 사람들 틈에 끼여 밤을 보내야 한다.


얼굴을 씻고 밥을 먹고는 새우잠을 잔다. 그런데 누군가 자꾸 윤서를 힐끔거린다. 일부러 남장을 하고 얼굴을 숙여 자태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윤서를 알아보는 것 같다.


깊게 잠들어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막란을 서둘러 깨운다. 바우도 깨워서 함께 밖으로 나간다.



“서방님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요 누구! 내 아주 요절을 낼 것입니다.”


“시끄럽게 일을 키우면 안 됩니다. 아무래도 산에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적들이 섬에서 나왔다는 것이 전국에 소문이 돌고 있는 듯하다. 분명 이들의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어 누구든 탐을 낼 것이다. 윤서는 명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으니 조선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피곤이 겹쳐 잠시 이를 잊고 주막에 머물려 한 것이 실수다.


달도 밝으니 밤길을 타고 산을 오르기로 한다. 쌍바윗골은 황천고개에서 좀 더 정상에 있다. 일부러 길이 나 있지 않은 정상을 택한 것이다. 오르려면 꼬박 하루는 걸리니 중간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노숙을 하기로 한다.


혹시 몰라 주위를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와 따라오는 이리들의 눈동자들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리들이야 다쳤거나 죽어 있을 때만 덤비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리들이 따라오니 추행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어도 된다.


좀 전에는 그렇게 피곤했는데 산길을 오르니 다시 정신이 맑아 졌다. 막란은 갈지자로 걷는 폼이 조는 것 같다.



“서방님.......”



답이 없다.



“관군들이다!”



막란이 놀라 윤서를 집어던지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윤서를 놔두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것이다. 바우도 윤서의 비명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주경계를 한다. 윤서가 툭툭 털며 배신감에 치를 떤다.



“서방님 농입니다. 농....... 농이라고 이 서방 놈아!”



윤서가 아무리 불러도 막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십리 밖은 도망친 것 같다.



“아씨 형님 도망간 것 맞죠?”


“이걸 서방이라고.......”



윤서는 단단히 삐졌다. 그녀 앞에서 근육을 보여주며 상남자 짓은 혼자 다하는 서방이다. 그런데 ‘관군들’이라는 소리에 혼자 살겠다고 제 계집을 버리고 도망간 놈이다. 이걸 잡아서 죽여 살려 하면서 이를 갈고 있는데.......


밑에서 들리는 짤막한 비명과 함께 숨넘어가는 사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조용해진다. 이번에는 위쪽에서 다시 칼날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조용해진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 그러다 ‘후다닥’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뒤를 쫒는 소리....... 바우가 윤서를 막아서며 칼을 뽑아들고 더욱 경계를 한다.


잠시 동안의 정적을 깨는 ‘우당탕’하는 소리가 오래 간다. 그러다 한참 조용해진다. 그리고 윤서 앞에 나타나는 막란.......


그의 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막란의 얼굴에서도 피가 튀어 눈 하나가 벌겋게 물 들어있다. 막란이 얼굴을 돌려 윤서를 피한다.


윤서가 다가가 막란의 얼굴을 닦아준다. 이제는 피 묻은 막란의 얼굴이 무섭지가 않다. 어느새 적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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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조선의 통역사는 첩자이다 NEW 1시간 전 3 1 12쪽
70 그 바람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24.09.16 5 0 11쪽
69 혼례를 했으니 우린 내외다 24.09.15 7 1 11쪽
68 저는 몰라요 24.09.14 12 0 12쪽
67 여인의 귀처럼 생긴 꽃은 24.09.13 8 1 11쪽
66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면 24.09.12 10 1 12쪽
65 임금의 욕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24.09.11 10 1 12쪽
64 64.화적과 의병의 차이 24.09.10 9 1 11쪽
63 개시(개똥) 누이 막심이 24.09.09 13 1 11쪽
62 짱돌만으로도 전쟁을 이길 수 있습니다 24.09.08 16 1 12쪽
61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 24.09.07 12 1 13쪽
60 전쟁은 그런 것이다 24.09.06 15 1 12쪽
59 백정과 오랑캐 24.09.05 13 1 13쪽
58 #58.소금을 배에 옮겨라! 24.09.04 13 1 12쪽
57 王八! 24.09.03 14 0 12쪽
56 내 정체가 궁금하다 했습니까 24.09.02 18 1 12쪽
55 백년 된 잉어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24.09.01 16 1 12쪽
54 아홉 개의 돛을 가진 배가 필요 합니다 24.08.31 13 1 11쪽
53 무명(無名)이라 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1 24.08.30 19 1 12쪽
52 거리와 방향만 맞으면 됩니다 24.08.29 16 1 11쪽
51 내가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24.08.28 15 1 12쪽
50 백호은침(白毫银针)이라는 백차(白茶)입니다 24.08.27 16 1 11쪽
49 구천 구백 구십 구 칸 24.08.26 17 1 11쪽
48 황주(荒酒)로 데워 만든 온주(溫酒)입니다 24.08.25 16 1 11쪽
47 한계란의 언니를 아십니까 24.08.24 15 0 12쪽
46 가을 햇살에 눈이 감긴다 24.08.23 14 0 11쪽
45 세상의 반이 사라진다는 것 24.08.22 13 0 11쪽
44 황금 열 냥으로 할 수 있는 일 24.08.21 18 0 12쪽
» 백성들아 알고 있나 막란의 처라는 걸 24.08.20 2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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