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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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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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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한가

DUMMY

“변호사님, 혹시 주무시고 계셨는데, 제가···.”

“아닙니다. 아직 자기엔 이른 시간이죠.”

“다행이네요.”


윤미르는 잠시 말이 없었다. 핸드폰 너머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죄송해요. 제가 잠들려고 계속 누워있는데 도통 잠이 안와서요. 마땅히 전화할 사람도 생각이 안났어요.”


“전화 잘했습니다. 오늘은 뭘 하셨습니까?”


율무는 윤미르가 어색하지 않게 먼저 대화주제를 꺼냈다.


“오늘 영화제작사에 갔는데, 거길 다녀왔더니 걱정이 많아졌어요.”

“제작사에서 뭐라 하던가요.”


“재판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말이죠. 그런데 변호사님, 대법원 결과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민식이 형이 뭐라고 설명을 해줬는데, 제가 제대로 안들었나봐요.”


“저희는 전원합의체 파기환송을 노리기 때문에, 3개월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럼 3개월 동안은 꼼짝없이 아무 것도 못하겠네요.”

“많이 답답하신가요? 오랜만에 푹 쉬시면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휴식을 갖는다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하하, 저 많이 쉬었어요. 제가 아이돌로 데뷔는 했는데, 망돌이었거든요?”

“망돌이요?”

“변호사님은 그런 말을 잘 모르시는구나. 인기 없어서 망했다구요.”

“아. 그래요? 근데 미르씨 팬덤도 큰 걸로 아는데···.”


극성팬덤의 대명사 미르팜을 떠올렸다.

사실 율무는 아이돌 세계를 잘 모른다.

생각해 보니 윤미르가 아이돌이었다는 것만 알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어떤 팀 소속이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팀으로는 잘 안풀렸어요. 각자 개인활동 주로 했고, 저도 연기 겸업했거든요.

그때 일이 없어서 많이 쉬었죠. 연기 못한다고 욕도 엄청 먹고···, 하핫.

그러다 연기로 잘 된 건 몇 년 안 돼요.”


휴, 긴 한숨과 침묵이 이어지나 싶더니 윤미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춤추다가 허리를 다쳐서 몸도 안좋거든요.

몸도 아픈데 요즘은 정신적으로 힘드니까, 인생이 고통스럽다는 생각만 드네요.”


“윤미르씨,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율무는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남들의 불행을 보고 위안을 받으라는 건 아니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불행을 안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윤미르씨도 대단히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거든요.”


“변호사님도 힘드신가요?”

“그럼요. 불행배틀을 벌이려는 건 아니지만, 제 삶도 녹록지는 않습니다.”


“휴, 왜 인생은 힘든 걸까요?”


“막연히 추상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숫자로 계량화해보죠.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밥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죠. 이 과정 매 순간은 스트레스와 고통입니다. 반면 쾌락과 행복은 어떤가요? 즉각적이고 순간적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과 행복의 총량을 계량화할 수 있다면 고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올 겁니다.

그렇다면 윤미르씨가 ‘사는 게 고통이다’라고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특별히 내 인생만 왜 이렇게 고통스러울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큭큭큭큭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와, 되게 철학적이고 심오한 문제인 줄 알았는데, 더하기 빼기로 생각하니 간단하네요. 그냥 제 상태가 정상인 거군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좋습니다.

괜한 자기연민에 빠지면 삶에 좋은 일과 행복한 일이 있어도 불행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자원봉사라도 하시면 어떨까요?

혹시 강아지 좋아하세요? 연예인들 유기견센터 봉사 많이 하던데요.”


“아, 맞아요. 주변에도 유기견센터 가는 형이 있어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윤미르의 목소리는 왠지 신이 난 듯 들떠 있었다.


“변호사님, 정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제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휴. 변호사 노릇하기 힘들다.


율무는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자기 세치 혀로 윤미르의 마음이 편해졌다면 이 또한 선행이라 생각하며 기분 좋은 잠에 들었다.


***


율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을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지난번 봤을 땐 아무런 촉이 오지 않아 실망스러웠지만, 사건의 진행에 따라 육감이 발현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인 의견서 작성을 하나 끝내고 한숨 돌릴 시간이 나자, 책상에 꽂힌 기록 파일을 뭉텅이로 들어 넓은 상담 테이블에 내려놨다.


오늘은 고소대리 사건을 볼까?


변호사는 형사기소된 피고인을 변론하는 것만은 아니다. 피해자를 대신하여 고소사건을 대리하기도 한다.


범죄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범죄의 처벌을 구하는 절차가 형사고소다.

그러나 고소가 부실할 경우 수사기관은 고소인의 마음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기 어렵다.

즉, ‘저 사람이 나한테 잘못했으니 벌을 주세요.’라고 하소연하는 것 만으로 바쁜 경찰이 곧장 수사에 착수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변호사 고소대리이다.

CCTV나 사진 같은 명확한 증거자료가 있다면 고소에 변호사는 필요하지 않다.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는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싶으나, 불송치나 불기소의 가능성이 있을 때다.


고소사건 파일을 하나씩 넘기던 율무의 손이 우뚝 멈췄다.


업무방해죄 고소?

박원장님 사건인데···.


A병원이 있었다. 의료인 아닌 B가 의료인인 C의 명의로 개설하여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이른바 사무장병원이다. 사무장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절대적으로 금지되며, 위반시 형사처벌대상이다.


이 사건 고소 사건은, A병원의 실질적 주인으로부터 돈을 받아낼 목적으로 패거리를 몰고 와 11회에 걸쳐 소란을 일으키고 간호사들을 위협하거나 환자 진료 예약이 있는 의사를 붙잡고 있는 등의 방법으로 의사의 진료 업무를 방해한 것이었다.


이 사건의 의뢰인인 박원장은 당시 진료과장이었다. 박원장은 상담하면서 답답함을 호소했다.


“저희가 사무장 병원인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저희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는지 모릅니다. 꼭 처벌받게 하고 싶은데, 경찰에서는 어렵다고 하네요.”


수사기관에서 업무방해로 처벌이 어렵다고 한 것은 확고한 판례 때문이다.

사무장병원의 진료행위는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2001년 판례가 있다.


갑자기 왜 이 사건에 촉이 온 걸까?

혹시 판례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논문이 게재된 걸까 싶어 먼저 논문 사이트를 뒤져봤다.

없다!


혹시나 해서 최근 판례를 찾아봤더니, 2001년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는 따끈따끈한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등재되어 있었다!


유레카!!


율무는 들뜬 마음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박원장님, 완승 차율무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변호사님. 웬일인가요?”


“업무방해 고소대리 건이요, 기소 가능하겠습니다.”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제가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떨려서 잠을 못잡니다. 아직도 울화가 치밀어요.”


“이제 걱정마십시요. 반드시 처벌받게 만들겠습니다.”

“변호사님만 믿겠습니다. 언제 식사나 한번 같이 하시죠.”

“기소까지 되면요. 하하. 나중에 뵙겠습니다.”


율무는 상쾌한 기분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망이 밝지 않았던 사건 하나를 해치우고 나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응? 강효인 변호사?


***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처음이죠?”

멋진 수트를 입은 강효인과 장호영을 고급중식당 룸에서 만났다.

“우린 수원 재판 갔다가 곧장 왔어요.”


“반갑습니다.” 율무는 선배변호사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변호사님, 다시 뵙네요.” 장호영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장호영은 오늘은 강효인과 함께 재판에 다녀온 모양이다.


“같은 팀에서 근무한 지 반년 돼가는데, 제대로 이야기도 못해봤네요. 같이 일하려면 얼른 친해져야죠.” 금테안경에 엘리트 느낌을 팍팍 풍기는 강효인 변호사가 먼저 친근함을 표했다.


강효인은 6년차 변호사였다.

그간 법무법인에서 온갖 클라이언트에게 단련되어 말주변이 참 좋았다.

그는 율무와 장호영 모두 신경을 써가며 대화를 주도했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 즐거운 자리였다.

오만하고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는데, 말도 많고 재밌는 사람이다.

율무는 완승 사람들에 대해 자신만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다시 깨달았다.


“제가 요즘 주식을 하거든요.” 장호영은 첫월급을 받아 재테크를 시작했다며 주식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나도 주식 많이 해. 차변은 어때요?”

“저는 재테크는 잘 모릅니다.”


요즘 월급쟁이 두세 명만 모이면 주된 대화주제가 부동산과 주식, 코인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바쁘다 보니 관심이 가지 않는다.


“YS 제약이요. 췌장암 치료제 임상3상 돌입했다고 공시 떠서 지금 상한가 갔거든요. 제가 야수의 심장으로 이걸 풀매수 걸어놨습니다.” 장호영은 신이 나서 말했다.


율무와 강효인은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YS제약을 검색해 봤다. 임상에 대한 뉴스로 도배되어 있고 주가 기대감에 대한 기사도 많았다.


그런데, 이 불쾌한 기분은 뭘까.

음주운전차량을 만나기 전에 느꼈던 것 같은 답답함.


율무는 주식앱으로 들어가 YS제약을 검색해 봤다.

맞다.

이 주식을 보니 등골이 오싹하다.


올라갈 주식을 점지해 주시지, 내려갈 주식을 알려주시다니요.


내 촉이 이러저러하다 말한다고 믿을 것도 아니고, 남의 투자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율무는 이걸 말해줘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첫월급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날리게 할 수는 없잖아.

고민하던 율무는 가벼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임상3상 공시 나중에 뒤집힌 경우도 있지 않아요? 기사에서 본 거 같은데. 느낌이 안좋네요.”


“음? 차변호사님 느낌이 안 좋으세요?” 의외로 장호영은 귀가 얇은지 솔깃한 표정이었다.


“하하, 그냥 제 느낌이요.” 율무는 확답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차변호사님 감 좋으신데, 어떡하지? 매수 취소할까요?” 장호영은 혼자 고민에 잠겼다.


“윤미르 건이요, 우리끼리 따로 스터디 할래요?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드디어 강효인이 식사를 함께하자는 한 본론이 나왔다.


“선배님, 말 편하게 하시죠.”


“아, 그럴까?” 강효인도 이 말이 나오길 기다린 듯 냉큼 말을 놨다.


“그 사건 관련해서 제가 정리한 자료가···.”


강효인과 율무는 윤미르 사건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윤미르 기사 반응은 계속 확인하고 있지? 여론 동향을 봐서, 변호인이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내부에 있어.”

“아···.”


“정변호사님이 언론플레이를 좋아하셔. 차변도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헉”

두 사람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핸드폰만 들여다 보고 있던 장호영이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깜짝이야. 너 왜 그래?” 강효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하한가, 하한가 갔어요. 완전 폭포수네요.”

장호영은 새빨개진 얼굴로 율무에게 고개를 돌렸다.


“변호사님 덕에 매수 취소해서 저 살았어요. YS 하한가 갔어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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